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억지로 안잘랍니다..그래서 예전부터 보고싶었던 영화 하나
봤습니다.
피아니스트~~~참 재미있네요~~또 보고싶군요
참고삼아 어디의 글을 퍼왔는데~
여력되시는 분은 아래 긴글을 모두 읽어보심 좋고,,
안되시는분은,,,,뮤비 바로 아래의 짧은글을 읽어보심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햄~~~~그럼 이만 안녕 할랍니다,,
2002년 제5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로만 폴란스키 감독
유대계 폴란드인인 로만 폴란스키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
<피아니스트>를 들고 칸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화제의 초점은 폴란스키가 자신의 경험을 어떤 모양새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영화화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폴란드 크라코우의 유대인 거류지에서 성장한 로만 폴란스키는
나치 캠프의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 제의를 고사했을 때
그는 조국 폴란드를 떠나면서 봉인해놓은 고통스런 유년의 기억을
들춰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살아남은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접하고 나서야,
폴란스키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
폴란드의 비극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렇게 만든 영화가 <피아니스트>다.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
각은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의 자전적인 이야
기로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쓴 회고록의 첫 장을 열자마자 이것이 바
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다. 마침내 그
토록 찾아왔던 이야기를 만난 것이다. 그 회고록은 참혹한 고통에도 불
구하고 낙관적인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 왔다. 절
대 다수가 싸늘한 시체로도 남아나지 못한 그곳에서의 생존은 안도가 아
닌 죄책감으로 나를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조각난 기억들을 다듬고 재창조해 나가면서 나는, 아니 우
리는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완성해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피아
니스트]가 우리가 겪어왔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그 자체로 받
아들여지기를 원한다… 로만 폴란스키
전 세계가 왜 기립박수를 보냈는가?!
2002 칸느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동의 대작 [피아니스트]
칸느 영화제 폐막 이틀 전 5월 24일, [피아니스트]의 첫 공식시사회장
은 격렬한 기립박수로 가득 찼다. 영화 크레딧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틀 뒤, 폐막식에서 [피아니스트]가 다른 후보작
을 물리치고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이
가슴 벅찬 휴먼드라마의 승리에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다룬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
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
들어진 작품이다. 그는 39년부터 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공포와 광기에 맞서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수많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스필만은 가까스로 살아나고 이 극적인 경험은 낙관적인 희
망으로 물든다. [피아니스트]는 죽음의 들판에서 승리한 한 예술가의 삶
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용기있는 자들의 삶이다.
나는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쉰들러 리스트] 연출을 거부했던 로만 폴란스키
그가 20년 동안 기다려왔던 생애최고의 역작을 완성시키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존했던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자전적
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대계 폴란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유년 시절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에 있었다. 어머니를 가스실에서 잃은 폴란스키는 반드시 그 시기
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스필버그가 [쉰
들러 리스트]의 연출을 직접 제안했지만,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 폴란스키는 스필만의 담담한, 그리고 마치 보
고서 같은 회고록을 발견하자 이것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기다렸던 작품
임을 깨닫게 된다.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를 감상주의나 신파로 물들여 관객에게 호소하
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할 정도로 담담한 시선으로 역사와 광기, 예술
과 인간애를 그려내며 이 영화는 어느 순간, 관객들에게 복받쳐 오르는
감동을 선사한다. 폴란스키는 영화를 통해 비극의 아픔이 아닌 승리와
꿈의 희열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공포와 폐허로 얼룩진 폴란드 바르샤바
반 세기 후 독일에서 그 처절한 역사의 현장이 부활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은 폐허 그 자체였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
난 지금 [피아니스트]의 제작진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그 폐허
를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영화배경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수개
월 이상을 사전준비에 힘썼다. 제작진은 베를린에서 90킬로 정도 떨어
진 주터보그와 베를린의 바벨스버그 스튜디오, 크게 이 두 곳에서 촬영
을 진행했다. 영화의 배경이 전시였던 만큼, 수많은 장비와 연기자들은
필수 조건이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거머쥔 미술감독 앨런 스타스키와 그의 미
술팀은 바르샤바 현지를 돌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당시의 물건들을 하나
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완벽한 바르샤바를 재현해내
었다. 그곳에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에서 미국까지 이어진 주연캐스팅
마침내 모두를 사로잡은 피아니스트를 발견하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폴란스키 감독은 주연 배우를 찾기 위해 유럽에서
미국까지 샅샅이 찾아 다녔다. 그는 스필만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
을 찾는 대신, 피아니스트 이미지의 일체를 가져다 주는 배우를 원했
다. 영국에서의 대규모 오디션도 폴란스키에게 만족스런 배우를 가져다
주지 못했으나 미국까지 배우영역을 확장시킨 폴란스키는 마침내 애드
리안 브로디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빵과 장미]에서 연기력
을 펼쳤던 브로디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공포에서 살아남는
폴란드 예술가 스필만의 감정을 세심하게 연기해내었다.
한편, 폴란스키는 주연뿐만 아니라 잠깐 스치는 조연들에도 완벽을 기했
다. 그는 수 천명의 인터뷰와 사진촬영 등을 통해 세기 전 폴란드, 유대
인, 독일인들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보조연기자들을 캐스팅하
였다. 특히 독일 나치군을 연기한 배우들은 감독조차 다시 한번 유년시
절의 공포를 경험하게 할 만큼 섬뜩한 분위기를 던졌다.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소리
천재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감동적인 선율을 만나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 바로 스필만이 독일장교 앞에서 피아노
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유대인이 생존을 위해 피아
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제작진들은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
었다.
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사람은 바로 야누스 올레니작이다. 그는 스
필만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폴란드 피아니스트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
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선율에 혼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었다. 전쟁
과 평화, 아군과 적군. 이 모든걸 떠나 인간의 위대한 영혼과 승리를 연
주한 올레니작은 결국 위대한 승리의 찬가를 전 인류에게 헌사한 셈이
다.
그는 위의 장면 이외에도 영화의 첫 부분과 라스트를 이루는 쇼팽의 녹
턴을 연주하였다.
총 제작비 $35,000,000 제작진 1300명, 거대한 군사장비
전 유럽대륙의 최고 스텝과 노련한 기술이 완성시킨 대서사시
[피아니스트]는 거대한 스케일과 완벽한 역사현장을 복원한, 근래 보기
드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배경으
로 한 이 작품은 독일, 폴란드, 영국 등 전 유럽대륙에서 선발한 노련
한 스텝들의 노하우와 장인정신이 완성시킨 대서사시이다. 총 제작비 3
천5백만 달러, 1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촬영
세트가 이 영화를 위해 준비되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수상
한 미술감독 앨란 스타스키는 수개월의 사전조사와 준비를 통해 1930~40
년대의 유럽을 재현해냈다.
만약 [피아니스트]가 단지 대작 영화의 스케일만 강조했다면 유사한 다
른 영화가 주는 오락적 재미만을 선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CG
나 얄팍한 영상스타일을 배제하였고, 거짓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영화가
아닌, 제작부터 진솔한 인간의 땀을 사용함으로써 강요된 감동이 아
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격정적인 눈물을 이끌어내고자 했고 그것은 성
공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인류역사에 남겨진 상흔 홀로코스트,
영원한 아픔이 승리의 희망으로 극복되다!
인류사 최대의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지휘하는 독일군이 폴란드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
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6년 동안 지속된다. 유대
인 대학살 역시 이 시기에 일어났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2
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까지 유대인들은 잔인함과 폭력 앞에서 사
라져갔다.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 80%인 575만 명이 사망한 이 사건
은 인류의 사회 문화에 걸쳐 깊은 영향과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
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이지만, 그 대부분이
한 개인의 영웅적 승리가 주는 휴먼드라마로 치중되어 왔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명한 예술가에서 간신히 하
루하루의 삶을 연명하는 처절한 한 인간으로,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아
다시 피아노 앞에 선 이 남자의 삶은 인간의 가장 진솔한 드라마이자
가장 극적인 특별한 영웅담이다.
바르샤바 유대인거주지역(The Warsaw Ghetto)
전운의 기온이 전 세계를 강타할 무렵의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 군대
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침공하면서 영국, 프랑스가 전면전을 선포
한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독일 나치가 바르샤바를 공
격한 이유는 자명했다. 독일의 민족적, 경제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되어 시작한 전쟁에 있어 바르샤바는 중요한 요지 중 하나였기 때
문이다. 독일은 바르샤바에 집중적인 공중폭격을 가한 뒤 1939년 9월 16
일, 전면적으로 이 도시를 침공했다. 스테판 스타진스키 시장과 줄리앙
롬멜과 같은 인사들을 필두로 시민들의 용감한 저항이 시도되었지만, 독
일은 그들의 전력과 수력 공급로를 차단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에 필요
한 것들을 제공 받는 대가로 저항을 포기해야만 했다.
독일군은 10월 1일 도시를 완전 점령했다. 12일에 히틀러 정권은 철조망
으로 둘러싸인 403 헥타르에 이르는 게토지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16
일, 독일군은 도시 인구의 30%가까이 되는 36만명의 유대인들을 이 지역
에 강제 거주시키고 마침내 도시의 모든 유대인은 이 강제거주지로 몰린
다. 그들은 파란 별이 그려진 흰색완장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또한
노역을 당해야 했고 식량은 아주 조금씩 배급되었다. 나치군은 자기 기
분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환경 속
에서도 강제거주지역, 즉 게토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끝까지 버리
지 않았다. 게토 내에서 그들은 학교를 다녔고 정치적 활동도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1942년 7월, 8월에 거대한 이송이 시작되었
다. 31만 명에 가까운 게토의 유대인들은 트럭 혹은 배로 이동, 대부분
이 트레블링카 실험 캠프로 옮겨졌다.
1943년 3월, 히틀러는 남아있는 유대인 처형을 위해 나치군을 보냈다.
같은해 4월, 나치의 학살계획이 확실해지면서 처형이 급속도로 증가했
다. 게토지역은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사회주의자이자 시오니스트 운
동의 지도자 모데하이 아닐레빅이 이끈 폭동에 4만 명의 유대인이 참가
했다. 그들 중 무장된 이들은 단지 200명뿐이었다. 이 처참한 전투는 계
속되었다. 5월 16일까지 거의 한달 동안 주민들은 탱크와 화력을 앞세
운 독일군에 강력하게 대항하였다. 이 싸움은 폴란드 저항군이나 근처
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의 도움없이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7천명
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3만 명의 생존자는 강제 이송되었다. 독일
이 바르샤바를 포기한 1945년 1월, 이 도시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불
과 20여명 뿐이었다.
첫댓글 전부터 저두 보고 싶었던 건데...피아니스트란 제목의 영화가 한두개가 아니라서...^^; 언제 한번 날 잡아서 피아니스트제목 들어간 영화를 다 빌려볼 생각입니다....ㅋ
예~~정말 재미있습니다~~~꼭 보세요~~주인공 배우의 연기가 정말 일품이더군요~,,,장면중에 인간이기 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버린 스필만은 오래된 통조림을 힘겹게 열려고 하다가 독일군에게 발각이 되는데~독일군의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라는 질문에,,,"피아니스트인데요?"라고 두려움에 떨며 말하던 그 장면
그리고,,,독일군앞에서,,,전쟁으로 인해 모든것이 무너져버린 상황속에서 조차,,있는 그대로~아무일 없었던것 처럼 흘러나오던 스필만의 연주..그렇게,,살기위한 연주를 하고 나서,,혼자 다락방에 쭈그리고 앉아,,서럽게 울던 장면~,,,참 좋은 영화 같습니다.^^
너무잼있게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