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시루봉을 가보고 싶었다.
섬진강문화학교에서 본 임소혁의 사진을 본 후부터 그처럼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꿈도 크다.
저녁 먹자는 동기의 권유도, 놀아달라는 한강이의 부탁도
다 거절하고 왕시루봉을 가기로 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가 보아야
눈 쌓인 날에 올라 그런 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니.
대학에 합격했다는 큰 놈을 태워다주며 별 생각을 한다.
나의 아침 식사와 출근(통학)은 거의 7시 무렵이었다. 이슬로 바지 끝을 적시며 걸어 내려 와 가로수를 세며 소재지까지 걸어가서 통학버스를 타던 고등학교 때나,
남동에서 풍향동까지 걸었던 광주에서나.
아닐 때도 있었다. 섬에서 살았던 4년은 느긋하게 돌아다니다
밥 시간에 맞춰 하숙집에 가고, 느긋하게 나가도 맨 먼저 교실에 들어섰다.
점암의 학교 앞에서 살던 때는 술 마시고 다니느라 일정치 않았지만, 겨울 아침에 뒷산을 오르기도 할 시간이 있었다.
난, 다시 섬으로 갈 수 있을까?
학교 앞에까지 아이를 실어오고 실으러 오던 걸 은근히 못마땅해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젠 내가 먼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어제부터 배낭을 챙기는 날 보고 한강이는 ‘나도 따라갈까?’를 물으며
고민을 한다. 무등산도 힘들어하는 그를 지리산에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내가 산을 자주 가자고 하던 때를 생각하며 혼자 놀아라 한다.
그는 혼란스럽겠다.
유치원에 안 가는 그를 데리고, 학생교육문화회관으로 산책을 간다.
허리 돌리기 운동기구 앞에서 손을 안 잡고 돌기 놀이를 하다가
마음이 바빠 돌아온다.
외삼촌만 있다는 숙모 집으로 가는 그와 악수하고 난 무거운 배낭을
차에 싣는다.
아파트를 빠져 나오니 10시 반을 넘어간다.
곡성휴게소에 들러 아직 경고등이 들어오지 않은 연료탱크를 채운다.
돈을 찾으러하는데 거부당한다.
2,100원 요금을 계산하고 곡성IC를 빠져 나간다.
기차마을이나 자전거 도로를 한강이가 구경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섬진강은 유량이 작고, 하늘은 구름인지 가스인지 희뿌옇다.
구례 이마트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서 쇼핑을 한다.
캔맥주 두 개(차안에 뒹구는 거 있었는데) 소주 200ml 두 개, 가스 두 개, 스텐 컵도 다시 샀다.
집에서 챙겨 온 술과 반찬과 라면과 쌀
배낭이 무거울 것 같아 코펠 중 가장 큰 것은 빼두었다.
다시 차에 넣고 남도식당에 가서 추어탕을 먹는다.
어느 공사장의 일꾼들이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는데
억양이 낯설다. 그들의 세상살이와 나의 세상살이는 어떻게 다를까?
가마꾼들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는 여론은 요즘은 기사방에 가야 하나?
점피가루를 넣으니 혀 깊숙이 맛이 박히는 듯하다. 5,000원을 계산하고 나오니
12시 40분이 채 안됐다.
3시간이면 왕시루봉에 오른다했으니 2시에 출발해도 충분할 듯하다.
토지 소재지 지나 구례동중 앞 다리를 건너 간전으로 간다.
섬진강변 도로 가로질러 효곡리 쪽으로 운전한다.
논과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군데군데 체험 민박집과 음식점들이 나타나고, 끝 마을은 광양가는 길 표시인데
차량은 갈 수 없다한다.
건너편 흐린 왕시루봉을 찍어보고, 키질하는 할머니와
빈 집을 찍어보고 내려온다. 간문초교에 들러 소나무를 찍어본다.
김용태나 한계수 선생이 교장을 하고 갔다는 인연으로 바깥을 한바퀴 돈다.
다시 간전교 아래에서 강을 보는데 영 맛이 아니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노고단에서 내려와 물놀이하던 생각을 한다.
헤매이다 농협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정각 2시다.
문을 열고 가방을 챙기며 지나는 할머니에게 길을 묻는다.
‘광주서 오신 양반이 이 길도 몰라요?’
‘왜 산을 혼자 가고 그요?’
지난번 거제도 민박집에서도 들었던 말이다.
나 혼자서만 산에 다니는 것 아니에요.
떼지어 시끄럽게 다니기도 하고
어린 아들 데리고 가족과 함께 다닌 적도 있고
둘이서 오를 때도 있어요.
따라오라며 골목길을 벗어나 산을 가리키며 왼쪽으로 돌아 다리를 건너
저 산의 왼쪽을 감고 올라가라고 한다.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한 골짜기는 납골당을 짓고 있나보다.
구례는 죽어서도 지내기 좋은 고장인가?
세멘트길이 왼쪽으로 돌아가는데 난 산길로 들어선다. 가다가
저 임도같은 세멘트길을 만나겠지 하고.
배낭은 금방 무거워지는데 길은 좁아진다.
나주임씨 묘를 지난다는 글을 읽었는데 묘는 보이지 않는다.
20여분 땀을 흘리다 묘지에 닿아 상석을 살피니 장수황씨 묘들이다.
길은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오르면 꼭대기서 닿겠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두 여성이 등산복으로 입고 산을 뒤지고 있다.
버섯을 따는가? 가물어 말라 검게 마른 버섯들이 보인다.
소나무 숲 속에 이제 길은 보이지 않고, 솔가리 쌓인 푹신한 길을 오른다.
잡목이 없어 다행이지만 몸은 자꾸 미끌린다.
뒤로 잡는 배낭 때문에 소나무 기둥을 잡을 힘도 없다.
왼쪽으로 가야겠다고 오르는데, 철조망을 다섯줄이나 쳐 놓은 곳을 지난다.
소나무 깊숙이 박혀있고 녹도 잔뜩 실었다. 무엇을 보호하려고 철조망을 했을까?
40분 정도 오르자, 바위 위에 선다. 뒤에는 묘지가 있다.
섬진강은 잔뜩 흐려있고 구름 뒤에 햇볕을 받아 강물이 빛나고 있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사진을 찍어본다. 오르고자 했던 임도는 건너편으로 보인다.
내가 올라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짧은 소매를 입은 오른쪽 팔은 여러 군데 긁혔다.
다시 오른다. 잠시 쉰 종아리는 금방 힘이 떨어진다.
묘지 가는 길이 도와준다.
죽은 이가 산 이를 도와준다.
금방 또 쉰다. 능선 길도 오르막이다.
지쳐서 아끼려던 맥주를 꺼내 마시고 다시 힘을 낸다.
등산로를 만난 것은 4시 50분이었다.
거의 3시간을 올랐으니 정상부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마른 풀과 잎사귀가 부드러운 흙길 위에 떨어져 있다.
한참 오르다 오른쪽으로 허리를 감고 돈다.
평평함에 가까운 길을 가자니 힘은 덜 들어 좋은데
능선을 벗어나 불안하다. 5분쯤 갔을까, 오른쪽 능선을 만날 것 같다.
불안하여 능선길을 놓쳤나 싶어 되돌아온다.
보이지 능선에서 바로 오르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 몸은 지친다. 가다보니 길 가 바위에 노란 페인트가 찍혀있다.
안심하고 가다보니 만나는 곳에 마른 계곡이 나타나고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낑낑대며 오르자 전나무(?) 숲이 나타난다.
솔가리가 온통 바닥에 융단을 깔았다.
사진을 하나 찍고도 싶지만 몸이 너무 힘들다.
해가 어느 새 흐려지려 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느긋하게 일몰을 보려던 마음은 얼른 물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해진다.
하얀 돌에 단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왕시루봉 1,212m 표지에는 헬기장이 두 개 있다.
억새들이 피어 마지막을 어두워가는 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껍질 채로 먹는 사과가 꿀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