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장...합천시장 뫼 천년 물 천년에 터 잡아 열일곱 집이 한식구로 모이는 장터
합천군가(郡歌) 노랫말 중에 '뫼 천년 물 천년에 터 잡은 이곳'과 '열일곱 집이 한식구로 모여서'라는 구절이 있다. 굽이굽이 산줄기에 황강을 품고 있는 합천 땅과 17개 읍면을 묘사한 것이다. 17개 읍면은 산과 물을 경계로 생활권이 나누어지고, 생활권을 중심으로 일곱 곳에 장이 서면서 오랫동안 이어왔다. 글·사진 정광효 대야신문 발행인 17개 읍면 아우르는 지역 대표 유통거점
합천군내에 서는 일곱 곳의 장은 묘산장(1·6일), 삼가·야로장(2·7일), 합천장(3·8일), 대병장(4·9일), 초계·가야장(5·10일) 등이다. 이같이 각각 날자를 달리해 난장을 펼치며 개별 시장으로는 해당지역의 5일장으로, 7개의 장 전체로는 군내 물자가 유통되고 사람이 교류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묘산·야로·대병·가야장은 세태가 변하면서 지금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합천·삼가·초계장 정도다. 합천장은 17개 읍면 사람들과 외지인들이 오가는 합천읍 공영터미널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군청 소재지에 위치한 합천장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합천시장은 민영화에 따라 공설시장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합천군은 지난 1999년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벌여 지방도인 중앙통로를 폐지하고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전통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후에도 바닥정비와 비가림 시설, 주차장 조성, 간판정비 등 정비사업을 벌였다. 합천사랑상품권과 재래시장상품권을 발행해 소비도 유도한다. 대지 4711㎡, 연면적 2803㎡의 건물에 159개의 점포가 들어선 합천시장은 군의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지역 대표 유통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근 1일 이용객 600여명과 연매출 2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섯 번 옮겨 다니다 첫 장터로 돌아와 합천장은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읍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원래 장터였던 지금의 장소에 되돌아왔다. 합천군사(郡史)에 따르면 조선후기 지금의 영창리 옥산동 일원에 선 장이 합천장의 시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교동 합천성당과 신라장 여관 부근으로 옮겼다. 1919년 합천 3·18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도 교동 장터다. 500여명의 군중이 모여 합천장날 시작된 만세운동은 이튿날과 그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한때는 지금의 합천우체국 터에 위치한 경찰서까지 나아가 대치하며 일제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일경의 발포로 4명이 순국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렇듯 교동 장터는 자랑스러우면서도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34년 7월에는 영창리 합천교 밑으로 장터를 잠깐 옮기기도 했다. 비를 부르기 위해서다. 옛날에는 가뭄이 극심하면 시장을 하천 부근으로 옮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천시(遷市)라고 하는데 가뭄에 시장을 옮기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던 데서 유래한다. 광복이 되자 일본과 만주 등지로 떠났던 합천 사람들이 속속 돌아왔으나 거처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교동의 합천시장 장옥 두 칸을 임시주거지로 제공하기도 했다. 일종의 주상복합이었던 셈이다. 지대가 낮은 이곳이 홍수피해가 심하고 장소도 좁아 1950년에는 지금의 합천여고 주변 일원으로 옮겼다. 그러다 또 가뭄이 심해지자 비를 기원하기 위해 지금의 대양면 정양리(현 고려병원 앞)로 일시 시장을 옮긴 적이 있었다.
더덕·고사리에 가물치·미꾸라지가 명물 옥산동 일원 지금의 합천시장은 지난 1954년 수해방지와 신시가지 건설계획에 따라 옮겨왔다. 당시는 목조 슬레이트 건물 69동(356칸)에 5일마다 개장하는 정기시장이었다. 그러다 지난 1986년부터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도 전통이 남아있어 정기장날인 3·8일이면 시끌벅적 붐비며 시골장터의 모습을 연출한다. 장날에 모여드는 지역민들은 합천읍과 인근 대양·용주·율곡면 등 4개 읍면 주민들이 많다. 교통이 발달하고, 도농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도시 지역에서도 많이 찾는다. 명실공히 합천의 경제활동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구와 거창 등 인근 지역에서 몰려든 장사꾼들은 터미널에서부터 고추와 참깨자루를 빼앗듯 붙잡으며 흥정에 여념이 없다. 몸이 불편한 듯한 할머니는 곧바로 자루를 넘긴다. 한 푼 더 받는 것보다 편안함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씩씩한' 아낙네들은 뿌리치며 포대를 이고 들고 장터 안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부르는 값이 내키지 않은 듯하다. 지역민들이 갖고 나오는 물건은 농산물과 민물고기가 주를 이룬다. 황매산과 가야산 등에서 채취한 더덕과 고사리 등 약초와 산나물이 인기품목이다. 합천호를 비롯한 인근 하천에서 잡은 뱀장어와 가물치, 빠가사리와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도 합천장의 명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합천장의 주요품목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요즘에는 딸기와 수박·배·양파 등이 지역특산품이다. 합천시장은 9월 8일을 '국밥데이'로 정할만큼 돼지국밥이 대표 먹거리다. 민물고기를 푹 고은 어탕도 합천시장의 먹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합천장날 그곳에 가면
세월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국밥집 합천 돼지국밥 전국을 다니다 보면 '합천국밥'이란 상호가 눈에 많이 띈다. 그 만큼 합천은 국밥의 고장이다. 세월이 흘러 대장간도, 우시장도 다 사라졌지만, 지금껏 변치 않고 장날마다 손님들이 북적대는 곳은 장터 국밥집이다. 그래서인지 합천시장 안팎에는 장날에만 문을 여는 장국밥집이 여럿 있다. 장국밥집에는 국밥뿐만 아니라 전과 국화빵, 팥죽, 어묵 등 서민 음식들도 있어 장을 찾은 사람이나 장터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배를 채우는데 그만이다. 합천시장 안을 비롯한 인근에는 장국밥집을 포함한 국밥집이 10여 곳이나 된다. 시장 바깥 국밥집들은 예전부터 장터에서 장국밥집으로 돈을 벌어 근처에 건물을 짓고 식당을 확장했다. 이들 국밥집은 점심때면 평일에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합천의 국밥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합천사람들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추어탕 하나로 2대 40년 이어온다 원조 할매추어탕 합천시장에는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물론 재외향우들까지 꼭 찾는 '원조 할매추어탕'이 있다. 이곳에는 정기장날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과 점심때도 단골손님이 줄을 잇는다. 입소문을 타고 맛이 알려지면서 포장 주문도 많이 들어온다. 심지어 전국에서 택배로 주문할 정도다. 할매추어탕을 처음 시작한 원조는 삼가면에서 율곡면 임북으로 시집온 오명순(80) 할머니다. 40여년 전 합천시장에서 처음 추어탕을 끓인 원조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10여년 전부터 딸 이복연(56)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예부터 합천지역에는 골이 깊고, 물이 맑아 어탕 등 민물고기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들녘 도랑마다 미꾸라지가 넘쳐나 추어탕은 일상 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음식도 세태 변화에 따라 점차 사라져간다. 오명순 할머니가 그 맥을 이어 오늘날 합천시장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2대 이복연씨는 논에서 미꾸라지를 직접 양식한다. 그리고 3~4시간 푹 고운 미꾸라지국물에 계피향을 곁들여 맛을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