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구하는 자의 복 시119:2.
(2009, 7, 5, 주일 저녁 설교)
오늘 이 시간은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고, 죄인들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된 후에 우리의 삶이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하던 자연인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된 후에 우리는 주님을 찾고, 기다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사는 삶의 방식은 이것입니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시105:4).
우리는 항상 주님과 그분의 능력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의 지혜를 구하면서 삽니다.
우리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것은 주님 한 분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무엇을 찾습니다.
저는 노다지를 찾아 전국의 산을 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금, 은, 구리, 철광, 석탄 등 다양한 광물질들을 찾아 나서서 그것을 개발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금광을 발견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금이 날만한 땅을 찾아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심마니들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삼을 캐서 파는 사람들인데 아침, 저녁으로 목욕재개를 하고 산신령에 절을 하며 눈을 밝히 열어 산삼이 보여 달라고 기도하고, 산삼을 발견하면 다시 그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도자들은 도를 찾아 수행을 합니다.
처녀들은 신랑감을 찾고, 남자들은 신부 감을 찾습니다.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찾고, 스승은 자신의 모든 것을 계승해 줄 제자를 찾습니다.
저마다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도 있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을 찾아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사관은 범죄자를 찾고, 범죄자는 숨을 곳을 찾습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무덤에 들러 죽은 예수님을 찾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5).
동방에서 온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궁에 들러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주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를 찾고 기다렸습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들은 광야로 나가 보았습니다.
선지자를 찾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침례 요한에게 나갔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마 11:7~9)고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찾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며, 자신을 찾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찾습니까?
오네시보로는 로마에서 부지런히 바울을 찾았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딤후1:16~17).
무엇을 찾든지 누구를 찾는 데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찾습니까?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직장을 찾고, 배우자가 없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찾고, 건강이 없는 사람은 건강을 찾을 것입니다.
지혜와 능력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을 찾고 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정확히 알기를 소원합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소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복이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119:2).
주님을 찾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종교적 관심이나 지적 호기심에서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궁금한 것 몇 가지 물어보고, 신비한 체험이나 능력을 얻어 볼까 해서 주님을 찾는다면 주님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자들이 주님을 만나는 복을 얻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인생이 변화되고, 모든 필요를 채움 받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우리는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고, 부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주님을 찾지 않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다면서도 주님을 찾지 않는 자들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자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만이 있지 하나님이 없습니다.
일이 실패하거나 잘 안될 때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람이 짐승같이 되면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렘10:21).
말씀에 따르면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주님을 찾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릭석은 자’요, ‘우준한 자’란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면 언제나 찾고, 부를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는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도무지 찾을 수 없다면 찾는 노력이나 시도가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사45:19).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찾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성령께서는 주를 찾는 자들의 마음속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보내사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사48:16).
하나님을 찾을 때 그는 전도지를 접할 수 있고, 방송 설교 테프를 얻을 수도 있고, 어떤 그리스도인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교회로 오라는 초청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해 주시고, 찾는 자의 마음속에 선명하고도 깊은 만남을 이루어 주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1~14).
하나님의 말씀은 심히 가까이 있습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 내 얼굴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27:8).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언제나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언제나 만날 준비가 되어 계신 분이십니다.
다급하고 황망한 마음에 주님을 찾고 부르지만 도무지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되지 않아서 애타게 마음을 졸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과연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답답하고 초조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주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해서 주를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얼굴을 들고 계시지만 사람이 얼굴을 돌린 채 다른 곳을 향할 때 달리면 달릴수록 주님과 멀어집니다.
방향이 틀리면 열심을 부릴수록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얼굴을 돌리고, 마음을 돌려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돌아서지 않은 채 주님을 찾고, 죄를 버리지 않은 채 주님을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진리임을 알고 믿습니다만 한 면만 볼 수는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시험과 환란의 순간에 특히 그러합니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신31:17).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때 그들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숨기셨을 때 그들은 큰 재앙을 당했습니다.
죄로 인해 당하는 징벌이었고, 환난이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어려움을 당해 금식을 하며 기도를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기실 때 그런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면 좋겠지만 전혀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에도 주님을 바라고 찾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 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사8:17).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내 안에 마음 상태, 감정 상태가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닙니다. 그렇게 느껴질지라도 그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목사님 감사해요. 그~런~데~요 가끔은 주님이 제 기도를 정말 듣고 계신가 하는 의구심의 가졌다가 회개한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