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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들지 못하는 제주도(濟州道)의 푸른시간들
지난 10월/24(월)-26(수) 대한불교조계종포교원(大韓佛敎曹溪宗布敎院)의 후원(後援)과 경주장애인종합복지관(慶州障碍人綜合福持館)의 따뜻한 추천(推薦)으로 종단(宗團)의 크나큰 후원(後援)으로 10/24(月)-26水)까지 2박3일간의 일정(日程)으로 우리 부부(夫婦)는 제주 약천사(藥泉寺:제주 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1165[(전화) 064-738-5000)]로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25년전에 몸이 장애가 오기전에 D대학의 직장(職場)에 在職(재직)시에 부부동반(夫婦同伴)하여 제주도를 갔다 왔스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雰圍氣)였스며 당시에는 職員(직원) 同僚(동료)와 부인(婦人)들 20여명 모두가 건강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여행비(旅行費)는 급여(給與)를 받아서 알뜰하게 모아서 갔기 때문에 한림원(翰林園)과 만장굴 성읍민속(城邑民俗)마을 그리고 성산(聖山) 일출봉(日出峰)과 천지연(天池燕)폭포(瀑布) 그리고 주상절리(柱狀節理) 해안(海岸)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은 유람선(遊覽船)을 타고 관람(觀覽)했스며 관광안내원의 해학(諧謔)적인 설명과 육지와 다른 생활풍습(生活風習)등에 매료(魅了)되어 한동안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삶의 활력소(活力素)가 되었스며 육지와 다른 풍습(風習) 언어(言語)와 사투리등을 재미있게 배워 직장에서 한동안 재미있게 사용을 하며 사투리에 빠져서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제주의 다른 생활 모습등을 찾아보고 책도 사서 보곤하였다
아침 경주를 출발하여 부산(釜山)의 김해공항에 도착하여 제주행 항공기 티켓을 동행(同行)한 보살님이 발급(發給)받아 13:00시발 제주행 대한항공기에 탑승(搭乘)하였다 좌석에 앉아서 이륙(離陸)전에 안내원(案內員)의 비상시(非常時)에 대한 응급조치 기타 주의사항을 간단하게 교육과 운항 시간등을 교육받고 항공기는 굉음(轟音)을 울리며 활주로(滑走路)를 이륙(離陸)하였다 40여분간 푸른 바다위를 힘차게 비상(飛上)하여 하늘을 날아 구름속을 헤치고 13시경에 제주공항(空港)에 착륙(着陸)하니 제주도에는 비가 가볍게 내리고 있었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템플스테이를 환영한다는 안내판을 들고 서있는 제주도의 불자(佛者)님들을 보니 같은나라 같은땅이면서도 왜그리 반갑고 정겨운지 지금도 생각해보면 눈물이 피이잉 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장애우님들의 김포,대구.부산 지역별로 인원을 확인후 차량에 승차후 일정(日程)에 따라서 에코랜드로 이동(移動)했다 15:00-17:00까지 에코랜드를 관람(觀覽)후밖에 나오니 아직도 가는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17시경에 약천사에 도착하였다 탬플스태이를 하는 안내를 나오신분 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70대의 처사(處士)님이 계셨는데 오대숙(吳大淑)불자(佛者)님과 인사를 나누며 받은 명함(名銜)을 보니 감귤농장을 경작(耕作)하시면서 제주도에서 대내외적(對內外的)으로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15:00시에 오선생의 안내와 일정에 따라 에코랜드로 이동(移動)하여 에코랜드는 환상적인 영상(映像)과 그림을 통하여 관람객과 각종영상과 조합(調合)하여 환상적(幻想的)으로 가상(假想)의 世界(세계)에 와있는 각종모습으로 나티나도록 표현(表現)하는곳이다 17:00까지 관람(觀覽)을 하고 나오니 밖에는 아직도 비가 촉촉하게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17시경에 템플스테이가 개최(開催)되는 장애인(障碍人) 전법도량(傳法道場)인 서귀포(西歸浦)시 중문단지(仲門團地단지)에 소재(所在)한 약천사(藥泉寺)에 도착했다
약천사는 작은 제주도에 소재(所在)하지만 도량(道場)과 가람(伽藍)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다 아마도 주불(主佛)로 모셔놓은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願力)이 한라산 아니 지구의 주봉(主峰)인 히말라야 산맥(山脈)의 에베르트산보다 높고 크셔서 그러신가 보다
광명진언(光名眞言) 불공관정광진언이라고도 한다.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진언(眞言). 또, 일체제불보살(一切諸佛菩薩)의 총주(冢主)라고도 한다. 불공견삭비차나불대관정광진언경(佛供羂朔秘遮羅不大觀頂光泌遮羅言輕)>에 따르면, "옴 아모가 미로차나 마하모날라 마니 발납마 입박라 발라말다야 음"이 전문이다.... 사회,문화 >종교 >불교 | 답변 2 | 조회 654 | 추천 2 {출처:다음사이트}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훔 26자(字)의 진언(眞言)을 신라때 원효대사(元曉大師)께서 민간신앙(民間信仰)의 일환(一環)으로 펄치셨다고 전(傳)한다
첫째날 (10뭘24일(月(월) : 약천사(藥泉寺)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신 스님을 비롯하여 보호자(保護者) 장애우(障碍友)와 [진행(進行)도우미 취재기자(取材記者)]등의 숙소(宿所)를 배정(排定)받고 짐을 풀어놓고 공양간(供養簡)에서 18:00-19:00시에 저녁공양(供養)후 잠시 휴식(休息)을 한후
19:00-20:00에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셔놓은 3층 큰법당에 모여
100여명의 장애우 스님 도우미 보호자 기타 참가자 모두 모여서 입제식(立制式)을 하였다
입제식이 끝난후 큰법당 맨 아래에 있는 建物(건물)인 1층 달마실(達磨室)에 모여 집단활동(集團活動)의 일환(一環)으로 흰색의 8각 무명등(無明燈)에 붓과 물감으로 그림과 바라고자 하는 자신(自身)의 소원(所願)을 그리고 쓴후 촛불을 점등(點燈)후 큰법당 건물을 돌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호(連呼)하며 턉돌이를 하였다
둘째날 10월 25일(화)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스나 05:00에 예불에 참석하려고 일어났스나 보살님만 먼저 보내고 게으른 나는 세면장에 가서 눈꼽을 떼고서 이마와 볼에 물만 바르고 고양이 얼굴 세면(洗面)하듯 흉내만 하고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도량(道場)을 산책(散策)하였다 비는 그쳤지만 흐릿한 구름낀 하늘이지만 도량의 아침 공기(空氣)는 상쾌(爽快)했다 도량을 산책후 공양간에 가니 일찍오셔서 아침공양을 위해 수고하시는 약천사 보살과 스님 그리고 법우(法友)님들과 가볍게 아침인사를 목례(目禮)로 나누며 오랜만에 사찰(寺刹)에 와서 공양을 하니 너무도 좋았고 맛이 있었다
템플스테이는 D대학에 재직(在職)시에 30대 때부터 경주 부처님마을에서 여름마당 행사때 종광(宗光)스님이 촌장(村長)님을 하실때부터 속리산(俗理山) 법주사(法住寺)에서부터 시작했스나 당시에는 놀이삼아 가족들과 참석(參席)하다가 D대학에서 의료원이 개설되어 소속을 초기(初忌)의 의료원으로 옮겨서 일이 너무많아 시간을 만들지 못해 한동안 참석을 못하다가 병원 산악회(山岳會)에서 산행(山行)후 귀가(歸嫁)중에 차내(車內)에서 심장마비(心臟痲痺)로 쓰러졌스나 동행(同行)했던 간호사(看護師)의 헌신적(獻身的)인 응급구호(應急救護)로 기적(奇籍)같이 살아나 계속 근무를 하였스나 의료원 인사과(人事課)계장(係長)으로 복무(服務)시 의료원의 GSC상사(上士)와의 이유없는 트러블로 업무(業務)를 받지 못하고 바닷가 하계(夏季) 휴양소(休養所)에 파견(派遣) 근무(勤務)를 하며 보냈는데 당시에 대학에서 같이 근무하셨던 AJO상사가 국장(局長)님으로 오셔서 국장님께 의뢰(依賴)하여 병원의 모(募)부서(附書)의 계장(係長)으로 자리를 옮겼스나 같이 근무했던 A국장이 퇴직(退職)하자 GSC상사(上士)가 의료원 인사과장에서 병뭔 사무국장(局長)으로 부임(赴任)하자 심장병(心臟病) 환자(患者)라 보직(補職)을 줄 수 없다하며 행정직(行政職) 계장보직(係長補職)을 박탈(剝脫) 시키고 기능(技能)직 근무(勤務)지인 전기(電氣)실로 보복인사(報復人事)를 단행(斷行)하였다
노조(勞組)의 반발도 있었스나 노조에도 가입(加入)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싸울 수 없고 직장의 인사(人事)인지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는 심장병 환자라 쉬라고 전기실로 밑에 직원을 관리 하면서 몸을 회복하라고 옮겨 놓은거라고 하면서 좋게 얘기하였지만 하기싫으면 그만 두라는 식이었다 어떻게 하지 못하고 계속 근무를 하는데 대학에서 의료원장으로 파견나오신 아껴주시고 도와주시던 J JH 의료원장님이 정년이 임박(臨迫)하여 본교로 복교로 해야하는데 ONY 이사장님의 후원으로 미국 LA D대학의 분교를 개설하여 분교(分校)의 초대 총장(總長)님으로 부임(赴任) 하시게 되어 그간의 고마움에 인사를 하는데 의료원장이 따듯하게 ㅓ계장 그간 마음 고생이 많았지 내가 J계장이 미워 그런게 아니야 모두 J계장을 위해서 그런거라네 하시면서 당시의 기획실장이신 B S H 실장을 부르며 J계장을 편한 자리로 복원시켜주라고 해서 나도 기분이 좋아 J원장님께 고맙다고 은혜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일이 잘못 되려고 해서인지 GSC 국장이 계속 보직(補職)을 주지않고 전기실(電氣室)기능직(技能職)자리에 묶어 두어서 그리고 기능직원들에게 일을 않는다고 하여 싸우기 싫어서 참으며 기능직원과 같이 업무를 하는데 년초(年初)에 인사고과(人事孤寡)를 하는 것을 ISG계장이 해야 하는 것을 ISG 계장은 그래도 내가 조금 업무 선배고 인사과에서 인사계장 업무를 했다고 그리고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하기에 내가 더 잘 알꺼라고 하며 나더라 인사 고과표(考課表)를 작성(作成) 해달라고 하여서 할수없이 C S Y 3인의 기능직원의 고과표를 내가 작성을 해주어서 CS가 탈락되고 Y가 승급(昇級)을 하였다 그리고 고과가 제일 안좋은 S는 그 여파(餘波)로 P시에 있는 D대학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C가 끊임없이 진급누락(進級漏落)의 불만을 갖고서 내 일거일동(逸居逸居)을 CYJ 상사에게 보고하여 나를 스트레스에 빠지게 하고 일을 하지 않고 곤경(困境)에 빠지게 하고 게으르고 무능력한 CHY를 P시로 보내려는 것을 당시(當時)에 대학에서 인사부장으로 파견나온 GSY 부장(部長)을 찾아가서 CHY를 절대로 보내면 않된다고 항의(抗議)하여 CHY를 P시의 병원으로 보내면 않된다고 항의(抗議)하여 그 자리에 계속근무를 하게했는데 나는 그문제의 CHY직원의 인사문제에 개입 하였다는 이유로 훗날 GSC 국장(局長)의 미움을 받아서 나의 보직(補職)을 박탈(剝脫)되고 게으른 CHY가 일을 하지 얂아서 퇴근후 그가 못한 업무를 같이 하다가 나는 좌반신(左半身)이 마비(痲痺)되어 정든 직장을 퇴직(退職)하고 말았다 그리고 업무(業務) 중 마비된 몸을 보상(報償)을 받으려고 송사(訟事)를 하였스나 CHY가 진급탈락(進級脫落)의 보복(報復)으로 P시에의 지법(地法)에서 거짓증언(證言)을 하여 패소(敗訴)하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났스면 덜 억울한데 그 당시 나와같이 몸이 마비되어 한방병원에 같은 병실 옆 침대에 같은 뇌경색(腦哽塞)으로 입원했던 삼성 SDY에 근무한 이상윤 환우(患友)가 당뇨(糖尿)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순시(巡視)중에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직장에서 업무중에 장애(障碍)가 와서 산재(産災)로 인정(認定)받게 되어서 보상(報償)을 연금으로 월 150만원씩 일찍 포항지법(地法)에서 송사(訟事)에 승소(勝訴)하여 보상(報償)을 150만원씩 연금으로 받게 되어서 나도 승소(勝訴)할 가능(可能)이 있스리라 하여 포기를 않고 병원에 選任(선임)된 고문(考問) 변호사(辯護士)인 포항에 초보(初步) OYH 변호사(辯護士)를 고문변호사로 선정하여 지법(地法)에서 증인으로 세운 동료(同僚) 전기실(電氣室)의 하급(下級) 기능(技能)직원(職員)에게 업무를 지시하였스나 게으른 CHY는 진료시간(診療時間)이라 일처리가 불가(不可)하다고 하여서 2층신관(新館)쪽의 진료가 끝난 17:00시 이후로 작업(作業) 시간을 잡아서 전기실 주야간(晝夜間) 근무자(勤務者) 모두 올라가 진료가 끝난 시간에 진료실이 확장(擴張)된곳의 바닥과 벽면에 어지럽게 노출(露出)된 전선정리(電線整理)[電氣(전기)電話(전화)인터넷 선로(線路) 작업을 끝내고 일어났는데 좌반신이 마비(痲痺)되어 있어서 두어 발자욱 걷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CHY가 곧바로 환자(患者) 이동(移動)용 베드(BED)에 싣고서 응급실(應急室)로 갔스나 좌반신(左半身)의 몸은 이미 마비(痲痺)되어 장애인(障碍人)이 되어 회복(回復)이 되지를 않아서 장애보상(障碍報償)이라도 받으려고 하였스나 업무(業務)를 같이했던 CHY가 포항지법 1심에서 일을하지 않았다고 僞證(위증)을 하여 패소(敗訴)하여 3심까지 갔스나 계속 위증으로 패소(敗訴)하였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憤痛)이 터져서 경주의 정치(政治) 변호사(辯護士)인 J J B으로 바꿔 고법(高法) 대법(大法)까지 抗訴(항소)를 하였으나 정치욕(政治慾)에만 눈이 벌개저서 4~5배의 비싼 수임료(受任料)만 챙기고 송사(訟事)는 패소(敗訴)하여 빚더미만 안고 말았다 그는 변호사(辯護士)도 아니고 서민(庶民)들의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거머리같은 존재(存在)였다
아내는 그의 선거운동(選擧運動)원으로 등록(登錄)하여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뛰어 다니고 하였스나 그는 정치(政治)야욕(野慾)과 돈에만 눈이 멀어 변호사란 본분(本分)을 망각(忘却)한채
셋째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서 세면장(洗面場)에 가서 큰것을 본후 고양이 세수(洗手)하듯 눈에 눈꼽만 떼고 얼굴에 물만 바르고 새벽 안개에 덮혀있는 사찰(寺刹) 경내(境內)를 산책(散策)하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스나 도량(道場)의 규모(規模)는 경주(慶州) 불국사(佛國寺)보다 못하지 않은 것 같다
아침공양을 하고 관광버스에 乘車(승차) 하려니 주차장에 수학여행온 관광버스에서 학생들이 올라 오길래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충남 천안의 북일고(北日高)에서 왔다고 하여 무척 반가웠다 辭職)을 하고 경북 경주의 코오롱호텔에서 다니고 우리 보살(菩薩)의 고향(故鄕)도 천안시 성거읍 송남리 인 마라도너인 이봉주와 같고 一家(일가)이기에 더욱 반가웠다...고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