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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주수양회 후기(5)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나온 우리는 명승 제78호로 지정된 <쇠소깍>으로 향했다. 위에서도 몇 번 언급한 것처럼 제주도 방언은 우리가 쓰는 말과는 영판 달라 낯설기까지 하다. <쇠소깍>의 ‘쇠’는 소(牛), ‘소’는 연못, ‘깍’은 제주방언으로 ‘끝자락’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인데 그 모양이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정말 소가 누워있는 형태인지 아닌지는 내 눈으로 확인해 볼 길이 없었다. 옛날부터 그렇다고 하니까 믿을 수밖에... 쇠소깍을 구경한 우리는 두 조로 갈라졌다. 신선놀음조는 천지연 폭포로, 극기훈련조는 올레길 6코스로 향했다. 나는 극기훈련조였기 때문에 신선놀음조가 어떤 길을 거쳐 천지연 폭포로 갔는지,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볼거리들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본 게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쓸 내용도 없다. 따라서 내가 함께한 극기훈련조에 관해서만 쓰는 것에 여러분의 깊은 이해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하고 덥다. 더위를 그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내가 굳이 땀을 흘려야 하는 극기훈련조에 자원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살과의 전쟁’ 때문이다. 수양회 기간 동안 몸 생각 안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갑자기 불은 살을 빼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제주도에서 찐 살은 빠지지도 않는다는... 하여간, 살을 빼겠다고 했으니 살이 빠지든 안 빠지는 빼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올레길을 걸을 때, 처음부터 무리를 하면 나중에 민폐를 끼칠 수 있어서 다른 대원들, 특히 여 대원들과 속도를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왼쪽에 바다를 두고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걷는데 한 대여섯 시간 이렇게 걸으면 제법 살이 빠질 것 같았다. 살을 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할까? 게다가 제주도의 올레길은 일본과 몽골에서도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유명하다는데... 올레길도 걸어봐야 제주도에 왔다고 할 수 있으니 정말 열심히 걸었다. 바다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검은 색의 바위를 보고 바위섬이란 노래도 부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에도 편식을 하는 편이라, 고전음악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확실하게 아는 노래가 거의 없다. 바위섬도 그렇다. 멜로디만 대충 알 뿐, 가사를 모르니 그저 흥얼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애초에 남명관 집사님으로부터 듣기로는 올레길 코스 가운데서 6코스가 경치도 제일 좋고 걸을 만하다는데 뜨거운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걸으니 내가 제대로 선택한 것인지, 남 집사님에게 속은 건 아닌지 살짝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나선 길이니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 해변과 숲길을 거쳐 한참을 가니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어느 공공건물 앞으로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대원들은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화장실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모두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일을 보는 게 중요했고, 땀에 찌들은 얼굴과 팔을 씻고 몸에 남은 열기를 식히는 것도 중요했다. 나도 시원하게 세수를 하고 나오니 나보다 앞선 대원들은 이미 저 멀리 가고 있었다. 그들을 놓칠세라, 허겁지겁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뒤따라갔는데 아스팔트에서 갑자기 왼쪽의 어느 숲길로 빠지는 거였다. 그런데 내 뒤에는 박진옥 집사님과 후미를 담당한 장성범 집사님이 남아있었다. 나마저 숲길로 들어가 버리면 뒤쳐진 두 사람은 길을 잃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거였다. 나보다 앞선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고... 자칫하다간 나도 길을 잃을 것 같아 빨리 오라고 재촉하기 위해 장성범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다. “장 집사님! 어디까지 왔어요?” 남명관 집사님은 화장실에서 나와 앞으로 계속 걷다가 왼쪽 숲길로 빠지라는 뜻으로 얘기한 것을 장 집사님은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왼쪽 길로 가라는 걸로 이해하고 박 집사님과 함께 엉뚱한 길로 열심히 가던 중이었다. “어허? 아닌데... 그건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이예요. 화장실에서 나와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오세요. 그러면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빨리 오세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도 않아요. 우리 이러다가 길을 잃게 생겼어요.” 이래서 또 한참을 기다리니 그제야 길을 잃었던 두 대원이 허겁지겁 올라오는 게 보였다. 결국 우리 세 명은 본진에서 떨어진 낙오병이 되었다. 도대체 앞선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제주도에서는 앞으로만 가면 된다고 하는 말을 믿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앞에 몇 명의 사람들이 길가에서 쉬고 있는 게 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니 더위에 지쳐 잠시 쉬고 있는 대원들이었다. 비록 본진은 아니지만, 뒤쳐진 대원들과 합류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대원들을 찾아 또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닷길도 벗어나고, 마을과 숲길을 벗어나 이제는 도로가 나왔다. 아...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막막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교회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때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던 남명관 집사님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짓을 했다. 길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가니 옆의 까페를 가리키며 저리로 빨리 들어가란다. 까페에 들어가니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걸어가던 대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아마 대원들 중 일부가 너무 힘들고 더우니 좀 쉬었다 가자고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Cafe Foresta에 들어가 거기서 잠시 쉬기로 했고 남 집사님은 뒤쳐진 대원들을 기다렸던 거였다. 까페에 들어가니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천국이 따로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손님이 없던 한적한 까페는 우리 때문에 활기가 돋았다. 나는 빙수를 시키려고 했는데 빙수가 없어서 그와 비스무리한 ‘한라봉 스무디’를 시켜 더위로 달구어진 몸을 식히며 원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여대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 “아이고 죽겠다. 난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어.” 그러자 다른 여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세했다. 어허? 내 가슴이 철렁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제 어느 정도 왔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으면 완주할 텐데... 하지만, 대다수의 대원들은 이 더운 날에 걸을 만큼 걸었으니 이걸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었다.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거의 19,000보였다. 여대원들 성화에 남명관 집사님은 전세버스 기사에게 전화하여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고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연락했다. 그러자 여대원들의 환호성이 까페를 진동시켰다. 남 집사님에게 물어보니 약 1시간 더 걸으면 올레길 6코스 완주란다. 아, 아깝다. 완주를 눈앞에 두었는데 여기서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다니... 스무디를 먹고 있는 짧은 시간에 전세 버스는 어느 새 까페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탄 우리는 이미 버스에 타고 있던 ‘신선놀음’조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는데 사실 식당보다는 숙소로 돌아가 땀에 찌들은 몸을 씻고 교회로 왔으면 했지만 시간상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먼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은 후 교회로 돌아가 바로 저녁 집회에 참석해야 했다. 우리의 저녁 식사 장소는 <용이식당>이다. 거기는 ‘흑돼지 두루치기’로 유명한 곳인데 손님이 자기 맘대로 요리해 먹는 이른바 ‘Do It Yourself’ 식당이다. 그리고 식탁에 놓인 냉국을 먹어보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주 독특한 맛이었다. 냉국의 정체가 궁금해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제주도 토속 음식인 ‘미역된장 냉국’이란다. 어쩐지... 아까 까페에서 스무디만 안 먹었더라면 두루치기와 볶음밥을 정말 많이 먹을 수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배는 음식에 대한 욕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참 아쉬웠다. 헌데... 살을 빼기 위해 일부러 고난의 행군을 자처했는데 불과 한 시간 만에 살 찌는 것도 잊어버리고 또다시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냐? 나라는 존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여간 거나한 식사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온 나는 남자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나서 아침에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 순서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번 수양회는 반주자가 많았다. 첫째 날은 아내가, 둘째 날은 노미경 집사님이, 셋째 날은 윤예슬 대원이 반주를 맡았고, 저녁 집회 때 김창선 장로님은 윤예슬 대원의 반주에 맞춰 영어로 특송을 하셨다. 집회가 마치자, 드디어 숙소로 돌아와 시원~하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목욕은 두 번 다시 없을 듯 했다. 28일(금) 호텔 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택시를 타고 교회로 향했는데 교회에 도착하니 어딘가 좀 허전했다. 조영미, 박새봄 집사님(고은이)이 일 때문에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미리 출발했단다. 이른 새벽이지만, 황명회 집사님이 이들을 공항에 데려다 주는 수고를 하셨다. 이 날도 나는 시리얼과 김옥자 권사님이 주신 치즈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식사 후에 폐회예배를 드렸는데 이때 장성범 집사님이 ‘사명’이라는 곡으로 특송을 하였고, 예배 후에는 그동안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특히 임현우 대원은 남들이 신경 쓰지 못하는 뒤치다꺼리와 잔일을 도맡아 하여 대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가 머물던 교회의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싱크대를 청소하는 와중에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예리한 백 형사의 눈을 피해갈 수 없는 일! 나는 수양회 기간 내내 수박이라고는 한 번도 구경하지도 못했는데, 수박씨가 내 눈에 포착된 거였다. 도대체 수박씨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리는 분명히 수박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수박씨가 있다는 말은 분명 누가 수박을 먹었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 몰래 수박을 먹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도대체 누굴까?
범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은 게스트룸에서 머문 대원들을 조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탐문수사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사건 전모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황명회 집사님이 귤과 함께 수박도 놓고 가셨는데 그동안 수박을 먹을 시간도 없었고, 또 대원들도 많아 수박을 어찌할까 고민하던 끝에 결국 게스트룸에서 머물던 대원들이 모여 그 맛있는 수박을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웠다는 것... ㅋㅋㅋ
모든 순서를 다 마친 우리는 계획에 의하면, 유리박물관을 가서 구경하고 공항 쪽으로 이동하는 거였지만, 그곳이 기대만큼 좋은 곳은 아니란 얘기를 듣고 점심시간 때까지 교회에서 머물기로 했다. 오랜만에 여유를 부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갑자기 여 대원들이 깔깔 웃으며 난리가 났다. <b612>를 다운받아 인물 사진을 찍으면 귀여운 스티커 사진으로부터 여신으로 인정받을 만큼 보정된 얼굴이 되는 신기한 앱 때문이었다. 이걸로 서로 사진을 찍고 찍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살다보니 스마트폰 때문에 재미있는 일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이 겪는다. 앞으로 또 어떤 앱이 나올지 모르겠다.
웃고 즐기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이제는 정말 제주도를 떠날 때가 되어 이대원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버스를 탔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제주도청이 있는 시내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시내에 들어서자 갑자기 눈에 익은 거리 이름이 보였다. 그 이름은 <노형로>! 어라? 노형로?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과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노형근’ 집사님과 ‘노형로’ 사이에는 무슨 모종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도 뒤져보면 뭔가가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점심식사를 해야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산지물 신제주점으로 그곳은 물회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이번에도 시간 절약을 위해 메뉴를 정하고 갔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식탁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이날 점심 식사는 김옥자 권사님께서 내셨다. 사실 물회는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아주 시원하고 좋았다. 물회와 물회에 말은 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공항으로 이동했다. 탑승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삼삼오오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과 한 시간만 날아가는 정말 시시한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비행기로 제주에서 여수 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건 타자마자 바로 내려야 하는 가장 재미없는 코스다. 하여간, 비행기로 무사히 서울에 도착한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서 만나기를 약속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돌이켜 보니, 우리가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서울에는 비가 많이 왔다는데 제주도에는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이번 수양회 기간 동안 대원들이 다치거나 아픈 일도 없고, 또한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도 없이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특히 이번 수양회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편한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리고 아침마다 식사를 준비하신 분들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솔선수범해서 섬기며 봉사한 손길, 염 집사님과 반주자들이 수고를 많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임원들의 수고가 가장 컸다. 그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낸다.
추신: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양회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여 후기를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글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