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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백승종 선생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왔는데
국민국가의 정치교양으로서의 역사쓰기에 적합한 근대역사학과 역사적 상상력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운 즈음에 시의 적절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역사 서술에서 '상상력'의 기능과 한계
-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백승종, 푸른역사 2006)의 사례
백승종
차 례
[제1신] 아무 걱정 말고 속 시원히 자네 비밀을 좀 털어놓아 보게!
[제2신]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하나의 반란인가.
[제3신] 역사적 상상력은 일차적으로 논리적 추상 능력이다!
[제4신] 그래서 역사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제5신] 오만과 과신의 늪에 빠지다.
[제6신] 실험은 피할 수 없는 제 운명
[제1신] 아무 걱정 말고 속 시원히 자네 비밀을 좀 털어놓아 보게!
1. 여보게, 백군! 참 오랜만일세. 늘 자네와 함께 지내면서도 퍽이나 무심했던 것 같네. 자네 걱정이 내 걱정이요, 자네 웃음이 실상은 내 웃음이건마는 우리 두 사람 입이 하나 밖에 없는지라. 자네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나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 며칠 자네가 00대학교에 가서 무슨 발표를 해야 한다며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데, 그 모양이 안타까워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네. 이 사람아, 그렇게 나를 혹사시키면 되는가? 내 몸이 곧 자네 몸 아니라는 가.
2. 자네가 주최 측에 보낸 주제가 아마 "역사 서술에서 '상상력'의 기능과 한계 -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백승종, 푸른역사 2006)의 사례분석"라고 했든가. 왜 그렇게 딱딱한 제목을 골랐는가. 왜? 좀 쉬운 말로 하면 어디 탈이라도 나는가. 그럼 다른 사람들이 자네를 우습게 볼 것 같아서 겁이 나는가? 그러지 말게. 그렇게 애써 과장할 게 뭔가. 그냥 마음 편히 먹고 자네 생각을 그대로 얘기해 보게. 들을 만한 가치가 없다면 다들 주무시겠지. 그것도 좋지 않은가. 요즘 교수님들은 옛날 같지 않아 다들 스트레스가 많으시다 하네. 자네 덕분에 한 삼십분 주무시게 되면 그것도 여간 공덕은 아닐세.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자네하고 싶은 말이나 좀 똑똑히 말해 보게. 유명한 서양의 학자가 뭐라고 얘기 했고, 한국의 어느 똑똑한 학자는 뭐라고 했다는 식으로 외투 쓰고 목도리에 모자까지 챙기지 말고 좀 활씬 벗어보게. 내 눈에는 잘 차려 입은 놈보다 완전히 벌거벗은 놈이 더 멋져 보이던데. 아니 그런가?
3. 의뭉하게 굴지 말고 한 번 솔직히 털어놓게. 자네 일생에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딱 이번 한 번만 커밍아웃인가 뭔가 해보란 말일세. 자네가 그동안 몇 번이고 나를 못살게 굴던 그 말을 몽땅 쏟아놓으란 말이네. 어차피 자네 특기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한 번 혼날 생각하고 그동안 숨겨온 자네의 깊은 속내를 한 번 좌중에 털어놓게. 뒷감당은 내가 함세. 그럼 이만.
[제2신]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하나의 반란인가.
1. 당신 편지를 읽노라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제가 당신을 괴롭힌 적이 전혀 없는데,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실로 당신이야말로 제가 그 동안 노력한 대가를 불노소득으로 차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죽을 둥 살 둥 글을 쓰느라 고생했지만,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원고료만 받아먹지 않았습니까?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본래 2005년, 제가 서울의 어느 신문에 연재한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의 일부입니다. 더욱 자세히 말씀드리면, 신문에 연재된 3개의 글을 가지고 부풀려서 책 한 권의 분량으로 만든 것입니다.
2. 제 책을 읽어보셨으면 잘 아실 일입니다만, 그 소재는 다음의 세 가지 사건입니다. 하나는 영, 정조 때 전라도 부안 월명암의 태진이라는 스님이 <정감록>을 소장하고 있다가 전라도 남원에 사는 양반 최봉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서가 결국 김원팔이라는 평민 출신의 부자에게도 전해져, 결국은 괘서로 둔갑해 가지고 남원성 밖에 내걸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또 하나는 서북 출신의 술사요, “평민지식인” 문인방이 충청도 진천까지 남하해 <정감록>을 퍼뜨리다 못해 역모를 꿈꾼 사건입니다. 문인방은 여러 지방의 양반들과 연합해서 반란을 획책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사실이 발각되어 한바탕 정치적 회오리가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충청도 공주 출신의 아전 문양해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전국 규모의 정감록 지하조직 사건에 주목했습니다. 문양해는 서울의 부자 양반 홍복영의 후원에 힘입어 지리산 산중에 1백간도 넘는 큰 기와집을 지어놓고, 신선과 인간 세상을 오가며 거사를 준비했습니다.
3. 그 가운데서도 방금 말씀드린 세 번째 사건 즉, 문양해 사건을 저는 학술 논문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서북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각지를 유랑하며 <정감록>을 퍼뜨린 사실도 논문을 통해 논증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정감록>은 영조 때 함경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출현했고, 불과 한 세대 만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조정에서는 이 책자의 소지를 법으로 엄히 금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경기이남 지역에도 <정감록>이 유행하게 되자 이른바 "원국지사" 즉, 나라를 원망하는 선비들이 그 예언을 무기 삼아 반역을 꾀했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 주목해 예닐곱 편의 논문을 썼고, 이를 한데 묶어 <한국의 예언문화사>(푸른역사 2006)라는 책자를 간행했습니다. 무엇인가 제 마음에 미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예언문화사>를 통해, 저는 예언의 역사를 개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18세기에 등장한 예언서 <정감록>이 서너 단계의 변모를 거친 다음, 19세기 후반에는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로 거듭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언의 역사에서 18세기가 지니는 의미가 워낙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이란 별도의 책자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4.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집필했습니다. 가령 문양해 사건이라고 하는 소재가 있다 하면, 우선 저는 그 사건에 관한 기록을 분석해 한 편의 학술 논문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사건의 줄거리를 요약해 신문에 연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이 흡족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허전했습니다. 그 동안 문양해 사건에 관해 제가 쓴 글들이 "형해화形骸化 된 글", 달리 말해 "죽은 글"이라고 저는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쓸쓸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지만, 정통적인 논문은 글을 완전히 죽여 버립니다. 논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이 충분히 제대로 표현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근대적 학문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글쓰기는 근대가 발명해 낸 위선이며 가식이라고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제 가슴은 답답해지고, 당장에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습니다.
5. 도대체 근대적 논문 투의 점잖음은 얼마나 지루한 것입니까?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해 글을 쓰면서 어쩌면 그렇게 시종일관 무감각한 말투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까? 주관을 배제한다지요? 이게 정말 가능하기나 한 것입니까. 어차피 우리가 글을 쓸 때면 누군가의 편을 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체 해도 편드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관점이나 입장 같은 것도 다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예컨대, 국가와 민족의 입장에서 이 사건이 지닌 진보와 발전의 싹을 발견한다는 등의 목표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목표 설정조차 외부로부터 부여됩니다. 사실은 엄연히 그렇건마는 학자님들은 너스레를 떱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논문이 가장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글, 그야말로 학문적인 글인 것처럼 둘러댑니다. 이런 일이 도대체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있으나 마나 한 각주는 또 왜 그렇게 많습니까? 누구라도 해당분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무엇 때문에 덕지덕지 붙여놓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것을 가식 또는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6. 어차피 역사란 "술이작述而作'입니다. 사람들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말들 합니다. 과거의 사실을 기술할 뿐 더하거나 보태지는 않는다는 말인데, 저로서는 그런 거짓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생리적으로 반감을 갖게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모든 글은 주관적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주관적입니다. 글이란 것의 속성이 그렇게 만듭니다. 어떤 사물이 됐든 나라고 하는 주체가 수용했다면, 그 때는 이미 나의 주관이 필터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습니까?
7. 그럼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말과 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하나의 텍스트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이해가 달라지고, 동일한 사람이 읽더라도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상당히 바뀝니다. 텍스트는 그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요, 괴물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근대의 역사가들은 이른바 학문이라는 엄숙한 이름으로 텍스트의 생명을 부정하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누구든 텍스트의 객관적 이해와 공정한 서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분이라면 저의 동지는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8. 역사서술을 포함해 모든 텍스트는 "술이작"을 허용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양해 사건을 비롯해, 문인방과 태진 스님 사건도 다시 썼습니다. 저는 바로 그 세 가지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그 때 그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을 지를 속 시원히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들의 역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제 자신이 때로는 태진이 되고, 문인방이 되었으며, 그리고 또 문양해가 되었습니다. 현실 속의 저는 물론 백군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 관한 옛 기록을 되풀이 해 읽으면서, 그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초월의 경험이요, 공감 또는 동감인 것입니다. 도대체 이러한 내적 일치와 공명이 없이 쓴 글이란 무엇입니까? 이런 관점에서 저는 이른바 논문이란 것이 실은 얼마나 위선적일 수 있고, 불요불급한 글인가를 통감하게 됩니다. 요즘 대학에서는 이른바 등재지라고 하는 특정한 학술지에 몇 편의 글을 발표하느냐에 따라 채용 여부가 결정되고, 연봉이 달라지며, 승진도 좌우된다고 합니다. 정말 딱하기 그지없는 현실입니다.
9. 학문의 이름으로 학문이 무참히 살해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제가 왜, 상상력을 빌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썼는지 이해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제3신] 역사적 상상력은 일차적으로 논리적 추상 능력이다!
1. 자네 편지를 읽고 매우 놀랐네. 자네야말로 어찌 그리 독선적인가. 처음에 나는 뭐든 자네 편을 들어주기로 작정했지만 자네의 교만한 언사, 편협한 생각을 알아차린 이 마당에 어찌 더 이상 자네를 두둔할 수가 있겠나?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자네가 아닐세. 설사 우리가 마지못해 한 지붕 아래, 한 이불 아래, 아니 한 몸이라 해도 자네처럼 치우치고 배배 꼬인 인간을 나는 아마 더는 용납 못할 걸세.
2. 여보게. 자네가 말하는 그 정도 상상력을 갖추지 못한 역사가도 있었던가? 자네는 아마 학문적 상상력과 멋대로의 망상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네. 내가 지금 말하는 학문적 상상력이란 정확히 말해 논리적 추상능력이네. 지금까지 자네도 여러 종류의 글을 적지 않게 읽어 보았으니까 충분히 내 말 뜻을 짐작하겠지. 자네가 비난한 근대의 역사가들 보다 몇 배나 딱딱한 글을 쓰는 법률가들의 글을 가지고 말함세. 가령 법정에서 판사가 읽는 최종 판결문이랄지, 그가 내린 판결의 토대가 되는 검사의 논고나 변호사의 변론서를 좀 염두에 두어 보게. 글의 형식이야 따분하기 그지없지만, 가령 말일세.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두고 전개되는 논고와 변론과 판결의 과정을 상상해 보게. 그들은 자네처럼 요란을 피우지 않고서도 매우 냉정하고 차분하게 숱한 가능성을 엄밀히 추정할 수 있네. 어디 추정에 그치겠는가? 피고도 방청객도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결론에 이를 때가 적지 않다네. 그렇다면, 굳이 글쓰기의 형식을 파괴해야만 논리적 상상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가능하네. 도대체 이 세상에 논리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을 빼놓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시인이나 화가나 음악가에게 맞기면 될 일일세. 언필칭 역사가라고 말하는 자네가 덤벼들 일이 아닌 듯하네.
3. 요컨대 내말은 학문의 세계에서 상상력이란 논리적 추론과 동의어인 것이며, 얼마든지 그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구현할 수가 있다는 것일세. 굳이 자네처럼 형식 파괴를 선동하면서 혼자 우쭐대는 것은 정말 유치한 일이라 생각하는 바, 진심으로 반성을 촉구하는 바일세. 그럼 이만.
[제4신] 그래서 역사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1. 정말 답답하십니다. 당신은 제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계십니다. 주장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다른 모든 종류의 학문적 상상력과 구별하지 않는 당신의 태도에서 저는 당혹과 실망을 느낍니다. 만일 당신의 말씀대로 "상상력"이 사물의 논리적 전후관계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국한된다면, 그것은 "상상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낱 추리력 또는 추상능력일 따름입니다.
2. "상상력"의 범주는 그보다 훨씬 넓고도 깊습니다. 상상의 폭은 사실관계는 물론이고, 미처 행위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까지 포괄합니다. 아마도 근대적 학문의 틀에 갇혀 지내는 당신으로서는 이런 제 말을 듣기가 무섭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건 학문도 무엇도 아니야!"라고 고함을 버럭 지르겠지요. 절더러 "자네 따위가 어떻게,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어버린 그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을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3. 맞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미처 문자로 표현하지도 못했거나 설사 그럴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그 기회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현재로 불러 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 상상이 과연 사실과 부합되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4. 이제 당신은 저더러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에서 강조한 "역사적 상상력"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라고 말씀하시렵니까? 역사라는 학문은 다른 어떤 인접학문다도 증거를 중시하며, 연구 및 그 결과물의 제시에 있어 객관성과 중립성을 추구한다고 엄숙히 선언하실 작정이십니까?
5. 그러나 저는 당신이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이른바 그 "증거"라고 하는 것을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합니다. 우선 기록과 진실은 결코 동의어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기사가 모두 사실이 아니듯,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실렸다고 해서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일기를 쓰든가 연인에게 편지라도 보낸다면, 거기 적힌 내용은 모두 사실로 믿어야 되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기껏해야 "당신의 진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사실과 진실을 서로 구별해야 하고, 진실도 진실 나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로 더는 당신의 골머리를 아프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6. 제가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역사기록을 중시하되 거기 얽매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기록으로부터 해방이 왜, 필요한지를 제가 조금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실록>과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은 그야말로 순전히 지배자의 시각을 대변합니다. 가령 정조 때 문양해가 일으킨 정감록 사건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역사기록에서 문양해는 죄인으로 나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보면 엄청난 비난거리요, 정치적으로는 절대 살려둬서는 안 될 역적의 괴수입니다. 그의 말이라고 역사에 기록된 문자가 있다면, 그것은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정말 죽지 못해 털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양해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 어쩔 수없이 자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진술 가운데는 기록에 남아 있는 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록에 얽매이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7. 제 말씀을 듣고 당신은 "옳아, 이 친구가 사료비판에 관해 말하고 있군!"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의견은 얼핏 보면 맞는 말씀이지만 사실은 제 생각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는 물론 누구보다도 엄정한 사료비판을 합니다. 적어도 제 딴에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근대 역사학에서 강조한 사료비판은 기술적인 측면에 국한됩니다. 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고 싶어 합니다.
8. 역사기록이란 일종의 텍스트에서 제가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동시적 상황에서 다중적多重的으로 일어난 다수의 진실을 알고자 합니다. 피의자인 문양해 나름의 진실, 심문관을 담당한 어느 대신의 진실, 그들 모두를 신하로 거느린 국왕 정조의 진실, 이 사건에 관련된 다른 피의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실, 그리고 이 사건을 직접 간접으로 목격한 다른 백성들의 마음에 떠오른 사건의 진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제 욕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마도 평생에 문양해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또 다른 정감록 역모사건의 주인공들이 문양해 사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제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의 복합체가 저 자신의 인생에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9. 그럼 이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선은 역사기록을 토대로 문제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역할과 그들이 놓인 처지를 파악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사료 비판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18세기 조선사회에 관한 역사적 지식을 모두 동원합니다. 근대적 역사학자에서는 아마 이 정도면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아직 집필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상상력을 발동시켜 사건을 재구성합니다. 등장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해, 그들의 눈으로 사건을 다시 평가합니다. 제가 작동시킨 상상력은 문학적 상상력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 상상력입니다. 저라고 하는 사람은 역사가로 훈련되었기 때문에 제 상상력은 제가 아는 역사적 맥락에서만 펼쳐지는 상상력입니다.
10. 저는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에서 세 편의 글을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서술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전개하는 세 가지 방식을 고안해, 하나씩 실험해본 것입니다. 첫째 글에서는 "최정도"라고 하는 가공인물을 만들어 마치 그가 이 사건의 전모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가정했습니다. 저는 최정도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의 네 가지 의혹을 하나씩 풀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첫째 사건은 3인칭 전지자의 관점에서 쓴 소설처럼 되었습니다. 둘째 번 사건을 기술할 때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1인칭 "내"가 이 사건의 전모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처럼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사건의 주인공 문인방을 불러내 "나"와 대담을 나누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셋째 이야기는 사건의 주요인물들이 독백의 형식으로 제각기 자기네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독백)에 대해 "내"가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11. 서술 형식에 변화를 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에는 기존의 근대적 역사서술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제 나름의 사유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역사의 진실은 다중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역사연구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저는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격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역사적 상상력이 역사서술에 적극 개입될 때만 진실의 다중성은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진실의 다중성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가장한 근대적 서술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고,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이만큼 말씀드렸으니, 이제 당신의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지 않았을까 기대됩니다. 건승을 빕니다.
[제5신] 오만과 과신의 늪에 빠지다.
1. 자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세상에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은 마치 자네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은데, 오산일세. 나는 자네의 천박하고 무례함에 사지가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차라리 이제 소설가로 전업을 하게나.
2. 자네가 애써 말한 사료비판의 단계,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 역사적 맥락에 따른 사실의 재배치는 너무도 당연한 것. 그것은 이 분야에서는 그저 상식에 지나지 않고, 자네가 무슨 신기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강조한 "역사적 상상력"이란 것도 실은 우리 역사가들이 누구나 몇 번씩 생각해 보는 걸세. 다만 학술 논문이나 책을 집필할 때는 그런 상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네.
3. 자네처럼 한 편의 글에 제멋대로의 상상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섞어 놓으면 어찌 되겠는가. 천박한 일이네. 학문의 격을 무너뜨리는 일이야. 학자란 모름지기 제 생각과 남의 생각을 철저히 구별해야 하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과 제 스스로 얻어낸 생각을 똑바로 구별해서 각주를 달아야만 학문이 성립되네. 이것은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네는 그와 같은 학문의 기본적인 질서마저도 지키지 않았어. 무례하지 않은가? 한 마디만 더함세. 내가 차마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말일세. 자네의 역사적 지식은 또 얼마나 형편없는가. 지난 20여 년 동안 18세기 조선사회에 대해 수천 편의 논저가 간행되었네. 그 가운데서 도대체 자네가 직접 읽고 소화한 글은 얼마나 되겠는가. 극히 일부분일 것일세. 이쯤 되면 정말 자네는 무식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무식함을 토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네. 상상인지 망상인지 모르겠지만, 공부 좀 더하게.
4. 세상에는 이미 정해진 크고 넓은 길이 많건마는 자네처럼 그 길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걱정이네.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제 잘난 줄만 알고 엄정한 학문의 대도大道를 감히 무너뜨리려 하다니! 자네 같은 사람은 학문적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조선시대 때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시비가 공연히 일어난 게 아니었네. 요즘도 좌편향 검인정 교과서의 수정 문제로 세상이 시끌벅적한데 모두 자네 같은 말썽꾼들이 있어서 문제가 커진 것이라네. 제발 주제를 분별하여 앞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선학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들기를 바라네. 나의 충정어린 고언을 헛되이 말게. 이 세상에 자네와 나처럼 가까운 사이가 어디 또 있겠는가. 제발 부탁하네.
[제6신] 실험은 피할 수 없는 제 운명
1. 당신의 충심어린 고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제 부족함이 참으로 많습니다. 호기를 부려 저는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만, 18세기 조선사회에 관한 저의 이해는 얄팍합니다. 저의 역사적 지식이 단편적인 만큼, 자연히 제 역사적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남의 생각과 제 생각을 명확히 구별하여 각주를 달지 않은 것도 학자로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2.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당신의 말씀을 달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해도, 저를 겨냥한 당신의 혹평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처럼 특정한 지식의 다과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어떤 연구자의 자격을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권위적인 태도입니다. 공자나 주자만큼 유교에 관해 잘 알아야만 <논어>와 <맹자>를 거론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논어>, <맹자>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공자와 맹자를 논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유교에 정통하면 그만큼 읽을 가치가 있는 논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처음부터 달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3. 당신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당신의 주장대로 근대 역사학은 오랫동안 학문적으로 많은 성과를 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의 성리학도 오백 년을 버텼고, 중세 스콜라 철학은 또 어떠했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세운 지적 전통은 그 어느 것이나 참으로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철학과 종교든지 그러하며, 한 때 유행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가지 이론도 그러합니다. 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과 문학으로 통칭되는 예술사조 역시 높이 평가되어 마땅한 부분이 반드시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전통적인 학문과 예술과 종교의 위대성을 당신 못지않게 높이 평가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전통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와 저의 관점은 너무도 다릅니다. 당신은 제가 근대 역사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확대 해석하여 마치 제가 근대 역사학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자의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당신의 그러한 오해는 당신이 권위주의의 맹목적인 추종자임을 여실히 드러낸 것일 따름입니다.
4. 인간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철학도 문예사조도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거기에 제아무리 빼어난 장점이 있다 해도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변화는 질적 변화로 귀결됩니다. 설마 당신은 근대 역사학이라고 해서 예외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저와 같이 여러모로 부족한 한 사람의 역사가가 보기에도 근대 역사학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근대 역사학은 국민국가의 정치교양으로서의 역사쓰기에 적합합니다. 아울러 그것은 세계사라는 이름 아래 식민지와 식민지 모국의 관계를 선진국과 후진국이란 위계구도로 설명하기에 편리한 역사학입니다. 또한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일직선적 발전의 과정으로 재구성하는데 적격입니다. 결코 그 이상의 역사학은 될 수가 없습니다.
5. 저로 말하면 서양근대의 지적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이라는 나라, 거기서도 주류와는 인연이 먼 비주류 중의 비주류입니다. 세계지식인 지도는 물론이고 어느 자그만 지방의 지식인지도 같은 데조차 이름이 언급되지 못할 “평민지식인”일 따름입니다. 이런 제가 감히 찬란한 근대 역사학에 맞서 제 주장을 편다는 것 자체가 과대망상이며, 망발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은 꼭 그러합니다.
6.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인류의 지적 전통이란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정은 다소 달라집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이 초라한 저조차도 모기소리 만큼이나 작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러한 관용이 지식사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사상과 지식의 역사가 위대한 역사를 쓰게 한 원동력이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칼 마르크스도 그들이 처한 사회적 배경은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하였음에도 그들로부터 세계사를 뒤흔든 위대한 사상이 싹텄습니다. 일찍이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부르짖은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7. 지금 제 생각은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이 길을 앞으로 더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다중적 진실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아무래도 "역사적 상상력"과 씨름을 계속해야겠습니다. 끝까지 실패를 두려워 말고, 근대 역사학의 경계바깥에 새로운 역사학의 터전을 닦아볼 생각입니다.
8.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저의 새로운 역사학은 다음의 세 가지를 지향합니다. 여기서는 그것을 장황하게 설명할 겨를이 없으므로 중심개념만 밝히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의 역사학은 개인과 소집단의 “생존전략”과 그들의 “재량권”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그들이 주류문화를 상대로 벌인 “문화투쟁”을 탐구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말해서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쓸 때도 이런 문제의식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문제의식은 소수자의 주관적 진실을 밝히는 데 필수적입니다.
9. 그러한 역사적 탐구의 과정에는 반드시 상상력이 개입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지배층의 역사기록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타자의 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 위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읽는 방법은 상상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제 상상력은 결국 제가 아는 만큼만 발휘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저의 역사적 상상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운명을 재촉하는 독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10.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역사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이가 저 한사람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수자의 역사에 한정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제 운명은 곧 그들의 운명이기도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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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중한 자료로 읽기 위하여 가져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