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9월22일
마태복음 26:47-75
핵심 구절 63-64: “예수께서 침묵하시매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냐 ?우리에게 말해 보아라 하시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말이 그러하도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특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을 맛보게 하시는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 곧 하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1. 예수님의 체포 (47-56)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말씀하고 계실 때,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유다가 예수께 다가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며 입맞추었습니다. 바로 그때, 군사들이 예수를 붙잡았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칼을 뽑아 성전 경비병 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요한복음 18:19). 그러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넣어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이 나를 위해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요한복음 26:52-53)
그리고 예수께서 말고의 귀를 손으로 만지시니 즉시 고쳐졌습니다(누가복음 22:51). 만약 예수께서 체포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면, 아버지께 즉시 12군단이 넘는 천사들, 즉 7만2천 명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셨기에 체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2. 산헤드린 앞에 선 예수님 (57-68)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라고 명령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고 갔습니다. 가야바는 산헤드린을 소집했고, 율법사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 권한은 오직 로마 총독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사형할 구실을 찾아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사형을 요구하려 했습니다.
예수께서 산헤드린 앞에 서시자, 많은 증인들이 나와서 그를 고발했습니다. 수많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고발들이 거짓임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건대, 네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냐? 우리에게 말해 보아라.” (63)
그러자 예수께서 침묵을 깨고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다!”
예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64)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시다가 이제서야 침묵을 깨셨을까요? 세 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기 죄목이 결국 거짓으로 드러날 것을 아셨기에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여기서 „성전“은 자신의 몸을 의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거짓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자신 말씀의 참된 의미가 때가 되면 올바르게 이해될 것이라고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한 거짓된 많은 비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비방에 대해 화를 내거나 거짓 비난을 반박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이 날뜁니다. 이런 때에 이런 비방이나 거짓 선지자들에게 우리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우리의 힘을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몰몬교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1820년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몰몬경을 저술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몰몬교의 주요 인사들을 인용하여 조셉 스미스에게 약 40명의 아내가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한 명은 겨우 14살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오늘날 신천지 교인들은 공격적인 행태를 보입니다. 그들은 교주 이만희를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빛“, 즉 메시아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교단의 거짓과 공격성을 알고 있지만, 이 교단과 대항하는 데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침묵을 깨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는 대부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오늘날 독일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는 것은 제가 내린 결정의 결과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농업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2학년 말에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가난해서 대학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저는 대학에 다닌다는 것은 완전히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위험을 무릅쓰고 학교를 옮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결정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믿음으로 인도하시고 독일 박사과정 유학을 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말한 그대로다"라고 대답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대답이 십자가에서의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질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왜 그분은 이 길을 택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죽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셔야만 했을까요? 이는 예수님이 나와 당신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양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반하는 생각, 말,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기꺼이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세워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믿지 않았고, 그분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해쳤습니다.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웁니다. 이 장벽은 세상의 어떤 장벽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질문, "당신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십니까?"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희생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은 야망이나 탐욕과 같은 인간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감사에 의해 움직이는가?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깨고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천국의 왕이라는 영광스러운 정체성을 선포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맞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6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놀라운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소식은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도 선포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식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과 우리에게 큰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죽음과 지옥은 예수님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하시고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 그 이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순절에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었다. 그들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을 때 두 천사가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께서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더라”(사도행전 1:9-11).
두 천사가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맞아들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와 죽음과 마귀 권세에 대한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과 천국을 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때가 되면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그분의 재림에 대해 전하신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헤아릴 수 없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시며,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 모두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라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그분은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셔서 우리를 하늘나라 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이 세상에서 얻으려고 애씁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며 반드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께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에 소망을 두는 것이 현명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2:4).
3.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69-75)
베드로는 예수님께 “내가 당신과 함께 죽더라도 결코 당신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26:35)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따랐지만, 거리를 두고 따랐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여종이 “당신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계셨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를 기억하고 밖으로 나가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의지했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나타내신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자기 모습을 다음과 같이 계시하십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인자가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64).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까?
물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부활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어야 합니다. 바로 하늘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분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큰 기쁨과 승리의 확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