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교육현장이 학교체벌 전면 금지 여부를 놓고 양분되는 양상이다. 서울시교육청이 19일 각급 학교에 체벌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면서 일어난 일이다. 올 2학기부터 모든 서울시의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체벌이 전면 금지된다. 체벌 전면 금지는 손바닥을 때리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키는 행위는 물론 화장실 청소, 운동장 돌리기 등도 포함된다.
체벌 금지 여부는 지난해 12월 17일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발표 때부터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경기학생인권조례안은 당시 보수세력과 여권이 장악한 경기도교육청 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의 반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금지, 복장·두발 규제 금지, 야간자율학습 선택권 보장 등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데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의 무차별적인 학생 폭행 사건으로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 여론이 또다시 달궈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체벌 금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과 경기, 전남·북, 강원, 광주 등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은 어떠한 체벌도 금지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교육감은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경기도교육청 유선만(중등교육과 생활인권담당) 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학생인권조례에 이미 ‘체벌 금지’ 조항을 넣었다”며 “학교 체벌 금지에 대해 이미 모든 관련 부서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교육청은 김승환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방침에 맞춰 체벌 금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연말까지 초안을 만들고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도의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전남과 강원도교육청도 교육감의 공약에 따라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때 체벌 금지 조항을 반영할 예정이다. 충북도교육청은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규정을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반면 경남과 대구·경북·충남·부산·울산·대전 지역에서는 현행 체벌 규정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최소한의 규율과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남의 경우 체벌 사항을 규정한 ‘학생생활 규정’이 있으며 학부모와 교사, 학생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자율적으로 개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경남 지역 학교의 체벌 관련 규정도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생활지도를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체벌인 무릎꿇기·반성문 쓰기 등은 허용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지침 마련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임혜경 부산시교육감은 “경기도와 서울에서 추진 중인 인권조례안은 체벌 금지, 두발·복장 규제 등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규제는 대부분 기존의 학교 교칙 안에 포함된 내용”이라며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면서 학부모·학생·교직원이 자율적으로 교칙을 개정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나근형, 교육감협의회장 당선=전국 16명의 교육감들은 이날 충북 단양에서 시·도 교육감 협의회를 열고 보수 성향의 나근형 인천시교육감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나 교육감은 “교육정책은 중앙정부를 따라야 하고 법과 규정이 정한 대로 교육 정책을 이끌겠다”며 “교육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감 중 보수 성향이 10명인 데다 회장도 나 교육감이 맡게 되면서 협의회 운영이 친전교조 성향 교육감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영진·김민상·신진호 기자 [전국종합]
20일 오전 서울 K고. 장모 교사는 수업을 하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떠드는 학생들을 나무랐더니 “체벌 완전 금지인데 왜 그러세요”라며 대든 것이다. 장 교사는 “말로만 지적했을 뿐인데도 학생들이 그렇게 반응하더라”며 “체벌은 해서는 안 되지만 훈계조차 어렵게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친전교조 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 방침이 전국 교육계에 파문을 불러 오고 있다. 한국교총은 “교육 현실을 모르는 탁상 행정”이라고 비난하고, 전교조는 “체벌 완전 추방”을 주장한다. 무상급식에 이어 ‘오장풍 교사’ 후속 대책으로 나온 ‘곽노현표 체벌 금지’가 또 다른 이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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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교사들은 체벌 금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최소한의 장치를 요구한다. K고 장 교사는 “요새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리면 끌 생각은 안 하고 아예 교실 뒤로 가서 받는다”며 “말로 타일러서 바뀌면 왜 말로 안 하겠느냐”고 했다. 수업 시간에 허락 없이 화장실에 가고, 여교사를 밀치거나 교사에게 욕설을 내뱉는 학생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서울 J초교 이모 교사는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학생은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등 교육을 포기하는 교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체벌 금지는 학생 일탈이 심한 지역에서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 S고교 김모 생활지도부장은 “체벌까지 금지되면 면학 분위기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부교육청의 전병식 장학관은 “체벌 금지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처럼 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부모 소환권과 같은 행정 처벌이 필요하다”며 “체벌을 없애는 대신 엄격한 교육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에게 욕을 하면 등교를 정지시키거나 학부모가 학교에 출석한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학부모 소환제’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일부 학교에서 행동에 따라 상점과 벌점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생활기록부에는 기록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이 벌점에 따른 사회봉사 지시를 거부하면 소용이 없다”며 “문제아를 심리적으로 치료하거나 교육하는 시스템도 없이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졸속 행정”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은 “체벌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며 “당연히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교육감, 뒤늦은 법률 검토=곽 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 지침을 서둘러 발표한 뒤 뒤늦게 변호사를 통해 위법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교총이 “교육적 체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현행 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훈계로 지도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시교육청은 “이 조항이 체벌을 하라는 뜻은 아니므로 학습벌 등 신체적 고통을 주지 않는 벌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교총은 “곽 교육감이 여론 수렴 절차를 밟지 않았고, 체벌 전면 금지에 따른 학교현장의 문제점을 해소할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즉흥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