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들락거린지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다.
겨울을 이곳 따뜻한 남해 독일마을 뮌헨하우스에서 지내게 된 것은
내 생애에서 전혀 계획했다거나 꿈을 꾼 적도 없는 일이었다.
섬으로 갈 때나 요르단으로 갈 때나 의도하지 않았던 의외의 길로 인도하실 때마다
잘 적응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나의 주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이런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든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준 이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뮌헨하우스 카페를 오래간만에 열어 봤더니 눈에 띄는 글이 있어
내 카페로 옮겨 본다.
<->
우리 큰 형님!
우리 부부가 독일로 귀국해서 내년 4월까지 반년을 비우는 사이에
우리 큰 형님이 뮌헨하우스 펜션을 기꺼이 돌보아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큰 형님 이 관수목사는 삶의 궤적이 크신 분이지요.
예전의 우리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일찍부터 배고픈 설움 속에
가지가지 험한 일도 다 겪어 본 분이라 이야깃거리도 많은 분이구요.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풍부해서 좋아하는 곡의 악보나 시를 적어서
직접 책자로 만들어 빨간 장정을 하여 가지고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 시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시가 김소월의 ‘접동새’입니다.
접동
접동
아무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독일마을은 앞으로 시원스레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는가 하면
뒷 켠은 첩첩산중입니다.
밤마다 접동새가 우는 곳이니
큰 형님의 빨간 책자를 가끔씩 기웃거리며 부러워하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성결교단 청주서문교회 파송선교사로 따뜻한 요르단에서 근 10년을 사역하다가
금년에 은퇴하신 큰 형님은
첫 목회지로 무녀도 섬에서 10여년 시무하기도한 인연으로
바다를 몹시 좋아한답니다.
따뜻한 남해바닷가 독일마을에서 기대하는 것도 많으신 듯합니다.
풍광 좋은 곳에서의 글과 그림 등..
큰 형님의 카페 cafe.daum.net/atidlee가 지금도 참 좋습니다만
조만간에 더욱 풍부해 질 것으로 기대가 큽니다. ^^ 펜션지기>
다시 청천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니
이곳에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뮌헨하우스 주변을 다듬거나 가꾸고, 페인팅과 축대의 벽화작업 그리고
해오름예술촌에 <천사를 대접하는 아브라함>을 상상하며 벽화로 그려 놨다.
정금호 촌장 왈 "목사님은 커피를 평생 공짜로!" 라고도 했다.
여기저기 이름난 곳을 탐방하거나 가까운 명승지를 탐방했다.
바다를 좋아하니 근처의 바닷가에서 아들과 함께 낚시줄도 드리우고...
광양 매화밭을 거닐거나 화개장터 쌍곡사 벚꽃길도 둘러보고
구례 산수유축제도 들러보고, 하동의 섬진강 솔숲에서 쉼표도 찍어보았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통영 동피랑도 가보고 ...
한가롭게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또드락거리는 재미도 쏠쏠 했다.
지난 해엔 이웃 빌리네의 고장난 상수도 손질 하는 걸 약간 거들어 주었더니
내가 없는 동안에 고맙다는 표시로 벌꿀을 한 병 전해 왔다는데 아직도 찬장에 진열되어 있다.
남해에 내려 왔기에 가능했던 여행이나 체험이었다.
그리고 분에 넘치게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도 거듭했다.
지난 가을에 여기로 올 때는 한가지 숙제를 끌어안고 내려왔다.
시작이 반이라곤 하지만 아직도 시작만 하고
마무리는 아직도 저~만치 멀리 손에 잡힐듯 말듯...!
농촌으로 가면 더 풀기 어려울 숙제인데...
그래도 나만의 고유한 이 숙제는 반드시 풀어야 하기에
내 귀가보따리에 이 숙제를 다시 꼭꼭 싸안고 돌아가련다.
답안지를 내놓을 때는 아주 훌륭한 답안지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ㅎ
-관-
첫댓글 농사지으러 다시 청천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들이 사연있는 경운기도 한 대 보내왔다.
결실의 기쁨을 안기는 농사에 전념해 보고자 한다.
2015.4.6 대한기독문인회 카페로 스크랩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