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이상한 흥분을 찾아 모여든 7명의 의젓한 사나이들이(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일부러 그것을 위해 특별히 만든 <빨간 방>의 주홍빛 비로오도 로 싸은 푹신한 안락의자에 제각기 기대앉아, 오늘밤의 주인공이 무언가 색 다르고도 괴이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 다. 7명의 사나이들의 한복판에는 이 역시 주홍빛 비로오도로 덮인 하나의 크 고 둥근테이블 위에 옛 조각이 새겨진 촛대에 받쳐진 세 자루의 굵은 촛불 이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타오르고 있었다. 방의 둘레에는 창이나 입구의 도어조차 남김없이 천정에서 마루바닥까지 새빨간 무거운 비단술이 풍부한 주름을 이루며 쳐져 있었다. 로맨틱한 촛불 빛이 그 정맥에서 갓 흘러나온 피처럼 거무스레한 비단술 겉에 우리들 7명 의 별나게 큰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촛불의 흔들림 에 따라 몇 개의 거대한 곤충이기라도 한 듯이 비단술의 주름의 곡선 위를 펴졌다가 오물아들었다하면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항상 그렇거니와 그 방은 나로 하여금 마치 기막히게 큰 생물의 심장 안에 앉아있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그 심장이 크기에 알맞는 둔중함으로 덜컹 덜컹 뛰노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같이 느껴졌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촛불을 통해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의 벌겋 게 보이는 그림자가 많은 얼굴을 시름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들은 이상하게도 가면처럼 무표정한 채 꼼짝달싹도 안하는 것같아 보였다. 이윽고 오늘밤 이야기를 하기로 되어 있는 신입회원 T씨는 앉은 채로 촛불 을 바라보면서 다음같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음영의 상태 때문에 해골 처럼 보이는 그의 턱이 말을 할 때마다 덜덜 마주치는 모양을 마치 기괴한 꼭두각시라도 바라보는 것 같은 심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 2 ] 나는 내 자신의 생각으로는 틀림없이 멀쩡한 정신이라고 믿고 있고, 사람 들도 그렇게 대해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정말 멀쩡한 정신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읍니다.미치광이인지도 모릅니다. 어쨓든 나라는 인간은 이상할 만큼 이 세상이 하찮은 것입니다. 살아 있다 는 것이 도무지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처음 얼마 동안은 여느 사람들처럼 여러 가지 도락에 잠긴 시절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무엇이고 간에 나의 타고난 지루함을 위로해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이제 이것으로 이 세상의 재미있는 일은 그만인가, 정말 형편없군, 이런 실망만이 남을 뿐이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차츰 무엇을 하 는 것이 숫제 귀찮아졌읍니다. 가령 이러이러한 오락은 재미있다. 아마 너 를 기쁘게 해줄 게다, 이런 얘기를 듣게 되면, 오오, 그런 것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당장 해봐야지, 이렇게 벼르는 대신 먼저 머리속으로 그 재미 있 는 일을 이모저모 상상해 보는 것읍니다. 그리고 온갖 상상을 되풀이한 결 과는 언제나 '뭐 대단한 것이 못된다.'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판이라 나는 어떤 기간을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않고, 그저 먹고 잠 자는 생활 만 했었지요. 그리고 머리 속에서만 여러 공상을 하면서 이것도 신통치 않 다, 저것도 지루하다, 이렇게 깡그리 밀쳐내면서 죽는 것보다도 괴로운, 그 러면서도 남이 보기엔 팔자 좋은 안이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내가 차라리 그날 그날 입에 풀칠 하기 힘든 환경이었다면, 이렇게는 안되었을 겝니다. 하다못해 강제된 노동이드라도 어쨓든 무언가 할 일이 있 으면 행복하죠. 아니면 내가 기막힌 부자였다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마 그 돈의 힘으로 역사상의 폭군들처럼 기막힌 사치나 피비린내나는 유 희나 그밖의 내가 꿈꾸고 있는 온갖 즐거움에 잠길 수가 있었을 테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보나마나 "그야 그렇지. 그렇지만 이 세상 일 에 질력이나 있는 점에서는 우리 역시 네게 뒤지지 않지. 그래서 이런 클럽 을 만들어, 색다른 흥분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너 역시 어지간 히 지루하니까 우리 회원이 된 것이겠지." 이렇게 말씀 하실 겝니다.사실 그렇지요. 나는 굳이 지루하게 그 따위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던 게 지요. 그리고 당신들이 지루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밤 이 자리에 참석해서 세상에서도 보기드문 별난 신 상 이야기를 하려고 결심한 것이니까요. 나는 이 아래층 레스토랑에는 노상 드나들고 있어, 자연 여기 계시는 주인 양반하고도 자별한 사이가 되어, 훨씬 전부터 이 <빨간 방>의 모임에 대한 애기를 들었고 수차 입회 하라는 권고조차 듣고 있었지요. 그런데도 내가 여지껏 입회를 안한 것은 내가 실례의 말씀인지는 몰라도 여러분과는 비교 가 안될 만큼 지루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범죄와 탐정 놀음 말씀인가요? 강령술이나 심령상의 실험 말씀인가요? 형무소나 간질병병원이나 해부학교 실 따위 참관 말씀인가요? 아직도 그런 것에 다소라도 흥미를 품으실 수 있 는 여러분은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사형집행을 엿볼 계획 을 세우고 있다는 애기를 들었을 때조차 전혀 놀라지 않았지요. 그럴 것이 나는 주인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엔 이미 그런 흔해빠진 자극에는 질려있 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기막힌 유희, 이렇게 말해선 약간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마는, 나로서는 유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서 그 즐거움에 정 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희, 즉 장난이란 느닷없이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놀라실지도 모릅니 다마는... 살인(殺人)입니다. 진짜 살인 말씀입니다. 게다가 나는 그 장난 을 발견한 뒤로 이제까지 다만 지루함을 덜고자 백 명에 가까운 남녀나 어 린애의 목숨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면 내가 이제 그 무서운 죄악을 뉘우치고 참회를 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꺼내는 모양이라고 짐작하 실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지요. 나는 조금도 후회 따위는 하지 않 읍니다. 저지른 죄를 두려워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아, 기막힌 일입니다. 나는 근래에 와서 그 살인이라는 자극에조차 싫증이 나버 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엔 남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일에, 그 아편에 빠져 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나 역시 목숨은 아까웠던지 이것만은 손에 대지 않 으려고 했지만, 살인에도 싫증을 느끼게 된 판국이니 이제 자살이라도 뜻하 기 전엔 달리 자극을 구할 길이 없잖겠읍니까? 나는 이제 조만간 아편으로 목숨을 잃게 될 겝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다못해 정신이 말짱한 사이에 누군가에게 내가 해온 것을 말해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기엔 이<빨간 방> 의 분들이 가장 안성마춤이 아니겠읍니까? 그런 까닭에 나는 실은 여러분의 동료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만 나의 이 별난 신상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어 회원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 히 신입회원은 반드시 첫날밤 이 모임의 뜻에 알맞는 얘기를 하기로 되어 있어, 이렇게 오늘밤 그 동안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입 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한 3년쯤 전의 일이었지요. 그 무렵은 방금 말씀드린 것 처럼 온갖 자극에 지쳐 버려 아무런 보람도 없이, 마치 한 마리의 지루함이 라는 이름을 지닌 동물처럼 하는 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 그 해 봄, 봄이라 고는 해도 아직 추울 때였으니까 아마 2월말이나 3월 초순쯤 되었을 겝니 다. 어느날 밤 나는 묘한 일을 겪게된 것입니다. 내가 백 명이나 되는 사람 의 목숨을 빼앗게 된 것은 그날밤의 일이 동기가 되었지요. 어딘가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보낸 나는 아마 한 시쯤 되었을까요, 약간 얼 근해 있었읍니다. 추운 밤인데 어슬렁어슬렁 차도 타지 않고 집쪽으로 걷고 있었지요. 골목하나만 돌면 바로 우리집인, 그 골목길을 돌아가려니, 웬 사 나이가 몹시 허둥지둥 뛰어나오고 있더군요. 우리는 서로 부딪칠 뻔했지요. 사나이는 더한층 놀라더니 어렴풋한 가로등 불빛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자 갑자기 "이 근처에 병원이 없나요?" 이렇게 묻는 게 아닙니까. 말을 들어 보니 그 사나이는 택시 운전사인데 방금 한 노인을(그런 밤중에 혼자 돌아 다니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아마 부랑자였을 겝니다) 치어 대단한 상처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딴은 그러고보니 바로 앞쪽에 한 대의 택시가 서있고, 그 곁에 사람같은 것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더군요. 파출소는 멀고, 게다가 부상자의 고통이 심해서 운전사는 우선 병원부터 찾으려고 허둥대며 달려온 모양이에요. 나는 그 근처의 지리는 훤했기 때문에 병원도 잘 알고 있었지 요. 그래서 곧 이렇게 가르쳐 줬읍니다. "왼쪽으로 조금 가면 또 왼쪽에 빨간 등불이 달려 있는 집이 있소. M병원이 라고 하죠. 그곳으로 가서 깨워 보시구려." 그러자 운전사는 곧 부상자를 업고 M병원으로 달려갔지요. 나는 그의 뒷모 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는 독신 입니다.---노파가 깔아 준 이부자리로 들어가 곧 잠들어 버렸읍니다. 실상 아무 것도 아닌 일입니다. 만일 내가 그대로 그 사건을 잊어버리기만 했드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릴 일이었지요. 그런데 이튿날 잠이 깼을 때 나 는 전날밤의 그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부상자는 살았 을까, 이런 필요치 않은 생각을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나는 문득 이상한 사 실을 깨달았읍니다. "가만 있자, 이거 큰 실수를 저질렀는걸." 나는 깜짝 놀랐읍니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정신마 저 잃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부상자를 M병원으로 보낸 것일까요? "왼쪽으로 조금 가면, 왼쪽에 빨간 등불이 달려 있는 집이 있소..." 이렇게 한 말도 모두 기억하고 있읍니다. 어째서 그 대신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K병원이라는 외과 전문 병원이 있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내가 가르쳐 준 것은 소문난 엉터리 의사 였고, 게다가 외과쪽은 제대로 기술이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M병원과는 반대쪽이고, M병원보다 가까운 곳에 훌륭한 설비가 갖추 어진 K라는 외과병원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 요.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잘못 가르쳐 주었는지, 그 때의 야릇한 심리상태 는 지금도 역시 알 길이 없읍니다만, 아마 순간적으로 깜빡 잊고 착각을 했 던 모양입니다. 나는 적지않이 염려가 되기에 가정부 노파를 시켜 알아 보았더니, 부상자 는 M병원 진찰실에서 숨을 거둔 모양입니다. 어디 의사건 그런 부상자를 싫 어할 것은 당연합니다. 하물며 밤중 한 시였으니까 무리도 아니었지요. 한 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간신히 부상자를 받아 들였을 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 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때 만일 의사가 "나는 전문의가 아니니까 K병 원으로 데려가시오." 이렇게라도 했다면, 혹시 부상자는 살았을는지도 모릅 니다. 그런데 그는 터무니없이 자기 분수도 잊고 그 환자를 처리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실패한 것입니다. 소문을 듣자니 M의사는 당 황해 버려 굉장히 오랫동안 환자를 주물러댄 모양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이 경우 가엾은 노 인을 죽인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운전사와 M의사에게도 각기 책임이 있음 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법률상의 처벌이 있다면, 아마 운전사의 과실에 대 해 행해질 터이지만, 사실상 가장 중대한 책임자는 이 내가 아닐까요? 만일 그 때 내가 M병원 말고 K병원을 가르쳐 줬다면 부상자는 살았을는지도 모르 는 것입니다. 운전사는 다만 부상을 입혔을뿐입니다. 죽인 것은 아니지요. M의사는 기술부족으로 실패한 것이니까 이 역시 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가르침이 우연의 과실이었다고 생각한 경우지만, 만일 그것이 과실이 아니라, 그 노인을 죽여버리자는 나의 고의(故意)에서 나온 것이었 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는 사실상 살인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 까? 그러나 법률은 운전사를 벌하는 일은 있어도 사실상의 살인자인 나에 대해서는 아마 의심조차 품지 않을 겁니다. 그럴것이 나하고 죽은 노인하고 는 안면조차 없는 판이니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은 자명하니 까요. 그리고 설령 의심을 받드라도 나는 그저 병원이 있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고 대답만 하면 되지 않겠읍니까? 안그래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살인범에 대해 생각해 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나는 이 자동차사건으로 비로소 그 점을 깨달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얼 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릅니다. 그 어느 때 나 같은 인간이 아무런 이해관계 도 없이 고의로 틀린 의사를 가르쳐 주거나 해서 그렇지 않으면 건질 수 있 었을 목숨을 부당하게 잃어버리게 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후 내가 실제로 해보고 성공한 일이지만, 시골 노파가 행길을 건너려고 막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물론 그곳에는 전차니 버스니 택시니 마 차 따위가 쉴 새없이 달리고 있으니까 노파의 머리는 보나마나 혼란을 일으 키고 있을 겝니다. 그때 차가 쏜살같이 달려와 노파의 바로 뒤까지 이르렀 다고 가정합시다. 그 때 노파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대로 건너가면 별 것이 아니지만, 누군가가 큰 소리로 "할머니 위험해요!" 이렇게 외치기라도 한다면, 그만 허둥거리게 되어 잠시 꾸물댈게 분명합니다. 만일 차가 급정 거를 할 수 없는 경우라면 "할머니 위험해요!"라고 외친 한 마디가 노파를 죽이게 만들 수도 있지요. 아까도 말씀드린것 처럼, 나는 언젠가 이런 방법 으로 시골사람 한 사람을 보기좋게 죽여 버린 일이 있어요.(T씨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우리를 둘러보고 싱긋 웃었다)
[ 3 ] 이 경우 "위험해요!" 이렇게 외친 나는 틀림없는 살인자입니다. 그러나 누 가 나의 살의(殺意)를 의심할 것입니까? 아무런 원한도 없는 낯선 인간을 다만 살인의 흥미 때문에 죽이려는 사람이 있으리라 짐작할 사람이 있을까 요? 게다가 "위험해요!"라는 주의의 말은 아무리 해석해도 호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표면상 감사는 받을지언정 결코 원망을 들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 다. 여러분 이 얼마나 안전한 살인법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나쁜 짓은 반드시 법률에 저촉되어 그에 상당한 처벌을 받 는 것이라고 믿고, 어리석게도 안심하고 있읍니다. 누구이건 간에 법률이 살인을 그대로 두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않고 있지요. 그런데 이제 말한 두 가지 실예(實例)에서 유추 할수 있는, 전혀 법률에 저촉될 염려가 없는 살 인법이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 것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라는 것의 두려움에 소름이 끼치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죄악의 여지 를 남겨 준 조물주의 여유를 다시없이 유쾌하게 생각했지요. 나는 그야말로 이 발견에 미쳐 날뛰었읍니다. 실상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그리하여 나는 이런 종류의 살인으로 그 죽을 것같이 못견딘 지루함을 잊 기로 했읍니다. 절대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살인, 어떤 셔얼록 홈즈라도 알아낼 수 없는 살인, 아아,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그 뒤로 나는 3년 동안에 사람을 죽이는 즐거움에 잠겨 어느새 그 지루함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읍니다. 여러분, 웃지마십시오. 나는 백 명의 목숨을 빼앗을 때까지는 절대로 중간에서 이 살인을 그만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석 달 전입니다. 나는 마침 99명 만을 끝냈지요. 그리고 이제 한 명이 남게 되었을 때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그 살인에도 싫증이 나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어찌 됐건 그 99명을 어떤 식으로 죽였느냐? 물론 99명 중 단 한 사람에게도 원한 따위는 없었고, 다만 남이 모르는 방법과 그 결과에 흥미를 품고 한 짓이니까, 나는 한 번도 같은 방법을 되풀이하는 짓은 안했지요. 한 사람을 죽이고나면, 이번에는 어떤 새 방법으로 해치울 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또한 하나의 낙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내가 한 99명의 제각기 다른 살인법을 모조리 말씀 드릴 여가도 없고, 게다가 오늘밤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그런 개개의 살인법을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극악무도한 죄악을 범해가면서까 지 무료함을 잊으려고 한, 그리고 또한 마침내는 그 죄악에조차 싫증이 나 버려 이번엔 나 자신을 망치려 하고 있는 이 묘한 나의 심정을 말씀드려, 여러분의 판단을 바라기 위해서였으니까 그 살인방법에 대해서는 그저 몇 가지 예만 들기로 하겠읍니다. 이 발견을 한 지 얼마 안되어서였는데, 이런 일도 있었읍니다. 우리집 근 처에 한 안 마장이가 있는데, 이 친구가 불구자에게 흔히 있는 아주 심한 고집장이였 지요. 남들이 여러 가지로 주의해 주면, 오히려 그 반대를 취해, 눈이 안보 인다고 바보 취급 말아라, 그 만한 것은 나 역시 알고 있어, 이런 식으로 반드시 상대방의 말에 거슬리는 짓을 하는 거에요. 정말 대단한 고집장이지 요. 어느날 내가 행길을 지나가려니 저쪽에서 그 고집장이 안마사가 오더군요. 그는 건방지게도 지팡이를 어깨에 얹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오고 있는 거에 요. 마침 그때 그거리에는 전날부터 하수도 공사가 시작되고 있어, 행길 한 쪽에는 깊은 구덩이가 파혜쳐져 있었는데, 그는 장님이라 길거리의 푯말 같 은 것은 안보이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그 구덩이 곁을 태평스럽게 걷고 있 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 나는 문득 하나의 묘안을 생각해냈읍니다. 그 래서 다정하게 "여보게." 이렇게 안마사를 부르고(흔히 안마를 부탁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지요) "위험해. 왼쪽으로 비키게." 이렇게 외쳤지요. 이 말을 일부러 농담 투로 말한 것입니다. 그럴 것이 이 렇게 하면 그 는 평소의 성질로 보나마나 놀리는 줄 짐작하고는 왼쪽으로 비키지 않고 우정 오른쪽으로 비켜날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 다. 과연 그는 "에헤헤... 농담도 잘하셔." 어쩌고 말대답을 하면서 다짜고자 반대방향인 오른쪽으로 물러섰으니 견딜 재간이 있읍니까. 순식간에 하수도공사 구덩이 속으로 한쪽 발이 빠지면서 족히 2백여미터나 되는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읍니다. 나는 놀란 듯이 구덩이 언저리로 달려가서 뜻대로 되었나 하고 들여다 보았읍니다. 그는 머리라도 얻어맞았는지, 구덩이 속에 늘어져 있고, 구덩이 가상이에 온통 튀어나온 날카로운 돌에라도 찍혔는지 머리에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 읍니다. 그리고 혀라도 깨물었던 모양으로 입이나 코에서도 역시 출혈을 하 고 있더군요. 얼굴빛은 창백하고, 미처 신음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읍니다. 이리하여 이 안마사는 몇 시간은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었지만, 드디어 절 명해 버렸지요. 내 계획은 보기좋게 성공했읍니다. 누가 나를 의심하겠읍니 까? 나는 이 안마사를 평소 단골로 삼고 있었고, 결코 살인의 동기가 될 만 한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게다가 표면상은 오른쪽에 구덩이가 있는 것을 알고 피하라고 일러 준 것이니까 나의 호의를 인정하는 사람은 있어 도, 그 친절한 말에 무서운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고 짐작할 사람이 도시 있 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아아, 그 얼마나 무섭고도 즐거운 장난입니까! 교묘한 트릭을 생각해냈을 때의 필경 예술가의 그것과도 맞먹는 환희, 그 트릭을 실행할 때의 으쓱으 쓱한 긴장, 그리고 목적을 이루었을 때의 말할 수 없는 만족, 게다가 또한 나의 희생이 된 남녀가 살인자가 눈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피 투성이가 되 어 신음하는 단말마(斷末魔)의 광경, 이런 것들이 그 얼마나 나를 미쳐날뛰 게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이런일도 있었읍니다. 그것은 여름철의 몹시 흐린 날의 일이었 는데, 나는 어느 교외의 양옥집이 듬성듬성 서 있는 한적한 동네를 걷고 있 었지요. 그리고 마침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콘크리트 건물 뒤쪽을 지나 갔을 때였읍니다. 문득 묘한 것이 눈에 띄더군요. 그것은 그 때 내 코 끝을 스치고 날쎄게 날아가던 한 마리의 참새가 그 집의 지붕에서 땅으로 쳐져 있는 굵은 철사에 앉기가 무섭게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튕긴 것처럼 밑으 로 굴러 떨어져 그대로 죽어 버린 것입니다. 묘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그 철사는 양옥집 지붕 꼭대기에 있는 피뢰침 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물론 철사에는 껍데기가 덮혀져 있었지만, 방금 참새가 앉았던 부분은 어찌된 셈인지 그것이 벗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전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쩌다가 공중전기 (空中電氣)의 작용인가 무언가로 피뢰침의 철사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어, 그게 바로 이것이었고나 생각했지요. 이런일 을 보기는 처음이라, 나는 어지간히 신기하게 생각하고 잠시 그곳에 서서 철사를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그러자 병정놀이라도 하고 있었던지 아이들의 한 떼가 왁작지껄 골목에서 나왔고, 그 중의 대여섯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다른 아이들은 모두 저쪽으 로 가버렸는데 혼자 남기에 무엇을 하나 보고 있자, 그 피뢰침 철사 앞 둔 덕에 서서 앞단추를 풀자 소변을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본 나는 다 시금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읍니다. 중학시절에 물이 전기의 도체라는 것을 배운 일이 있읍니다. 꼬마가 서있는 둔덕에서 그 철사의 벗겨진 부분 에다 소변을 누는 것은 손쉬운 일입니다. 소변은 물이니까 역시 도체임이 틀림 없읍니다. 그래서 나는 그 꼬마한테 이렇게 말했읍니다. "꼬마야, 그 철사에 오줌을 눠봐. 닿을 수 있니?" 그러자 어린아이는 "그까짓 것 문제없어. 보라구요." 그러더니 자세를 바꾸어 철사가 드러나 있는 부분을 향해 힘차게 오줌줄기 를 뻗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이 철사에 닿기가 무섭게 정말 무섭더 군요. 꼬마는 깡총 춤추듯이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털썩 쓰러져 버리고 말았 읍니다. 나중에 들으니 피뢰침에 이렇게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은 매우 드 문 일이라는 것이었는데, 어쨓든 이렇게 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이 감전되서 죽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 경우는 물론 제삼자인 나는 조금도 의심을 받지 않았읍니다. 다만 소식 을 듣고 달려나와 어린아이의 시체에 매달려 울부짖고 있는 모친에게 정중 한 애도의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읍니다. 나는 희생시키려고 벼르고 있던 어 떤 친구, 그렇다고는 해도 결코 그 사나이한테 손톱만큼도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오랫동안 다시없는 친구로 사귀고 있었던 사나이였읍니다마 는, 내게는 오히려 그런 사이 좋은 친구를 말 한 마디 없이 웃으면서 순식 간에 죽여 버리고 싶다는 이상한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와 같이 보우슈우(房州)의 몹시 두메진 바닷가로 피서를간 일이 있읍니다. 물론 해 수욕장이라고 할 만한 곳은 못되었고, 도시에서 온 손님이라곤 우리 두 사 람 말고는 미술 학도인 듯싶은 사람이 몇 명, 그것도 바다에 들어간다기보 다는 그 근처의 바닷가를 스케치북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였지요. 이름난 해수욕장 처럼 도시 처녀들의 풍만한 알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 고, 여관이라고는 싸구려 여인숙 같은 곳인 데다가 음식도 신통치 않아 몹 시 쓸쓸하고 불편한 곳이었지만 내 친구라는 게 나와는 달리 그런 한적한 장소에서 고독을 즐기는 편이었고,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해서든 이 친구를 처치할 기회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던 판이라, 그런 두메에 며칠씩 묵고 있 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나는 그 친구를 바닷가 부락에서 훨씬 떨어진 곳에 있는 얼핏 보면 단애(斷崖)처럼 되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그리고 다이빙을 하기 에는 안성마춤인 곳이라고 하면서 옷을 훌훌 벗었읍니다. 친구도 얼마간 수 영 기술은 있었던 만큼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십상이라면서 나를 따라 옷을 벗더군요. 그리하여 나는 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두 손을 곧장 머리위로 뻗치고 하나 둘 셋,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고는 기막힌 고선(孤線)을 그으면서 거꾸로 해면으로 뛰어들었읍니다. 텀벙하고 몸에 물이 닿는 순간 가슴과 배의 호흡 으로 재빨리 물을 가르고,두세 척(尺)을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비어(飛魚) 처럼 저쪽 수면에 몸을 나타내는 것이 다이빙의 요령입니다마는, 나는 어렸 을 때부터 수영에 능숙하여 이 다이빙 따위도 식은 죽 먹기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슭에서 얼마만큼 떨어진 수면에 목을 내놓은 나는 입영(立泳)을 하면서 큰소리로 "이봐, 어서 뛰어들어." 이렇게 친구에게 말했지요. 그러자 그는 물론 아무 것도 모르고 좋다면서 힘차게 물속으로 뛰어들었읍니다. 그런데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속으로 들어간 채 그는 다시는 모습을 나 타내지 않았지요... 나는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 바다 밑에는 수면 에서 얼마 안되는 곳에 큰 바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미리 그것을 알아 두었고, 친구의 솜씨로는 다이빙을 하면 반드시 깊숙히 들어갈 것이며, 따 라서 이 바위에 머리를 부딪칠 것이 뻔하다고 짐작하고 한 일 이었던 것입 니다. 잘 아실 테지만 다이빙의 기술은 능숙한 사람일수록 이 물 밑에 가라 앉는 율(率)이 적게 마련이고, 나는 그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바위에 부딪치 기 전에 저쪽으로 떠오를 수 있었지만, 그 친구는 다이빙 솜씨가 아직 서툴 러 영락없이 머리를 바위에 부딪친 것입니다. 과연 잠시 있으려니 그는 다랑어의 시체처럼 해면에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파도에 밀려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기절해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그 를 안고 기슭으로 헤엄쳐 가 그대로 부락으로 달려가서 여관 사람에게 사태 를 알렸읍니다. 그러자 어부들이 달려와서 친구를 간호해 주었지만, 뇌를 심하게 다쳐 소생할 가망은 없었지요. 보니 머리끝이 대여 섯 치나 갈라지 고, 그 머리가 놓여진 땅에는 숱한 피가 엉겨붙어 있더군요. 내가 경찰의 취조를 받은 것은 그 동안 단 두번 뿐이었는데, 그 하나가 이 때였읍니다. 그럴 것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까 일단 취 조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하고 그 친구와는 친한 사이이고, 다 툼질 한 번 없었다는 사실이알려져 있었는데다가 당시의 사정으로는 나 역 시 그 바다 밑에 바위가 있는 것을 몰랐고, 다행히 나는 수영이 능숙하여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는 서투른 나머지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던 만큼 나에 대한 의심은 금새 풀렸고, 나는 되려 경찰관에게 친 구를 잃으셔서 안됐다는 위로의 말조차 들었지요. 아니, 이런 식으로 일일이 예를 들고 있다간 한이 없읍니다. 이쯤 말씀드 리면 여러분은 나의 이른바 절대로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살인법을 대충 이 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이런 식이었지요. 어떤 때는 서커스를 보 는 구경군 틈에 섞여 있다가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부끄러운 야릇한 자세를 보여 높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 있던 처녀애를 추락시켜 보기도 하고, 불이 난곳에서 아이를 찾아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는 아낙네에게 아이는 집안에 누워 있다,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이런 암시를 주어 그 여인을 불 속에 뛰어들게 만들어 태워죽이기도 하고, 또는 난간에 기대어 뛰어 들려는
처녀의 등 뒤에서 느닷없이 "잠깐!" 이런 소리를 질러, 그렇지 않으면 자살 을 단념했
을지도 모르는 그 처녀를 순간적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등, 말하 자면 끝이
없읍니다마는 벌써 밤도 이슥한 데다가 여러분도 이런 참혹한 얘기는 더 듣 고 싶지도 않으실 테니, 끝으로 한 가지 색다른 얘기를 하고 마무리짓기로 하십시다. 이제까지 얘기한 것은 번번히 한 번에 한 사람을 죽인 그런 것이지만 그렇 지 않은 경우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과 3년 남짓한 사이에 99명이나 죽일 수야 있겠읍니까? 그 중 에서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은, 그렇지요, 작년 봄의 일이었읍니다. 여러분도 그 때 신문을 보셨으 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중앙선 열차가 뒤집혀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일 이 있었죠? 바로 그것입니다.
[ 4 ] 뭐 방법이란 누워서 떡먹기였지요. 오직 그것을 실행하는 고장을 찾느라고 시간이 걸렸을 뿐입니다. 다만 처음부터 중앙선 연선(沿線)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럴 것이 이 선은 계획에 가장 편리한 산 속을 지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차가 전복한 경우에도 중앙선에는 평소 사고가 많 으니까, 또 일어났고나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리기 쉽기 때문입 니다. 그렇기는 해도 그런 곳을 찾아내느라 어지간히 힘이 들었지요. 결국 M역 근처의 벼랑을 사용하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일주일 이상은 걸렸지요. M역에 는 온천이 있었고, 나는 그곳 여관에 묵으면서 매일같이 온천 물에 잠기기 도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는 등, 온천객을 가장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열 흘이나 묵고 있어야 했지요. 나는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날 여느때 처럼 그 근처의 산 속을 산책했읍니다. 그리고 여관에서 5리쯤 떨어진 어느 언덕 꼭대기에 올라 어둠이 깃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그 언덕 바로 밑에는 기차의 선로가 커어브를 그리며 달리고 있고, 선로 저쪽에는 이곳과는 반대로 험준한 골짜기가 퍼져 있고, 그 밑에 개울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물아물 보일 만큼 떨어져 있었지요. 잠시 있자 미리 정해 놓은 시간이 되더군요. 나는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 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정 발을 헛딛어 넘어지는 체하며 이 역시 미리 찾 아 놓은 커다란 돌맹이를 발길로 찼읍니다. 그것은 좀 차기만 하면 틀림없 이 언덕에서 마침 선로 위쯤 되는 곳으로 굴러 떨어질 위치에 있었던 것입 니다. 나는 만일 실패하면 몇 번이건 다른 돌을 걷어찰 작정 이었는데, 보 니 그 돌은 안성마춤으로 한 가닥 레일 위에 얹혀 있더군요. 반 시간 뒤에는 하행열차가 그 레일을 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쯤엔 벌써 어두워질 터이고, 그 돌이 있는 곳은 커어브 저쪽이니까 운전사가 깨 달을 까닭이 없지요. 그것을 확인하자 나는 급히 M역으로 달려가서(5리쯤 되는 산길이어서 족히 30분 이상이 걸렸지요) 역장실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외쳤읍니다. "큰 일 났읍니다! 저는 이곳 온천에 와 있는 사람인데, 방금 5리쯤 떨어진 선로 위쪽 언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언덕에서 달려 내려오는 길에 돌을 언 덕 밑 선로 위로 차버렸어요. 만일 그곳을 열차가 지나면 틀림없이 탈선될 거에요. 자칫하면 골짜기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이거 야단났는데요. 그 돌을 주워내려고 길을 찾았지만, 지리도 잘모르는 데다가 그 벼랑을 내려 갈 방도가 없어 하는수 없이 이리 달려왔는데, 어쩌면 좋죠? 속히 그 것 을 주워낼 수 없을까요? 그러자 역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거 큰일 났군. 방금 하행열차가 통과하고 있는 중이에요. 다른 때 같으 면 지금쯤 그 곳을 훨씬 지났을 텐데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바였지요. 그런 당황한 문답을 되풀이 하고 있는 사이에 열차전복, 사상자 불명이라는 보고가 간 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달려온 그 열차의 차장에 의해 들어왔읍니다. 나는 당연히 하룻밤 M경찰서로 끌려가서 취조를 받았는데, 이것은 이미 계 획에 들어있는 일입니다. 실수가 있을 리 없었지요. 물론 나는 매우 꾸지 람은 들었지만, 이렇다할 처벌은 받지 않았읍니다. 나중에 듣자니 그 때의 내 행위는 형법 120조라나요, 그것에조차 해당되지 않았다더군요. 그 120 조라는 것도 벌금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씀입니다. 어쨓든 이렇게 해서 나는 돌맹이 하나로 에에, 그게 아마 열 일곱 명이었지요. 17명의 목숨을 단숨에 빼앗는 일에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이런식으로 99명의 인명을 빼앗은 사나이입니다. 그런데도 뉘우치기 커녕은 이런 피비린내나는 자극에조차 싫증이 나버려, 이번엔 자 신의 목숨을 희생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잔학한 내 소행에, 저것 보세요, 그렇게들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계십니다. 그래요. 이것은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못할 극악무도한 행동이 분명합니다. 그 렇지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가면서까지 이 못견디도록 무료함을 느껴 야 했던 내 심정도 좀 살펴달라는 겝니다. 나라는 인간은 그런 짓이라도 꿈 꾸는 것 외에는 달리 이 인생에 손톱만큼도 보람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부디 판단해 주십시오. 나는 미치광이일까요? 그 살인광 이라는 것일까요?
[ 5 ] 이리하여 오늘밤의 주인공의 기막히도록 야릇한 신상이야기는 끝났다. 그 는 얼마간 핏발이 선, 그리고 미치광이 같은 희멀건 눈으로 우리의 얼굴을 하나 하나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그의 말에 대꾸하여 비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는 다만 무기미하게 춤을 추는 촛불에 비 추어진 6명의 긴장한 얼굴이 꼼짝도 않고 늘어서 있었다. 문득 도어 근처의 비단술께에 번쩍 빛나는 것이 있었다. 보고 있으려니 그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차츰 커졌다. 그것은 은빛의 둥근 물체로서 마치 보 름달이 숱한 구름을 헤치고 나타나는듯이 빨간 비단술 사이에서 서서히 원형을 그리면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웨이트리스의 두 손에 받쳐든 음료를 나르는 커다란 은쟁반 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만상을 몽환화 (夢幻化)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이 <빨간방>의 공기는 그 흔하디 흔한 은쟁반을 마치 사 로메극(劇)의 노예가 내미는 그 예언자의 목이 올려진 은쟁반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입술이 두꺼운 반라(半裸)의 노예 대신에 여느때의 아 름다운 웨이트리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쾌활하게 7명의 사나이들 사 이를 돌아다니며 음료를 나르기 시작하자 그 세상과는 동떨어진 환상의 방 에 세상의 바람이 불어온 것같은 것이 어쩐지 조화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 다. "이봐 쏠 테야." 갑자기 T가 이제까지의 이야기소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차분한 억양으로 이렇게 말하며 포켓에서 하나의 번쩍거리는 물체를 꺼내 웨이트리스쪽으로 불쑥 내밀었다. 깜짝 놀라는 우리의 목소리와 탕!... 하는 권총 소리와 깟하고 까무라치는 여자의 비명, 그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우리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천만뜻밖에도 권총에 맞은 여자는 아무 일도 없고, 다만 무참하게 깨진 그릇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왓하하하." T가 미치광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감이야. 장난감이라구. 핫하하... 하나짱, 보기좋게 넘어갔지? 하하 하하." 그렇다면 아직도 T의 오른손에서 흰 연기를 내뿜고 있는 것은 정말 장난감 권총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나, 깜짝 놀랐어요... 그거 장난감이에요?" T와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짐작되는 웨이트리스는 그러나 아직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거니와, 그렇게 말하면서 T쪽으로 다가갔다. "어디좀 봐요.어머, 영락없이 진짜 같군요." 그녀는 수줍음을 감추듯이 그 장난감이라는 6연발을 손에 들고 한 동안 들 여다 보고 있더니 이윽고 "속상해 죽겠으니 나도 한 방 쏴줄 테야." 그러더니 왼팔을 구부리고, 그 위에 권총 자루를 올려놓고는 건방진 자세 로 장난삼아 T의 가슴을 겨누는 것이었다. "네가 쏠 수 있어? 어디 쏴보라구." T는 싱글거리면서 놀리듯이 말했다. "못쏠 것 같아요?" 탕!... 전보다도 더한층 날카로운 총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으으으...."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기미한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T가 의자에서 불쑥 일 어았다가 털썩하고 마루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수족을 버둥거리면서 고 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농담인가? 농담치고는 너무나도 생생한 신음 아 닌가! 우리는 모두들 그의 곁으로 달려들었다. 이웃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촛대 를 들어 T에게 비추었다. 보니 T는 창백한 얼굴을 간질병자처럼 경련시키며 마치 상처받은 지렁이가 꾸불텅거리듯 온 몸을 뒤틀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 리고 풀어헤쳐진 그 가슴의 검은 상처에서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시뻘건 피 가 흰 피부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난감이라고 말한 6연발 권총의 두 번째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던 것 이다.
[ 6 ] 우리는 오랫동안 멍하니 자리에 선 채 꼼짝도 안했다. 괴이한 이야기 뒤에 일어난 이 사건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심한 쇼크였다. 그것은 시간으로 따 지자면 불과 얼마 안되는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 때의 내 게는 우리가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던 사이가 굉장히 긴 것 처럼 생각되었 다. 그럴 것이 그 순간적인 경우에 고통스러워 하는 부상자를 앞에 두고 내 머리에는 다음 같은 추리가 작용할 만한 여유가 충분히 있었으니까. (뜻밖의 사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처음부터 T의 오늘밤 프로그램에 적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에는 가장 알맞는 이 <빨간방>을 최후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이는 이 사 나이의 괴이한 성질로 미루어 당치않은 짐작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 그 권 총을 장난감이라고 믿게 해놓고 웨이트리스에게 발포케 한 기교 따위는 다 른 살인의 경우와 공통되는 그 독특한 방법이 아닌가? 이렇게 해 놓으면 웨이트리스는 절대로 벌을 받을 염려는 없다. 그곳에는 우리들 여섯명이나 되는 증인이 있는 것이다. 결국 T는 그가 남에게 한 것 과 같은 방법을, 가해자는 조금도 벌을 받지 않는 방법을 그 자신의 경우에 응용한 것이 아닐까?) 나 이외의 사람들도 모두 각기의 감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 마 나와 똑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실상 이 경우 그렇게 밖에는 달리 생 각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무서운 침묵이 방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엎드린 웨이트리스의 슬픈듯이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빨간 방>의 촛불 빛에 비추어진 이 비극의 장면은 이 세상의 사건으로서는 너무나도 몽환적 으로 보였다. "키, 키, 킥, 킥...." 느닷없이 여자의 흐느낌 외에 또하나의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고 그것은 이미 신음을 그치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T의 입에서 새어나 오는 것 같았다. 얼음같은 전률이 등줄기를 달렸다. "킥, 킥, 킥." 그 소리는 더한층 커져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빈사상태의 T의 몸 이 휘청 휘청 일어섰다. 일어서고나서도 여전히 "킥킥킥"하는 묘한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가슴속에서 짜여내지는 고통의 신음소리 같기도 했 다. 하지만...혹시...오오, 역시 그랬었는가? 그는 뜻밖에도 아까부터 견디 기 힘든 웃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 이게 뭔지 아시겠읍니까?" 그러자 아아,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제껏 그렇듯 흐느끼고 있던 웨이트리스가 갑자기 쾌활하게 일어서는가 싶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비비꼬며 이 역시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씀이에요." 이윽고 T는 멍청해진 우리 앞에 하나의 작은 원통형의 것을 손바닥에 얹어 내놓으면서 설명했다. "쇠불알로 만든 탄환이란 말입니다. 안에 빨간 잉크가 잔뜩 들어있어, 명 중하면 그게 터지게 돼 있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이 총알이 가짜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까부터의 내 신상 이야기라는 것도 모조리 엉터리란 말씀이 지요. 그래도 연극이 제법 그럴듯하죠?.... 그래 지루하신 여러분, 이런 것으로는 여러분이 찾고 계시는 그 자극이라는 것이 안될까요?" 그가 이렇게 트릭 풀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이제껏 그의 조수 노릇을 하던 웨이트리스에 의해 스위치가 젖혀진 모양이리라. 갑자기... 대낮 같은 전등 빛이 우리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희고 밝은 광선은 순식간 에 방안에 떠돌고 있던 그 몽환적인 공기를 일소해 버렸다. 그곳에는 폭로된 마술의 트릭이 추한 시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홍빛 비 단 술이건, 빨간 카아펫이건, 같은 테이블 크로우드며, 안락의자, 심지어 는 그 유서 깊어 보이는 은촛대마저 어쩌면 그렇게 빈약해 보였는지. <빨 간 방> 안에는 이제 어느 구석을 뒤져 보아도 꿈도, 환영도 그림자조차 보 이지 않는 것이었다. -THE END-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