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행 15:1~21
*제목; 사도행전강해(25) 성도의 믿음 그리고 삶
1. 사도행전(24) 내게 은혜와 복을 주신 이유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천국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우리 삶에 풍성한 은혜와 복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삶에 주신 은혜와 복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교만하여지고 성경의 말씀처럼 배가 불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8~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실 때에, 이를 지속적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귀로서 하나님의 안내판으로서의 역할을 이를 통해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도행전의 2부가 시작되다!
‘사도행전 1~14장’까지는 ‘하나님의 복음이 유럽지역에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흔히들 사도행전 1부라고 부릅니다.
이 중심에 “안디옥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인데도, 그 믿음의 온전히 세워져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구제(사랑)와 선교(영혼구원)”에 열심을 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은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증거되어집니다. 당신은 그렇습니까?
우리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하나님이 꿈꾸시는 이런 교회가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참고로 교회의 성장 사이클은 어느 교회이든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이 전해지는 “핍박기”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원래 우리의 죄성과 성정에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사탄의 방해와 유혹까지 있으니 가히 믿음을 세워가기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믿음을 시작하게 되면 이와 같은 핍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는 “부흥기”입니다.
이런 핍박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뭉치게 하고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신앙이 튼튼해지면 자연스럽게 교회는 성장하는 부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가 부흥하게 되면, 드디어 이단이 등장하고 교회의 세속화(이질적 복음)가 시작됩니다. ‘잠 30:8~9’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분열과 분쟁기”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다투고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번째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믿음 안에서 깨어 있어야 그 믿음을 지켜갈 수가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기억하십시오.
‘사도행전 15~28장’까지는 복음의 전거 과정 중에 생기는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응답들’이 나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부입니다.
오늘은 그 시작점에 있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 15:1~2)
앞서 말씀드린 교회의 성장 사이클 중 초대교회에서도 이제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성장을 시찰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에 “율법을 지키는 것, 특별히 할례”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바울과 바나바’가 그냥 들고 있을 수 없었기에 서로 간에 불타는 논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예루살렘교회 본부까지 이 문제를 가지고 가게 됩니다. ‘3~5절’입니다.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행 15:3~5)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갔지만, 문제는 더욱 커져 예루살렘교회까지 이 논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결국 베드로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이미 “욥바”에서 “고넬료 가정”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께로부터 들었기 때문입니다. ‘6~11절’입니다.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6~11)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일을 완성하시는 은혜가 다시 한번 더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옳으신 것입니다.
믿음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행위로는 결단코 불가능하다고 바울은 ‘엡 2:8~9’에서 다시 선언합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이제 이를 듣고 있던 당시의 예루살렘교회 수장이었던 야고보(주의 동생)가 종결의 선언을 합니다. ‘13~18절’입니다.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행 15:13~18)
야고보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에도 이미 기록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모든 판단의 근거는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그것이 바로 교회요 믿음입니다.
3. 오직 믿음과 덕을 세우는 것을 선택하라!
오늘 이야기를 다시 정리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집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역사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할례도 같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것임을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가 확증합니다. 그것도 성령의 경험과 말씀을 통해서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믿음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 구원에 지장이 된다면 그것조차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5:13’입니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
이 말을 비유로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담배를 피우면 구원받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백성이 태도요, 삶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주님 안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구원에 지장이 된다면, 모든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믿음이요 삶입니다. 아멘.
첫댓글 성도의 세 가지 믿음, 하나님이 항상 옳으십니다. 모든 것은 은혜로 출발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유일한 성도의 기준입니다. 성도의 한 가지 삶의 기준, 말씀이 우선되지만, 말씀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생명 구원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