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오늘의 법구]
⊙ 목동이 소를 몰고 가듯이
비유하면 목동이 채찍 휘둘러 배불리 먹이고선 몰고 가듯이 늙음과 죽음도 또한 그러해 목숨을 길러서는 몰고 간다네.
譬人操杖 行牧食牛 老死猶然 亦養命去 비인조장 행목식우 노사유연 역양명거
《법구경(法句經)》 『도장품(刀杖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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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은 도장품(刀杖品) 가운데서도 매우 인상적인 비유입니다. 겉으로는 목동과 소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무상함과 늙음과 죽음의 필연성을 아주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譬人操杖 行牧食牛 비인조장 행목식우
"비유하면 목동이 채찍 휘둘러 배불리 먹이고선 몰고 가듯이"
목동은 들판에 소를 풀어놓고 배불리 먹으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소를 살찌우는 목적은 소를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소로부터 얻을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즉, 우유와 고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리석은 소들은 주인이 잘 먹여 키우는 근본 뜻을 모릅니다.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老死猶然 亦養命去 노사유연 역양명거
"늙음과 죽음도 또한 그러해 목숨을 길러서는 몰고 간다네."
목동이 소를 몰아 목장 안으로 들어가듯 늙음과 죽음의 마(魔)도 그러해 몸뚱이가 나라고 집착하는 어리석 은 사람의 목숨을 길러서는 마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나라고 집착하는 사람은 몸뚱이를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입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기 위해 온갖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의 길임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먹고, 입고, 운동하고, 치료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재산을 모으고 가족을 돌 보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생명을 기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먹이고 잘 보살펴도 늙음과 죽음이라는 목동은 결국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원효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사랑하고 길러봐도 이 몸은 반드시 무너지는 법이요, 부드러운 옷으로 감싸고 보호해도 목숨은 반드시 마침이 있느니라." [喫甘愛養 此身定壞 着柔守護 命必有終]
목동이 소를 몰아 목장 안으로 들어가듯, 늙음과 죽음의 마도 목숨을 길러 몰아가는데 왜 여기에서 벗어나 려 하지 않는가!
부처님께서는 왜 '목숨을 기른다'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보통 건강을 지키고 장수하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자신의 몸을 함부 로 해치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몸을 잘 보살피고 주어진 생명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은 중요합 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몸을 돌보는 것과 몸에 집착하는 것은 다릅니다.
몸을 건강하게 돌보되, '나는 오래오래 살 것이다.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무상(無常)의 이치를 모르고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목동이 소를 살찌우듯 우리는 날마다 생명을 기르고 있지만, 그 생명 자체가 이미 늙음과 죽음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늙음과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게송의 가장 서늘하면서도 중요한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늙음과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 다.
태어나는 것은 곧 늙음으로 향하는 것이고, 늙음은 죽음으로 향합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단 순히 하루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죽음에 하루 가까워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겁주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자비로운 일깨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삶을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 니다.
죽음을 알면 오늘의 삶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오늘 할 수 있는 선행을 하고, 오늘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오늘 한 순간이라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일이 반드시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오늘의 한 생각과 한 말과 한 행동은 지금 당장 만들어 갈 수 있습니 다. 그래서 무상을 관하는 수행은 삶을 포기하는 공부가 아니라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사는 공부입니다.
오늘의 게송이 일깨우는 핵심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목동이 채찍으로 소를 몰고 가듯이 중생은 늙음과 죽음의 채찍에 이끌려 갑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 은 죽음이 찾아온 뒤에 후회하지 않고, 죽음이 오기 전에 깨어서 살아갑니다.
재산도 가져가지 못하고, 명예도 가져가지 못하며, 지위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업과 마음의 흔적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탐욕보다는 보시를, 성냄보다는 자비를, 거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을, 어리석음보다 는 지혜를 선택하는 것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수행이라 하겠습니다.
🌿 이 몸은 잘 길러도 늙음은 다가오고
늙음 뒤에 죽음은 말없이 뒤따르니
한 생각 바르게 하고 무상을 바로 보세.
이 몸을 기르되 이 몸에 집착 말고
젊음 뒤에 늙음 오고 늙은 뒤에 죽음 오니
한 생각 한걸음이라도 발심하고 수행하세.
오늘의 게송은 "언젠가 죽는다"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죽음을 알기에 지금 더욱 깨어서 살라"는 법문 이라고 새길 수 있겠습니다.
젊음도 영원하지 않고, 건강도 영원하지 않으며, 재산과 명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하지' 라는 생각 자체가 무상에 대한 방심일 수 있습니다.
몸을 잘 보살피되 몸의 노예가 되지 말고, 몸이 있는 동안 하나라도 젊을 때 마음을 닦으라는 말씀 또한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염불 한 번, 독경 한 번, 참회 한 번, 자비로운 말 한마디가 모두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발심하여 수행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일 것입니다. 평안하고 청량한 하루 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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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