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答詞 (남자답사)
육용정(陸用鼎:1843~1917)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재곤(在坤), 호는 의전(宜田)
본명은 용관(用觀)이다.
1910년 10월 한일합방 직후 조선총독부에서 개화파 정치인에게
돈과 작위를 주었지만, 모두 거절하고 고향에 은거하며 소설과
저서 저술에 몰두하다가 1917년에 사망하였다.
예로부터 한결같이 좋은 남편은 드물고
自來固是罕良夫 자래고시한량부
또한 남편을 잘 받드는 부인도 드물었네
亦罕婦人善事夫 역한부인선사부
칠거삼종의 도를 모두 말하기는 어려우나
七去三從難盡道 칠거삼종난진도
청컨대 그대여, 이제라도 남편의 허물을 탓하지 마오
請君自此勿尤夫 청군자차물우부
*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민음사. 2004
*
부부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 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이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계간 『문학수첩』 2008.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