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에 그녀가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의 꽃은 그녀 스스로 사겠다고 말했다.(Mrs Dalloway said she would buy the flowers herself)"로 시작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의 머릿속에 문득 든 생각은 30년전의 'if'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만약 그때 사랑했던 피터월시와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을까?
여기에 또 다른 그녀가 있다. 27살의 청춘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를 난설헌. 난초와 같이, 그리고 흩날리는 눈보라와 같이 문기文氣의 청아한 영특함이 시집살이와 함께 극적으로 승화된다. 난설헌의 머릿속에 든 '如何'라는 가정은 무엇이었을까? 버지니아 보다는 더욱 전방위적이다. 왜 조선에 태어났을까?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왜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을까? 나는 앞으로 그녀들의 삶을 바꾸어보려 한다. 만약 난설헌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조선이 아닌곳에 태어났다면, 그이와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도식을 버지니아 울프 또는 댈러웨이 부인의 삶에 대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부군 김성립은 몇 년후 임진왜란중 전사해 시체도 못찾고 만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도 불행했을까? 난설헌의 삶은 남동생 허균의 말마따나 그렇게도 올곧이 남편을 잘못 만난 불행이었을까? 온화한 강릉땅에서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가며 달라진 엄격한 유풍에 여성으로서 발휘하던 재능이 억눌려 서글픈 우울증이 왔을까? 두 자식을 잃고 버티지 못한 난설헌은 버지니아 울프가 우드강에 빠져 죽었듯이 27살 해 어느날 문득 그녀는 새로 옷을 갈아입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今年乃三九之數 / 금년이 바로 3·9수에 해당되니
今日霜墮紅 /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
삼지구는 27. 그녀의 끝자락을 스스로 예감했을 것이다. 버지니아의 남편 레드너는 평생 그녀를 돌보며 갖은 히스테리 증상도 다 받아주었다. 하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같이 "꽃을 스스로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살로 귀결되듯, 버지니아도 자살을 예감한 서두였을지 모른다. 미국판 서문에서도 밝혔듯 원래 파티가 끝나면 댈러웨이 부인이 죽거나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이었는데 셉티머스의 자살로 바뀐다. 난설헌은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사가들이 그녀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초희 또는 난설헌의 자살은 이승 너머에 이미 닿아있었다. 도교적 삶을 부러워 하던 그녀의 육신은 고달픈 안동김씨 집안의 시집살이에 그 재능이 억눌러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늘 몽유의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지니아가 누구를 죽이는 것으로 끝을 내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주인공이 아닌 다른이를 살해하고는 실제로는 자신이 우드강에 뛰어든 것처럼 초희의 삶은 '스물 일곱 송이 부용꽃'을 생각하며 정확히 스물 일곱살에 이승을 떠난다. '몽유광상산'은 그녀의 마음이다.
夢遊廣桑山(몽유광상산)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靑鸞倚彩鸞(청란의채란)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꿈에 광상산에 놀다
푸른 바다가 요지에 잠겨들고
파란 난새는 아롱진 난새에 어울렸어요
스물 일곱송이 부용꽃은
붉은 빛 다 가신채 서리 찬 달아래에..
극중 버지니아 울프 "죽음은 이미 여기에 없나니, 오직 그대만이 이 미물같이 하찮은 참새의 죽음도 기억할 뿐이리"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의 장면이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저 멘트를 버지니아가 혼자 읊조리게 넣었을 것이다.
난설헌의 묘터 왼쪽 끝에는 죽은 아이 2명의 묘도 근래에 복원되어 있다. 이 사진은 내 사진첩에서 찾기가 어려워 인터넷에서 퍼왔고 나는 2016년 5월 중순 양주 그녀의 묘터를 맴돌았다.
2014년 여름 런던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취를 찾아 헤매었다. 시간이 지나 내 안에서 충분히 발효되면 이 둘의 관계를 복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끊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 아래 링크는 앤씨아라는 여가수가 출연한 단편 뮤직비디오인데, 앞의 애니메이션을 떼내고 뒷부분(2분 8초)부터 시작되는 연출은 잘만 가다듬으면 단편 속에 활용할 수도 있다. 조악하지만 괜찮은 시도라고 보인다. 2분 8초부터 보시라. 앤씨아가 부른 곡은 가수 박기영의 '나비'라는 곡인데, 난설헌이라는 주제와 이질적 접합이 이루어져 하나의 꽤 괜찮은 작품이 되었다. 앤씨아는 아직 빛을 제대로 못 본 실력파 신인 가수이다. 이 영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의 다음 단편영화의 주인공으로 낙점하였다. '곡자哭子'라는 시의 성공적인 음악적 변용태요 되살림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뮤지컬 식 연출을 시도한 2012년 작 톰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 식의 연출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박기영이라는 가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고 감명하여 영화 속 미자가 쓴 '아네스의 노래'에 그대로 곡을 붙여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영화대상제에서 이창동 감독 앞에서 처음 선보이는 노래이다. 박기영이라는 가수의 가수됨의 심층이다. 아시다시피 아네스의 노래는 이창동 감독이 영화제작중에 노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듣고 무엇에 홀린 듯 정신없이 그이를 생각하면 쓴 시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를 수 십번도 더 보았으나 '아네스의 노래' 엔딩 시 읊조림이 올라올때마다 눈물이 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하와이에서 밤에 캐리어를 싸고 와버렸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행복을 미래에 저당잡힌 채 살지 말고 현재의 놀이에 충실하고, 현재적 삶을 온건히 느끼자라는 생각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서 있던 영화이자, 시이기도 하다.
첫댓글버지니아 울프, 난설헌, 영화 시 속의 미자와 여중생 저 역사와 이 역사의 시공속에 흩뿌려진 그녀들을 복원하고 살풀이, 씻김굿을 해주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임무일지도 모른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열녀비, 그 곳을 부지런히 다니고, 그녀들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소생시키고자 한다.
下馬飮君酒[하마음군주]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며 問君何所之[문군하소지]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君言不得意[군언부득의] 그대 말하길, 뜻을 이루지 못했기에 歸臥南山陲[귀와남산수] 남산 근처에 돌아가 숨어 살려하네 但去莫復問[단거막복문] 다만 떠나시오 다시 묻지 않을 테니 白雲無盡時[백운무진시] (그 곳에는) 흰 구름이 다할 때가 없겠지
@나목"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같지.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 . " 울지마. 브로콜리너마저.
첫댓글 버지니아 울프, 난설헌, 영화 시 속의 미자와 여중생 저 역사와 이 역사의 시공속에 흩뿌려진 그녀들을 복원하고 살풀이, 씻김굿을 해주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임무일지도 모른다.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열녀비, 그 곳을 부지런히 다니고, 그녀들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소생시키고자 한다.
送別(송별)
-왕유(王維)
下馬飮君酒[하마음군주]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며
問君何所之[문군하소지]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君言不得意[군언부득의] 그대 말하길, 뜻을 이루지 못했기에
歸臥南山陲[귀와남산수] 남산 근처에 돌아가 숨어 살려하네
但去莫復問[단거막복문] 다만 떠나시오 다시 묻지 않을 테니
白雲無盡時[백운무진시] (그 곳에는) 흰 구름이 다할 때가 없겠지
https://youtu.be/vXq3x4hz9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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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다만 떠나시오, 다시 묻지 않을 테니" 라니.. 몇번 씩 되뇌며, 감탄하고 갑니다. 하기 좋아하던 노래 가사는 역시 너무 긴 말이었습니다.
@나목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같지. 울지마. 네가 울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힘이 될 수 있게 말해주고 싶은데. 모두다 잘 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울지 마.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약한 사람은 왜 더. . . " 울지마. 브로콜리너마저.
@나목 일언이폐지네 ㄷㄷㄷ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