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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감리교회의 은퇴 장로이신, 채의숭 장로님이 쓴 “주께 하듯하라”는 책은, 신앙의 에세이형태를 갖춘, 자서전적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은, 충남 서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세 가지 소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 100개를 건축하여,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어릴 적, 고향교회를 새롭게 건축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벽돌을 나르는 모습을 보고,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지역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소망은, 그의 형편으로서는, 허황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 소망을 위해, 나무에 물을 주듯, 늘 기도하면서,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드디어, 1981년에 이르러, 대우 아메리카 사장이 되었고, 1984년에는,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었습니다. 1985년에는, 부도난 장난감 공장을 인수하여, 2006년에는 6개 계열사에, 1,06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연매출 3천억을 올리는, 중견 기업인, 대의그룹 회장이 됩니다. 장로님은, 설은 물론, 추석 연휴에는, 자신이 건축하여 봉헌한 교회에, 필요한 물품이나 빠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살피기 위해, 교회들을 순회하였고, 라오스에선, 나병 환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특수 교회”를 건축하기도 했습니다. 장로님이, 캄보디아에서 건축하여 봉헌한, 예배당은, 그 지역에 대홍수가 났을 때, 주민들에게 피난처 역할을 하는, 현대판 노아 방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 가지 소망은, 찬송가 487장을 보시면,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고생한 후에 기쁨 있고 십자가 후에 영광있고”라는 가사처럼, 여러 시련을 겪은 후에야, 그 열매로 찾아 왔습니다. 1987년에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부품을 납품할 기회가 찾아왔지만, 당시 6월에, 부천이 생긴 이래로 최대의 호우가 급습하여, 사무실 천장까지 물이 차서, 공장가동이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또, 1991년에는 천안의 엠지에스 공장에 불이 나서, 소방차 28대가 출동했으나, 진압하지 못하자, 평택 미군부대의 화학차 지원으로, 화재를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의 손실은, 70억 규모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모두가 “재기불능”이라 했지만, 1년 후에 재기합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1999년 대우자동차에 부도가 남으로, 회사로부터 현금과 어음결제를 포함하여, 약 200억의 미수금이 생겨, 기업운영이 어려워졌는데, 거래은행의 지점장이 10억을 특별 융자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당시, 추수감사헌금이 없자, 10년 전에 만들었던 주택청약예금통장을, 추수감사헌금으로 내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경영에 몰두했는데, 뜻 밖에 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주문량이 늘어,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했으며, 일본, 캐나다 등지에서, 기술과 자본투자를 제의함으로, 회사를 하나 더 세우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뚝딱!”하고, 평안하고 만족한 환경 가운데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지날 때, 하나님은 선물로 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때, 선지자 학개에게 주신 내용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약 70년이 지난 후, 고레스 칙령에 의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하며, 불타버린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방해로, 성전건축이 중단되어, 16년 동안이나 방치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성전은,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습니까? 성도 각 개인이 성전이고,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성전입니다. 이러한 성전은, 성도의 인격이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감으로, 건축되어집니다. 우리 안에 방치되어진 성전을 재건하심으로, 2: 18 – 19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성전건축에 있어서,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요? 왜? 스스로 성전재건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먼저, 렘 25: 12을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70년의 기한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바사 왕으로부터 성전재건에 대한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은, 현실적인 면에서 볼 때,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 외에, 소산물이 없고, 주변으로부터 위험이 있었기에, 성전재건을 서두르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라 4: 5을 보시면,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하 36: 23을 보시면,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고레스의 명령은 철회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고레스의 명령 이후로 내려진, 성전재건 중단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의를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재건에 대해 관심자체가 없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소홀해지고, 냉담해지면, 관심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생활의 중심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 자신에게로 옵니다. 내 편리에게로 옵니다. 그러면, 더욱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인식조차하지 않게 됩니다. 주일 예배를 한두 번 빠지는 것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기 아니면, 근처 다른 곳에서 예배드리면 되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행하면서도, 믿음이 깊어지고, 기도가 응답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거라고는 절대로 확신하지 마세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의 모습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성전재건의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며, 성전재건을 미루는 것과 똑같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놓여진 상황을 핑계삼아, 자신들의 탐욕과 불신앙을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앞에서는 감춘다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까지 감추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들이 길지 않습니다. 엡 5: 16 – 17을 보시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있어야 할 그 곳에서, 반드시 찾는 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줄곧, “신앙이 성장하길 바란다. 믿음이 성장하길 바란다”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주변으로 하여금, 또는 개인에게, 어려움이 닥침으로 시험이 들 때는, 과감하게, 그것을 앞세워 신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중단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신앙의 성장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우상숭배입니다. 신앙성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먼저 앞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에 대해, “피곤하다, 힘들다”를 앞세우거나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이스라엘에게 놓여진 환경에 대한 이해입니까? 아닙니다. 환경을 핑계로 하여, 그들의 마음이 멀어진 것을 지적합니다. 성전재건이 약 16년 전에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고, 4년에 걸쳐 마무리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세상의 그 무엇이 막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대와 핍박이 있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분의 귀한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4: 1 - 2을 보시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합니다. 또, 마 16: 24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바르게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을 각오해야 하고, 고난이 올 때는, 올 것이 왔다며, 당연한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오지 않을 것이 왔다고 생각하기에, 신앙의 행보를 멈추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시의 제도에 의해, 누구도 성전재건을 막지 못하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못 봤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만, 장애만 봤습니다. 이로 인해, 멈춘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성전 건축을 뒤로 미루고, 자신들의 사적인 일에 매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집을 짓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 땅에서 본국으로 귀환시킨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것에 대해, 혹시나,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앞세워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에 대해,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자세가, 본문 2절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간이 남아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는 것에 대해, 우리의 삶에서 가장 먼저 행하심으로, 마음의 성전을 재건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4절을 보시면,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우선순위를 바꾸었습니다.
본문에서, “황폐하였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하레브”입니다. 그 의미는, “파괴되어 쓸모없도록 버려졌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국의 침략으로 인해, 말할 수 없이, 황폐해진 상태로 버려졌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은, 본국으로 귀국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성전을 속히 재건하고, 정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고, 정복국으로부터 성전재건에 대해 금지를 받았다고, 전혀 손 놓고 있었습니다. 방법을 전혀 찾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집에 대해서는, 판벽합니다. “판벽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싸판”이라 하여, “지붕을 얹거나 벽판을 대고, 장식을 꾸민 것”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하면, “판자 집”인데, 과거 전쟁 후에 있던 “판자 집”이 아니라, 백향목과 조각등으로 꾸며놓은 집입니다. 궁전같은 집에서 산다는 겁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계획할 때, 어떤 이유에서 했습니까? 삼하 7: 2을 보시면,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참되게 예배를 드린 다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조금더 풀어보면, 신 6: 5을 보시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겹겹이 쌓여있었습니다. 5절 끝을 보시면,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등한시하는 자를, 하나님도 등한시 하겠다는 겁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은 속여도, 그들의 눈은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이지도, 하나님의 눈을 피하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9 – 1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 생각지도 않고, 자신들을 위한 일에만 몰두하며,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이상하리만큼 풀리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을 깨우치고자,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게 하고자, 그들이 원하는 복을 주고자, 학개를 통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대구 서현교회에는, 교회를 건축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 정규만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33세에 장로장립을 받자, 너무 감사하여, 성전부지로 1,842평을 헌납합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을 시작하고자, 1957년 8월 19일 연건평 1960평으로, 당시 동양 최대의 석조 예배당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장로님이 병에 걸려, 회생이 불가능했습니다. 이 때 장로님은, “하나님, 정규만의 생명을 한 번만 살려 주옵소서. 이 생명을 한번만 살려주시면 이 한 목숨 다하여, 또한 종의 전 재산을 다 바쳐, 성전 건축에 헌신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합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그때, 대구를 비롯한 경북 지역에, 악질전염병이 만연하였습니다. 이 병은, 병원에서 치료되지 않음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유독히, 정규만 장로님이 운영하는, 한약방에만 와서 약을 지어 먹으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게 됩니다. 이로 인해, 건축비를 모두 감당하게 됩니다. 그 엄청난 공사비를, 빚 없이 모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이 완공되자, 교회는 성장했고, 1000명이 넘는 성도들은, 빨리 헌당하기를 원했지만, 장로님은 자기가 죽으면, 헌당식을 해달라고 목사님께 부탁했습니다. 이는, 성전 건축으로 인한 영광이, 하나님께로 돌려지지 않고, 인간 정규만에게 집중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69년 소천하신 후, 헌당식을 했다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삶 속에서, 최우선으로 여길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일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만 찾다가 내 만족, 내 삶, 내 자유, 내 평안, 내 기쁨등은, 언제 누리겠냐고 하실 수 있으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였고, 사람을 가장 나중에 창조했습니다. 파리가 먼저 만들어졌을까요? 사람이 먼저 만들어졌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편하고, 만족함 가운데서, 생활하도록 여건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에덴을 먼저 만든 뒤, 그 안에 사람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애 3: 33을 보시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서시고,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라고 합니다. 이 산은 예루살렘 주변에 있는 왕의 소유인 “왕의 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재목을 준비하여, 성전을 건축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처럼, 호화스럽고, 휘황찬란하게 건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본문에서 제시되는 성전은, 두 번째 성전으로, “스룹바벨 성전”이라하는데, 이 성전은,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건축했기에,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초라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스 3: 12 – 13을 보시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던지,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은, 대성통곡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신 28: 1을 보시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메리 케이”는, 빌게이츠와 견줄 만큼 훌륭한 경영자입니다. 그녀가, 미국의 CBS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입니다. 이때, 진행자가 그녀에게, “당신은 입만 열면 늘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심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면서 다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야심을 위해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너무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짖굳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메리 케이는, 조용히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거꾸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반대로 언제나 하나님이 저를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 은혜받는 자, 축복받는 자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 다른 점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도록, 더욱 순종의 길로 가야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성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