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땡감 한입 베어물고-- (해묵은 노트에서)
노거수
지난 백중날 서울 관악산 기슭 강감찬 장군의 사당이 있는
낙성대 근처 인도를 걷고 있을 때 이었다.
날씨 덥고 따가워 부지런히 발길 옮기고 있는데
머리맡 가로수에서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이 스르륵 하며 내 발길 앞에 떨어졌다.
눈 들어 보니 한 10여년 됨직한 감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한나절 햇살에 진녹색의 넓은 잎이 빤짝이고 있다.
잎사귀 사이사이 애기 주먹만한 풋감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까 떨어진 물체가 바로 어떤 연유로 나무 꼭지에서 빠진 풋감이다.
장기판 궁짝 만한 그 놈을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주어 들고
누가 보든 말든 농약을 첬던 말든 한입 물었다.
마치 내 고향 마당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사단 이다.
타임머신(Time Machine) 타고 과거 아닌 유년의 세계로 여행하는
그 놈의 회상병(回想病)이 또 도지기 시작 했다.
사실 음력 7월, 백중 무렵은 농촌에서는 잠시이지만 망중한의 기간이다.
호미씻이. 백중놀이 천렵등도 이맘때 하고 선산에 벌초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힘 남아 넘치는 소 팔아가는 일이며 초저녁 마당가 쑥내 나는 모기 불 피워놓고
멍석위에 온 가족이 모여 작은 하모니카 같은 올 강냉이를 먹으며
올 가을 풍년농사 되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낼 계획을 의론하는 절기이다.
방물장수 점이네가 다음 파수에 들으면 재 넘어 양짓마 배나무집 키 큰 총각에게
선을 달아 중신을 부탁하기도 하며,
아니면 수세 좋아 잘 자란 삼대(대마)를 베다가 앞 개울가에서
삼궂이를 하기도 하는 때이다.
내 고향은 소위 안동문화권에 속하는 곳이라 안동 명물 안동포 삼베가 있듯이
우리 마을에서도 삼베는 특산품인 적이 있었다.
비탈 밭에 기른 삼대의 섬유를 벗기는 과정을 보면,
삼을 베어다 잎을 따고 회초리 줄기를 간추려 가마니나 멍석 등으로
드럼통처럼 둥치를 만들고. 이제 개울가에 땅을 두 자정도 파고
그 위에 큰 돌 작은 돌을 얼기설기 돌탑 쌓듯 쌓아 올리고
아래쪽을 파낸 구덩이에서 센 불을 피운다.
한참 있으면 그 돌덩이 들이 거의 붉은 빛을 낼 정도로 될 때
앞의 삼단 뭉치를 이 뜨거운 돌에 세우고 그 위에다가 개울물을 동이로 퍼다
한꺼번에 붓는다. 이 때 경험있는 어른은 “호 박 이 요-”이요 하고 외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마치 요즘 뻥튀기 아저씨들이 터트리기 전
근처 사람이 놀라지 않게 호르라기를 불거나 뻥이요!하는 소리와 같은 이치이나,
더하여 이 말에는 이 삼껍질이 호박같이 무르게 잘 익어
섬유가 잘 벗겨지게 해 달라는 소원도 들어있는 것 이다.
삼줄기를 타고 내려오던 물이 아래 뜨거운 돌에 닿아 수승기가 되고
이 수증기가 되돌아 상승하면서 생 삼줄기가 푹 익게되어
쉽게 잘 벗어지게 하는 좀 전근대적 방법이나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 수증기에 잘 익은 삼 대를 개울물에다 식힌 다음
하나하나 껍질과 속대사이 손가락을 넣어 벗기고 말리고 손질한 다음에
다시 물에 흠뿍 적시어 보통사람 키나 되는 섬유를 잇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 일을 <삼 삼기>라고 하고 마을 아낙들의 몫이다.
이 때 실오라기의 가늘기가 삼베의 등급을 결정하는데
가늘수록 고운 고급 삼베가 되는 것이다.
보통 삼 삼기는 아낙들이 품앗이로 한다.
감자골댁. 풍산댁 마전댁 용궁댁 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주인 집 대청이나 마당가 나무밑에 앉아 잡답도 하고 우스개 소리도 하며
더위와 시름을 잊어가며 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 보다 능률적이다.
젖은 삼 한 올을 앞니로 물고 가볍게 훑어 가늘고 연하게 만든 다음에
이것을 다른 줄기의 한끝에 겹치게 잇대어 연결하여 허벅지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밀어 비벼주면 서로 말려서 연결 된다.
이 작업이 삼베 전체의 길이를 정한다.
진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여인네 흰 무릅살이 벌겋게 피가 스미기도 하고
입 언저리는 삼껍질과 섬유파람이 붙기도 하고
입안에 신맛 쓴맛이 나고 찝찝해진다.
간식은 고사하고 보리밥 한 덩이가 꿀맛일 그 때
허전 하고 쓴 입안을 위해 주인마님은 마당가 흙돌담 가에
매미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하고 있는 감나무 낮은 가지에서
설익은 땡감 몇 주저리를 꺾어 온다.
익을 날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땡감을 무턱대고 한입씩 물고 턱을 움직인다.
맛은 떫으나 입안이 좀 함함해지는 느낌도 돈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제 엄마 뭐 맛있는 것 먹는 줄 알고 눈치를 본다.
입 자죽이 남은 땡감을 D자 모양 삼칼로 잘라 아이에게 건낸다.
아이의 인상이 벌레 씹은 것 같아진다. 그래도 삼 삼는 일은 계속된다.
졸거나 인상 찌푸리는 사람 없이 웃으며 한다.
이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삼 줄기를 이齒로 훑으니 삼속의 대마 약 성분이
알게 모르게 입안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 이유이다.
이렇게 한 삼들이 베를 짤 수 있도록 하는 사전 작업은 아직도 멀었다.
“베날기‘ 베놓기” 베메기“등의 과정을 거처 드디어 베틀에 올라간다.
바지런한 아낙은 일주일 정도 걸려 한필을 짜고
농사일, 잡 안 잔일 하면서 짜면 여흘이 넘게 걸리는 수도 있다.
이렇게 공들여 짠 삼베를 잘 손질하여 노오란 황금색 내어
부모님 수의를 작만하고, 올이 좀 성긴 놈은 아이들 잠뱅이나
혹은 머슴들 등걸 옷을 지어 입힌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그 옷입은 사람보고 ”남의 집 한번 잘 살았다“ 한다.
중등품은 장에 내다 팔아 학자금 농자금을 얻는 것이 보통이다.
그 중 상등품 한 필은 바깥어른 출입복으로 깔끔하게 지어 입힌다.
당시 이런 옷에 밀짚모자(맥고모자) 쓰고 논두렁 걸으며
이제 막 페어나기 시작하는 벼의 모습을 보는 것이
농사꾼들의 최대 행복이라고 했다.
참고로 이때 이 양반 삼베 조끼 가슴주머니엔 반드시
”아리랑 담배곽“이 비쳐야 제격 이였지.
농로를 걷다보면 안골 별실어른 둘째가 중매쟁이 할매 멀찌감치 앞세우고
뱃골 장날 장미다방에 선보러 가는 모습도 보였지.
그럴 때 그 총각은 흰 와이셔츠에 면소 최 서기한테 빌여입은 헤진
양복을 어께에 걸고 휘파람 불며 가던 모습도 생생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아니라 삼궂이하고,
벌초하고, 선보는 달.
땡감 맛은 떫어도 한 낮의 고향 꿈은 달콤했다.
벌써내릴 전철역에 다 왔다. <끝>
<삼밭(麻田) 사자 이(齒) 빠진다!> 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머피(Murphys law)의 법칙쯤으로 .
삼베 만드는 데는 이(齒)가 꼭 있어야
--어떤 일을 계획하여 실행하고자 하자마자 공교롭게도 다른 일이 생겨
그 일을 못하게 하는 것.
첫댓글 7월의 삼 삼기하는 농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 지네요
이제는 노거수 선생님같은 분께서 써주시는 글 속에서나 볼수 있는 정겨운 풍경들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옛날 추억 한자락 가슴에 떠오르며 가슴이 애잔해 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흘림골로 곰배령으로 다녀왔습니다...^^
면소...50여년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아! 흘림골. 곰배령- 가본지가 몇해전이던가요, 다들 안녕하지지요. 그 아래 꽃님이 아버지 이젠 진급하셨나오르겠네. 늘 순경이였으니까요.꽃님이도 대학졸업생일거야 아마. 감사합니다..
꽃님이네는 지난해인가 다른 사람에게 그 집을 넘겼더라구요..
꽃님이네가 운영할때는 식사도 잘 해주고 인심 좋고 푸짐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민박집으로만 운영을 합니다.
지금 주인은 꽃님이 엄마 친구라는 이야기를 이번에 들었습니다.
꽃님이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었군요? 근황은 모르겠습니다.
제 어릴때도 울 엄마가 이렇게 사셨어요..
농삿일에 겨울엔 베 삼고 베짜고..마당에 걸쳐 늘어놓고 풀 멕이고..해서 짠 베는 양잿물에 삶아서 뽀얗게 만들어 수의 만들고 옷 만들고..
저는 아직도 친정 엄마가 직접 짠 베를 조금 보관하고 있답니다.
모두가 옛 부모님들의 어렴풋이 기억되는 소중한 추억들인데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 옛 풍습들이 그리워집니다.
선생님의 글속에서 그 추억을 되새겨 보며 부모님의 살아오신 세월을 그려보게 되어 고맙습니다.
저희 동네는 강원 북부 지역이라 감나무는 없어 어려서는 구경도 못했고 삼 삼다가 울 엄마 뭘 드셨는지 기억도 안나니 마음 아파요..
꽃님이 아빠 이름이 홍순경씨. 저가 우이령보조회 활동할 때 농담으로 당신 내가 처음 만난 2000년에도 순경. 그런데 십년지난 지금도 순경. 금년에는 꼭 진급하라고 농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집이 이사 가셨군요. 이제 찾아가면 못만나겠네요. 몇해전에 갔을 때는 돌집도 잘지어놓고 - 그 시원한 약초차 공짜로 마실 수도 없겠군요. 감사
아..그런거였어요? ㅎ 곰취와 축령산에서 같이 근무하시는 선생님 한분도 평생 순경이신데요..ㅎㅎ박순경님..ㅋ
회상병이 저만 있는 줄 알았는데 ㅎㅎ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