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연합군 포로 대우는 개전 초기부터 매우 잔인했고 대다수의 포로들이 교량 건설, 기지 건설 등의 노동에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단순한 재미로 포로들을 처형하기도 했다. 유명한 짤방으로 나온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에 대한 참수 장면은 빙산의 일각.
이 때문에 일본군에게 사로잡힌 포로들의 생존 확률은 서유럽에서의 포로 생존률과 비교해서 너무나 낮은 수치를 보였다.
또한 버마 철도에서 전쟁포로들이 받은 대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여기서 포로생활을 했던 군인들이 아우슈비츠와 비교 했을 정도다. 굴라그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이다. 다만 생산력을 최대로 착취하는 굴라그는 그 자체가 인종말살을 목표로한 나치의 수용소보다는 상대적으로 좋다는 것이 역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중립국이나 적십자를 통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서구 연합국 포로들에 비해서 중국이나 만주에서 잡힌 항일 게릴라나 중국군은 거의 대부분 극심한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되는 것이 운명이었고 그것은 한동안 서구에서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반대로 중국군에게 붙잡힌 일본군 포로들은 국민당, 공산당 막론하고 대체로 포로 대우를 잘 받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