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 나무위키
| 한국어 | 천안문/톈안먼 |
| 간체 | 天安门 |
| 번체 | 天安門 |
| 영어 | Tiananmen |
| 분류 | 혁명고적 및 혁명기념건축물 (革命遗址及革命纪念建筑物) |
| 시대 | 명 ~ 청 |
| 일련번호 | 1-0030-5-030 |
| 주소 | 베이징시 둥청구 창안제 톈안먼 北京市东城区前门大街天安门 |
| 등재 | 1961년 |
| 차수 |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SSR급 |
1. 개요2. 역사
2.1. 명나라2.2. 청나라2.3. 중화민국2.4. 중화인민공화국
2.4.1. 구 천안문 해체보수
3. 시대별 천안문의 모습
3.1. 청나라 말기3.2. 중화민국
3.2.1. 국공내전
3.3.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3.3.1. 천안문 6.4 항쟁
4. 여담
1. 개요[편집]
중국 베이징시 둥청구(东城区)에 있는 명/청대의 건축물로, 자금성을 감싸고 있는 황성의 남문이다. 한국으로 치면 광화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문 앞으로 광장이 펼쳐져 있는 것도 비슷하다. 자금성은 천안문–단문(端門)–오문(午門)을 거쳐야 비로소 내부에 진입하게 되는 구조이며[7] 천안문 바깥은 내성이, 또 그 주변을 외성이 두르고 있었다. 즉 천안문은 황성의 남문이고, 오문이 자금성의 진짜 정문이다.
1949년 10월 1일 중국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현장이었으며, 이후에 건설된 천안문 광장, 인민영웅기념비, 모주석기념당 등 여러 정치적인 건축물이 주변에 건립되었다. 또한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표어, 중국 국장이 내걸려 있고 열병식이 바로 앞에서 거행되는 등 중국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중국 국장과 CCTV의 방송 시작화면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것에서 중국 정부와 중국공산당에서도 중국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 '베이징 중축선'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 역사[편집]
2.1. 명나라[편집]
영락 15년인 1417년 베이징 성을 건설하면서 만든 황성의 정문이었으며 당시 이름은 승천문(承天門)이었다. 그리고 그 앞 현재의 천안문 광장 자리는 어도(御道)[8]가 설치되었던 공간으로 내성의 정남문인 정양문이 건너편에 있었으며 주변을 담장으로 둘러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였다.
2.2. 청나라[편집]
승천문은 1644년 베이징에 쳐들어온 이자성군이 파괴하였으나 산해관을 넘어 베이징에 입성한 청나라의 순치제가 1645년 파괴된 승천문의 재건을 명령함으로써 1651년 완공, 현재의 천안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2.3. 중화민국[편집]
어도(御道)로 인하여 천안문 앞이 통제되었지만 300여년이 지난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여 들어선 국민당 정부가 국경절 14주년(1925년 10월 10일)을 기념하여 자금성을 고궁박물관으로 만들면서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2.4.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이후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여러 차례의 내전끝에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위에 마오쩌둥과 여러인사들이 올라서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선포하는 장소가 되어 이곳은 현재까지 혁명유적지로 지정되어 있고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행사가 열릴때면 공산당 고위층 인사들이 올라가는 장소이기도 한다. 여담으로 천안문 성루는 평상시에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으며[9] 천안문광장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예약을 해야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천안문 광장이 무료인 것과 달리 천안문 성루는 입장료가 있다는 것이 차이점.
2.4.1. 구 천안문 해체보수[편집]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상된 천안문은 1969년에 완전히 해체한 뒤 단 200일 만에 새로 지어졌다. 그것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개건 및 보수에 들어간 자재는 모조리 빼내고 자재까지 전부 새것을 썼다. 빨리 조달할 수만 있다면 자재의 출처는 안 따져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원목도 잔뜩 사용했다. 심지어 함수율이 80 %나 되는 축축한 목재를 말리지도 않고 그냥 사용해서 지었다는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멀쩡히 잘 서있다고 한다.
덤으로, 복원을 하고자 조사해 보니 기존 천안문에 사용된 목재 중 정말 저질 목재도 있고 심지어는 미국산 목재도 있었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추정한 자재의 출처는 불탄 원명원이다. 말기에 접어들어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청나라 정부가 보수작업을 위해 주변에서 되는대로 목재를 구하다 보니 의화단의 난 때 폐허가 된 원명원의 건물들을 재활용하여 썼을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여기저기에 의화단의 난 당시 연합군이 쏜 것으로 보이는 포탄과 총탄이, 그 중에선 알파벳이 새겨진 포탄까지 박혀 있었다고 한다.
3. 시대별 천안문의 모습[편집]
3.1. 청나라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