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아일체(物我一體) - 사물과 내가 하나로 된다.
우리의 머리 마음을 텅 비운다는 것은 그냥 아무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온갖 욕심과 이기심들을 접고 그야말로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어떤 일을
할 때 "난 마음을 비웠어 그리고 열심히 할꺼야"
이런 정도의 마음의 자세라면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참나에 의지하며 도에 의지해 사는 경지 그것이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가 내가 아닌 것과의 합일의 경지, 누군가 말했듯이 눈으로 보면 그림이 되고,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는 그런 경지, 바로 물아일체의 경지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이룬 사람들을 깨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만히 보니 냉이꽃 피어있는 담자이었네' 이 구절에서도 우리는 작가의 냉이 꽃과의 완전한 합일, 교감을 느낄 수가 있다.
어떤 시인의 '저만치 피어있네' 라는 구절의 저만치, 저만치라는 말은 자연과의 합일이요 물아일체의 경지라고도 할 수 있다.
천국과 지옥은 죽음 이후나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속에 있다는 것. 다만 우리가 잘못된 교육과 편협한 마음 언어의 불완전성 등으로 삶을 바로 보지 못하고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에 하늘의 길을 보지 못하고 어둠속과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바쁜 삶의 와중에서 주변을 바라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도 이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이끼긴 돌처럼 수 백년 을 살아온 고목과 같이 이 자연과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록 장자나 부처,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사랑과 물아일체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설파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다만 맑은 하늘 아래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공기 중에 흐르는 바람 햇빛아래에서 흔들리는 식물의 그 또렷한 웃음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우리는 종종 길을 걷다가도 실제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마다 생각하는 건 별로 없고 입가에 미소, 그리고 행복감이 충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일종에 나와 내가 아닌 것과의 조그마한 일체가 아닐까? 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의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안도하고 안주하려고 하지마라. 때론 바빌론을 세우다 신에게 벌을 받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 인간의 힘으로 신성마저도 벗어 나고자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이요 이 세상의 규범 그것이 신이 정해준 것이라도 넘어보고자 하는 정신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내면의 자신의 원초적 힘을 잃지 마라.
그 힘은 자연으로부터 발생한 힘이고 샘물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내면의 더러움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어둠속에서 비치는 한줄기 빛같이 그대에게 새로운 희열을 줄 것이니, 그것은 이들이 평범한 사물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과 공유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물아일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