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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 저
면수 168쪽 | 사이즈 130*210 | ISBN 979-11-5634-466-7 | 03810
| 값 12,000원 | 2021년 07월 24일 출간 | 문학 | 시 |
문의
임영숙(편집부) 02)2612-5552
책 소개
낯설게 다가오는 시(詩)
수필선집을 낼까, 시집을 낼까 망설이다가 한 권뿐인 시집의 외로움도 덜고, 시에 대한 나의 낯설음도 달래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집을 한 권 더 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문학지에 발표하였던 시와 시화전 등에 출품했던 시를 모아 제2시집 “나”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미망에 사로잡혀 누울 자리도 살펴보지 않고, 허욕을 부리는 주책없는 사람의 변명을 측은지심으로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시가 쓰고 싶을 때는 시를 쓸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외람되게 시인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시를 동무처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저자소개
•1939년 경기 광주 출생
•성동고·성균관대학교 졸업
•가원중학교·영등포고등학교 교장
•교육부 윤리편수관·사회과학편수관·편수국장
• 강원대, 동국대, 성균관대, 동덕여대 강사, 용인대 겸임교수
•구리문인협회장(전), 월간 ‘문학저널’ 편집위원(전)
• 서울교원문학회, 경기도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월간 ‘문학저널’에 마음을 여는 수필 연재(146회)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 홍조근정훈장 수훈
•경기도문학상(본상), 좋은문학상(본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공감낭독경연대회(대상)
※ 수필집 『개밥지기』 외 5책
※ 시집 『배꼽』(종이책·전자책)
차례
작가의 변명 | 낯설게 다가오는 시(詩) ㆍ 4
해설과 평 | 존재론적 무의식의 강변에서 만난 시혼의 의미와 가치
- 문학평론가·시인 이충재 ㆍ 141
1 삶과 세월
세월 1 ㆍ 18
세월 2 ㆍ 19
세월이 얼어 버렸네 ㆍ 20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고 ㆍ 21
일희일비하지 마라 ㆍ 22
봄 마중 ㆍ 23
화석이 되어 가는 내 얼굴 ㆍ 24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ㆍ 26
봄의 전령사 ㆍ 28
봄이 오고 여름이 가면 ㆍ 29
봄의 서정(抒情) ㆍ 30
보리풋바심 ㆍ 32
비가 내려야 무지개가 뜬다 ㆍ 34
등나무 그늘에서 ㆍ 36
가을 이야기 ㆍ 38
가을 영가(詠歌) ㆍ 39
가을 동화 ㆍ 40
가을이 깊어간다 ㆍ 41
가을 소묘(素描) ㆍ 42
단풍나무 숲 ㆍ 43
가을이 떠나려 하네 ㆍ 44
새옹지마(塞翁之馬) ㆍ 46
겨울바다 ㆍ 48
겨울 소묘(素描) ㆍ 49
2 삶의 양태
그리움 ㆍ 52
사랑 이야기 ㆍ 53
모정(母情) 1 ㆍ 54
모정(母情) 2 ㆍ 55
치사랑 ㆍ 56
오래오래 ㆍ 58
추억의 그림자 ㆍ 59
인연의 강 ㆍ 60
돌팔매 ㆍ 61
새벽달 그림자 ㆍ 62
뻐꾸기의 탁란 ㆍ 64
염통에 털 난 놈 ㆍ 66
눈물로 타오르는 촛불 ㆍ 68
결국 하나가 되네요 ㆍ 70
세상은 요지경 ㆍ 72
게발선인장 ㆍ 73
미세먼지 경보 ㆍ 74
눈동자 값은 ㆍ 75
소나무 분재(盆栽) ㆍ 76
풍경 소리 ㆍ 77
지훈 예술제 ㆍ 78
열심히 살았는데 ㆍ 79
오일장에 가면 ㆍ 80
희망을 노래하자 ㆍ 82
3 삶과 영혼
나는 어디에 있는가 ㆍ 85
나 ㆍ 86
나! 돌아가고 싶다 ㆍ 88
묻지 마라 ㆍ 89
여덟 매미 ㆍ 90
희미한 어머니 그림자 ㆍ 91
흔적은 무슨 흔적 ㆍ 92
언제 어디서 만날까 ㆍ 93
어디로 가세요 ㆍ 94
암(癌) 병동 ㆍ 96
혼비백산(魂飛魄散) ㆍ 97
하늘나라 ㆍ 98
내 고향 하늘나라 ㆍ 99
잠들기 영 글렀네 ㆍ 100
꿈에 그려보는 하늘나라 ㆍ 102
그냥 그렇게 어울려 살다가 ㆍ 103
죽음이 두렵지 않다 ㆍ 104
죽고 싶을 때가 있다 ㆍ 106
회초리를 거두소서 ㆍ 107
하나님께 띄우는 편지 ㆍ 108
코로나-19의 습격 ㆍ 110
코로나-19의 광풍 ㆍ 112
천수만 시인 노선관 ㆍ 114
4 삶과 여행
호수에 잠든 내 고향 분원 ㆍ 118
보물섬 마라도 ㆍ 120
꿈결에 다녀온 금강산 ㆍ 122
회색 하늘의 개성 ㆍ 124
해전사에 빛나는 진포대첩 ㆍ 126
신한촌 기념비 ㆍ 127
계림기행 ㆍ 128
팔순에 오른 황산 ㆍ 130
황산의 짐꾼 ㆍ 131
안티고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 ㆍ 132
로렐라이 언덕에 올라 ㆍ 134
꿈의 도시 베네치아 ㆍ 136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ㆍ 138
출판사 서평
존재론적 무의식의 강변에서 만난
시혼의 의미와 가치
-이충재(시인, 문학평론가)
1. 선생님을 뵈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성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서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 앞에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이 이루어놓은 인공적 문명의 산물이란 빌딩 숲 사이로 난 골목길을 거닐면서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물어가는 한명희 선생님의 작품들을 받아들고 읽었다. 누가 그 길을 걸어보았을 것이며, 그 숱한 삶의 편린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겠는가? 이는 그 지점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뒤를 잇는 많은 사람들은 그분들에게 신세를 톡톡히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인륜으로서의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다. 다소 남아있다고 해도 걸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며 또한 중심을 잃고 몹시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어른으로서 또는 멘토를 만나는 것조차 여간 힘에 겨운 것이 아니다. 선생으로서의 조언자를 만나고 그를 따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관계망에 구멍이 숭숭 난 그런 시대를 생각하면 몹시 고달프고 마음이 아프다.
이 거칠고 공허한 시대에 멘토다운 멘토, 어른다운 어른, 선생다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행복한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가 그분의 일생이 녹아있는 시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얻은 것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는 다른 장르와 같지 않아서 시를 쓰게 된 처음과 나중이란 경로를 통해서 시를 쓴 이의 생애와 인생관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온다는 장점을 부디 예로 들지 않더라도, 시를 대하다 보면 시인의 영혼과 정신의 결과물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 <방문객>과 같이 그 한 사람의 방문객은 단순 만남이 아닌 그의 일생 전부와 더불어 오는 큰 손님으로서의 인연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명희 선생님의 시작품을 감상하게 됨으로 인해서 그분의 일생과 철학과 사상을 가늠해 볼 수 있기에 더욱이 호기심이 작동하는 것이다.
행복하게도 필자는 여러 해전부터 정기적으로 한명희 선생님(시인, 수필가)과의 만남을 갖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어른으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살아온 이력을 통해서 소중한 교훈을 누려오고 있다. 아마도 이 시집은 그 만남에서 못다 나눈 주제들의 총체적 결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명희 선생님은 교육자 중 교육자이셨으며, 어른 중 어른이란 것을 만남을 통해서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번 시집을 통해서 그의 존재론적 사유의 깊이와 흔적 그 진위를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칼 구스타프 융은 <영혼을 찾는 현대인>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려하면 사람이 고도로 의식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말로, 사람은 세상의 끝자락에 닿을 때야 완벽한
현대인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이미 버려지거나 지나쳐온 모든 것을 과감히 뒤로 밀어버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 비롯될 허공 앞에 서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할 때에 비로소 현대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깊이 이 의미를 새겨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는 정신의 표현이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정신의 표현에 주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신에 유의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정신의 작동에 관심을 쏟지 않고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21세기 오늘날 우리 인간을 괴롭혀 오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정신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멘토를 알고, 그 멘토들과의 관계성을 면밀하게 이어가야 할 필요충분 요소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잠언이 한명희 선생님의 시와 그간 발간한 수필들을 통해서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를 드린다.
이 시집은 한명희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이란 점에서 수필집에서와 여러 모임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이고 어른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이번 시집에서 발견하고 그 은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아 본다.
오래전 둥지 철학을 개척한 철학자 박이문 교수의 고백이 뇌리에 삼삼하다. 아마도 박이문 교수의 고백이 한명희 선생님의 시인됨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 한다.
“나는 그동안의 시작과 철학적 저서들을 습작으로만 믿고, 날마다 세상을 매료할 만한 철학적 시와 세계를 바꿀만한 시적 철학 체계를 머릿속에서 창작했다가 구겨버리고, 구사했다가 나는 나 자신에 물어보곤 한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고 있었던가?”
이 물음이 바로 한명희 선생님이 이번 시집 『나』에서 독자들과 자신 스스로 말 걸기를 하는 시도인 셈이다. 박이문 교수는 노년을 시인으로 살고 싶었다고 뒤늦게 고백하신 것을 기억한다. 아마도 한명희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시리라. 그래서 은근슬쩍 시집으로써 삶을 결산하자며 제안을 드린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그 시의 숲에 들어서 한명희 선생님의 삶이 이루어낸 영혼의 범위 안에서 만난 들풀과 나무와 꽃과 시원한 바람과 돌과 흐르는 계곡물과 이마에 묻어난 땀방울의 여운과 사람을 느끼고 만나보기로 하자.
2. 시의 숲 풍경을 경험하며
거울을 들여 다 보니
낯선 얼굴이 보이는데 생소하다
우글쭈글 굳어진 내 얼굴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자랄 때는 싱겁게 잘 웃었는데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아파오니
웃음은 사라지고
마음은 논둑의 허수아비처럼 쓸쓸하다
늘 웃음 띤 얼굴로 살다 보니
가까운 글벗이 웃는 바위 같다고
소암(笑嵒)이라 아호까지 지어주었는데…
망구(望九)의 나이를 넘기고 나니
웃음은 저절로 사라지고
얼굴은 화석이 되어가고 있다
빙긋이 웃음 짓는 내 얼굴
보고 싶고 그립다.
-<화석이 되어 가는 내 얼굴> 1, 2, 3, 5연
오래전 만났던 중국의 문호 지셴린의 고백이 떠 오른다. “나는 그 길을 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먼 길을 걷다 드디어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곳이므로, 그리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여느 노인과 달리 어린 여자아이처럼 무덤 이외에 백합과 장미꽃을 보았다는 점이다”(수필 <여든을 술회하다>의 일부)
한명희 선생님의 위의 시를 보면 삶의 망루 그 꼭짓점에서 백합과 장미꽃이 아닌 인간 자신의 본질을 발견한 것이다. 누구나 할 것 같으면서도 사실 놓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을 시인은 깊이 관조하기도 하고 관상을 주도면밀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앞으로 남은 생애의 가치와 의미 있는 삶의 지대로 나아가는 용기와 에너지로서의 그 힘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어른 흉내를 내거나 어른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한명희 선생님은 조용히 삶의 역사 속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관계성과 신 앞에서와 가족들과 친구들과 많은 제자 앞에서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 주시고 계신다. 그래서 시는 시인의 삶의 민낯을 드러내 진실되고도 순수한 모습 그대로를 선명하게 내보이는 투명한 거울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하늘 너머 그리운 내 고향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가을 이야기 동무삼아
쉬엄쉬엄 발걸음 떼어 놓는다
버스럭버스럭 뒹구는 낙엽
연초록 고운 꿈 담아
알록달록 단풍잎 우표 붙여
파란 하늘에 가을 이야기 띄운다
여물어 툭~ 툭~ 떨어지는 아람
덱데굴덱데굴 굴러가는 알밤
바구니 바구니 가득가득 담아
가을 이야기 실타래를 푼다.
-<가을 이야기> 전문
어느 누구인들 자신이 느껴 본 ‘정’과 ‘사랑’과 ‘그리움’이 물씬 배어있는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에게는 고향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이 또한 문명의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불행한 요소란 점으로 볼 때 우리는 인간의 진실된 ‘격(格)’이나 ‘상(象)’을 잃고 살아가는 불온한 시대에 그 늪지대 중심을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힘겹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하건대 한명희 선생님의 고향은 기약 없는 이승에서의 그 어느 지점을 떠나서 영원히 존재하게 될 내세적 이미지와 연계하여 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천상병 시인의 시에서의 고백처럼 잠시 소풍 왔다가 돌아갈 천국을 연상할 수 있다. 이것이 망구에 이른 노 시인의 소망이란 점에서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재발견케 하는 비밀통로로서의 위의 시를 대하면 의미가 깊다. 위의 시는 또 다른 시 <가을이 깊어간다>와 <그리움>과 맥을 같이 하여 감상하다 보면 그 의미가 색다르지 않음을 기억할 수가 있다.
살아온 날
되돌아보니
열심히 살았는데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아쉬움만 가득 하구나
굽이굽이 이어온 굴곡진 삶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
믿음 소망 사랑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라 아름답게 피어나라.
-<열심히 살았는데> 전문
단순해 보이는 고백의 시 같은데, 결코, 단순하지가 않고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한명희 선생님의 연륜이 깊기 때문이다. 일전에 임상체험 동영상과 함께 낭송된 시(<그리움>)를 보면서, 남다른 애잔함이 스며 그 영상을 필자 개인 블로그에 보관 중이다. 누구나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 그 노래, 그 아포리즘이 빛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삶을 관조하면서 살아낸 사람 그것도 가치 중심이 되는 생애를 살아온 진정성이 있는 사람의 고백만이 읽고 듣는 이의 가슴을 치는 공감력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위의 시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누구나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감사할 줄 아는 열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나 주변 인물들이 보기로는 한명희 선생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데서 위의 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의미와 가치를 담은 소박한 질그릇 보화이며 충분한 교훈이 담긴 보고(寶庫)로서 읽혀지는 것이다.
거울 속에
뚱뚱하고 꾸부정한 노인이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나(我)라고 한다
그 노인이 정말 나 일까
몸과 마음
그때그때 수시로 변하는데
어느 시점의 내가
나의 참모습 일까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또 변할 터인데…
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심장을 바꾸고
골격까지 바꾸어도
그 사람이 나 일까
한 사내가 뇌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뇌를 기증한 사람일까, 받은 사람일까
누가 영혼을 본 일이 있는가
눈에 보이는 육체도 수시로 변하여
나를 찾지 못하는데
형체도 없는 영혼 가운데서
나를 어떻게 찾아낼까
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찾아 오늘도 길을 헤매고 있다.
-<나> 전문
대한민국은 성형 대국이라고들 한다. 기뻐해야 할까? 말까? 한때 강남에서는 성형시술을 위해서 곳곳에 호텔을 신축하는 등 이상한 건축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성형 대국으로서의 웃지 못할 위상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겉모습을 쉬 뜯어고치는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떳떳하게들 살아내고 있다. 한명희 선생님은 이와 같은 풍조를 빗대어 자기 겉모습의 변형을 불편해하고 있으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취 주의, 성공 추구 주의자들로서의 자아 성장을 꾀하느라 인성과 성향마저 변형시켜 버린 행태를 무의식, 의식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에 자신은 누구인가? 묻고 있으며, 또한 독자들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며 또 누구인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 사람이요, 정체성을 잃지 않은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구에 이르러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늦게나마 자아를 발견하여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듯싶다. 동시에 인생 후배에게 부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고 회복시켜 나답게 시대를 거슬러 살아달라는 당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메시지로서의 당부가 위의 시에 깊게 내재해 있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옷매무시를 다잡아 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깊은 잠언이 담긴 작품들이 유독 제3부 「삶과 영혼」에 많다. 다른 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 돌아가고 싶다>, <묻지 마라>, <흔적은 무슨 흔적>, <어디로 가세요>, <언제 어디서 만날까>, <잠들기 영 글렀네> 등의 시가 그 예다.
여든셋 나이에 들어서니
몸은 이곳저곳 아파오고
마음은 시간 따라 쉼 없이 흔들리네요
죽음을 준비하라는 신호 같네요
떠날 준비는 대충대충 해 놓았지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임종체험도 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등록하고
상조회 부금 붓는 것도 끝내고
고향 뒷산에 납골당도 준비하고
세상 인연도 하나둘 정리하고
어설프지만 신앙생활도 하고 있지요
하지만 내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가끔 죽음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아름다운 인연이 발길을 붙잡네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는 새봄
목련은 다시 하얀 꽃을 피우겠지요
정처 없이 흘러가는 저 흰 구름
어디쯤 가다 인연의 끈을 놓을까요
-<하나님께 띄우는 편지> 1~4연
필자는 한명희 선생님의 생애의 끝자락에서 부르는 인생 송가를 들라면 단연코 위의 시를 들겠다. 지식인으로서 교육계에 일생을 헌신해 오신 선생님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얻어 살아가시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인데도 어쨌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일생을 당당히 살아오고 계신다. 그 삶의 종착역에서 부르는 송가로서의 위의 시가 다가오는 것은 평소 선생님의 사상과 풋풋한 신앙고백을 간헐적으로 들은 바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위의 시 전문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고백이자 애원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매 문장의 종지부에 찍힌 방점은 그렇게 가볍지 않은, 목적을 잃은 혹은 가 닿아야 할 본향이란 영원한 주거지를 상실한 이들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 확신, 그 소망, 그 간절함이 기도되어 편지 형식의 시로 탄생했다는 것은 한명희 선생님의 신앙의 절정 그 중심의 신관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신앙 운운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르고 행하거나 그분의 향기를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처신들을 누누이 목격당하는 때에 한명희 선생님의 이 같은 진솔한 하나님 전상서에 준한 신앙 시는 우리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나쁜 그리스도인, 유사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시급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어떠한 유형의 전상서를 띄워 드릴 수 있을까?
3. 시의 숲을 돌아 나와 세상을 보며
서너 날 즐거운 마음으로 한명희 선생님의 작품 84편에 푹 빠져 살았다. 참으로 행복한 숲을 유영하다가 돌아와 문학 일기를 쓰듯 편안한 마음으로 평설을 쓸 수 있었다. 한 분의 일생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구, 그 무엇보다도 큰 행복이며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선생님의 시집과 함께 진정성 깊은 독자들의 품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명희 선생님의 시를 감상하다가 몇몇 문호들이 생전 문학을 개념화시키거나 독자들에게 편지 쓰듯 남긴 조언이 생각이 났다. 그 대략들이 한명희 선생님의 문학관과 일맥상통(합집합)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연관 지어보고자 한다.
지셴린은 <사람과 자연>이란 수필에서 관계성을 말하기를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잘 처리해야 하는 세 가지 관계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이고(<봄의 서정>, <비가 내려야 무지개가 뜬다>, <단풍나무 숲>, <겨울 소묘>, <소나무 분재> 등), 둘째는 가족관계를 포함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며(<보리 풋바심>, <모정 1, 2>, <치사랑>, <희미한 어머니 그림자>, <호수에 잠든 내 고향 분원> 등)이고, 셋째는 마음속에 있는 이성과 감정의 대립과 균형 사이의 관계다(세월 1, 2>,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고>, <등나무 그늘 아래서>, <새옹지마>, <미세먼지 경보>, <희망을 노래하자>, <언제 어디서 만날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등)이다. 이 세 가지를 잘 처리한다면 유쾌한 인생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삶이 너무도 고달파진다. 사람은 본디 자연의 일부다.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시를 쓴다는 것』에서 고백하듯이 ‘일상생활과 시’라는 것은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직접,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현실의 생활에 반드시 뿌리내려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러니까 생활이 바뀌면 시도 바뀐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한명희 선생님의 시와 수필 문장이 빚어내는 철학이나 사상이 바로 일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창작된 작품 세계란 점에서 충분히 독자들의 사랑과 관계성을 잇기에 족하다.
보르헤스는 말하기를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삶이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 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이다. 역시 한명희 선생님의 시 세계가 이와 흡사한 창작 배경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의 문인들이나 제자들이 그 무의식, 의식의 시 사랑을 배워야 함이 맞다고 생각한다.
김규동 시인도 그의 에세이 『나는 시인이다』에서 고백하듯이 사랑. 죽음. 생명은 영원한 시의 주제가 된다. 한마디로 삶을 떠난 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혹 있다 하더라도 형태는 시겠지만 생명이 없고 죽은 시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살아있는 시는 무엇이냐? 펄펄 끓는 감정이 담긴 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시를 만들어내는 게 시인의 존재 이유이고 살아있는 목적인 거다.
이상에서 보듯이 한명희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 『나』는 그 어느 독자가 만나더라도 편안한 위로가 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확신한다. 요즘 출간된 시집을 보면 지나치게 수사적이고 기법에 치중한 나머지 독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채, 독자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제도도 아니요, 독자도 아니요 더욱이 천민자본에 익숙한 사회도 아니요, 바로 순수성과 진정성과 직접, 간접적 자기 경험의 부재를 안고 글 장난, 문단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한명희 선생님의 시 세계는 본인의 고백(“나에게는 아직도 시는 수필과 다르게 낯설게 다가오고 있습니다”)은 박수와 존경의 인사말을 받기에 족하다. 다
름 아닌 작가의 변명이란 명분의 그릇에 담긴 이 고백 때문이다. “내가 쓴 수필이나 시를 읽고, 읽은 사람이 부르는 대로 수필가도 되고 시인도 될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시가 쓰고 싶을 때는 시를 쓸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외람되게 시인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시를 동무처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필자는 감히 한명희 선생님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선생님은 분명 가장 순수한 일상과 삶을 길어 올리신 천생 시인이시다. 철학과 사상의 변이와 무차별적 기교주의 여물통에서 보석으로서의 시를 건져 올리시는 천생 시인이시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평안한 영혼의 소유자 되셔서 좋은 작품 많이 써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과 많은 그리고 깊은 시간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본문 일부
뻐꾸기의 탁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망종 무렵
희미한 달그림자 따라 어둠 내리면
어디선가
뻐꾸기가 뻐~궁 뻐~궁 애잔하게 울어 댄다
무슨 한(恨)이 서려 저리도 슬피 울까
여름 철새 뻐꾸기
둥지 틀 줄 모른다
알도 남의 둥지에 낳는다
다른 새가 부화(孵化)시켜 놓으면
자기 새끼 데리고 간다
얄미운 새라고 손가락질한다
조물주는 뻐꾸기에게
왜, 부화하는 능력을 주지 않았을까
자기 알을 탁란(托卵)하여 놓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처지가
안타깝고 부끄러워
저리도 애잔하게 우는 걸까
천형(天刑)을 안고 살아가는 뻐꾸기
손가락질 거두자
슬픔을 딛고 긴 여운으로 다가오는
뻐꾹 뻐꾹, 뻐꿍 뻐꿍, 쑥꾹 쑥꾹
뻐꾸기시계 경쾌하게 새벽을 연다
땡! 땡! 땡!
나
거울 속에
뚱뚱하고 꾸부정한 노인이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나(我)라고 한다
그 노인이 정말 나일까
몸과 마음
그때그때 수시로 변하는데
어느 시점의 내가
나의 참모습일까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또 변할 터인데…
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심장을 바꾸고
골격까지 바꾸어도
그 사람이 나일까
한 사내가 뇌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뇌를 기증한 사람일까, 받은 사람일까
누가 영혼을 본 일이 있는가
눈에 보이는 육체도 수시로 변하여
나를 찾지 못하는데
형체도 없는 영혼 가운데서
나를 어떻게 찾아낼까
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찾아 오늘도 길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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