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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의 두 증인
2010, 4, 4
눅 24 : 13-35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은,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을 갖는 다는 신앙과,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을 보면 부활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부활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갖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 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고는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자 이제 예수님에 관한 모든 일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어떤 일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도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제자들에게 부활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그들의 생각은 도무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부활이란 없다는 관념은 그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부활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는데 가장 어려운 고비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사람이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다는 신앙입니다.
이상하리만큼 부활에 대한 신앙은 회의와 불신앙으로 마음에 잠적에 있다가 시험의 때나 고난을 받을 때 이 불신앙이 고개를 들고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감추어진 불신앙을 깨닫고 확신에 이르기까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바로 그 날이 주께서 부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날임에도 그들은 전혀 믿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동행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의 크신 사랑을 보십시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낙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그들을 찾아 동행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오신 주님을 보세요,
이렇게 자기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가 주님을 믿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찾아 주시며 자기를 계시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믿음이 없는 우리들에게 찾아 오셔서 자기를 계시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 그들에게는 눈이 가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깨닫는 바는 영적인일은 믿지 않는 자들은 기이하게도 눈앞에 그 실제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왜 성령을 보내 주셨다고 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2 장 12절에 보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깨닫고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것을 그들의 지혜와 재능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또는 행운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거나 기이한 우연으로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시고 베푸신 일을 어찌 하든지 육신의 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그들과 동행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나그네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두 사람 중 글로바라 하는 제자가 슬픈 기색을 하며 말하기를 “당신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요즈음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고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슨 일이냐?” 하시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두 제자의 대답을 통해서 그 때 당시의 제자들의 믿음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크고 강한 위대한 나라를 세우고 통치하는 다윗과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독립시키고 크고 강한 나라를 세우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한데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몇 명 안 되는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와는 너무나 다른 메시야 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은 불가피하게 달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엘리야 같은 선지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선지자라 해도 그가 죽으면, 그 선지자의 시대는 끝나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한 낱 선지자로 여겼고, 또 이제 그 선지자의 사명은 다 끝났다고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선지자는 무덤에 묻히면 썩고 부활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두 제자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그들이 엠마오로 내려오기 바로 전에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몇 명의 여자들이 예수님이 무덤에 찾아갔다가 빈 무덤만 보았고, 천사들을 만났는데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그 여자들은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고, 두 사도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본즉 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무덤이 비어 있고 시체는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그 사도들로부터 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그 제자들 참으로 기이할 만큼 믿음이 없지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을 생각하고, 주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이 천사들을 만났고, 천사는 여자들에게 예수님은 살아나셨다고 했는데, 그들은 여자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장사지낸 무덤이 비어 있다면 부활하신다는 주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이렇게 믿음이 없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주님의 부활은 믿지 않고, 모든 것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옛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들의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그 때 그들만 특별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제자들 모두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일에 이토록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증거는 충분합니다.
이성적으로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셨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행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으로 그분이 하나님 나라에서 오셨음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불신을 아주 기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자들은 그들의 지혜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다 들으시고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은 들어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구약성경에 자기에 관한 말씀을 들어서 가르치신 내용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중요한 몇 말씀만 찾아본다면, 창세기 3 장 15절에 “여자의 후손 즉 그리스도는 원수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마귀는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의해서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또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 형제 중에 나와 같은 선지자 너희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에 말을 들어라” 했습니다.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선지자란 뜻은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그의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실 것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미가서 5장 2절에는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 기록되어 있고, 이사야 9장에서는 메시야를 한 아들로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 하셨는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시편 22편은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죄를 그에게 대신 담당케 하셨기 때문이라는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6편은 우리 주님께서 썩지 않을 분으로 다시 말해서 부활하실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동행하여 가는 동안에 그들이 사는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그들과 동행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가시려는 듯했습니다.
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강권해서 자기들 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좀 더 듣고 싶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나는 두 제자가 강권해서 예수님을 모셨다는 말씀이 언제나 은혜로 들여옵니다.
그들이 강권하지 안했다면 예수님을 그들의 집으로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집으로 모시지 못했더라면 주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서 부활하신 주를 보게 하시는 큰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주를 강권해서라도 우리 안에 모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누구든지 예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면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들으시고 그들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과 믿음으로 청하면 주님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주님을 믿습니까?
진실로 믿으신다면 주를 영접하십시오.
그 때 주님은 지금도 같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구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을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청하셨다면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이미 들어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주께서 “내가 문 밖에서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마음에 들어오시기를 구하면
주님은 들어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직도 자기 마음에 주님이 계시는 것을 잘 모르시는 분은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약속에 신실하신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가실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신 두 제자들은 주와 함께 음식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 때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서 저희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누어 주신 그 떡을 받고서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이신 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곧 주님은 홀연히 떠나시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를 목격한 것은 매우 짧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뵙지 못했을 때는 그들은 주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를 만나 뵙고는 주를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 뵙지 못했을 때는 그들은 옛 생활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는 그들은 주와, 주의 말씀과, 부활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기 전에는 주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를 만나고는 그들은 그들을 찾아오신 주의 크신 사랑에 감동된 가슴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부활하신 주를 확실히 믿는 믿음의 사람과 아직 주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주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소망은 땅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도 땅에서 육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확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의 목표도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영혼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목적과 길이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열한 사도들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들었고,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음을 들었습니다.
그 두 제자들도 그들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과 부활하신 주를 모시고 함께 떡을 뗀 일을 증거 했습니다.
이 후 이들의 삶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난 이들은 그들도 주의 약속대로 부활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일생 동안 주의 부활을 전하는 자로 헌신했기에 이후에도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부활의 신앙이 우리들의 믿음을 온전케 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