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유독 사건 사고가 잦아 시끌벅적했던 2014년 갑오년은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을미년 청양띠 해에는 양처럼 온순하고 순수함이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가슴 벅찬 감동도 막상 또 다른 한 해 속으로 들어오니 숙연한 마음으로 바뀌는 듯하다.
어떻게, 어떠한 자세로 올 한 해를 보내고,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1월에 떠나는 겨울여행은 특별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연말의 싱숭생숭하고 울적한 마음을 새해맞이 여행을 통해 훨훨 털어버리자. 이왕이면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은 아낌없이 비울 수 있는 장소이면 좋겠다. 새 술을 새 부대에 채우듯이 새해를 맞는 가슴에 희망찬 것들로 가득 담을 수 있는 곳이라면 더 행복해 질 수 있겠다.
한적해서 사색하기 좋은 광양의 느랭이골과 망덕포구로 발길을 향했다.
편백나무 울창한 느랭이골자연리조트
낮엔 피톤치드 향에 빠지고 밤엔 자연에 묻혀
양처럼 온순하고 순수함 넘치는 새해 소망
망덕포구, 천혜의 관광자원 품 안에
윤동주 원고 보관 '정병욱 가옥'도 볼거리
■힐링공간, 느랭이골 예로부터 광양을 따스하게 빛나는 '햇살의 도시'라고 했다. 어사 박문수는 '조선지 전라도요, 전라지 광양'이라 말하면서 광양을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을이라 꼽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의 필수 요건으로 꼽는 남수북산동천(南水北山東川)의 형국을 갖추고 있는 곳이 광양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 벌을 힘차게 뻗어 내리는 호남정맥을 완성하는 백운산을 배경으로 동으로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을 두고 있다.
아마도 섬진강 일원에 오면 자연스레 찾게 되는 곳이 광양의 매화마을일 게다. 올겨울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니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매화를 간절히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활짝 핀 매화를 보기에는 아직도 너무 이른 시기라 살짝 아쉽다.
매화 마을로 향하는 강변도로를 가다 보면 왼편으로 '느랭이골'이란 길 안내판을 만난다. 작은 시골 도로가 능선 쪽으로 굽이굽이 나 있다. 느랭이골은 진상면 내압마을에서 비평 죽천 마을로 넘어가는 느릿하고 기다란 골짜기를 이 고장 사람들이 부르는 지명이다. 느랭이가 암 고라니 또는 암 노루를 부르는 호남지방의 사투리란다. 그래서 옛날 암고라니와 노루가 많았던 이곳을 느랭이골로 부르게 됐다는 설도 전해진다.
산세 깊은 백운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탓인지,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도 차량은 물론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길이다. 가는 길에 만나는 큰 저수지는 수어호다. 산중 호수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넓은 저수지여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편백이 울창한 느랭이골자연리조트로 들어갔다. 전체 면적 50만 평에 이르는 느랭이골자연리조트는 좌우로 편백 숲을 두고 자리 잡았다. 지난 5월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해발 400m의 산골짜기에 위치한 이곳은 호남정맥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모여 천혜의 자연을 주변에 품고 있다. 빼곡하게 들어선 편백 숲,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기묘한 모양의 암석, 고요한 산속 분위기가 도시의 외지인을 압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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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이골자연리조트 안 황토 맨발 둘레길. |
느랭이골자연리조트에는 2㎞길이의 맥반석 소나무길과 황토 맨발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피톤치드 배출량이 월등히 많다는 울창한 편백 숲은 힐링 공간이나 다름없다. "지난가을에 방송인 이영자 씨가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곳에 잠시 들렀습니다. 편백 숲에 설치된 해먹에 잠시 쉰다고 누웠다가 무려 3시간이나 잠을 잤지요."
느랭이골자연리조트 이해순 팀장은 느랭이골의 편백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같이 설명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살리면서 주제별로 꾸민 테마 정원들도 눈길이 간다.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눈이 즐겁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많다.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느랭이골 아래로 섬진강 물줄기가 보이고, 더 멀리로는 남해 바다도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느랭이골리조트에는 볼거리가 또 있다. 자그마한 폭포다. 느랭이골 사람들은 이 폭포를 '신비의 폭포', '칠선녀 폭포'라고 부른다. 365일 마르지 않는 폭포다. 능선에 가까운 곳인데도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다.
느랭이골리조트에서는 캠핑 장비가 없어도 글램핑(Glamping)을 즐길 수도 있다. 2~4인의 인원이 사용 가능한 10평 크기의 텐트가 마련돼 있다. 냉난방시설과 편백나무 가구, 샤워부스를 갖추고 있다. 보온과 환기가 잘되는 캔버스 천으로 특수 제작된 텐트 22개 동이 옹기종기 설치돼 있다. 낮에는 편백숲에 빠지고, 밤에는 고요한 자연 속에 묻혀 잠을 청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느랭이골 입구에서 863번 지방도를 따라 백학동 계곡을 드라이브 삼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제법 많이 붐비는 곳이다. 울창한 원시림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어치계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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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 입구의 전어 조형물. |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하동에서 섬진교를 지나 광양 땅에 들어서서 직진하자마자 바로 왼편으로 13㎞가량을 가면 진월면 망덕포구에 이른다. 망덕(望德)은 망을 보기에 알맞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망덕포구는 섬진강 하구에 있다. 포구 마을 뒤편의 망덕산은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전망대로 사용됐다고 한다.이 산에는 천자를 알현할 수 있는 '천자봉조혈'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유독 무덤이 많다고 한다.
망덕포구에 서면 먼저 전어 모양을 한 조형물이 반긴다. 망덕포구는 전어로 유명하다. 망덕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내용의 옛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한 번 맛보면 '굽는 냄새'까지 못 잊을 만큼 맛이 있다고 한다.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전어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망덕포구에는 20여 곳의 횟집들이 있다. 2월부터 4월 사이에는 섬진강 물속 바위에만 산다는 강굴(벚굴)을 맛볼 수 있다. 크기가 무려 30㎝나 돼 먹을 게 많고 맛도 있다. 망덕포구에는 '정병욱 가옥'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써서 남긴 원고를 몰래 보관하던 곳이다. 윤동주 시인은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다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자 원고를 친구인 국문학자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마룻바닥 속에 숨겼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작은 광복 후 1948년 마침내 빛을 보게 된다. '서시'를 비롯해 '자화상', '별 헤는 밤'등의 작품들이 이때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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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정병욱 가옥'. |
광양시청 홍찬의 관광과장은 "망덕포구와 망덕산, 배알도 일원을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근린광장, 산책로, 정자를 조성 중이다"며 "망덕포구는 백두대간의 시종점이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어서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송대성 선임기자 sds@busan.com
여행 팁
■교통 편 남해고속도로 하동 IC로 빠져나와 계천사거리서 구례 하동 방면으로 우회전, 섬진강대로를 타고 하동읍에 진입해 남원 구례방면으로 향한다. 섬진교 삼거리에서 순천, 광양방면으로 좌회전해 섬진교를 건넌다. 섬진교를 건너면서 바로 우회전해 861번 지방도인 섬진강대로를 탄다. 1km 정도 가면 왼편으로 느랭이골 안내판이 보인다. 토끼재길을 따라 고개를 오르면 느랭이골을 만난다. 산골 오지여서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망덕포구까지 가는 대중교통편은 광양 시내 중마터미널(061-795-8289) 앞에서 54번 망덕행 시내버스(광양교통 061-762-7295)를 이용하면 된다. 1시간 정도 소요 거리다. 광양시청 앞에서는 11-2번 시내버스가 망덕포구까지 운행한다. 망덕포구는 하동 터미널에서도 54번 망덕행 광양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부산에서 망덕포구로 가려면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동광양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요금은 1만500 원, 오전 7시 20분부터 하루 13회 운행한다.
■먹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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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포구 횟집의 매운탕. |
망덕포구에는 바다횟집(061-772-1717), 백운횟집(061-772-3887) 등 20여 곳의 횟집이 있다. 자연산 백합요리(구이, 회, 죽 등)는 kg당 4만 원선이다. 농어, 감성돔 회 요리는 접시당(3~4인 기준) 7만~8만 원 선. 섬진강 강굴(벚굴)이 유명하다. 강굴은 섬진강에서만 서식하는 굴. 대개 2월부터가 본격적인 수확 철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크고, 우윳빛 속살과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망덕 전어는 지하 암반수를 넣은 수조에서 보관해 고소하고 쫄깃한 맛을 낸다고 한다. 구이와 회, 무침으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코스 요리는 구이와 회, 무침으로 나오며 2~4인 기준 6만~8만 원선.
광양은 닭 숯불구이로 유명하다. 잘 손질된 닭고기에다 마늘과 참기름 등으로 양념하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참숯불로 구워낸다. 담백하고 깔끔하면서 고소한 맛이 난다. 마지막에 나오는 닭죽이 맛있다. 4인 기준 4만 5천 원. 토종 육계를 사용해 닭 자체가 크다. 지곡산장 061-761-3335, 차도리하우스 061-762-3065 등이 맛집이다.
■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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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랭이골자연리조트 글램핑장. |
느랭이골자연리조트(1588-2704)의 글램핑장 이용 비용은 주중 25만~35만 원, 주말 29만~39만 원. 단순 입장은 어른 기준 9천 원.
■여행 문의 광양시청 관광과(061-797-2731), 관광안내소 (061-797-3333). 송대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