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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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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평안도는 감숙성이란 충격적 증거 기록...내만(乃蠻).
궐한 추천 2 조회 917 13.09.20 12:28 댓글 6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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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9.21 10:34

    "내만과 조선의 지역 비정"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3.09.21 10:51

    격려감사합니다...매일매일님.
    복받으실겁니다.

  • 13.09.21 14:11

    글 잘 보았읍니다.
    위치를 비정하심에, 요동은 돈황, 요택은 라포박, 의무려산은 동천산, 내만은 알타이 중가리 이르티쉬강 일대, 의주는 감숙성 등등으로 하시나 정작 중요하고 큰 지명이라 할 수 있는 북경(연경)은 어디인지 비정을 안하심니다. 혹시 우루무치쯤으로 생각 하시는지요..

  • 작성자 13.09.21 21:54

    처음엔 우루무치를 생각했는데...
    여러 기록들을 보건데 연경북쪽을 기련산(천산)이 두르고...그 이북은 흉노의 땅이라니...그 경계점에 황도를 만들진 않았으리라보여...
    투르판지역 어디로 산정해 봅니다.
    우루무치는 흉노들의 침입로를 막는 차원이자...
    반대로 청나라차원에선 여차하면 남방족들의 난동시 이동할 일차 행궁정도로 보입니다.

  • 13.09.21 14:23

    또 위의 인용문중에
    '6년(1270, 지원 7), 상서성(尙書省)을 설립하였다. 과거에 상서성으로써 산동(山東) 이서 하북(河北) 땅을 통괄하게 하여 이 지역을 ‘복리(腹裡)’라 하는 한편 대도인 연경(燕京)이 예속되었다 하여 도성(都省)이라 부르고, 그 밖의 중요한 곳에는 중서성(中書省)을 두었었는데...' 란 구절이 있는데,,즉 여기서 <산동(山東) 이서 하북(河北) 땅>은 어디 (어떤 산(山)과 하(河))를 말씀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산동(山東) 이서 하북(河北) 땅 > 에서 '이서'는 '에서'인지 '이서(以西)인지도 헷갈리는군요..

  • 작성자 13.09.21 21:58

    저도 그 부분에서 좀 헤깔립니다.
    고대 산동과 산서의 분깃점은 화산(華山)이라는 문헌이 있으니...산동은 서안 이동...산서는 서안 이서로 봐야 하는데...
    그래봐야 감숙성정도니...제가 조선 평안도라 보는 감숙성에 그 서쪽 3000리 정도에 있어야할 연경이 있단 모순이 생기니...
    그 부분에선 솔직히 좀 막힙을 실토합니다.

  • 작성자 13.09.21 22:24

    혹 당대의 몽골족들 개념의 산서 산동의 깃점은...조선이나 중국같은 화산이 아니라...
    그들의 전통 동서 분깃점인...신장성과 외ㅏ몽골을 확실히 나누는 현 고비알타이산맥(음산?)이 아닐까란 예상도 좀 해 봅니다.
    정확하단 보장은 못 하겠고여...

  • 13.09.21 18:00

    후고구려를 몽고로 보는 시각이신데 반갑습니다 동지 하나를 얻었습니다

  • 작성자 13.09.21 22:04

    궁예의 후고구려가 아니라...
    북방의 실질적 후고구려격인 발해가 신장성과 내외몽골을 영토로했다 보고...
    이게 거란에게 밀려 점점 외몽골 동북으로 몰리다가...울란바타르 정도의 황룡부에서 막을 내렸다 봅니다.
    궁예의 태봉은...전 토번의 땅으로 보며...철원이란 본거지는 철문관이 있단 포창해서부 기준 타클라마칸 남부부터라 예상합니다.
    좀 너무 멀리 간거겠져...?
    저도 이 부분은 확신이 아직 없습니다.

  • 작성자 13.09.21 22:03

    단지 토번땅인 티벳의 라마불교 자체와 철저한 신정일치 불교통치 전통....
    티벳의 그 전통과 궁예의 신정일치정책이 많이 맞아떨어진단 단순 추리는 해 봅니다.

  • 13.09.23 16:19

    조선 말기에 코자크 기병이 만주에 러시아군과 함께 휘저었던 기록이 증거사진과 함께 있습니다. 코자크족은 오늘날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에 있는 민족입니다. 그럼 그 때 당시 만주는 어디에 있었을런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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