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 세계의 끝 씨앗 창고, 캐리 파울러 지음, 마리 테프레 사진, 2016, 허형은 옮김, 2021, 총171쪽
2007년 5월 18일 오후 5시 25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플라토베르게산 등성이에서 첫 폭발을 일으키는 의식이 거행됐다. 그 첫 폭발이란 바로 세계 씨앗 창고 Groble Seed Vault 건설 공사를 알리는 발파 장치를 누른 것을 말한다. 암석과 눈으로 덮힌 차가운 땅 속 깊숙히 터널을 뚫고 그 속에 세계의 온갖 씨앗을 보관하겠다는 것이다. 씨앗이 가장 잘 보존될 수 있는 온도인 영하 18도 C에서 200년 이상을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왜 세계의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가?
개별 종자 컬렉션에서 너무 자주 발생하는 자잘한 다양성 소실 사건에 대비해 종자를 보호하려는 과학자들의 열망에서 탄생했다.
스발바르 종자저장고에서 고유 품종의 중복 사본이 보호를 받는다면 개별 유전자은행은 자기네 시설에서 한 품종이 유실되거나 심지어 컬렉션 전체가 사라진다 해도 해당 품종 혹은 컬렉션 그리고 거기에 담긴 다양상이 소멸하는 사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스발바르 종자저장소는 노르웨에 존재하는 가장 까다로운 건축 기준에 맞춰 지어졌다. 이 규정은 건물 수명의 최저선을 200년에 맞추었다. 사용 연한에 끝이 없다고 상정하고 설계하고 건축한 시설이다. 그런 점에서 스발바르 종자저장소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작물다양성 없이는 기후변화나 병충해에 적응할 수 없다. 작물다양성 없이는 식량 안보를 확립할 지속 가능한 방법도 없다. 작물다양성이 없으면 사실상 농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발바르 종자저장고는 자연재해와 전쟁, 사고에 대비한 시설이다. 또한 여러 나라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국 유전자은행의 운영을 방치함으로써 자초한 손실에 대해 보험을 제공하는 기능도 한다.
최대한 많은 작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이 필수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조건에 우리 작물 품종들이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해주는 것이 바로 다양성이다.
식물 육종을 위한 소규모의 조직적 종자 채집은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초반,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돼 과학 기반 식물육종의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소비에트연맹의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식물육종가들에게 다양한 형질을 제공하고 작물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 최초로 제대로 된 세계적 규모의 작물다양성 표본을 수집한 인물이다. 1940년대에 유전학자로 활동했는데 스탈린과 의견이 충돌해 투옥당했고 결국 감옥에서 굶어죽었다.
세계 종자 저장고는 2015년 가을 기준 운영을 게시한 지 7년 만에 88만 개가 넘는 작물 품종 혹은 작물균이 위탁되었다. 약 5억 개의 종자, 40톤에 달하는 분량이다.
지금 스발비르 종자저장고에는 밀과 쌀이 각각 15만 4000여 종류, 보리 7만 5000여 종류, 수수 4만 7000여 종류, 옥수수 3난 5000여 종류, 콩 3만 3000여 종류, 병아리콩 2만 9000의 종류, 대두 표본 2만 2000여 종류, 그리고 비슷한 숫자의 진주조 표본이 저장되어 있다. 여기에 광저기('블랙아이드 피'라고도 한다) 1만 7000여 종류, 땅콩 1만 5000여 종류, 잠두(페이바 콩) 8000여 종류, 녹두 8000여 종류, 그리고 4000여 종류의 양상추와 3000종류가 넘는 토마토, 3700여 종류의 감자 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아, 물론 감자는 종자를 얻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다른 형태로 보존되지만 말이다. 풍만두(내가 제일 좋아하는 채소 중 하나이며 미래식량을 위해 중요한 작물이기도 하다) 1000여 종류, 순무 2500여 종류, 후추 2500여 종류, 오이 2000여 종류, 그리고 말과 소의 꼴로 사용하는 왕포아풀도 1100종류 넘게 있다.
스발바르 종자저장소가 보관 중인 모든 작물의 목록을 생각이 없이 죽 연결해 입력하면 55쪽에 달한다. 우리 귀에 익숙한 작품 외에 내게는 대부분 생소한 다채로운 이름의 작물도 보관되어 있어서 뿌듯하다. 투구꽅(바곶류), 배초향, 멕시코양귀비, 가는갯는쟁이, 구주냉이, 왕바랭이, 몰몬티, 주름구슬냉이, 골무꽃•••.(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