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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18일 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 차원에서 가와사키 요코하마 도쿄를 방문하면서 노보리토연구소방문, 요코하마 탈원전세계회의에 참석하고 특정의료법인재단 겐와카이 병원(民医連) 방문 요츠야에서의 교류회 이구나치오 교회(St. Ignatius Church)에서의 몽골탈원전운동 강연 참여와 교류회 순서를 함께 가졌다. 그리고 도쿄가쿠게이(学芸)대학(국립사범대학)을 방문하여 지하 도서관 서고를 돌아보고 가와사키 한일시민운동교류회 시간을 가졌다. 탈원발세계회의, 가와사키 시민들과 CNFE가 준비해준 이번 한일시민운동교류회 등을 간략히 소개한다.
첫째날 -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 방문과 한일시민운동교류회 참석
13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서 김찬수선생을 만나 수속을 마치고 11시가 다되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JR선을 타고 오카다 선생을 만나기 위해 신가와사키역으로 이동했다. 작은 승합차로 마중을 나와 주어서 함께 평화교육노보리토(登戶)연구소자료관으로 향했다. 메이지대학에 도착하니 소박한 규모의 캠퍼스가 나오고 노보리토 연구소자료관 앞에서 오오즈겐고(大図建吾)선생과 연구소 관장과 직원 그리고 노보리토연구소 보존시민모임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노보리토 연구소는 일제하에서 육군 산하 연구소로서 하얼빈의 731부대 연구소와 연계되어 있으며 생체실험은 하지 않았지만 연구결과를 공유했고, 중국의 위조지폐를 제작하였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평풍선폭탄을 제조했던 곳이기도 하다. 폐쇄 위기도 있었지만 가와사키 시민보존회 활동 덕분에 작지만 박물관처럼 전시 교육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오오즈 선생의 안내와 통역, 그리고 관장의 설명을 듣고 연구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동안 1만 7천명이 방문했고 안내를 해 왔다니 그 진지함과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저녁 미조노쿠치로 가고 공민관에서 사토 선생이 준비해 둔 회의실에서 김찬수 선생이 번역된 자료로 한국의 역사교육과 평화교육에 관해 발표했고 나도 원고 없이 최근 원전과 한국의 시민운동에 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교사였던 오오즈 선생께서 다시 와서 통역까지 해 주셨다. 교류회를 마치고 근처 이자까야(술집)로 자리를 옮겨 좀더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11시가 되어서 헤어졌다. 조영숙씨가 와 주어서 함께 인사를 나누었고 중국 (대한?)임시정부 이동경로를 따라 역사여행했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둘째날 - 요코하마 탈원전세계회의 첫날
14일 아침 무사시코수키역에서 전철로 요코하마항 근처 펴시피코 요코하마 컨벤션센터에 일찍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원에서 100년평화넷과 만나왔던 CNFE(Christian Network for Nuke-Free Earth) 최승구사무국장을 비롯해 여러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3층에 3개의 부스를 만들어 두고 있었는데 CNFE관계자들과 인사를 하고 몽골에서 온 전 녹색당 대표 세렌게씨를 만날 수 있었다. 부스 앞에서 작은 토론회와 발표회가 계속되었다. 첫째로 몽골 녹색당의 세렌게씨가 몽골에서의 핵폐기물처리장 설치와 관련하여 그리고 히다치전기에서 취직거부 민족차별에 맞서 싸웠던 박종석씨도 이제 은퇴를 했다고 인사와 소개를 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개막식에서는 후쿠시마의 초등학교 4학년 도미쓰카 유지(10)가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돈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던졌고 개막식 이후에는 5천명의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했다.
탈원발세계대회에는 한국에서도 에너지정의행동, 환경재단 환경운동연합 합천평화의집 탈핵교수회 등에서 참가자가 있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동아시아에서의 탈원전 환경운동, 평화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회의장에는 많은 단체들이 나름대로 부스를 만들어 각자의 활동을 전시 홍보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근처의 미야기현icoop생협 생협이 주최단체로 참여한다는 것이 반가워서 지역에서 생협활동과 의료생협을 준비하고 있다는 간략한 소개도 했다. 첫날 오전에는 설치된 부스를 돌아보고 CNFE 부스 앞에서 인사소개를 하는 등의 시간을 가졌다. 개막식에 참석하는 대신 같은 시간인 오후1시부터 CNFE가 기획한, 원전이 가동중인 지역 시민운동이 겪고 있는 곤란와 향후 과제를 토론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되었다. 겐카이(玄海)원발플루서멀 재판회를 비롯해 이어서 하마오카원전과 아오모리의 로카쇼무라 핵폐기물재처리장 지역 주민의 발표를 들었다. 겐카이재판회 오보사무국장과 지난 해 8월 발전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한국측이 소송당사자로 참여하는 문제를 적극 의논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부스 앞에서 창당 준비 중인 한국녹색당 이보아실무자도 도착해 일본 녹색당 대표 등 관계자와 함께 한 몽 일본 녹색당 간담회를 따로 가지고 동아시아 탈핵 공동선언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잠시 대화한 후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셋째날 - 요코하마 탈원전세계회의 둘째날
아침에 김찬수 선생과 함께 컨밴션센터로 와서 부스에 머물며 인사를 나누고 김찬수선생과 나도 작은 발표와 소개를 했다. 한국 참가자들도 부스앞에서 자주 인사하며 대화시간을 가졌다. 한국의 피폭자를 위해 오래동안 활동해 온 ‘한국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임’ 이치바 준코대표도 원폭피해자(히바쿠샤)와 탈원발운동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발표를 해 주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름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어서 3층 큰 홀에서 열린 동아시아 탈원전 운동의 연대를 위한 큰 심포지엄에 참석해 각국의 발표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심포지엄에서는 몽골의 세렌게 전녹색당 대표, 한국에서는 최열환경재단 대표와 이현석 에너지 정의행동 대표, 김혜정환경운동연합 특위위원장이 차례로 발표를 했다. 중국발전간보 편집장 푸타오씨도 발표를 했다. 사전에 번역된 원고가 없어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하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한국 발표자가 많고 한국어 통역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여러 부스와 전시공간을 돌아보는데 후쿠시마 포스터전시회가 시각적으로 눈을 끌었다. 탈원전을 위한 전환을 표현하고 있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어린이집(탁아방)이 마련되어 있어서 젊은 엄마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좋았고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어서 여성 참가자를 배려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인근 지역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촌장 시장 등이 참여해 탈원전 운동을 해온 경험을 소개하는 자리는 많은 청중들이 참석했다. 오래전부터 탈원전운동을 해온 지역의 단체장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견해가 옳았음을 밝히면서 이제는 탈원전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구니타치 전 시장 우에하라씨는 기모노를 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고 모두 감동적인 발표를 했다.
그리고 폐막식 이벤트로 열린 자리에서 박원순서울시장의 영상인사가 소개 되었는데 서울시의 에너지절약과 대안적 노력을 통한 원전1기 분량의 전기를 줄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참가자들이 이번 행사에 관한 코멘트를 하는데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 참가자라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공동선언도 발표되었는데 탈원전공동성명에서 도쿄 전력은 후쿠시마 피해자(히바쿠샤)의 권리보장,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자료공개와 책임있는 자세, 원전의 해외 수출금지 등을 촉구하였다.
시즈오카 시의원이자 자치체의원정책정보센터사무국장인 마쯔야씨가 정리인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입구 앞에는 2010년 한국병합 100년 한일 공동행사 주최자로 만나왔던 공무원노조 사무국장인 야노상도 이미 참석해 민주주의적사회주의운동 기관지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기관지에서는 원전의 플로트늄과 핵무기 개발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있어 눈길이 갔다. 행사를 마치고 일본 녹색당 관계자 IOFAM국제유기농연구활동가(2011년 한국대회 참석) 마사야 고리야마상 그리고 마쯔야상과 함께 1층 식당가에서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면서 좀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집회는 30여개국의 100여명의 해외 참가자와 1만여명이 참가한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인데 일본 도쿄신문은 톱기사로 보도하지만 주요 메스컴들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니 원전카르텔(정부 기업 언론 등의 원전족)에 사로잡혀 있는 일본의 답답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피스보트 그린피스 같은 국제NGO를 비롯해 협력과 후원 찬동하는 각종 연구소 재단과 기금 생협 노동조합 등 다양한 시민그룹이 주도하여 이런 대규모 행사를 훌륭하게 치뤄낼 수 있는 일본 시민사회의 능력과 수고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넷째날 - 겐와카이 民医連병원 방문과 한일시민운동 교류회 등
김찬수선생은 나리타 공항으로 가고 오카다 선생과는 사이타마현에 있는 겐와카이(建和會)병원을 방문하였다. 미사토추우오(三鄕中央)전철 역에서 겐와카이 다카하시 사무국장이 친절하게 맞아 주면서 택시로 미사토겐와카이병원(1951년 설립)으로 이동했다. 2층 안내실에 앉아 겐와카이 50주년 기념 출판 도서를 주면서 야마모토 센지(교토의 우지시에 살던 생물학자이면서 일본 최초의 노동농민당 국회의원으로 치안유지법에 맞서다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우지시의 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의 정신을 계승하고 가난한 지역에 사는 무산자들을 위한 의료를 염두에 두고 출발했던 병원이라고 소개 했다. 그리고 돌아보면서 개괄적인 병원관련 여러 시설과 운영시스템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미야자키 이사장은 도쿄대의학부 시절인 68년 투쟁에 참여했던 경력도 있지만 의료와 관련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 民医連의 병원 그것도 종합병원으로 자리잡은 겐화병원의 모습은 경이롭기도 했다. 민의련(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에 관해 그리고 한국의 녹색병원과 교류하고 있다는 설명도 해 주었다. 다카하시 사무국장은 함께 전철을 타고 이동하며서 좀더 설명을 해 주어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주민들의 작은 돈을 모아 출발했는데 이렇게 좋은 종합 병원이 되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다. 특히 병원 특실에 해당할 수준의 호스피스 룸(임종 대비)을 환자가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한다니 그 자세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오후에는 다시 요츠야역으로 이동해 긴자 르노아르 커피점 3층 회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준비해간 발표 자료를 오카다 선생이 번역 복사해서 나누어 지고 한국의 시민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탈핵문제를 비롯해 시민자치네트워크와 녹색당 관련 등을 설명하고 호주에서 돌아온 히로시 전 의원도 참석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서 6시 부터는 이구나치오 교회(St. Ignatius Church)에서 열린 세렌게 전 몽골녹색당 대표의 발표 자리에 참여하고 잠시 인사겸 격려를 해 주었다. 위안부 대책활동에 헌신해 온 사무국장 기세상과 사토상과 함께 제주 요리식당인 신고방(新古房)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하면서 막걸리로 교류하는 시간도 가졌다.
다섯째날 - 도쿄가쿠이엔대학 방문과 시민운동 교류
아침에 오카다상과 함께 고쿠분지 역에서 내려 도쿄가쿠게이대학(학예대학. 국립사범대학)을 방문했다.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조금 늦게 이수경교수(역사사회학 전공)를 만나 도서관 지하 서고를 안내 받았다. 지난 12월 서울에서 열린 노근리 평화상 수상식에 안자이 이쿠로 교수와 함께 참석해 만날 수 있었는데 한일 관계 역사에 관해 연구를 해 왔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50년 전의 일본 교과서를 비롯해 한국관련 자료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역사가 읽혀진다. 지하서고는 자동으로 문을 여닫게 되어있고 많은 자료가 있는데 아직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한국근대사 한일관계사의 자료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교수의 안내로 학교 후문에 있는 40년된 우동집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학교에 관해 좀더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교원을 양성하는 학교라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안정감이 들었다. 일제 말기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해 사용했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반영하듯 사쿠라가 만발하는 계절에는 무척 아름답다고 소개하는데 다시 와보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해 주었다. JR고쿠분지역까지 차로 태워주어서 편히 도착했다. 카페에 들러 다시 차 한잔 마시고 신주쿠에 들르려 했던 계획을 변경해 곧바로 다시 가와사키로 이동해 6시 반부터 무사시미조노쿠치역 가까운 다카쓰시민관에서 발표와 토론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젊은 참석자들이 있어 좋았고 인터넷 생중계를 해 주었다. 원전 문제에 초점을 두고 민주주의의 힘으로 탈원전 할 수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해 주었다. 김마교수를 비롯해 다케다상 후루노상 사토상과 함께 뒷풀이를 하면서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늦게 오카다 선생 집으로 돌아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여섯째날 - 귀국
아침에 짐을 정리해 역으로 이동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하니 시간 여유가 많아 여러 곳을 둘러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비행기에 오르니 3시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서울역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1시간만에 내려 호박열차라는 카페에서 중간시간을 이용해 이런 저런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아직 손님이 별로 없어 조용하고 한가하게 커피 한잔하며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쓸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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