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성지
경주 건천읍을 지나 청도로 넘어가는 단석산 자락에
발이 닿으면 진목정 성지가 있다.
이곳은 125위 시복시성 대상자이기도 한 허인백(야고보), 이양등(베드로),
김종륜(루카) 세 순교자들이 박해를 피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바위굴(범굴)에 숨어 살았던 옛 신앙의 터전이며,
처형된 이들의 시신을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가 옮겨 묻어
그들의 피로써 은총의 성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마치 그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병인박해 후에 이사 온 신자 후손들이다.
진목정은 단석산 줄기인 도매산 중턱에 있는
해발 350m 정도 고지대에 위치한 깊은 산골짜기다.
예로부터 참나무가 많았을 뿐 아니라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진목정(眞木亭)이라고 칭했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단석산 동편 정상에 넓은 분지가 있는데
이곳은 옛날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했던 도장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그곳에 OK목장이 있다.
부근의 탑골과 상선필에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언양 지방에 신자촌이 형성되고, 그 후 차츰 전교가 되어서
이곳에도 신자촌이 형성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 후 1815년 을해박해 때 청송의 노래산 등지에서 살던 신자들이
청송군과 영천군의 경계 지점인 보현산(1124m)을 넘어
영천군의 용평, 질구지 및 이곳 구룡과 진목정 신자촌으로 피난 와서 살았던 듯하다.
그래서 이미 박해 시대 때인 조선 순조 때(1801∼1834)부터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1837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부들이 입국하여 포교 활동을 할 때
언양, 구룡과 이곳에 와서 성사를 주었다고 전한다.
1850년경부터는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가
상선필과 이곳 등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했으며,
이어서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안토니오) 주교와
리델(Ridel, 李福明, 1830~1884, 펠릭스) 신부(1870년 주교로 서품)도
병인박해 이전에 상선필과 이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한 것 같다.
세 순교자가 묻혔던 도매산 아래에는 오래된 진목 공소가 있다.
이곳은 1858년 경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사제인 ‘땀의 순교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지방을 순회하며 전교하던 때부터 교우촌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공소를 지나 약 700m 정도 산길을 따라 오르면
1932년까지 세 순교자가 안장되었던 묘지(가묘)가 있다.
대구대교구는 경주 산내 본당에서 성지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을 조성하고,
진목 공소와 순교자들의 묘지 인근에
개인과 가족 위한 피정의 집을 세울 예정이다.
또한 세 순교자들의 묘지 위에 진목정 순교자 성당을 건립할 계획이다.
진목 공소에서 약 3.6km 떨어진 단석산(소태리 단수골)에는
세 순교자가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는 범굴이 있다.
내일 1리 마을을 지나 소태골 피정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범굴에 이르게 된다.
이제는 무너져 내려 그 원형을 가늠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세 순교자와 그 가족들은 함께 기도하며
서로의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며 살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동굴은 본래 호랑이가 살던 굴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동굴에서 생활한 지 며칠 후
큰 호랑이가 나타나 위협했을 때 허인백 야고보가 나서서 성호를 그은 뒤,
“우리는 지나가는 길손인데 체면 불구하고 너희 집에 들어왔다.
매우 미안하지만 너는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고 동정하는 뜻으로
너희 집을 다른 데로 정해 가 있으면
박해가 끝나는 대로 너희에게 돌려주겠다.” 하자
호랑이가 물러갔다고 한다.
그리고 동굴 맞은편 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 위에서
밤중에 이따금 ‘어흥 어흥’ 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근처 다른 짐승들이 이들이 머무는 동굴에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병인박해 때는 부근의 단석산 중의 범굴에서 살았던
허인백(許仁伯, 1822~1868,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1819~1868, 루카),
이양등(李陽登, ?~1868, 베드로) 3명이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다.
증언록에 의하면 허 야고보와 동료 치명자들은
울산 죽령 교우촌에서 잡혔다고 나온다.
범굴 얘기는 《영남순교사》(김구정, 1966)에 나온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1866년 병인박해 후에 이사 온 신자들이다.
병인박해 중에 이곳에 살았던 신자는 1893년 뮈텔 주교가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할 때 이 공소의 회장이었던
박 요한 가정과 박씨 문중인 듯하며, 그의 형제 중에는
1892년에 울릉도로 이주한 사람이 있었다.
병인박해 때 김문학 알로시오 가정이
경주 양남에서 우중골과 소태골로 피난을 다니다가
박해가 완전히 끝날 무렵인 1898년경에 이곳에 정착해 산 후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살고 있다.
진목정 성지는 병인박해(1866) 때 순교한 세 분의 복자
(허인백 야고보, 김종윤 루카, 이양등 베드로)께서 피신해 살던 범굴이 있고,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하신 후 묻혔던 묘소가 있었던 곳이다.
대구대교구는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해
2017.5.20. 순교자기념성당을 지어 봉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