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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할례
로마서 2:25-29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혜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으신 우리 하나님은 할례를 행한 공동체와 함께 하시며 그들을 크게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할례를 행하는 자자손손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 17:6-14)
즉,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언약 공동체에 속하는 표시를 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이렇게 할례 제도가 세워진 이후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속한 자들은 할례 받지 아니한 자들과 결혼할 수 없었고 언약을 맺을 수도 없었습니다.
한편, 출애굽기 4장 18절 이하를 보면 모세에게 특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80세의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를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일에 사용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양을 치기 위해 들고 있던 지팡이로 기적을 행하시며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에서 얻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마음에 품고 애굽으로 갑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 도중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명을 주신 후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일까요? 이 사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출 4:24-26)
이로 보건대, 자기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하는 모세가 아직까지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 이방인 아내 십보라가 자기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자고 해서 모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80년을 훈련시킨 모세라 할지라도 아직 언약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한 그의 자녀들 때문에 그를 죽이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때 문제를 정확히 알아낸 십보라가 돌칼을 취하여 두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 앞에 두며 “참으로 당신은 네게 피 남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때야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아주셨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주의 백성에게 속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언약 행위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기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으니 주께서는 자신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할례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를 죽이려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의도적으로 끝까지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은 모세라도 죽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세를 죽이시려 하심은 그를 살리시기 위함이었고 그로 그 가족과 함께 믿음의 공동체로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지키면 하나님께서 구원과 축복의 은혜를 내리시지만 안 지키면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끊어지게 되는 엄중한 언약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언약을 철저하게 지키십니다. 이는 언약을 세우신 후 자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할례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왜 하필 남자아이들의 포피를 베어 버리는 이상한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이는 할례 언약은 아담을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죄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는 근본 방안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물론 아직 하나님의 근본 방안이 역사 속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할례 언약은 그 외면적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이 가리키는 장래의 실체가 중요합니다. 그 실체는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과 부활, 그리고 성령으로 인한 참된 교회 언약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 장차 있을 새언약의 복음의 메시지를 믿고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 복음이 바로 할례를 제정하시며 의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언약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할례를 통해 이 메시지를 깨달은 자들은 장차 임할 그리스도의 속량과 부활을 믿고 그 효력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였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새언약 시대의 거듭남과 다르지 않은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모세는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합니다(신 10:16). 이는 참으로 죄악을 회개하고 주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 주를 믿고 순종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그런데 신명기 30장 6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면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할례를 참조할 때 주 하나님께서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면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물론 회개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돌아와 주만 믿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 사함 및 변화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장차 오실 메시야의 속죄와 그의 부활로 인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는 그리스도의 속량과 부활을 예표하는 할례를 행함으로 죄사함의 효과를 보았고 새언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께서 제정하신 세례를 통해 참으로 사람으로 오셔서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회개 및 믿음의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할례는 영광의 주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입니다.
[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1-12)
여기서 “손으로 한 할례”는 구약의 할례 예식을 뜻합니다. 그것은 예표일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예표한 실체는 그리스도의 할례였습니다. 즉, 우리의 옛사람을 회개를 통해 죽이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함으로 그리스도께서 부으시는 성령으로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으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죄의 욕심을 끊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할례이며, 구약에서는 육체의 할례를 통해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누렸던 회개와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할례를 받을 때 사용한 도구가 돌칼 또는 단단한 부싯돌인 것입니다. 심지어 철이 있던 여호수아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부싯돌, 즉 돌칼을 사용하여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수 5:2-3).
물론 모세의 두 아들도 돌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출 4:25)
성경에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반석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마 21:42)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서 2장을 보면 느부갓네살의 꿈에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렸다”라고 하는데 그 뜨인 돌 역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또한 신명기를 보면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신 8:15-16)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증언합니다.
[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1-4)
그러면 돌칼은 어떻게 만듭니까?
돌칼은 돌을 깨뜨려 만듭니다. 부싯돌 칼은 예리하고 단단한 돌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찢겨진 돌칼입니다.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가 있는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옥합은 돌로 만든 고급 그릇입니다. 그때 그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6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막 14:6, 8-9)
즉, 마리아가 돌로 만든 그 귀한 옥합을 깨뜨려 주의 장례를 준비한 것은 이 세상의 것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예수님의 보혈로 온 세상에 생명의 향기가 퍼질 것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즉, 할례는 그 도구인 깨뜨려진 단단한 부싯돌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속량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할례는 아기가 태어난지 8일만에 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습니다. 이것이 처음 세상의 창조였습니다. 그런데 안식 후 다음날인 8일째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새언약 시대의 예배를 드립니다. 왜 안식일에 예배를 안 드리고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까?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새창조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 8일째 날입니다. 새창조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이며 하늘의 하나님의 영이 공식적으로 이 땅에 임하여 하늘과 땅이 통일된 상태입니다. 그것이 8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마친 후 8일째 되는 날에 드리는 성회는 새언약 시대를 가리킵니다. 그 날에는 생수의 강이 차고 흘러 넘칠 것입니다. 그 날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서 영원한 내세가 성령과 함께 이 세상에 침투한 날입니다.
구약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7일간은 가만히 두었다가 8일째 할례를 행합니다. 그것은 7일 동안의 기간을 마치고 할례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거듭남을 뜻하며, 새로운 나라가 임한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즉 8일째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새언약 시대는 옛창조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해방과 구속의 완성을 알리는 부활의 날을 기독교 안식일로 지킵니다. 8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및 영광의 주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공식적 임재와 함께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있습니다. 즉, 영광의 주께서 보내신 성령과 함께 이 세상은 8로 시작되는 새로운 피조물의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 받은 사람은 주 예수를 믿고 거듭난 것을 나타내며 할례를 가능하게 하는 부싯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할례는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그 마음이 속량의 은혜로 새로워져 변화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제 구약의 할례는 새언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할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영광의 주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인한 세례를 의미합니다. 성령 세례는 신자의 마음에 새생명을 심어줌으로 근본적인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든 새언약 시대든 성령으로 인한 마음의 할례가 없다면, 즉, 회개 및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주의 백성에게서 끊어져 영원히 지옥 불에서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 이 시간. 죄 가운데 살던 우리의 삶을 회개하고 더욱 철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바랍니다. 그것이 할례가 담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구약 시대의 가장 큰 실패는 이러한 할례를 형식적인 율법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구원의 방편으로 삼은 데 있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역, 그리고 성령의 역사와 무관한 그냥 사람의 포피를 자르는 것으로 구원 받은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구원이 할례라는 의식에 근거한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할례파는 복음의 원수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귀 역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할례 받지 못한 귀였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 집사가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행 7:51-53)
그들은 할례라는 외적 표시를 행하여야 구원 받는다고 외쳤습니다. 즉, 할례가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 및 부활, 그리고 성령의 보내심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려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 5-11)
그러므로 할례가 가리키던 실체가 이루어진 새언약 시대에는 믿음으로 인한 칭의 및 거듭난 생명으로 살아가는 참 사랑의 의로운 삶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9-31).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할례의 예표 역할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할례파, 무할례파 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주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의로운 삶이 중요할 뿐입니다.
[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 7:17-19)
[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 5:6, 11-12, 6:15)
그리하여 할례를 주장하던 자들은 복음의 교회에 가장 큰 해를 끼쳤습니다.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딛 1:10-11)
따라서 새언약 시대에도 여전히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음성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할례파를 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8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2, 8-9)
이러한 믿음으로 얻는 의를 바탕으로 하여 신자들은 계속 영광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거룩함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0-14)
그러므로 구약의 예표로 쓰이던 것을 실체가 나타난 복음 시대에 계속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이제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인한 마음의 할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인한 마음의 할례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 및 주의 부활로 가능한 것을 보았습니다. 구약 시대는 할례 의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속량을 바라봄으로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고, 신약 시대는 실제로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할례, 즉 성령의 세례 효력이 당장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8일로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와 성령의 차고 넘치는 생명수의 강을 누린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회개와 함께 영광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말씀을 먹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성경에서 말하는 할례 제도의 궁극적인 성취가 우리의 삶에 날마다 이루어지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복된 주의 자녀들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