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간월암과 옥녀봉- 부춘산-봉화산
2016년 3월 6일
향순, 정영 나
서산에서 간월암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서산시을 벗어나 부석면을 지나 토비산이 보이는 도로를 따라 남으로 달렸다. 가는
내내 처음 가 보는 이곳의 풍경 시골길에는 옛날 그대로일 것 같은 다방, 교회, 작은 풍낙와 마룡저수지가 보이는 포장 도로를 따라
갔다.
간척방조제를 지날 때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지고 마음이 확 트일 것 같은 천수만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저 보이는 간월도가 여유
로움과 힐링을 가져다준다. 이름도 없을 것 같이 작은 섬이 바다에 떠 있고 바다건너 안면도게 크게 바다를 차지하였다.
간월도의 입구에서 내렸다. 버스는 삼각형모양의 간월도를 한바퀴 돌아 서산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가게 된다. 보이는 건 바다의
방조제가 제일 크게 보이는 듯 길게 바다를 가로 막았다. 은빛 반짝이는 푸른 바다에 파도는 하얀 꽃이라도 된듯 그 꽃이 움직인
다. 갈매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작년 금북정맥을 하면서 서산을 몇 번 와서야 간월암에 가고픈 마음을 몇 번 접고야 했던 이 곳!!
허름한 공터에 공사중인지 사람들이 몇 서성이고 있는 뒷산으로 올라야 했다. 칡넝쿨이 엉켜 있는 길따라 올랐다. 삼각점봄
45.6봉에 도착하게 된다.
삼각점의 번호는 신온 23의, 해발 46m의 삼각점의 주소다. 아무리 보아도 우습다. 이 낮은 산에 귀하신 2등급였음에 2007년에
복구된 삼각점이었다.
억새가 삼각점을 둘러싸고 봉우리는 너른 평지에 양지바른 언덕에 앉아 있으려니 따뜻했다. 너른 바다의 바람은 어데로 가고 있
을까. 가져온 간식을 펼쳐놓고 맥주 한 잔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랫만의 여행같았다.
삼각점봉에서 교회가 보이고 간월암이 있는 간월도의 능선을 따라 가게 된다. 빈밭에 봄맞이꽃이 모여 피었다. 그 꽃 보기에도
작은 꽃송이의 안스러움이 묻어난다. 간월도의 산줄기를 사진에 담아 보았다. 밭과 빈 터와 묘로 채워져 있고 나무가 있는 산
은 거의 없는 섬과 작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은 큰말과 새말이 있으며 부석초등학교 간월분교는 폐교되었다고 한다.
간월달발길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니 아주머니들이 모여앉아 있다. 어리굴젖 가공공장을 지나
관광지인 바다로 내려선다. 간월암이 저 끝에 조망되는 도로를 걸으며 상점에 펼쳐놓은 바다의 생선을 구경하며 걷는다.
[간월도 어리굴젖 기념탑]는 해녀들의 모습을 담고 빛이 더 해지는 듯 했고 그 앞을 지나 바다로 내려갔다. 넓은 바다의 천수만은
저넓은 바다의 삶처럼 수많은 생명 품에 안고 있는 것 같다. 끝과 끝을 연결하듯 한쪽은 간월암이, 한쪽은 홍성이, 안면도가 바다
에 채워져 있었다.
좋아?
좋지!!
이곳에서 담아내는 간월암이 제일 멋진 사진되 되는 것 같다. 물이 가득 채워지게 되면 저 곳도 건너지 못하는 곳, 간월암 물 때
에 따라 섬이 되었다가 육지도 되었다가 하는 암자로 유명하다. 오늘은 물때를 잘만나 간조이기에 다행이다.
[간월암]
돌탑과 부처님을 새겨 놓은듯 한 통나무가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유래를 보면
과거 피안도 피안사로 불리며 밀물 시 물위에 떠 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 또는 낙가산 원통대라 부르기도 했단
다.
전언에 의하면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고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을 간월도(看月
島)라 하였다고 한다
.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보낸 간월도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
려온다.
[염궁문 念弓門]으로
염궁문은 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이신 경허대선사의 횡액을 영인한 현판이란다.
영궁문에는
화살은 처음 시위를 떠나면
과녁을 맞힐 때까지
쉼없이 날아가듯이
망상과 잡념이 없이
수행에 정진하라는 경계의 글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염궁문에 들어서면 동자승들이 맞는다.
먼저
[관음전]에 들어
2007년 9월 20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된 서산 간월암 목조보살좌상앞에 큰 절 올리며 나무와 종이로 틀을 제작한 뒤
금칠을 입힌 불상에 참배올린다.
자료를 살펴보면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높이 솟은 보계, 부드러운 옷 주름 등에서 형식화하기 시작하는 임진왜란 이후의 보살상과차별성이 있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관음전에는 용이 되어 의상대사와 부석사를 지켰다는 선묘와 흡사한 형태의 불화가 모셔져 있는데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무
사귀환의 염원이 담겨진 그림이다.
간월암에는 관음전에 삼신각과 요사체가 있는 조그마한 암자다.
수령 300년 되었다는 팽나무앞에는 연잎차가 감로수 되어 여유로운 차 한잔 마시며 저 넓은 바다를 바라다 본다.
약 250년 되었다는 사철나무가 관음전 앞에 자리하고 굿굿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바다건너 안면도가 수평선을 긋고 있다.
간월암의 일몰이 보고싶은 마음접고
삼각점봉이 보이는 어느 식당에서
어리굴젓과 영양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TY에서 본 장면이 스쳐갔다. 간월암의 어리굴젓은 죽기 전 한 번 먹어 볼 음식으로
100가지 중 한 가지였기에 그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보낸 간월도 어리굴젓이
궁증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는 어리굴젓, 그런데 맛은 어리굴젓보다 영양밥이 더 맛나다.
내가 가자고 했는데 향순이가 계산하여 미안~~
부남호너머 팔봉산이 아주 작게 얼굴내밀어 반갑고, 서산으로 버스를 타고 오다 택시를 타고 옥녀봉으로 올랐다.
옥천사까지 택시로 이동 ~~
서산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 옥녀봉가는 길이다.
옥천사 옆 나무테크를 따라 옥녀봉으로 오른다. 나무들이 아직은 이른 듯 잎하나 달지 않은 겨울나무이다. 가끔 생강나무가
이제 움을 트고 있다.
옥녀봉에 오르면 넓은 운동기구가 있고 잘 조성되어 있어 공원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중 하얀기둥의 전망대가
서산 시내가
북주산성의 흔적과 북주산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 있다.
부춘산 옥녀봉 산신당이 옥녀봉인가 보다.
산신당은 산신님께 올리는 기도처로 소원을 빌으시면 성취하는 곳이란다. 옳치!
현재위치가 있는 부춘산을 지나
서산 아라메길 중 5구간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서산의 산, 부춘산이다. 운동하기 좋고 산책로이다.
걷는 중 오른쪽으로 금북정맥의 산줄기가 지난 시간의 추억을 묻고 있었다. 여기가 어데쯤일까 가늠해 보니 성왕산지나 성황당
고개를 지나는 무명봉의 산길로 이어지는 곳이다.
이정목은 봉화산으로 적힌 방향따라 걷게 되며 이름표가 달린 자귀나무가 잡목속에 우뚝 서 있다.
[부춘산]
가끔씩 보게 되는 어느 선답자의 부춘산을 알리는 이름표가 소나무에 부착되어 있다. 부춘산의 높이는 186m이다.
서광사 가는 갈림 길을 지나
[봉화대]에 선다.
봉화대에는 돌로 쌓아올린 성이 대변하고 있었다. 봉화대란 어느 봉우리나 같이 햇불을 밝혀 알려주던 곳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곳은 해미로 햇불을 밝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 보게 된다.
옥녀봉에서 부춘산에서 봉화산으로 서산을 감싸는 3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화산의 정상일 것 같은 곳인데 소나무가 그 정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흔적을 남겨 보게 된다. 해발 3산중 제일 높은 197미터의 정
상도 너른 분지였다.
서산의 풍전저수지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봉화산이다.
옥녀봉에서 만난 어떤 중년부부를 만났다. 옥녀봉에서 산책하는 늘 일상생활이 된 이 부부는 이곳이 있기에 서산으로 살게 되는 이
유가 첫번째라고 했다. 이 옥녀봉과 부춘산과 봉화산은 서산의 윌빙코스로 누군가에게 으뜸으로 꼽는다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엄지척!
교육청으로 봉화산을 내려왔다.
부춘중학교 담장너머 상감마마의 모자같다고 하는 중년부부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옥녀봉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며 서산시외버스
터미널로 걸었다.
가는 길에 동부시장에 들러 생선구경을 하고 인천행 버스에 올랐다. 벌써 하루밤을 맞으며 시간이 가고 있었다. 저녁을 버스터미
널 백화점 음식코너에서 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 정영이가 계산~~나는 꽁이가 되었다. 여행삼아 산이 아닌 조그마한 서산의 암자
를 찾아 보았던 하루가 가고 있다.
다음에 또 어데론가 가자는 희망으로 전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