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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믿음의 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靑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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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mgcaption > ▲ 불로 구운 벽돌로 만든 대욕탕 |
2. 도시 구조
인더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 계획이다. 인더스 문명권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도로를 바둑판 모양으로 내어 도시 전체를
구획지었다. 특히 모헨조다로에서는 폭 10m 이상의 넓은 도로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군사적 또는 종교적 행진을 위한 것이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건물들은 다른 곳의 문명과는 달리 구운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벽돌로 만든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 건물로
대중 목욕탕와 곡물 창고를 들 수 있다. 또 인더스문명의 도시들은 뛰어난 배수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 배수 시설은 다른 어떤
문명보다도 뛰어난 것인데, 인더스 문명의 대부분의 집들이 마당과 목욕탕, 우물을 구비하고 있었고 따라서 하수시설은
이들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각 집마다 하수도가 연결되어 있고 그 하수도는 모여서 다시 시 외각의 강으로 흘러가게 되어있고,
이 하수도관은 벽돌로 만들어진 도관을 사용했다. 또한 이 하수도관에서는 덮개와 맨홀도 발견이 되고 있다.
3. 유물
유물로는 상아와 보석을 재료로한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은, 구리, 청동제 무기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토기 : 다양한 색채의 토기가 발견 되었어요. 주로 토기에는 나무와 동그라미를 무늬넣었다.
인장 : 인더스 문명의 유물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유물이다. 이 인장은 2000여 점이 발견되었는데, 정교한 조각 솜씨를 이용하여,
음각으로 악어, 물소, 호랑이, 코뿔소, 양, 코끼리 같은 동물을 새겨놓았다. 이 인장에 대한 용도는 '도장처럼 사용되었을
것이다', '부적이었을 것이다'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이러한 인장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발견이 되기 떄문에 무역에 관련된 통행증이나 수령증 정도로 보는 것이다.
이 인장에는 약간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다른 세곳의 고대 문명과는 달리 아직까지 판독이 되질 않고 있다.
인물상 : 인더스 문명의 장인들은 많은 인물상을 만들었는데, 그 중 청동제의 춤추는 여인상이 유명하다.
테라코타 소상 :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은 테라코타를 많이 남겼는데, 주로 새, 개, 양, 소, 원숭이 등의 모습이 주류를 이루고,
그 용도는 장난감이나 숭배물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산업
인더스 문명인들의 주된 산업은 농업과 상업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주로 밀을 생산하였고, 그 외에도 보리, 콩, 호밀, 참깨, 겨자도 재배하였어요. 또한 로탈에서는 쌀도 발견이 되고 있다.
또한 모헨조다로와 하라빠 두 도시에서는 커다란 곡물 창고가 발견 되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비교적 풍족하게
곡물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창고는 깔리방간에도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면화를 생산하였는데, 바로
그들이 재배한 변화가 세계 최초의 면화지이다. 그들이 사육하였던 가축에는 소, 양, 돼지, 물소, 개, 닭 등이 있다.
인더스 문명 사회에서는 장인들이 전문화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일상 생활 용품과 장신구 등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했다. 또한 그들은 청동기 제작에 필요한 주석과 구리를 별로 보유하고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구자라뜨, 라자스탄, 남인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과 무역을
하였는데, 주로 강상무역과 육로를 통한 무역을 하였고, 남아시아와는 아라비아 해를 통해 무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인더스인들이 사용하던 인장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무역이 활발하였음을 보여 주고있다.
5. 신앙
인더스인들의 신앙은 주로 인장이나 테라코타 소상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여성의 모습을 띤 테라코타 소상이나 인장에 새겨진 여인의 나상 등을 통해 대지를 다산의 여신으로 간주하였던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나무와 짐승을 숭배하였는데, 어떤 인장에는 보리수 사이에 신의 모습을 새겨 놓은 것도 있다. 또 인장에는 많은
짐승들이 새겨져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짐승은 혹달린 소다. 소는 지금도 인도에서 숭배되고 있다. 인장에 새겨진 것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시바신의 원형으로 보이는 삼면신이다. 이는 아리아인에 의해 인더스 문명이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고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6. 몰락
인더스 문명은 높은 수준의 발전을 보였지만 B.C. 1700 - 1500년 경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중 유력한 설을 보면, 천재 지변에 의한 멸망. 큰 강에 인접하고 있는 도시기
때문에 강의 범람으로 문명이 파괴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환경의 변화. 이것은 기후가 변화하여, 곡물 경작에 이상이 생겨
멸망했다는 설이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리아족이 인도에 들어온 시기와 인더스 문명이 멸망한
시기가 비슷해서 신빙성을 인정 받은 설이다. 하지만 외적의 침입으로 그 큰 문명이 한 번에 망했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는
이야기이고, 학자에 따라서는 인더스 문명의 멸망시기와 아리아족이 인도에 들어온 시기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자료: 함께 하는 오지여행>
인더스 문명과 아리아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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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mgcaption > ▲ 불로 구운 벽돌로 만든 하수구. 인더스 사람들은 유독 세정 의례에 예민했고, 이러한 문화가 숲을 황폐시켰을지도 모른다. |
상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힌두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인더스 문명과 아리안의 종교라는 두 가지 축을 빼고 논의가 진행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더스 강변으로 이주해 왔던 초기 아리아인들의 찬가(讚歌)에 의하면, 아리아인들이 인도의 원주민인
비(非)-아리아인들에 대해 취했던 경멸조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아리아인들 자신의 기준에 비해 까무잡잡한 피부에
들창코를 한 도덕적 수준이 낮은 자들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초기 아리아인들의 찬가에 의하면 강력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는 적들에 대한 영웅적인 투쟁의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다.
아리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 가운데 하나는 '인드라(Indra)' 신이다. 이 신은 '요새(要塞)를 깨뜨리는 자'로 불리어지며,
다른 성벽을 공격하여 승리할 때마다 아리아인들이 즐겨 칭송하는 신이다.
인드라 신에 대하여 잠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리아인들이 전승한 베다(veda) 종교의 신으로서 원래는 비와 천둥의 신이었다. 그리고 여러 신들의 왕이기도 하다. 그는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벼락(雷電)과 소라껍질, 그리고 활과 화살 및 갈고리와 올가미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신은 초기 베다 시대에 여러 신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후기 베다 시대로 가면서 비록 작은 신들의
왕으로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긴 하지만 최고신의 지위에서 비교적 낮은 신으로 떨어진다. 이른바 후에 언급하겠지만
인도의 주요한 세 신, 즉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nu), 시바(Shiva)보다는 열등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후기에 가서
인드라는 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Swarga)의 통치자로 묘사되면서, 이 단계에서 인간의 여러 가지 나약함을 보살펴 주는 자가
되기도 한다.
한편 동방을 지키는 자이기도 한 인드라는 불교와 습합되면서 중국의 한자표기로 제석천(帝釋天, Sakra devānām Indra)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보는 하늘의 주재자 환인(桓因)을 뜻하기도 한다는 주장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하늘의 통치자로서의 인드라는 초기 베다 시대에 아리아인들이 전쟁터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겼던 것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 신이었던 여호와도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승리자)'라는 신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복 전쟁이 불가피했던
시대에 자신들의 종족을 승리로 이끌어 줄 신을 찬양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고대 동방의 신관(神觀)에 흥미로운
유사성을 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신들에 관한 고찰은 근세기에 와서야 종교 사학적 관점에서 혹은 종교 인류학적 관점에서
비교 고찰이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종족마다 혹은 민족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들을 추앙하며 전쟁과 정복을 통해 문화
혹은 종교적 영토를 확장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아리안들의 인도 유입과 정복의 과정에 대한 그들의 고대 기록인 찬가를 분석해보면 대부분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된 영웅적 서사시이자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찬가들은 아리아인들의 용기를 찬양하고 자연과
악마적인 세력을 통제하는 그들 신들의 위용을 높이 기리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 찬가들은 과장과 신화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찬가 내용의 일부는 역사가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사실에 가깝다. 왜냐하면
고고학적 발굴이 말해주듯이, 아리아인들이 인도로 유입해 오기 전에 이미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상부에 하라파(Harappā)
도시와 그보다 남쪽으로 약 644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모헨조다로(Mohenjo-daro)라는 도시의 유적은 인도 서부에 이미
거대한 국가적 형태의 도시가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856년 영국인 브룬튼 형제가 물탄(Multan)과 라호르(Lahore) 사이의 철도 부설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된 하라파는,
1921년이 되어서야 인도 고고학 탐사단의 영국인 총감독 존 마셜 경이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2년 뒤에 다시
모헨조다로를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두 도시를 중심으로 한 고고학적 발굴은 인도의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 당시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관계로 인더스 문명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도시의 유적은 아직도 여전히 발굴 과정에 있지만 현재 드러낸 위용만을 보아도, 기원전 2,500년 전에 시작된
본격적인 하라파 문명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 필자도 2,000년 1월에 인도 종교 문화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이곳의 두 유적지를 방문하여 직접 관찰하면서 정교하게 설계된 도시 규모와 벽돌 속에 새겨진 고대의 문자를
바라보며 사 천년 전의 과거의 역사 속으로 되돌아 가 보는 깊은 감회에 젖은 기억이 있다.
하라파 이전의 초기 도시의 발전 단계는 기원전 3,000년경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도시의 발전은 기원전
2,500에서 도시가 멸망하던 기원전 1,500년경까지 천 년 여 간의 긴 세월 동안 강대한 도시국가를 형성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두 유적지가 지하에 깊이 묻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대 홍수로 인한 인더스 강물의 범람과 같은
재난으로 땅 속에 묻힌 경우와 다른 하나는 이민족의 침입이나 다른 전쟁으로 인해 멸망 되었던 것이 오랜 세월 속에 폐허로
묻힌 것일 것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 있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아리안 족의 침입으로 인한 파괴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리안 족의 유입 시기도 기원전 1,500년이고 보면 고대 도시의 멸망 시기에 아리안 족이 침입하여 완전히 폐허로
만들고 새로운 아리안 문명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막화의 진행으로 도시 문명 전체가 지하 속으로 묻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잘 보관된 모헨조다로 유적지는 인도의 고대 도시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전체 도시 윤곽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각각 직사각형의 격자 모양으로 가로 세로 1,200피트와 800피트씩의 길이로 구역이 분리되어 있고, 중앙
통로 양쪽으로는 길게 벽돌로 세워진 벽들의 허물어진 폐허만이 나지막하게 남아있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없지만 바닥의
경계나 높이와 위치 등을 보아서 그곳에는 곡물 저장 창고와 통치권을 행사하던 왕궁, 그리고 숙소의 유적지도 하나의
설계도를 내려 보듯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물도 구하기 힘든 지대에서의 우물과 목욕탕 및 화장실, 그리고 낙하를 이용한
배수시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위생적 설계 구조는 당시의 발달한 문화뿐만 아니라 종교적 제의를 위한
정화(淨化) 시설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모헨조다로의 요새는 '거대한 목욕탕'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요새의 중앙부에는 탁 트인 정원에 연못 같이 낮게 파여 있는데 사방에서 그곳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공동 목욕탕 외에도 작은 특실 목욕탕도 연결 되어있다. 거대한 이슬람 사원 내부에 들어가면 의례를 위한 정화의 목욕탕이
있듯이, 이곳에서도 정화를 위한 욕실이 중앙에 마련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사원(寺院) 또한 중요한 유적지로 남아있지만 모헨조다로에서의 역할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궁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가 세속적 통치권을 행사하던 고대의 관행과 풍속에 의하면 건물의 넓고 큰 공공의
장소 한 두 곳은 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유적지 한 곳에서 발견 된 것처럼, "거룩한 나무"가 자리했던 것을
둘러싼 표지라든가 석상(石像) 등의 종교적 요소들을 많은 공공의 건물에서 간직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유적지 외에도 인더스 문명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인더스의 예술이다. 필자도 현지에서 여러 가지
모조품(레플리카)을 실물 교육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구입해 왔지만, 지하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적갈색(terra-cotta) 점토
조각상들은 대부분이 기원전 2-3천 년 전의 종교적 풍토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도시의 웅장한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발굴된
조각상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무수한 가축과 인물상 혹은 농부들의 삶의 모습 등을 보여 주는데, 돌이나 청동 조각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가축들은 대부분이 수컷이고 등에 혹이 달린 황소가 눈에 많이 띈다. 이는 일하는 황소의 모습을 통해서 농경사회의
번영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사람 모양은 대부분이 여성이다. 펑퍼짐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점토 여성상은 넓은 가슴의 목걸이와 정교한 머리 장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조각상 가운데는 풍만한 젖가슴을 한 여인과 임산부를 뜻하는 배부른 여인상이 있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다산(多産)을 염원한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점토 양식의 조각상 이외의 예술품으로 특징적인 것은 돌에 새겨진 인장(印章)이다. 대부분의 이 인장은 평평하고 부드러운
동석(凍石, soap stone)에 3/4 혹은 1/4인치 크기의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인더스 문자로 여러 가지 모양을 그룹지어
새겨두었다. 대부분의 인더스 문자는 바로 이 도장 속에 새겨진 문자와 상징으로 남아있는데, 아직도 이 문자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해독이 어려운 까닭은 문자의 어지러운 조합과 독특한 상징적 수법 때문이다. 새겨진 문양들은
주로 동물을 포함한 자연물인데, 짧은 뿔의 황소로부터 머리 뒤로 커다란 목정이 달린 황소, 외뿔의 무소, 코끼리, 악어 등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동물들의 모습은 거의 인장에서만 발견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해된 바로는 대부분이 동물에 대한
보호와 존경심이 깃들여진 종교적 성상(聖像)으로 추앙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물소 앞에서 줄지어 엎드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물숭배와 종교적 제의를 보여주는 특징적인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이 인장은 인더스 강변을 따라 활발하게 움직였던
무역 상인들이 주로 사용하였거나 재산권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반면에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인장에 새겨진 양식에 따르면, 제의적 의식과 신성(神性)을 지닌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양쪽으로 무릎을 벌리고 두발을 모은
채 팔찌를 한 손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나지막한 걸상에 앉아있는 남자가 머리에는 뿔처럼 생긴 장식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인장을 살펴보면, 앉아 있는 남자의 의자 아래로 좌편에 코끼리와 호랑이가 있고 우편에는 무소와 물소 외에 작은 뿔을
가진 소와 염소들이 있다. 많은 동물들을 좌우에 거느린 위풍당당한 이러한 모습은 사제 혹은 조물주와 같은 신으로서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남자의 성기(性器)가 우뚝 발기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있는데 이는
남성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근(男根) 숭배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인장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 중에 황소와 무소, 코끼리, 호랑이는 물론 뱀이나 악어는 물리적 혹은 성적(性的)
능력과 다산(多産) 그리고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뿔을 가진 동물은 인장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그림으로 돋보이게 조각되어 있고, 하나로 우뚝 솟은 뿔은 남자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과 연루되고 있다. 이같이 생산력을
중시하고 과시하는 남성 성기의 숭배는 인더스 유적지의 여러 곳에서 발굴되는 '링감(lingams, 생식력의 상징으로서의 남근상
(男根像 -후대 힌두교에서 쉬바 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는 당시에 다산과 풍요를 비는 농업
중심 사회의 민간 풍속도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인더스 문명과 예술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유적들이 있겠으나 아직은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출토된 점토
조각상이나 인장 등에 새겨진 문양과 글씨 등을 미루어 과거의 비밀을 조금씩 해독해 가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비록 작은 점토 조각상들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새겨진 다양한 형태의 상징들은 고대 인더스 문명과 그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예컨대 고대의 생활 풍속도와 제의(祭儀), 신화(神話), 전설적 내용 등이
정교한 예술 작품 속에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가 약 천 년 간 지속 되다가 기원전 1,500년경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여전히 그 몰락의 결정적인 이유는 숨겨져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 중심의 부와 중앙
집중식의 권력이 와해되었고, 질서가 무너지면서 통제가 불가능해진 시기에 아리아인들이 침입해 왔고, 인더스의 강물의
지류가 변경되어버린 지리학적 변화와 더불어 찬란했던 고대 인더스 문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아인들은 전혀 새로운 문명을 백지 상태에서 세운 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인더스 문명은 잔존해 있었고,
남쪽으로 혹은 갠지스 강변으로 흩어져있는 피정복민인 비-아리안 민족의 마을 속에서 인더스 문명은 전승되고 있었다.
바로 이들이 간직한 인더스 문명은 아리아인들의 문화 속으로 유입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위대한 문명의 종합, 곧 인도-아리안
문명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서 인더스 문명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와 종교를 꽃피운 아리안 문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 아리아인의 이주(移住)와 종교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시아에서 인더스 강 유역으로 들어온 아리아인들은 인도에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꽃피웠다. 이들은
인더스 문명의 원주민들이 농업을 중심으로 한 농부들이었다면, 아리아인들은 목축업을 위주로 한 유목민들이었다. 따라서
가축을 위해서는 넓은 초원이 필요했고 새로운 목초지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했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추측에 의하면
이들은 여러 인도-유럽 종족의 하나로서 카스피아(Caspia)해(海)와 아랄(Aral)해 사이에 위치한 동 유럽의 대초원지대로부터
동쪽으로 이주해 왔다. 반면에 서쪽으로 이주해 간 종족은 오늘의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었으며, 나머지는 중앙아시아의
일부와 이란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 아리아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산맥을 넘어서 오늘의 파키스탄 영내에
정착하고 점차 인도의 동북부와 뭄바이지역으로까지 이주의 행렬이 계속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인도의 언어와 풍속의
일부가 인도-유럽계열에 한 줄기가 되게 된 이유다.
아리안이 이식해온 문화는 인더스 문명의 말기에 보여 준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아리아인들은 유목민이었지만 전투적인 민족이었다. 인도의 여러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로서 두개의 말이 이끄는 이륜
전차(戰車)는 아리아인들의 전투적 용맹성과 승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각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륜 전차는 이동성과
군사력의 상징이었다. 그들이 전차를 이끌고 인도로 쳐들어 왔을 때는 처음에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했을 것으로 예상 되지만,
인더스 문명의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였으므로 방어력이 없이 농업에 종사하던 대부분의 원주민을 쉽게 물리치고 정복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족장 체제를 유지하며 청동으로 제작된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 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렵지 않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말이 이끄는 전차는 신화(神話)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에 의하면 청동기 시대(Bronze Age)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무기였다. 물론 원주민의 저항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리아인들이 전쟁에서 용맹하게 승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신앙심 때문이기도 했다. 예컨대 그들이 믿은 영광스러운 신들(pantheon)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기도 한 것이다.
아리아인들의 신념에 찬 신앙의 확신은 시인(詩人)과 현자(賢者)들에게 거룩한 경전으로 여겨지는 『베다』와 기타 여러
경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고전을 기록하게 했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고전적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잘 보관되어 오고 있고 또한 인도 종교의 탄생을 알리는 첫 찬가(讚歌)집으로서 널리 불리기도 한다.
북인도와 오늘날 유럽어의 상당부분이 기원전 1,500년경에 시작된 이들 아리안 민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 다양하게 갈라졌고,
산스크리트어도 바로 그 중의 하나였다.
남인도와 중부 인도의 언어는 분명 드라비다(Dravida)와 오스트로-아시아(Austro-Asia) 계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리아인들의 시대는 그들이 편집하고 발전시킨 『베다』문헌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베다』문헌이 곧 바로
아리아인들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유적지의 기념비적 조각상에서 보듯이 전차 위에 타고 있는 신들의
만신전(萬神殿, pantheon)과 그들의 등 뒷면에서 비취는 태양의 후광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친 힘을 상징하고 있고, 전투적
삶이 일상화 되고 있는 유목민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이 숭상하는 주요 신은 달보다는 강렬한 태양이었고,
그들의 신화는 운명적이기 보다는 자유와 인간의 승리를 예찬하는 쪽이었다. 이러한 전투적 승리를 기원하는 아리아인들의
신들은 주로 전사(戰士)적인 신으로서 영웅적으로 묘사되는데, 어둠을 물리치는 진리의 태양으로 숭배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베다』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 초기 문헌인 『리그베다』에 의하면, 사비트리(Savitri)라는 신은
“어둠을 물리치고”, “태양을 향하여 달리는” 영리한 두 말이 이끄는 “황금마차”를 몰고 가는 마부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은
전투에서 승리를 얻게 한다. 이것은 서아시아와 그들의 본고장에서부터 기원한 아리아인들의 신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리아인들이 인더스 강변에 왔을 때 처음으로 숭배한 신은 바루나(Varuna)였다. 바루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브리(Vri)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것은 ‘덮다(to cover)’는 의미를 지닌다. 이른바 우주의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동시에 바루나는 우주의 질서, 곧 리타(rita)를 관장하는 자이기도 하다.
리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진원지인 수메르(Sumer)의 사고(思考)에서 말하는 ‘원리(原理)’로서의 ‘메(me)’, 이집트에서
정의와 진리와 조화를 뜻하는 ‘마트(maat)’에 해당하고, 동양적 사고에서 보면, 도(道)나 이(理)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에서 보면 로고스(Logos)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바루나는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하느님’ 같은 존재가
된다.
바루나는 구약성서의 야훼나 수메르인의 신 아누(Anu)와 같이 진노하는 신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푼다. 예컨대 이들 신은 정의와 진리를 표방하며 악을 물리치는 무서운 파괴적인 신이면서도 동시에 ‘정의’와 신의
뜻을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무한한 자비를 베푼다는 고대인들의 신 관념이 잘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용을
떨치던 바루나 신도 ‘인드라(Indra)’라고 하는 베다의 최고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인드라는 바루나처럼 그렇게 까다롭거나 복수심에 차있는 신은 아니었다. 꾸준하고 강인한 힘을 지닌 자로서 혼돈과
무지(無知) 그리고 어둠의 상징인 거대한 악신(惡神) 브리트라(Vritra)를 정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하여 인드라는 이방의
땅 인더스 강 유역을 점령한 전투적인 아리아인들에게 종교-신화적인 혹은 종교-철학적인 영웅적인 신이 되면서 대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인드라 신은 흥분하게 하는 '소마(soma)' 술을 마신 후에 힘이 강화되어 브리트라에게 번개를
내리침으로써 혼돈과 무지를 정복한 새로운 힘과 전사적 승리의 신으로 추앙 받게 되었다.
아리아인의 인도 정복과 새로운 문화의 창출은 지정학적 위치의 고립과도 관련이 있다. 이미 고대 인더스 문명의 쇠퇴로
메소포타미아와의 무역이 단절 되었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의 높은 산맥은 고대 중국 문화와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아리아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창출해 갈 수 밖에 없었다. 인더스 문명의 계승자들은 그들 문화의
현학적인 요소와 경전들을 포기하거나 중요시하지 않게 되었고, 히말라야의 문화와 초원의 문화는 문자 이전의 느슨한 조직에
불과했다. 따라서 아리아인들에게 미칠 수 있었던 외부적인 종교적 영향은 주로 원시적인 마술과 신화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점차 아리아인들의 신념과 생활의 사고 속에 침투되고
반영되어 갔다. 그러한 신념체계는 보다 세련된 형태로 경전이나 생활 풍속으로 이어져 갔다. 이른바 초기 아리아인의 신들을
둘러싼 종교 전통이 후기의 힌두교 전통으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3). 아리아인의 초기 신들과 세계
아리아인의 종교와 신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오로지 그들의 경전인 『베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지식' 혹은
'지식의 본문'을 뜻하는 단어인 『베다』는 신들에 대한 찬가를 모은 문헌집인데 가장 오래된 것이 『리그베다』이다.
'리그(rig)'라는 말 또한 '찬양'이라는 뜻이고 보면, 『리그베다』는 '찬양에 관한 지식의 본문' 모음집이라는 뜻이 된다.
이 경전의 본문집(本文集)을 통해 우리는 초기 아리아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찾아 볼 수 있게 된다. 이들의 신은
'데바(devas)'라는 명칭으로 통칭되었으나, 그 신들의 수는 대략 33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그 밖의 수많은 신명이 여러
경전과 문집에 등장하지만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신들의 숫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들의 힘과 기능으로서, 어떻게 자연
현상과 조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들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신의 정체성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신들의 역할과 기능은 대개 세 가지 그룹으로 구분되어진다. 예컨대 천상(天上)의 신, 대기(大氣)의 신, 지상(地上)의 신들로
각각 구분되며, 이 세 영역이 신들의 거주지와 활동 무대가 된다. 이러한 세 범주의 구분은 자연의 힘과도 결부되는 것으로,
아리아인들에게 자연 세계는 그들의 삶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의 힘에 대해 아리아인들은
인격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아리아인들의 도래 이전에 인더스 문명의 원주민들도 자연의 힘에 대해 숭배한 흔적이 있는데,
아리아인들에 비해 주로 동물에 대한 숭배가 컸다. 이는 인더스인들이 강줄기를 따라 살면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물소와 같은
힘 있는 동물을 숭상했던 것이라고 한다면, 아리아인들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와 불을 더욱 상대적으로 숭배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농경을 위주로 정착 생활을 했던 인더스인들과 유목 생활을 해야 했던 아리아인들의 전투적 삶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광활한 벌판과 초목을 달리며 새로운 정복지를 찾아 나섰던 아리아 유목민들은 야생동물이나 가축보다는
하늘과 태양 그리고 자연의 질서배후에 있는 힘을 더욱 숭상하면서 우주적인 신들에 대한 관념을 키워 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연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관심은 인도-유럽 계열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특히 아리아인들의 천상의 신들 가운데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명(神名) 가운데 하나가 '디야우스 피트리(Dyaus Pitri)' 곧 '하늘의 아버지'다. 이 '디야우스' 신은
그리스의 제우스(Zeus) 신과 로마의 주피터(Jupiter) 신에 비교 되는 존재다. 제우스라는 그리스의 신명을 다시 후에 그
리스도교에서 '데오스(Theos)'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르지만 동일한 어근(語根)에서 출발한 것으로 대문자로 구분했을
뿐이다. 여러 신명들 가운데서도 아리아인들은 바루나(Varuna)라는 신을 더욱 중요시 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와 후대에 알려진 이란인들의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에 비교 될 수 있는
신이다.
바루나의 주된 특징은 우주의 질서를 지키면서 인간의 도덕적 삶을 관장하는 것이다. 우주 통치의 기본이 되는 근간은
'리타(rita)', 즉 '사물의 진로'라는 법칙에 따른 것이다. 사물의 진로(進路)는 우주의 진행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우주의 진행은
일정한 경과 법칙이 있는데, '리타(理)'라는 우주 법칙이 우주의 질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의로움(right, 義)'까지도
주관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이 신에게 행하는 의례(ritual, 禮)에도 '리타'가 적용한다. 그러므로 리타는 우주적
관점에서의 이치(理)와 인간의 내면의 의(義) 그리고 외면적 행동의 방식을 말하는 예(禮)를 모두 규정하는 셈이다.
또한 빛과 생명의 근원으로 추앙받는 태양신 미트라(Mitra)는 이란의 태양신 미트라(Mithra)와 상응하는 신으로서 바루나의
친구이자 조력자로서 인간을 돕는 자로 묘사된다. 태양신도 기능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분류 되는데, 태양의 물리적 측면을
강조할 때는 수리아(Sūrya)로, 생명을 불어 넣는 능력으로서는 사비트리(Savitiri), 인간과 동물에게 번영을 가져 오는
존재로서는 푸산(Pūsan)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 천상의 신들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신은 비슈누(Vishnu)다.
비슈누 또한 태양과 관련이 있지만 다른 신들에 비해서 자연 현상과 결부되어 묘사되는 경우는 적다. 비슈누는 큰 보폭으로
지구와 대기를 지나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비슈누의 지고(至高)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넓은 보폭(wide-striding)"으로 "가장 높은 자리(the highest place)"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초기 베다의 시기에는 낮은
단계의 신이었으나 후대에 갈수록 점점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힌두 신들 가운데서 가장 자비로운 신의 하나로
숭배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드라 신보다 점점 더 대중 속에서 인기 있는 신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인드라 신은 대기권에서 활동하는 다른 신들과 같은 서열이었다. 예컨대, 바람의 신 바유(Vāyu), 비구름의 신
파르자냐(Parjanya), 폭풍우의 신 마르투스(Martus), 그리고 마르투스의 아버지 루드라(Rudra) 등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과 관련된 대기권의 신들 가운데서 인드라와 루드라는 독특하고 중요한 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루드라는 심술궂게 분노에 가득 찬 힘으로 무시무시한 파괴를 자행하지만 때때로 그를 찾고 그에게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파괴를 면하고 치유를 베풀어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종종 또 다른 별칭인 시바(Śiva, 행운의 뜻)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바로서의 명칭은 처음엔 희미하게 나타나지만 후대에 가서 두드러지고 그 역할과 중요성도 후대에 가서야
강화된다.
『리그베다』에서는 비슈누처럼 루드라도 인드라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종속적인 신들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인드라 신이
이렇게 큰 권세와 영광을 휘두를 수 있었던 까닭은 생명수(生命水)의 공급을 가로막는 악신(惡神) 브리트라(Vritra)라는 괴물을
물리치고 인간에게 필요한 개천과 강물을 흐르게 하였던 점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드라의 명성과 인기는 아리아인들의
적을 물리치는 전사(戰士)적 영웅 신으로서 추앙을 받는다는데 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바루나가 우주적 통치의 주권적 기능을 가진 신이라면, 인드라는 아리안 민족을 승리로 이끄는 전쟁의
영웅신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검은 피부를 가진 다사(Dāsas) 혹은 다스유스(Dasyus)라고 불리는 종족과 싸워
승리를 이끌어 준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마(Soma) 주(酒)를 배불리 마시고 흥분하여 번쩍거리는 우레의 칼을 휘두르며
힘을 자랑하는 인드라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아리안 전사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같이 전쟁과 정복이라는 실용적
측면에서 인드라는 『리그베다』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 되고, 우주적 통치자로서의 주권을 행사하던 루드라는 이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신은 서로 기능적 측면에서 상호 보충적으로 숭배되어 왔다. 초기 베다 시대에서 점차 후기 베다
시대로 이어지면서 신들의 역할도 변화를 가져 오는데, 천상과 대기권에서 활동하던 신들 보다 이제는 지상에서 직접적인
유익을 주는 불의 신, 아그니(Agni)를 위시하여, 기도의 신, 브리하스파티(Brihaspati) 그리고 제의를 위한 봉헌의 술,
소마(Soma)가 새롭게 주요한 숭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들 신은 불의 희생제의 곧 번제(燔祭)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다음에서 이들이 중요시 여겼던 희생제의와 그 의의를 살펴보기로 하자.
4). 아리아인의 제의(祭儀)와 『리그베다』의 탄생
아리아인들의 희생제의는 동물이나 가축을 태워 신에게 바치는 번제(燔祭) 곧 불의 제사였다. 불은 인간 생활에 가장 소중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리하여 불은 신성시되기도 했다. 이는 고대인들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불은
식생활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멸의 힘과 정화(淨化)의 힘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불은 신성시 되어 가정의 한 가운데
자리하여 숭배를 받았으며, 사람들은 불을 향해 음식을 바쳤다. 인도 아리아인들의 초기 제사 형태는 바로 이러한 불의
제사였던 것이 점차 불을 둘러싼 '거룩한 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신들이 초대되어졌다. 신들이 초대된 까닭은 물론
자연을 지배하는 힘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때문이었다. 베다 시대의 아리아인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영들의 세계를 숭상했고, 인간에게 재난과 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이러한 신령한 세계의 신들에게 보호와 은총을
빌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예배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초대 된 신들은 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제물을 공급 받았다. 특히 불의 신 아그니는 불
속에서 제공된 희생물들을 다른 신에게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것이 아리아인이 창출해 낸 베다 종교의식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의례가 처음부터 분명한 형식으로 들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불의 신 아그니를 숭배하면서 제의가
점차 형식화되고 발전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초대된 신들은 음식만 제공 받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시인(詩人)으로서의 사제(司祭)가 신들에 대한 찬가를 부르면서 신에게 음식과 선물을 제공 했다. 이때의 찬가는
아리아인의 신화가 섞여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었고, 희생제의의 목적에 따라 서정(抒情)적 형태로 불리어졌다. 전형적인
서정적 찬가의 형태는 다정하고 공경에 가득한 경외심으로 낭송되어졌다. 이러한 기본적 틀 안에서 시인-사제들은 각자의
형편에 걸 맞는 시적 찬가의 형식을 점차 다양하게 발전시켜 갔던 것이다.
이처럼 베다 시대에 고도의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시인-사제들이 영감을 받은 대로 찬가를 지어 부른 내용들이 하나 둘씩
편집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초기 형태의 『리그베다』로서, 세대에 걸쳐 전수 되어지는 가운데 점차 여러 가지의 형태로
문헌의 몸집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신들에 대한 찬가의 모음집을 일러 상히타(Samhitā) 곧, '본집(本集)'이라고 부른다.
이 본집은 여러 가지 찬가집이 늘어나면서 전체 10권으로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서 2권부터 7권까지가 기본 찬가의 몸집을
구성하고 있고, 다른 여러 찬가의 모음집이 1권과 8권에 추가 되었다. 9장은 술의 신 소마 의례를 위해서 특별히 소마를
찬미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고, 10장은 후대에 첨가된 찬가들이 포함됨으로써 전체 『리그베다』의 본집을 완성하게 된다.
『리그베다』의 본집(상히타)의 탄생은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들의 해석과 의례적 전승 속에서 변화와 확충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사제가 전담하던 의례도 아리아인의 가정에서 개인들이 직접 그들 자신의 손으로 희생제의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제들은 의례의 형식과 절차를 보다 전문화 하게 되었고 새로운 찬가들을 더욱 보충하게 되었다.
『리그베다』의 본집이 완성 될 무렵에는 사제들 집단 가운데 희생 제의에 대한 일반적인 형태의 일치가 이루어지면서, 보다
세련되게 체계화 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제의가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전문적 사제들은 부유한 계층의
후원자들에게서 선물과 일정한 대가를 제공받고 제의를 수행해 준다. 물론 물질적 봉헌을 바치는 제의의 목적은 지상과
천상에서의 복락이다. 희생제의를 받을 수 있는 신들만이 인간에게 무병장수와 같은 축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희생제의가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될수록 사제의 권위와 가치는 높아졌고, 유능한 사제 밑에서 수학하는 사제의 제자들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들은 희생제의의 기술을 익힐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의를 개발하거나 혁신해 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찬가의 새로운 보급과 교육은 중요한 제의의 요소를 차지했다. 이렇게 전문화된 제의는 점차 세련된 형태로 제의의 절차와
과정을 구체화 시키면서 규범적인 형태의 제의를 발전시켜 갔던 것이다.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행하는 제의도 사제들이 전문화시킨 모범적 절차를 따라 행하게 되었고, 반면에 사제들은 아리아인들의
풍부한 민간전승의 풍속과 신화들을 흡수해 가면서 제의 전통을 확대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물론 사제들이 행하는 전문적인
스라우타(Śrauta, 베다의 찬가를 이용) 제의와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행해지는 그리하(Griha, 가정) 제의의 구분이 있었지만
모두가 사제들의 영향권 아래에서 보급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의 제의와는 달리 사제들이 집행하는
스라우타 제의는 일반 가정에서 행해지는 가정 제의보다는 훨씬 정교하게 발전 된 것이었다. 특히 제의에 사용되는 불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아리아인의 가정에서 매일 직접 개인들이 봉헌했던 단순 제의(homa sacrifices)는 아침에 불의 신 아그니와 창조주
프라자파티(Prajāpati)에게, 그리고 저녁에는 태양신 수리아(Sūrya)와 프라자파티에게 요리한 음식을 바치는 것이었다.
매일 드리는 제사 외에도 신년과 만월(滿月), 첫 수확기, 자녀의 탄생 혹은 건물을 신축했을 경우 등 수많은 절기와 시기마다
베다의 찬가와 함께 제의가 행해졌다. 이러한 제의의 형식은 큰 변화를 겪지 않은 채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세대 간에 제의가 전승되어 오긴 했지만 제사 자체의 의미는 점차 신화적인 내용에서 우주적인 철학적 성격으로
변해 갔다. 그것이 후대에 베다의 사상으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출처: 꿈터상담소> / 참고: 저자를 찾을 수 없어서 유감이다>
5). 『베다』의 제사와 창조력 : 언어의 신 바크(Vāc)
천상과 지상의 신들에 대한 제의를 사제들이 집행하는 가운데 베다의 제의는 불의 제사 속에서 점차 세련된 형태로 발전해
갔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제의의 상징적 형태는 제단의 형태와 불의 위치 등 여러 가지 규칙 속에서 더욱 정교하게
발전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제사를 집행 하는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불의 요소뿐만 아니라, 이제는 신을 부르는 소리인
언어, '바크(vāc)' 자체가 소중해지게 되었다. 더구나 『리그베다』에 실려 있는 신들에 대한 찬가는 이제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거룩한 말씀(Holy utterance)' 혹은 '신의 소리(Divine voice)'로 여겨지면서 언어는 신성화 되었다.
베다의 문구는 찬가의 형식이지만 상당부분이 후렴구로 구성되어 있고, 반복적 효과를 내는 소리의 형태 속에서 진리가 드러날
뿐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신을 부르는 시적인 언어는 더욱 신성한 소리로 여겨지고 있다. 의례에서 주로 사용되는 짧은 형태로
된 반복적 문구의 소리를 만트라(mantra)라고 하는데,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이 만트라가 신성한 힘을 가지고 진리의 실재를
드러내 보인다고 생각한다. 초기 베다 시절의 수많은 다양한 신들이 점차 하나의 신으로 권력이 이동 되면서 하나의 신, 최고의
신 위주로 모든 신들을 흡수해 갔던 경향과 흡사하게, 이제는 제사 속에서 신들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점차 모든 사물 세계도
하나의 통일적 연합을 이루는 형태로 발전해 가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만트라 속에서 불의 제사와 희생제의, 그리고 일체의
의례 행위들이 신성한 우주적 조화와 연합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찬가와 만트라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그 가운데서도 "기도의 주(主)"인 브리하스파티(Brihaspati) 혹은
브라마나스파티(Brahmanaspati)가 중요한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아가서 "언어의 주"인 "바카스파티(Vācaspati)"는 불의 신 아그니와 대등한 위치를 얻게 되었고, 심지어 "언어" 그 자체가
여신 "바크(Vāc)"와 동일시되어 베다의 체계 내에서 다른 신들의 권리와 대등한 관계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제의의
특별한 공간 속에서 길게 울려 퍼지는 만트라의 언어적 공명은 모든 제의 속에서 더욱 신성시 되게 되었다. 만트라에 사용 되는
언어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서 그 어원이 '삼스크리타(samskrita)' 즉 "함께 잘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언어적 조합이
훌륭하게 구성된 글이라는 뜻이다. 이는 소리를 발성하고 반복하는 가운데 소리가 지칭하는 '실재세계'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컨대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그 대상의 속성은 물론 그 대상의 행위까지도, 신성하게 울려 퍼지는 만트라의 공명 속에서
실재의 세계가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소리와 대상의 신비한 일치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현대적 의미에서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과 언어를 발성하는 소리가 실재와의 일치를 보여 준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베다의 시대에는 언어와
그 소리가 제의에서 신성시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트라의 공명 속에서 획득되는 소리를 매개로 한 언어의 힘과 실재
세계와의 일치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살펴볼 브라만(Brahman)사상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브라만은 영원불멸의 절대자라는
뜻과 사제로서의 브라만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는 우주 창조자인 브라마(Brahmā)와는 구별된다.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들인 브라만은 그들의 제의 수행 지침서인 브라마나(Brāhmana, 梵書)를 가지고 '소리'를 내며 기도와
만트라 등의 의례를 행한다. 이 때 언어의 '소리'로서의 기능과 사제의 지침서인 브라마나가 아주 중요시 된다.
베다에서 언어의 신 바크와 브라마나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거룩한 언어 바크(Vāc)는 4가지 측면으로 구분된다.
현명하게도 브라마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세 가지 측면에서는 은밀하게 숨겨져 활동하지 않지만,
인간들은 거룩한 언어의 네 번째 측면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인드라, 미트라, 바루나, 아그니(불),
곧 하늘의 태양-새(Sun-bird)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그를 일러 현자들은 아그니, 야마(Yama, 死者의 신, 義의 왕),
마타리쉬반(Mātariśvan)이라고 다양하게 부른다."
<리그베다 1권.164>
이와 같이 『리그베다』는 제사 속에서 신들의 권력이동은 물론 제사의 발전과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신들이 다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가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어의 신 바크의 등장이 바로 그 또 하나의 사례다. 처음에 다양한 신들이 제사를 둘러싸고 점차 하나의 중심적인
통치자로서의 신, 곧 일자(一者)를 추구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인드라와 같은 초기 신이 아그니와 같은
불의 신속으로 그 역할이 흡수 된 것처럼, 이제는 소리의 신 바크 속으로 인드라와 아그니마저 통합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죽음을 관장하는 야마 신까지도 거룩한 언어인 '바크' 속에 편입되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의 말씀"(로고스 λογοσ)이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영어에서 어휘를 뜻하는 '보케뷰라리(vocabulary)'나 목소리를 뜻하는 '보컬(vocal)'도 인도 유럽어에 어근(語根)을 같이하는
산스크리트어의 '바크(vāc)'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언어를 신성시하던 고대 인도의 전통이 여전히
언어를 도구로 살아가는 인류에게 언어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신선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언어를 떠나 인간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될 때, 인류는 분명 저급한 의미의 사고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수 천 년의
문명사를 기록하고 발전 시켜왔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 언어로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불분명하고 불의(不義)한
의사소통은 무너져 갈수밖에 없는 '바벨탑'을 쌓아왔고, 엄청난 역사의 퇴보를 가져 온 일면도 있다.
소리의 신 바크가 '야마'(염라대왕)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소리 속에 '정의(正義)'가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크의 신은 '정의의 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정의의 신이 제단에서 거룩한 소리가 되어 만트라 속에서 울러
퍼진다. 그리하여 소리는 내면의 소리이자 '일자(一者)의 소리'가 된다. 그 일자의 소리는 다시 지식의 근원이 된다.
그리스도교에서 마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하는 말과도 통한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은 지식의 출발이 되며, 참 지식은 참 신앙을 불러일으킨다. 정의로운 삶 속으로!
신앙인에게서 소리와 일자의 체험은 숨겨진 계시, 곧 실재(reality)가 드러나는 사건이다. 이 실재가 드러나는 계시적 사건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제사는 더 이상 신에게 바쳐지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며, 상징적
재현도 아니고, 실재 그 자체의 경험이 된다. 그것은 '소리' 속에서 경험되는 거룩함의 체현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도 신성(神聖)한 것임을 알고, 매일 생활 속에서 신성을 경험하는 것이 어떨까? 소리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소리를 하고 살다가 소리를 하고 죽는 인생, 소리의 신 야마를 늘 생각해 볼 일이다. 야마는 심판의 신이기
때문이다. 심판은 이미 매순간 생활 속에서 주어지고 있다. 나의 언어가 소리에 실릴 때마다......
<출처: 코리안아쉬람> / 참고: 저자를 확인할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