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홍문(華虹門) 편액(扁額) 글씨
경기도 수원시(水原市)에 있는 화성(華城)의 북쪽 수문. 북수문(北水門)이라고도 한다. 1796년(정조 20) 화성을 신축하면서
수원시내를 종단하는 광교천(光敎川)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상류에 있는 북쪽 수문이 화홍문이다.
수문은 모두 7개의 석조아치로 만들어졌으며 아치와 아치 사이는 4개의 돌기둥을 세워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다리 위에는 누각이 세워져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수문 북쪽의 경계와 감시를
위해 사방을 개방하였다. 이 수문은 전란에 대비한 방어시설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을 막아 수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주변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군사적·토목기술적 면에서 뛰어난 건축물이다.
2. 경포대(鏡浦臺) 편액(扁額) 글씨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고려 충숙왕13년(1326)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현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옛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현 위치로 이전한 후
영조 18년(1742) 부사 조하망(曺夏望)의 중수를 비롯한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대호(臺號)인 鏡浦臺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해서액(楷書額)은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고,
정자안의 「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또는 미불의 글씨라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누대 천장에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 왕이 직접 지은 시)와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등이 걸려있다.
3. 정우정(淨友亭) 편액(扁額) 글씨
정우정(淨友亭) 扁額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6 장수황씨종택 사랑채(경북 문화재자료 제236호) 에 걸려 있었으나
2009년 1월 15 일 도난당한 현판이다.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택은 장수 황씨 15대조인 황시간이 35세 때 이 집에서 거주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세운 시기를
18세기경으로 추정한다. 사랑채와 안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는 이 집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고,
안채의 구성에 몇가지 특성이 남아 있어 이 지방 민가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4. 만안교비(萬安橋碑) 글씨
정조임금이 그의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던 화산능행(花山陵幸)을 6차(1795)부터 과천로에서 시흥로로 변경하면서 안양에는
안양행궁(安養行宮)과 더불어 만안교(萬安橋)가 가설되었다.
원래 만안교가 가설되기 이전 삼성천에는 사람들의 통행을 위한 목교가 가설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실한 목교로는 임금이 행차하는 어가의 행렬을 지탱하기 어려웠던 연유로 해서 당시 금천현감 서 유방에 의해서
정조 19년(1795) 9월, 착공 3개월만에 완공을 보게 된 것이 바로 만안교이다.
만안교가 이렇게 빨리 완공을 보게된 것은 부근의 하천에서 교량 건축용 좋은 석재들이 많이 발굴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안교가 완공된 것을 크게 기뻐한 정조는 감독자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교량을 건설한 편의가 만백성에게 미쳐 원근의
짐꾸러미들이 이 튼튼한 다리를 통하여 만년동안 편안하게 건너게 된 것을 기린다는 뜻에서 만안교란 다리의 이름도 직접 지었다
는 내용이 만안교비(萬安橋碑)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5. 고산구곡시화병 (高山九曲詩畵屛) 글씨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 등 여러 화가가 그린 시화병풍. 562×137.4㎝. 바탕에는 수묵과 옅은 채색이 되어 있다.
현부행(玄溥行)의 발의(發意)로 1803년(순조 3) 황해도 고산(高山)의 경치를 화원과 문인화가·문신들의 시를 모아 표구한 것이다.
각 그림의 화가들은 김득신(金得臣)·김이혁(金履赫)·김홍도·김이승(金履承)·이인문(李寅文)·오순(吳珣)·윤제홍(尹濟弘)·
이재로(李在魯)·이의성(李義聲)·문경집(文慶集) 등이며, 각 폭의 맨 위에는 유한지(兪漢芝)가 쓴 표제가 있고
그 아래에는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와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 등의 시가 적혀 있다.
각 폭마다 여백에는 김가순(金可淳)이 쓴 제시(題詩)가 있으며, 병풍의 첫폭과 마지막 12폭에 최립의 고산석담기(高山石潭記)와
송환기(宋煥箕)의 발문이 있다.
화풍은 남종화풍(南宗畵風)과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을 주로 하였고 그림마다 이이와 동자의 한가로운 모습을 담고 있다.
12첩. 국보 제237호.
기원공(綺園公)유한지(兪漢芝 1760∼?(영조 36∼?))
조선 후기 문인, 서예가.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 본관은 기계(杞溪) 인이다.
한준(漢雋)의 종제(從弟)로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냈다. 전서, 예서에 뛰어났는데,
신위(申緯)는 경수당집(警修堂集)에서 "청풍군수 윤제홍(伊濟弘)의 산수화와 영춘현감 유한지의 전서·예서가 당대 제일이다"고 하였고,
김정희(金正喜)는 완당집(阮堂集)에서 “조윤형(曺允亨)과 유한지는 예서에 조예가 깊었으나 文字氣가 적다.” 라고 평하였다.
작품으로 영천 <은해사영파대사비(銀海寺影波大師碑)>와 산청 <문익점신도비>의 전액(篆額)을 썼다.
출처 :기계유씨(杞溪兪氏) 원문보기▶ 글쓴이 : 유원재(在,1962,軍,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