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많이 가기로 알려진 대방골입니다. 국회앞 진미파라곤 지하에 있죠. 오는 사람들 구성이 그래서인지 룸위주로 돼있구요. 영덕 대게에 흑산도 홍어, 전복회와 영광굴비까지, 종류도 그렇지만 가격도 보통은 넘습니다.
얼음물에 말은 밥에 마른굴비 한조각. 제대로 하는 한정식집을 찾기가 힘들죠. 그나마 방식은 알고 있는 곳이더군요. '내 나라 제철 제료를 제대로 내놓고 있는 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뭘 먹어볼까 '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주가 7000원이라 마실까, 말까 고민도 좀 했구요.
그런데 조금 의외의 메뉴를 발견했습니다. 남도 한정식을 전문으로 한다는 한정식집, 고기 메뉴가 다 미국산이었습니다. 150g에 45000원이면 고급 한우전문점의 한우 1++ 등급의 가격과 비슷하고요. 잠깐 제 눈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블루리본 서베이라는 국내 레스토랑 평가지의 리본을 받기도 한 한정식집, 게다가 메뉴 구성에 이렇게 내공이 넘치는, 간만에 만난 제대로된 한정식집에 미국산 소고기라니요. 물론 팔지말라는 법은 없지만 왜 굳이 미국산을 썼는지는 좀 의아하더군요. 벌교 꼬막과 영광 굴비, 흑산도 홍어에 여수 갓김치까지 공수하는 마당에 왜... 미국산 소고기의 장점은 '싸다'는 것인데 가격은 또 왜 그런지...
순전히 호기심 차원에서,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약간 말을 더듬더니 어색하게 대답을 피하더군요. 늦은 시간이었고 퇴근을 앞둔 종업원들을 계속 붙잡아두기도 미안하고 해서 더 캐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다음날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기 메뉴가 한우인가요?" 했더니 처음에는 "한우 맞습니다"라고 했다가 "확실하냐"고 되물었더니 잠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난 후 "한우는 아니다"라고 답하더군요. "대방골에 미국산 소고기라니, 그리고 그 가격이라니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건 그런데, 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같이 밥을 먹던 분의 농 섞인 말을 빌리자면 "여기 국회 앞이잖아. 주인도 장사해야지, 별 수 있겠니?"
찬이 깔끔하고 정성스러워 다시 한번 더 갈까, 생각도 들지만... 이 의문이 풀리기 전까지는 다시 들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인지.
한정식집에 미국산 소고기 갖다 놓은 걸 가지고 별 희한한 음모론을 펼친다며, 같이 밥을 먹던 사람이 핀잔을 주더군요. 입에 맞는 반찬 몇가지를 청해서 더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더군요.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계산서를 갖다달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맛있게 잘 먹고도 이렇게 찜찜하기는 또 처음이라는 얘기를 주고 받으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지어댔습니다. 제가 과민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