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고대 오리엔트 국가의 흥망 - 세상의 중심이었던 페르세폴리스
이제 페르세폴리스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테헤란을 거쳐 파르스 주의 주도에서 버스로 페르세폴리스로 직행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폭이 20미터 정도 돼 보이는 ‘왕의 길’이 눈앞에 펼쳐지며 멀리 페르세폴리스 유적이 눈에 들어왔다.
궁전에 다가서면 정면에 거대한 계단이 있다. 좌우로 7미터 폭의 계단이 중간부터 ㄱ 자로 굽어 있어, 끝까지 오르면 약 12미터 높이의 기단 위에 서게 된다. 이 계단은 한 단씩 쌓은 것이 아니라 바위를 다듬어 다섯 계단씩 잘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계단 위 12제곱킬로미터의 테라스에 서 있는 만국의 문(크세르크세스의 문)이 방문객을 반긴다. 높이 10미터의 문 기둥 전면에는 사자의 머리와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황소 상이, 뒤쪽에는 사람의 얼굴에 날개를 가진 짐승 상이 서 있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의장병의 공간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의장병의 공간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동쪽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은 아파다나(외국 사신들이 왕을 알현하던 곳)로 불리는 거대한 홀로 이어진다. 페르세폴리스의 정면 현관 쪽은 약간 남쪽으로 기운 서향이다. 따라서 이 동쪽 계단은 정면에서 보면 뒤쪽이 된다. 아파다나는 기단보다 몇 미터 높게 자리 잡고 있어, 이곳에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 북쪽의 3단에 걸쳐 페르시아인과 메디아인이 줄지어 행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아마도 1만 명으로 구성된 왕 직속의 친위대 ‘불멸의 부대’일 것이다. 친위대의 병사 수는 여기에 그려진 것만도 100명이 넘는다. 페르시아인과 메디아인이 전혀 차별 없이 묘사된 것만 보더라도, 당시 이 두 민족이 사실상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남쪽에는 똑같이 3단에 걸쳐 왕에게 선물을 상납하는 각국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부조가 있다. 이 부조는 23개국에서 파견된 이들 사절단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컨대 맨 왼쪽에는 기린을 끌고 온 에티오피아인, 뒤이어 영양을 모는 소말리아인, 창과 방패, 소를 준비한 드라기아인, 낙타와 포목을 가져온 아랍인 같은 식이다.
아파다나의 그림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궁전 서쪽 테라스 벽면에 새겨진 다리우스 대왕을 알현하는 사신들의 그림이다. 실물 크기의 이 그림은 현재 테헤란 국립박물관에 별도 전시되고 있다. 옥좌에 앉은 다리우스 대왕 뒤로 3명의 신하를 거느린 황태자가 서 있다. 대왕을 알현하는 사신은 오른손으로 왼쪽 턱을 괴고 허리를 굽히고 있다. 대왕에 대한 최고의 예우다. 각국의 사신들은 페르시아 제국 궁정에서 왕을 알현할 때는 이렇게 몸을 굽혀 예를 갖췄다.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신하들에게 이 의식을 강요하다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수많은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테헤란 국립박물관은 10년 전 4층짜리 신관을 완성해 이슬람 시대 이후의 전시물들을 모두 이곳으로 옮겼다. 덕분에 신관의 전시품들은 물론이요, 전시 공간이 넓어진 구관의 유물들 역시 제자리를 찾은 듯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제, 동쪽 계단을 올라가 보자. 알현실이라ㄱ 불리는 약 8000제곱미터의 거대한 정사각형 공간이 나타난다. 주위는 약 5센티미터 두께의 벽돌로 둘러싸이고, 약 20미터 높이와 36개 기둥이 세워져 있다. 넓은 방의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에는 6개의 기둥이 2열로 레바논 삼나무로 만든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따라서 원기둥의 수는 모두 72개다. 이 거대한 방은 총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광장에 남아 있는 12개의 원기둥은 그리스를 비롯한 그 어느 나라의 기둥보다도 가늘고 높으며 기둥머리 부분에는 거대한 소머리 장식이 있다. 대부분 파손되고 소머리가 달린 기둥 윗부분만이 남아 있지만 새파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위용만큼은 대단하다.
이 아파다나 궁전은 페르세폴리스 대기단 위에 몇 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테라스에 세워졌다. 궁전은 구에라마트 산을 등지고 있으며, 앞쪽으로 마르브다슈트라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지금도 높이 40미터의 기둥을 포함한 거대한 건축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건축물을 바라봤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에서 원정에 나서 이곳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이 장대한 페르세폴리스를 눈앞에 두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놀라움’은 ‘증오’로 바뀌었고, 그 결과 이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게 된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이 페르세폴리스가 무엇을 위해 세워졌고, 어떤 목적으로이용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대 오리엔트의 거대 건축물이라고 하면 왕의 묘나 신전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궁전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재위 기원전 404-359)의 묘가 뒤쪽 언덕 중간쯤에 있지만 다리우스 대왕과 그 뒤를 이은 왕들의 묘가 페르세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나크시에 로스탐에 자리 잡고 있는 걸로 봐서 왕의 죽음과 관련 있는, 예컨대 장례를 치르기 위한 신전의 용도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또 이 궁전에서는 그 어떤 신전도, 또는 이를 연상케 하는 신성한 건축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리우스가 애초 겨울 궁전으로 이용한 적은 있었지만 이는 일시적인 일이었으며, 이후 왕들은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이 궁전이 어떤 의식, 예컨대 신년 축하나 왕의 대관식 등에 이용되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