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베로니카 조르주 루오, <베로니카>,
1945년경, 50x35cm, 유채, 파리 퐁피두센터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 이를 지켜보던 많은 군 중 가운데
베로니카도 있었다. 그녀는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예수님의 얼굴 을 수건으로 닦아드렸는데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대로 찍혔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최초의 초상화이자 그리 스도 이콘의 원형으로서 베로니카의 수건이라
불린다.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실존 인물의 이름 이라기보다는 vera icona에서 유래한 것 으로
‘진짜 이미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 으며 성녀 베로니카는 이후 가장 공경 받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했던 중세 말부터 베로니카의 수건에 대한 공 더욱 커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모셔졌던 베로니카의 수건을 보기 위해 로마로 순례여행을 떠났다. 단테도 “나의 여인 베아트리체가 찬미하 고 공경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기 위해 로마에 간다”라고 적은 글이 있다.
많은 화가들이 베로니카의 수건을 그림으로 그렸으며, 본 기획 연재에서도 엘그레코가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화가들은 보통 수건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 만 그리던가 아니면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이 찍힌 수건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의 이 작품은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예수님의 얼굴이 아니라 베로니카의 얼굴 만을 그린 것으로, 이전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유형을 보인다.
베로니카는 그 수건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데 수건은 없이 베로 니카 만을 그리다니 새로운 발상이다.
루오의 베로니카는 베일을 쓰고 있으며 얼굴이 갸름하고 눈망울이 큰 청순한 여인이다.
루오의 많은 작품들이 짙은 색채로 어둡게 표 현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밝은 파스텔톤으로 그려졌다.
표정 또한 루오의 작품들이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 것과 달리 연민과 아름다움이 승화된 고운 얼굴이다.
루오는 20세기 초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마티스와 함께 1905년 살롱 도톤느 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야수파가 탄생했다.
20세기 초 미술의 역사는 과거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반항의 역사이다.
야수파 라는 이름은 자연을 모방한 전통적인 사실주의 색채가 아니라 작가 내면의 강렬하고 추상적인 색채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창립회원이었던 마티스의 강렬한 색채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루오의 작품은 야수파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그의 색채는 야수파 특 유 원색의 강렬함이 거의 보이지 않고, 대단히 어둡고 무겁게 표현되었다.
루오가 20 세기 미술에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은 종교화에 있다.
과거의 미술은 대부분이 종교화 였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종교화는 화가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루오는
‘수난 받 는 그리스도’를 비롯해 성경의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영혼과 고뇌를 종 교화에 쏟아부었다.
루오의 귀한 작품들을 12월 15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20세기 최고의 거장의 한 사람인 루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 로도 금년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듬뿍 받은 느낌이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가톨릭 신문 2009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