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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 두 달 뒤 어느날, 나는 가출을 해 고향인 문경을 떠났다. 그후 10대에는 주로 공장생활을, 20대에는 초상화 제작, 30대와 40대 중반까지는 단순노동에 종사했다. 목공, 미장, 도배, 페인트칠, 삽질, 벌초, 외판, 광부, 리어카행상 등등 수십 가지 일을 전전하며 30년이 흘렀다.
16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18세 때부터 일기를 썼다. 내 일기장은 나날의 일상과 더불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자신에 대한 자괴와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채워져 갔다. 한번에 5장, 10장씩 쓰다보니 한 달이 채 못 돼 노트 한권이 꽉 찼다. 월세 쪽방에서 자꾸만 늘어나는 일기장은 짐이 되었다. 30대를 코앞에 두고 나는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몽땅 불태우기로 했다. 그러면서 내용을 추리고 추려 대학노트 20권으로 줄였다. 그 작업이 6개월 걸렸다.
그 기간에 나는 수입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사 문화센터를 찾아가 시와 소설 창작을 수강하느라 군 복무 후 5년간 저축한 600만원도 모두 써버렸다. 원래는 일기장 정리를 위해 문장 공부를 시작한 것인데 강의를 듣다보니 문학에 대한 욕망이 싹텄다. 틈틈이 시간을 내 강좌를 계속 수강했다. 몰아서 합치면 4년 정도의 기간을 꼬박 채웠을 것이다. 38세 때 중앙 문예지에 투고한 나의 시 작품이 당선되었다는 통보가 날아왔다. 만기 채운 적금을 수령할 때보다 더 보람을 느꼈다. 그후 4년이 지난 2002년 겨울에 나는 첫 시집을 발간했다. 비로소 견고한 나만의 성을 하나 구축한 것처럼 가슴이 뿌듯했다.
입력 : 2008.12.26 03:01 / 수정 : 2008.12.26 08:4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26/2008122600026.html
첫댓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