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엄마
병든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치렁치렁 가꾼 머리털을 싹둑 끊어 삶은 삼 껍질과 섞어 미투리를 만들었다. 어서 나아서 신고 다니길 바랐다. 뱃속 아기가 아빠라 부르며 아장아장 걷는 게 보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뒤뜰에 맑은 샘물을 떠 놓고 두 손 모아 치성도 드렸을 것이다.
건장하던 사람이 어느 날 시름시름 앓더니 누워 일어나질 못한다. 갑자기 아득해져 온다.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녀도 차도가 없어라. 툭툭 털고 일어나리라 굳게 믿었지만 날로 병세는 심해져 혼미해져만 간다. ‘원이 아빠 부디 기력을 차려 일어나세요.’ 귓전에 대고 울먹이며 속삭였다. 다 소용없이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슬픔이 가슴을 짓누른다. 한지를 펼쳐놓고 붓으로 한 글자 두 글자 써 내려간다. “원이 아빠 어디에 계세요. 무슨 말을 해 보세요. 꿈에 나타나 꼭 들려주세요.” 간절히 구구절절한 말을 남겼다. 세로로 다 쓴 뒤에도 할 말이 넘쳐 또 둘레를 돌아가며 적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곳곳에 젖어 들었다.
“원이 아빠 아기가 태어나 아빠 어딧냐고 물으면 나 뭐라 말해요.” 남편 시신 옆을 지키며 밤새워 며칠 동안 부둥켜안기도 하고, 얼굴을 어루만져 보며 하염없이 울고 말하는 아내다. 원통한 마음을 가다듬어 글로 적고 또 긁적였다. 남편이 관에 넣어져 떠나는 날 한없이 울고 몸부림쳤다.
“원이 아빠 저승에 가서 편히 쉬세요. 당신 없이 어찌 사나요. 곧 따르겠습니다.” 서리서리 맺힌 남편 사랑의 맘을 시신의 가슴에 덮어줬다. 절절한 말을 읽어보라 꼭 내 마음을 아시라 한 것이다.
할 말이 너무 많아 빼곡하게 써 내려간 한글 편지에는 서럽고 쓸쓸하며 황망한 아내의 심정이 가득하다. 강물처럼 굽이친 내용이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에 든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심정이 깔렸다.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서리서리 녹아 흐른다.
내용은 원이 아버지에게로 제목에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 말로 시작한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씀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자식 낳으면 보고 싶다. 했는데 그렇게 가시니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없어 이만 줄입니다.’
안동시는 430년 전 남편을 잃은 원이 엄마의 애틋한 편지가 발굴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곳인 정하동 귀래정 인근 부지에 공원을 조성했다. 원이 엄마 편지글 조각상과 현대판 번역본, 쌍가락지 조형물, 수경계류시설, 반원형 야외무대를 비롯한 조경시설을 통해 작지만 큰 감동이 있는 도심 속 쌈지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고성 이씨 귀래정파 문중의 며느리로 31세 때 남편 이응태가 사망하자 밀려오는 그리움이 벅차 사랑을 담은 편지와 자신 머리카락으로 만든 신발을 관 속에 넣었다. 이 편지는 정상동 택지개발 과정에서 나왔다. 편지가 발견된 곳 가까운 데에 이들 사랑의 얘기를 만들어 단장해 놓았다. 이 지역 주민들의 성금이 답지하고 안동시 계획과 도움으로 이뤄졌다.
영혼과 사랑의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담겨 세상에 알려졌다. 원이 엄마 한글 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맨티쿼티 표지 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능소화‘라는 소설로 재탄생하고 지역에서도 계속 원이 엄마 뮤지컬 오페라 소재가 되었다.
안동시 관계자는 ’원이 엄마 테마공원‘은 시대의 공간을 초월해 감동을 준 곳인 만큼 가족과 부부,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새로운 명소로 널리 알려질 것이라 내다본다.
첫댓글 아마도, 무척이나 자상한 남편이었나 봅니다.
전에 신문기사로 읽은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발까지 만들어 넣었다니...
발굴되길 잘했습니다.숫한세월 묻혀서 없어질 이야기였을텐데...
"원이엄마 테마공원" 한번 들려보고 싶습니다.
무덤 주위 주민들의 성금으로 공원을 세웠다니 대단합니다.
부부간 금실이 좋아 세상에 많은 교훈이 됩니다.
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로 재 탄생하였습니다
기록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 시대의 삶과 죽음 용케도 흔적이 남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안동시가
기획을 잘하여 후세까지 전해 질 공원까지 조성했다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언제 시간 되면 여행을 같이 가요.
박 회장님 성도님 안동에서 만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