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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라는 옥합을 깨뜨려 봐요 = 마가복음14;3-9
충성테스트
어느 주일 아침, 큰 교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도록 모여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조폭들 옷차림을 한 두 사내가 교회에 들어섰습니다.
한 사람은 뒤쪽에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가운데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코트에서 기관총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중앙에 나와 있는 사내가 소리쳤습니다.
“예수를 위해 총탄을 맞을 각오가 된 사람만 자리에 남으시요!”
당연히 신도들은 자리를 비웠고, 합창단과 부목사님도 뒤따라 나가버렸습니다.
남은 사람은 순식간에 20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목사님은 강단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내들은 총을 치우고는 목사님에게 점잖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이제 위선자들은 죄다 사라졌습니다. 예배를 드리시지요.”
만약에 우리 교회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과연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요?
아니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버리지는 않을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리 어렵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지구촌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생명과 맞바꾸어야 되는 지역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신앙고백하는 것은 곧 죽음이요, 추방당할 수 있는 지역들이 많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한도 그렇습니다.
중국도 그렇습니다.
이슬람지역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별 어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껏 신앙생활 할 수 있을 때 더욱 더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고 경배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예배하는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P4.
유대인들에게는 크게 3대 절기가 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최대의 명절로 삼는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월절 절기와 연관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교절기간에 초실절제사를 드리는 그 시간에 다시 살아 부활하신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서 아주 가까운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몬은 나병환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나병을 깨끗하게 치유받은 사람이다.
나병환자였던 시몬은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나병을 고침 받고 온전한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모시고 식사대접 해 드리고 있다.
식사자리에는 집주인인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식사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시몬의 집에 마리아라는 여인이 들어온다.
이 여인은 막달라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리아이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서 너무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일곱 귀신들이 쫓겨나고 해방받은 이스라엘 여인이다.
이 여인은 일곱 귀신에게서 해방받은 후에
자신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위해서 살았던 여인이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위하여 가장 값지고 소중한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예비하라는 감동을 주신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예비할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여인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만 하는
나드향 옥합이 전부인데 이것을 예수님께 드린단 말인가?
① 내가 가지고 있는 나드향 옥합은 너무너무 소중한 것이다.
여인으로 태어나 내가 결혼할 때 신랑을 위해서 쓰려고 준비해 온 것이다.
② 이 나드향 옥합은 너무너무 비싸서 장정이 적어도
1년 동안 일하면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모와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을 주어야만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싸고 귀한 것을 한 번에 다 예수님께 드려야 된단 말인가?
예수님은 내 신랑도 아니지 않은가? 나와 결혼할 신랑을 위해서 쓰려고
그 동안 준비해 둔 것인데...어쩌란 말인가?
③ 이렇게 귀한 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버리는 것은 허비하는 것이다.
차라리 이 나드향 옥합을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헌금을 내는 것이 더 의롭고 좋은 일이지 않을까?
아마도 평생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살아오신 예수님께서 더 원하지 않으실까?
④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들인데.....
내가 이 나드향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면 제자들을 비롯하여
남자들이 뭐라고 할까?
왜 이렇게 비싼 것을 값어치없이 낭비하느냐고 비난하면 어쩌나?
난 비난받는 것이 너무 너무 두렵고 싫다. 지난번에 일곱 귀신에 들렸을 때도
남자들에게서 너무너무 많은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지 않나?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되나요?
저도 예수님을 만나서 일곱 귀신이 쫓겨나고 이제는 아름답고 고운 여성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딸로 살아가게 해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귀신 들린 못된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터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하나님,
예수님이 너무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이 나드향 옥합을 깨뜨려서 머리에 붓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쓸모없이 낭비하고 소비하고 버리는 것 같아요.
지금 예수님이 계시는 장소에는 여자들이 갈 수 없는 자리잖아요.
여자인 내가 어떻게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간단 말입니까?
이렇게 귀한 나드향 옥합을 깨뜨릴 수 있단 말입니까?”
D4.
① 여자인 마리아에게 남자들의 모임에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
시몬의 집에 모여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남자들의 모임에 여자가 들어오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팔레스타인지역의 고고고시대에는 남자와 여자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시대이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이는 시대이다.
여자는 한 사람의 인격체라기보다는 남자에게 속한 소유물에 불과하던 시대이다.
남자들의 모임에 여자가 들어가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던 시절이다.
여자들의 모임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향유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감동해 주신다.
향유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신다.
② 남자들이 가득한 방에서 마리아는 향유옥합을 깨뜨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서 흘러내리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까지 닦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미쳐 만류할 틈도 없이 온 방에는 향유 향내로 가득 차게 된다.
이 때 마리아가 예상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하면서 야단친다.
남자들의 모임에 여자가 들어가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거니와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서
다른 남정네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믿음으로 자신의 나드향 옥합을 깨뜨린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나드향을 붓는다.
믿음으로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다.
다른 남정네들이 뭐라고 수치를 주든 말든 이에 상관하지 않고
마리아는 오직 믿음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 깨뜨려 드리고 있다.
③ 예수님께서 가시는 십자가 죽음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예수님.
가룟 유다를 비롯한 남자들이 하는 비난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류시키면서,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의 행위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하시면서 칭찬해 주신다.
인간적인 눈,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300데나리온에 팔릴 수 있는 아주 값진 나드 향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에 세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동참하는 가장 복된 일로, 가장 신령한 일로 보인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신령한 구원의 세계로 보는 사람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허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로 보인다.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면 세상만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인다.
④ 마리아가 나드향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부어드림으로서 하나님은 여인에게 축복하신다.
ⓐ 사람들에게는 비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칭찬을 받는다.
ⓑ 다른 제자들은 세상의 복을 위해서 살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구원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된다.
ⓒ 예수님이 전해지는 곳마다 마리아의 고운 행동은 대대로 전해지고 흠모하는 이야기가 된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신다.
ⓓ 십자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나주시는 여인이 된다.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을 때 마리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나드향 옥합을 깨뜨려 믿음으로 예수님께 드리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L4 & B4.
*** 내 자신의 옥합을 깨뜨리자.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마리아의 나드향 옥합을 원하시고,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게 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위해서 가장 아까운 나드향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서
마리아를 칭찬해 주시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마리아의 행위를 전하는 축복을 주신다.
이처럼 마리아는 가장 값비싸고 소중한 나드향 옥합을 예수님을 위해서 깨뜨리면서 부어드렸다면
우리들은 어떤 옥합을 깨뜨려서 드릴 수 있을까?
마리아가 가진 나드향 옥합은 자신이 결혼하여 신랑이 되는 사람에게
신혼첫날 부어드리기 위해서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나드향 옥합은 자신의 모든 것과 같다.
마리아가 가진 나드향 옥합은 마리아가 가진 모든 것이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나드향 옥합을
예수님께 깨뜨려 부어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육신의 신랑을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나드향 옥합이지만,
이제 영혼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깨뜨려서 부어드린다.
그런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의 몸과 영혼과 마음과 생각의 모든 것,
우리들 자신 자체가 우리들이 예수님께 깨뜨려 드릴 수 있는 나드향 옥합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나드향 옥합이란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들 자신을 예수님을 위해서 온전하게 깨뜨려서 드리면 좋겠다.
우리들 자신에게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깨뜨릴 수 있는 재능도, 물질도, 건강도, 가족들도,
시간도, 가족들도 다 들어 있다.
우리들 자신을 온전하게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도 아깝지 않다.
무엇이든 다 드릴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 사랑으로 다 내어 주시지 않았던가?
예수님께서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 사랑으로 내어줄 때 아까워서 내어주지 않고 감춘 것이 있던가?
아무 것도 감추지 않았고, 미루지도 않았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 주셨다.
우리들 자신이 그런 십자가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려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듯이
우리들도 우리들 자신을 온전하게 드림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마리아도 믿음으로 향유옥합을 깨뜨리고 부어 드린다.
믿음으로 자신의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린다.
우리들도 믿음으로만 우리들 자신을 깨뜨릴 수 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마리아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은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한다.
믿음의 사람은 마리아의 행동을 축복한다.
믿음의 사람은 마리아의 행동이 이해되어진다.
믿음으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옥합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깨뜨리고 예수님께 부어드릴 수 있다.
십일조헌금을 비롯한 각종 헌금이라는 옥합도 깨뜨릴 수 있다.
시간을 내어 주님의 일을 헌신하고 충성하는 옥합도 깨뜨릴 수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 재능을 쓰시고 싶어하신다면
기꺼이 우리가 가진 재능이라는 달란트도 깨뜨리고 부어드릴 수 있다.
주님께서 내 몸뚱아리를 쓰시고 싶어하신다면 내 몸뚱아리도 기꺼이 내어 드릴 수 있다.
이제 우리들에는 서서히 2015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016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2015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016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을 온전히 올인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깨뜨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예수님께서 가장 받고 싶어하는 나드향 옥합은
우리들 자신 그 자체를 통째로 올려드리는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들 자신을 예수님께 올려드리면서,
‘주님의 뜻대로 써 주십시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우리들 자신을 써 주세요.’
라고 헌신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대전와우리교회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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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장 10절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은혜로운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