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57. (충북옥천 향수호수길 –육영수여사 생가 –정지용시인 생가와 문학관 -화인산림욕장)
회색 공기 속에서 뿌옇게 졸고 있는 가로등을 싹 다 깨워가며 서해안고속도로 출발점에서부터 새벽을 달리기 시작했다. 충북 옥천에 향수호수길을 찾아갈 예정이다. 집에서부터 260km이니 특별히 먼 거리일뿐더러 혼자서 움직이는 날이라 긴장과 자유로움이 동행하게 된다. 향수호수길에는 옥천의 상징 인물인 정지용 시인의 ‘향수’와 대청호의 자연경관이 깃들어 있다. 그곳을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호수를 옆구리에 끼고 걸으며 향수호수길에 일상의 쉼표한 번 찍고 싶었다. 사실 옥천이 초행길은 아니다. 어느 해 보령에서 가족모임을 하고 옥천을 들러 왔으며 그때의 기억도 참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다. 어느 지역이나 한 번의 방문으로 다 둘러볼 수 없는 일이라 이처럼 거리가 먼 곳은 많은 시간을 벼르다가 발길을 옮기게 된다. 새벽 5시에 출발하여 향수호수길의 기점인 옥천선사공원에 8시 쯤 도착하니 오늘 하루를 덤으로 얻은 듯 행복했다. 오늘은 돈의 여유로움보다 시간의 여유로움이 훨씬 값나가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이곳 향수호수길은 (날망마당-물비늘 전망대-황새터-용댕이 쉼터(황룡암)-주막마을)까지 약 5.6km로 알고 왔다. 흙길 2km·데크길 3.6km로 조성되어 있는데 주막마을까지 가면 다시 원점회기 해야 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왕복 10km이상을 완주하고 나면 옥천의 또 다른 곳을 둘러보아야 할 곳이 많아 황새터에서 뉴턴하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향수호수길에 접어들었다. 공원 주차장 맞은편 도로를 건너면 맑고 푸른 세계로 들어간다. 흙길과 데크길을 걸으니 흙냄새와 함께 눈으로 파고드는 대청호의 아침 풍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 간간히 한 두 사람 지나칠 뿐 아침 일찍이라 사람도 없다. 대청호의 얼굴을 배경으로 아직 풀이 돋지 않은 겨울나무는 앙상하지만 제각각 뚝심을 자랑하고 있다.
향수호수길 겨울나무/ 곱고 잔잔한 대청호 물 배경으로/ 홀로 당당한 /저 뚝심
특히 물비늘 전망대에서의 뷰는 두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한편 걷는 내내 ‘산너머 저쪽’ 등 정지용의 시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길을 걷는 또 다른 묘미다. 이미 이러한 풍경을 예상했기에 그토록 이곳에 오고 싶었던 것이다. 가다 서다 가다 서다 떠오르는 그대로 시를 쓰기도 하고 사각대를 세워 두고 사진을 찍어 아직 이른 아침일 가족들에게 전송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자유롭고 좋다. 이것이 60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여유로움이 아니겠던가? 주머니에 넣고 출발한 사탕한 줌을 도착할 쯤에는 어쩌다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의 손에 한 두 개 씩 쥐어준다. 요즘의 표현으로 쌩뚱맞은 오지랖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또한 행복하다. 황새터를 돌아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11시 쯤 되어간다.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서두르지 않지만 서두름으로 여겨진다. 한편 TV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프로에서 보았던 화인산림욕장으로 옮기기 위하여 네비를 찍고 출발하였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마치 내가 살았던 옛 동네처럼 익숙한 동네가 있다. 지난번 들렀던 육영수여사 생가가 있는 곳이었다. 가던 길을 꺾어 그곳으로 탈출을 한다.
대한민국 제 5-9대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의 생가는 역사적 의미가 깊고 한옥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옥천의 명소이다. 또한 육영수 여사의 생애를 조명할 수 있는 공간이자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생가 앞에는 논처럼 생긴 연꽃단지인 듯 안에는 연밥과 시들어 있는 연잎들이 보인다. 입구에는 옥천의 주요 관광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사랑채와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든 귀하고 멋진 곳에는 연못 하나 쯤 잉어와 연꽃이 함께 꾸며져 있다. 물론 이곳은 가족과 함께 다녀간 적이 있으나 추석 연휴기간이라 뜰 안까지는 둘러보지 못했던 아쉬움에 다시 찾은 것이다. 오늘은 소소한 곳까지 여유롭게 둘러보며 이곳은 단순한 기념 장소를 넘어 그분이 걸어온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의미 있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특별히 초여름 연꽃이 필 무렵이면 더욱 더 아름답겠다는 미련과 함께 그곳에서 약 600m 떨어진 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기로 한다.
옥천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시 속의 풍경들은 여전히 옥천 곳곳에 남아 있다 그의 생가 근처를 거닐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풍경이 변했어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고향 같은 곳이다."향수"로 잘 알려진 시인 정지용 생가 옆에는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정지용 문학관을 들어서면 안내데스크가 정면에 있고 우측으로 정지용의 밀랍인형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양옆에 빈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직원분께 묻고 인형과 함께 기념촬영도 함께 남겨 둔다. 읍내의 한가운데 지역인 하계리(下溪里)로 이어지는 개천이 있다. 그리고 그 천변의 길 이름이 지금은 향수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아래쪽 하계리의 천변에 생가와 문학관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날씨는 벌써 여름의 초입인 듯 정갈한 햇살이 곱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참으로 소담했다. 문학관 입구 앞쪽 정원에는 정지용 시인 실물 크기 정도의 동상이 화강암 석단 위에 세워져 있었다. 시인 정지용이 살았던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뒤돌아보며 가슴 한 쪽이 찡해온다. 그의 생애를 보면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기까지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 정지용은 홀연히 실종되고 말았으니 그는 첨예한 이념 분쟁으로 촉발된 전쟁 속에서 불행을 맞이했던 것이다. 한편 그와 유사한 삶의 질곡에서 살았던 이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시 월북 작가로 알려진 시인 백석(白石)을 떠올리게 했다. 시인 윤동주가 그의 시집 『사슴』을 가슴에 품고 지낼 정도로 그를 흠모했던 시인이다. 삼청동의 대연각을 경영했던 김영한이라는 여인과의 러브스토리가 널리 회자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시인 정지용을 비롯하여 백석 또한 남북의 분단과 이념의 갈등이 가져다준 희생자의 한 사람이었으니 참 좋은 작품속의 어른 작가님들이 그리운 날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은 늘 염려스럽다. 나와 함께 보폭을 맞추느라 힘들지는 않은지, 또는 식사시간이 지체되어 허기지진 않은지, 그러나 혼자다보니 에너지만큼 움직일 수 있는가 하면 옥천의 구석구석 욕심대로 찾아 나설 수 있어서 좋다. 이대로 화인산림욕장으로 옮겨 간다. 이곳은 메타세콰이아가 한창 푸르를 때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tv 프로에서 보고서 찾게 된 곳이다. 화인산림욕장은 40여 년 전 이곳 부지를 개인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거대한 숲이다. 치유의 숲으로 이곳에 들어서면 인공시설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길이 험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었다. 숲 곳곳에 나무가 살아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사실 그곳을 찾아가는 중간에 표지판이 없어서 그다지 볼만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긴가민가 했으나 가보니 어마어마했다. 지난 가을 대전의 장태산을 방문하여 메타세콰이아 숲을 들어가 보았으나 이곳은 국내 최대의 메타세콰이아 숲이라더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의 가을풍경과 봄 풍경도 좋겠지만 아직 풀 피지 않은 이 계절 풍경도 충분히 좋았다. 계절과 상관없이 만나보면 좋은 것이 자연 아니겠던가? 이곳에서 역시 약 3km를 걷다보니 오늘의 걸음은 벌써 2만보를 넘게 걸었다. 보통 1만보를 걸으면 몸이 먼저 알람이 되어주는데 오늘은 몸의 느낌보다는 감성적 느낌으로 정말 신나게 걸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곳이 지루하거나 싫증이 난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떠나서 나와는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운 곳의 풍경을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날들은 에너지가 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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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세먼지 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