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과 6바라밀이란...
6바라밀(波羅蜜)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까지 수행해야 할 여섯 가지 조목으로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을 말하며, 6도(度)라고도 합니다.
보시바라밀이란 자비심으로써 중생을 사랑하고 조건 없이 널리 베푸는 것입니다.
지계바라밀이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서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이란 온갖 욕됨을 참고 마음을 고요히 안주시키는 것입니다.
정진바라밀이란 항상 수행에 힘쓰고 게으르지 않는 것입니다.
선정바라밀이란 마음을 고요히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지혜바라밀, 즉 반야바라밀이란 참다운 법의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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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란 '깨친(菩提 boddhi) 중생(衆生 sattva)'이라 하여 처음에는 석가부처님 전생의 삶을 지칭하던 이름 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도 미래에 부처님이 되고자 (과거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까지 수행하는 것이니 바로 우리 역시 보살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펼쳤고,..
그에 호응한 불자들이 '우리도 보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들은 불교에 대해 정통한 불자들(보살마하살)이었지요.
그런 가운데데 보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대승 불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보살이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조금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 ‘너두 보살’이다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불교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으면서도 대승불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남자 선(善)여인들이 있었으니.. 그들 역시 보살이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살이라 이름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오면 무지개 빛깔만큼 다양한 보살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서 보살들은 6바라밀을 행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초짜 보살에서 보살마하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살들에게 6바라밀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펌한 6바라밀 해설은.. 중급을 넘은 보살들의 6바라밀 내용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초짜보살을 포함한 6바라밀 내용을 살펴보려 합니다. 왜냐?
<금강경>은 선남자 선여인이라는 초심 보살들을 위한 경(經)이기 때문입니다.^^()
6바라밀은 위에 심풀하게 정리한 것을 골격으로 풍부하게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대승불교권의 불자라면 귀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듣고.. 눈이 무거울 정도로 많이 본 것으로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길 겁니다.
6바라밀은 대승불교를 전개하던 불자(보살)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보살마하살이라면.. 24시간, 365일 6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뉴욕달마님께서.. "발심한 보살은 붓다의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보살도를 갑니다..." 라고 한 이유 역시 아마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여기서는 초기 대승불교 운동을 왕성하게 전개하던 당시 곧 <금강경>이 출현하던 시기의 6바라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6바라밀은..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그리고 반야바라밀입니다.
1번째 보시바라밀.. 보시는 상대에게 베푸는 것인데.. 베푸는 이유가 뭡니까?
상대가 열반에 관심을 갖고 결국은 자기처럼 발보리심(發心) 시키기 위해서 이지요.
보시바라밀은 크게 법(法)보시와 재(財)보시를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금강경>에 나오는 법(法)은 무엇입니까?
4성제, 12연기, 12처, 또는 37조도품, 9차제정, 위빠사나?...
그 당시 대부분의 보살 불자들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교학이나 수행은 잘 모르고, 흥미도 별로였으며, 그것을 공부할 여유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는 법(法)은 무엇일까요?
“나는 본래 부처구나!” 하는 믿음이 곧 법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 그들이 전할 수 있는 “당신 역시 나처럼 본래 부처였습니다!” 하는 법은..유일한 법이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없는 최고의 법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을 본래 부처임을 믿도록 한 보살은 이렇게 말합니다.
“석가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살이라면 당연히 일체 중생을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새로 태어난 보살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상대에게 ‘당신도 부처였습니다“를 전하려 하니.. 그 말을 적어도 새겨듣게 하려면 신임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해서 재물이나 음식, 아니면 맨 몸으로 도와줍니다. 그게 보시지요^^
세련된 6바라밀에서는 설명하길.. 보시바라밀은 조건 없이 널리 베푸는 것이라고 풀이 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 초기 보살들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보시를 했으니...
곧 저들을 열반에 이르도록 하리라!
2번째 지계바라밀.. 삼장(三藏) 가운데 하나인 율장(律藏)에 나오는 계는 출가자들이 지켜야할 계와 율로, 보살이나 재가불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계바라밀이란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서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는 설명은 재가불자에게 맞지 않는 설명이 됩니다.
암튼 초기 대승불교가 전개될 당시 보살들은 <율장>을 생각하며 계를 지키자는 게 아니었지요. 그들이 지켜야할 계(戒)란.. 선한 일은 힘써 행하고, 악한 일은 멀리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그래야 사람들이 신뢰를 갖고 보살들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3번째 인욕바라밀.. 아무리 우리가 좋은 뜻으로 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대도 상대는 오히려 어깃장으로 나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경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수행을 하지 않은 보살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표를 상기하며 꾸욱 꾸욱 참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인욕바라밀이라 하는 거지요.()
4번째 정진바라밀..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을 실천하는데.. 무슨 날이나 일요일만 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365일 매일 합니다. 정진바라밀이란 그것입니다.()
5번째 선정바라밀.. 아무리 보살이라 하나.. ‘내가 부처이구나!’ 하는 신심(信心)으로.. 9 중생을 위해 초짜 보살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을 매일 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아니!입니다.
그러니 그들 자신을 충전시키는 길이 있어야만 합니다.
“관세음보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 염불을 한다구요? 좋습니다.
매일 108배를 한다구요? 좋지요^^()
간화선을 아침마다 적어도 30분 이상 한다구요? 너무 부럽습니다^^
<금강경> 독경을 매일 7번 한다구요? 최곱니다^^
...
이렇게 앞의 바라밀을 줄기차게 하기 위해 에너지 충전시키는 작업을 선정바라밀이라 합니다.^^()
6번째 반야바라밀.. 결코 쉽지 않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그리고 선정바라밀을 행하다보면 그 안에 생기는 지혜가 있으니.. 그것을 반야(지혜)라고 합니다.^^()
그 지혜가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더 이상 위가 없는 반야지혜가 되니..
그런 반야지혜가 생기면.. ‘내가 본래 부처였구나!’ 하는 신심이..
반야지혜로 확연히 이해되는 깨침의 경계에 이르니..
그때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 이름 하는 거지요^^()
이와 같이
6바라밀 (수)행에는.. 8정도나 위빠사나 선정 또는 어느 수행법처럼 정형화된 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수행을 위해 따로 수행처를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수행처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상의 깨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증명은..
오늘 현실에서도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님은 6바라밀을 통해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주위에서 보았거나, 이룰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첫댓글 6 육바라밀을 하다 보면 .... 계속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열반으로 향해 있으리라 봅니다 잘 안되더라도 자꾸 노력해서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열반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그리고 주위의 사람에게 불법을 알고 전하며 행복된 삶이 관심사 입니다 ^^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불교 제대로 공부한 다음에 불법을 전하세요 님이 제게 처음에 한 말입니다 인과 응보는 곧바로 나타나지요 제멋대로 이해하지말고 이론을 배워서 불법을 배워야 행복한 삶이 되지 않겠어요 ㅎㅎㅎ
자운행님 수행을 더 해야겠네요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허참 여보시요 신발님 법을 보았으면 법으로만 의론할일이니 남에게 해라마라 할일은 불법에 있어서 해야할 말이 아닌줄이나 알고 배우시요그려 바로 이런 언어들을 쓰는 그마음이 아상과 인상인 것이요 번뇌가 남에게서 있소이까 본인에게서 있어서 비추어보인다 하지 않소이까 그래서 경전으로 공부해야한다고 역설하는 것이요 불교는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허물과 잘못됨을 바로 보게 하기위한 가르침임을 천명합니다
자신의 허물에 대하여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을 아는것도 불법에서 공부하는 일이지요 세존께서는 그리 말씀하셨소 불법은 자신의 마음속에 삿되고 그릇된 나쁜 것들을 뽑아내기위한 것이 불법이요 그래서 팔정도라고 하는 것이요 말 행동 생활에서 바른것을 찾아서 수학하는 것이 바른 공부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요 그래서 근본이라 칭명하지 않았더이까
자운행님 수행이 많이 하셔야 되겠네요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열반이란.. 무너지는 행복이 아닌, 안 무너지는 행복의 다른 말이니..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려면 그것을 열반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그게 바로 열반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법을 전하는 불자가 열반(불교의 목표)을 소홀히 하면서, 과연 주위사람에게 불교의 핵심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까요?^^
"관심이 없다가 소홀히 하면서"로 이해는 너무 비약이 아닐까요? ㅎㅎㅎ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신발님께.. 넘 비약을 제가 했군요^^()
법을 전하는 불자가 불교의 목표를 모르면서 불교의 핵심을 온전하게 전할수 있다는 진리가 있을까요 진실하게 말하는 말을 보고 비약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약이 되지 않을까요 토론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진실을 가리고 거짓을 논하지는 맙시다
자운행님 제가 이래서 자운행님에게 수행을 더 해야 하다고 말합니다 "불교의 목표를 모르면서"라는 말은 저는 한적이 없습니다 그건 님의 그릇된 생각이지요 ^^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신발님은 말의 뜻을 관찰하시고 말씀하시도록 하십시요 말의 뜻을 잘 알아듣는 것이 의근과 법경입니다 님을 두고 한말이 아닌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진리가 그렇다는 것을 설명한 것인데 무엇을 알아듣고 대립을 하시려 하십니까 대장부답게 토론해 임해주시길 빕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도 대립하여 논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말의 뜻을 못 알아들으면 시시분별로 연속적으로 일어나기에 연기법이라고 하므로 연기하지 않기 위해서 이것으로써 끊으렵니다 ..합장합니다
자운행님은 글의 흐름을 파악 못해서 이렇게 지적을 받습니다 님의 글에 " 진실하게 말하는 말을 보고 비약이라고 생각한다면 ..."의 글은 전의 "초심과 신발의 내용에 (비약이라는 말이 나옴) 나오는 말 입니다 누구나 글의 흐름을 보면 알수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행과 공부를 더 하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을 남이 봐도 같은 의이로 알아야 됩니다 항상 밝은 미소 보내며 03:27
보디(깨달음) + 마음 = 보살, 보살 - 마음 = 보디. 보디와 중생에 대한 마음을 지니면 보살이고, 중생에 대한 마음의 상을 없애면 보디를 이룬다. ㅎㅎㅎ 라마지가
[중생에 대한 마음상]은.. 중생을 연하여 생긴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중생이 '본래불'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중생에 대한 마음상]이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
초심님께 . 중생이 본래불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중생에 마음상은 없어질리가 없겠지요 깨달아 알때에 없어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닐까요 실로 그렇습니다 자각하고 인식하여 알기 전에는 중생상에 빠져있는 것이 중생이지요 사람이라는 상은 사람이기때문에 사람인지라 사람으로서 라고 합리화하는 중생상은 깨닫기 이전에는 알길이 없지요 그것을 깨달으면 죽고사는데에 걸림이 없을겁니다
중생을 중생으로 보지 않고 본래불로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중생을 본래불로 보는 순간 이미 중생은 사라지므로 구제할 중생도 없게 되지요. 그러면 할 일도 없구요. 이게 불교의 진수인지도 모르지만요.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은 현실입니다. 중생을 중생으로 볼 때 대비심이 일어나므로 보살이 되는 것 아닐까요? 중생에 대한 마음상을 없앤다는 것도 건지겠다는 상을 없애는 것이지 중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1. 제 말..{그 중생이 '본래불'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의 뜻은.. {그 중생 스스로 '본래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이라 하여.. 내가 상대를 본래불로 본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그것을 또 다시 저의 말로 바꾸면.. 본인 스스로 [본래불]임을 믿는다면(깨닫는 게 아닙니다) 이 될 것입니다.^^() 2. 저는 중생은 있다고 봅니다. 탐진치가 있으니 생긴 중생이기에 탐진치가 사라지지 않는한 중생은 있다고 봅니다.^^()
초심님께 . 탐진치가 사라지지 않은한 중생은 있습니다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실때에 탐진치를 멸해야한다고 설하신 것이니 세존의 법륜의 의하여야 바른 공부를 할수 잇을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함경으로 공부하여 토론하기를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은 한 사견은 많아지고 진실은 멀어집니다 제 모습 보지 못해 남의 허물 깍아내리는 데에 일등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12부경의 경전에 의하여 세존의 법율을 배워가야만 사견은 없어지고 정견이 바로 설것입니다
지금 이시대는 대승이 전승되면서 세존의 주옥같은 법구가 사라졌습니다 중생이 중생이면서 중생의 그릇됨을 보지 못하면서 소멸하는 길도 모르고 소멸하여 없어지는 길도 모르면서 부처를 합리화 합니다 본래불이라 아무리 설파하여도 본인에게서 있는 탐진치 삼독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은한 본래불에 근처에도 못갑니다 그래서 육도윤회에 떠돌게 됩니다 차라리 삼독심을 여의어야 본래불에 가까워진다는 진리아래 소멸의 멸증을 일깨워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이 중생제도의 길입니다 그곳에 중생상이 있고 중생상이 사라지는 길이 있습니다
초심님, 제가 잘못 읽었습니다. 중생이 자신을 본래불이라고 자각하는 순간 어떻게 되지요? 불각중생인가요? 본각중생인가요? 본각중생은 본래불이겠지요. 본래불은 성취불이 아닌 고로 중생태입니다. 본래불과 성취불이 본질에서 동등하다는 것이지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므로 중생이 본래불이라는 자각은 참으로 어려운 거라고 봅니다. 생각이야 그렇게 갖는 것는 쉽겠지만 행동마저 그렇게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예요.
본래불, 본래성불 사상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장막을 걷어치우면 그대로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수행은 오직 장막을 제거하는 것이 되겠지요. 불성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장막을 제거하면서 불성을 완성시켜가는 작업이 수행이겠지요. 결국 점수냐 돈수냐는 것인데 저는 점수쪽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님의 마음에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잘못 이해됨이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주장하여 피력하는 것이 올바른 공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불법을 배우되 고운 마음으로 배워가길 기원해 봅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말하는 점수와 돈수는 지금의 공부하는 것과 의미의 뜻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점수와 돈수의 문제는 나중에 인연이 되면 토론해 보실것이구요 탐진치를 멸해가는 것을 점수로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하여 설명해 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몸과 마음 전체가 밥이 되어 밥을 먹어라 이런식으로 삶의 순간 순간을 살아라 그대의 몸과 마음 전체를 집중하게 되면 명상이 따로 없고 수행이 따로 없다. *** 십이시법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