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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과 권정생
제 고향 안동은 자랑할 만한 인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늘 빚진 마음으로 자랑하는 분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입니다. 그는 안동의 농촌교회인 일직교회 종지기로 헛간에 살면서 동화를 썼습니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종을 쳤답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들이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느냐는 마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983년부터 별세하신 2007년까지 다섯 평 남짓한 하천부지의 오두막집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로 번 돈이니 모은 돈은 남북한과 세계 어린이, 평화, 생태회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습니다. 일직면의 폐교된 남부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권정생 동화나라’가 선생님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학교는 제가 초등학생 시절 축구선수로 원정경기를 다녔던 작은 시골학교였습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고 자라나야 할 어린이들이 점점 줄고 초등학교는 폐교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올해 신입생을 한 명도 못 받은 초등학교가 경북에서만 32곳이랍니다. 어린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밭에 숨겨 놓은 보물
어느 어부가 그냥저냥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뭔가 발에 차였습니다. 돌이 가득한 자루였습니다. 그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돌을 꺼내 던지면서 푸념했습니다. “이게 보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마지막 돌을 던지려다 어스름 달빛에 비추어본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반짝이는 보석이었습니다. 제 손에 든 보석을 허황한 꿈만 꾸며 다 던져버린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어부지요. 그런데 제 손의 보물을 던져버리는 사람이 이 어부뿐일까요.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마 13:44, 새번역) 우리에게 황금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물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 멀리 하늘 너머에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밭에 숨겨 있는 보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밭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일터요 우리의 가정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이라는 밭에 하늘나라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야지요. 오늘도 하늘나라에 사는 듯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내야지요.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촐루테카 다리의 교훈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 촐루테카라는 강이 있습니다. 그 지역은 잦은 태풍으로 인해 도시를 이어주는 다리들이 자주 유실되는 곳이었습니다. 1998년 온두라스 정부는 한 기업을 통해 484m의 튼튼한 철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크고 견고한 다리는 그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미치(mitch)라는 이름의 강한 허리케인이 그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사흘간 쏟아진 폭우로 100개 넘는 다리가 파괴됐으나 새 철제 다리는 멀쩡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토사가 강물을 덮으면서 물줄기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는 겁니다. 거대한 강물은 철제다리 아래가 아닌 옆으로 흘러가게 됐습니다. 다리는 건재했지만 쓸모 없는 다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촐루테카강의 다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의 변화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옥석이 가려지는 시대입니다. 지켜야 할 본질과 바뀌어야 할 비본질을 잘 구분하는 지혜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촐루테카강의 다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시대를 분별하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죽도록 즐기도록 유혹하는 세상
미국의 교육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닐 포스트먼은 1985년 ‘죽도록 즐기기’라는 책을 통해 영상 미디어 사용의 위험성에 대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오늘 포스트먼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비교합니다. 오웰은 빅 브러더가 지배하는 외부 압박으로 통치하는 사회를 그렸고, 헉슬리는 자유와 즐기는 것의 과잉이 불러오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오웰은 서적을 통제하는 사회를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재미있는 것에 빠져 서적을 읽지 않는 시대의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오늘날 SNS나 유튜브 영상 등에 익숙해지면 인간의 뇌는 사색과 숙고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을 합니다. 포스트먼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인간이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솔함이라고 지적합니다. ‘죽도록 즐기기’ 딱 좋은 세상에서 ‘인간들의 무한정한 오락 추구의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SNS 세상에서도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왜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매일 사랑의 기도를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용서하지 못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상수훈의 말씀, 즉 마태복음 5~7장을 매일 읽으며 회개 기도를 하던 때였습니다. 절대 미워하면서 기도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관여하십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과 감화를 주신 바는 “네가 사랑으로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사랑의 마음이 없습니다. 단 1%도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최근 큰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랑으로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탄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미워하는 마음에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응답받기를 원한다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의 기도로 주님이 함께하시는 은혜를 누렸으면 합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든든한 울타리
한 프로야구 선수가 인터뷰 중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후배들이 경기장에서 주눅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기량을 펼쳐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책임은 선배들이 질 테니까 마음 놓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라는 존재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도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사회적 분위기나 현재 자신의 상황 때문에 주눅 들거나 망설이지 말고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보라고 말입니다. 사회에서도 “우리 선배들이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또한 젊은 후배 목회자들이 다소 서툴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선배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며 마음 놓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책임져 주고 울타리가 되어 주며 격려하는 선배가 필요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부모됨의 핵심은 사랑
지난 시절 정권 실세의 딸이 부모 덕에 누린 특혜를 규탄하는 시민들을 향해 ‘부모의 돈이 실력’이라며 ‘무능한 당신의 부모를 탓하라’는 망언으로 많은 부모에게 모욕감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자녀들은 부모들을 향해 소리지르는 듯합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제가 산 최초의 컴퓨터는 ‘286 AT’였습니다. XT 시대를 마감하고 AT 시대를 여는 최신형이었습니다. 그 컴퓨터로 플로피디스켓 3~4장짜리 컴퓨터 게임을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서른이었습니다. 홍콩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관계로 비교적 일찍 인터넷을 접한 셈이었는데 제 딸은 여섯 살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현대문명을 다루는 능력으로 따지면 출발점이 다릅니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세상의 요구는 부모들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지금 부모들은 자녀들에게서 이 공포와 잔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와의 대화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만남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온갖 문명의 이기로 무장한 현대의 자녀들 앞에서 부모들의 설 자리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베푼 사랑으로 평가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스승을 보여주실 것이니
호젓한 바닷가에서 어미 게가 새끼 게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겨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르쳐도 새끼 게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비척비척 자꾸 옆으로 가네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어미가 시범을 보여줘야겠지요. 어미 게가 직접 나섰습니다. 새끼에게 잘 보라며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힘차게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청 빠르게 옆으로 뛰어갔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셔도, 다시는 너의 스승들을 숨기지 않으실 것이니, 네가 너의 스승들을 직접 뵐 것이다.”(사 30:20, 새번역) 환난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빵과 물일까요. 또다시 경제가 먼저일까요. 아닙니다. 이사야는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마른 빵을 먹고 쓴 물을 마셔도 스승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스승이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혼란할 때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시대에 스승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똑바로 걸어가는’ 스승을 보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어떤 습관
에리히 캐스트너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어느 날 그가 친구와 기차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곤에 지친 친구는 한참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큰일 날 뻔했네. 하마터면 수면제 먹는 것을 잊어버릴 뻔했구먼….” 그러면서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잠을 청하더랍니다.
습관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습관이 있으십니까. 다양한 습관이 우리 삶 속에 녹아있습니다. 원치 않는 부정적인 습관도 있고 긍정적이고 좋은 습관도 있을 겁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 22:39)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 10:25) 예배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렀던 초대교회 성도도 있었습니다.
어떤 습관을 정복하는 유일한 길은 다른 습관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영적인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입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 주님 안에서 최고의 습관을 만들어 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약점을 극복하는 경건
능력 있는 리더이지만 그의 삶이 후대의 유산으로 남으려면 성품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미국 복음연합(TGC) 편집장인 콜린 핸슨이 쓴 팀 켈러 목사의 전기 ‘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에서 저자는 켈러 목사가 자신의 약점 때문에 리더십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켈러 목사는 이런 약점을 자신의 경건을 통한 성품으로 극복했습니다. 리더십을 주제로 하는 대부분 책에서는 약점을 보완해줄 다른 사람을 통해 팀으로 사역하라고 말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본인의 경건으로 보완하지 않는 한 은사의 부족함이 결국 그 사람을 무너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켈러 목사는 능력 있는 장기 사역이 이뤄지도록 하는 핵심에 대해 “우리가 가진 기량 안의 은사가 결핍된 영역을, 우리가 가진 성품 안의 강력한 은혜의 작용으로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능과 능력의 사람이 되기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경건과 성품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약점을 극복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경건을 통한 은혜입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너의 영혼은 이제 완전히 죽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그 세 번째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행동’입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든가, 친한 친구와 맛있는 식사를 한다든가, 바둑이나 당구, 쇼핑하기 등입니다. 그러나 술?도박?약물처럼 심신을 해치거나 중독으로 가지 않도록 절제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혹이 존재합니다. 감각을 빠른 속도로 자극하고, 순간의 쾌락을 맛보게 하는 매혹적인 것들, 저에게는 알코올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새로운 감각을 알려주고,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준 연인이었습니다. 유혹이 순간적인 자극을 선사하듯, 만남도 한순간뿐이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 연인을 너무 오래 곁에 두었습니다. 오래된 연인이 헤어졌다가도 결국 다시 만나듯, 저도 그 연인과 쉽게 헤어지지 못했습니다. ‘헤어짐’은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합니다. 저는 10년 내내 ‘말과 생각만을 반복했을 뿐이고, 행동이 함께 하는 헤어짐’은 불가능했습니다.
‘네 영혼은 이제 죽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난 뒤, ‘이제는 정말로 헤어지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목숨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저는 왜 이 매혹적이고 잔혹한 연인과의 이별을 회피한 걸까요? 어쩌면, 저는 이별 절차를 두려워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별하려고 하면, 연인은 저를 놓치지 않으려고 울며불며 발목을 잡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로 인한 폭풍 같은 파괴력, 즉 ‘엄청난 갈망과 미친 듯한 금단현상, 나를 지배할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 두려웠습니다. 아무튼, 이 연인이 얼마나 지독한 존재인지,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절차를 미룰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사망선고 메시지를 받은 다음 날, 저는 친구를 역까지 태워다주고, 햇빛이 들어오는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창문을 열어놓고, 알코올과 탄산수를 섞어놨습니다. 그리고 TV를 크게 틀어놓은 다음,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갑자기 잔잔했던 감정의 호수에 누군가가 커다란 돌덩이를 던진 듯,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쳤습니다. 불현 듯,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이 파장을 일으키는 것인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마구 울었습니다. 그때, 사망선고 메시지가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너의 영혼은 이제 완전히 죽었다!’(출처;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키슬(한국여성), 출판; 월간 좋은생각)
옛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엔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열매를 먹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음’이란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하신 하나님과의 대화’는 사라지고, ‘거짓과 불신과 원망이 판치는 죽음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통과 고난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그 고통과 고난의 해소방법이 문제입니다. 만일 고통을 해소하고자 옳지 못한 방법을 취할 경우, 그 영혼이 죽음의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실하신 하나님과의 대화가 불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생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되고, 종래에는 파국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고로, 살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엔, 그 분야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려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물맷돌)
[여호와께서 죽음을 영원히 없애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주님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도, 그때에는 주께서 씻어내실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하신 약속이다.(사25:8,현대어) 너희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몸과 영혼을 다 지옥에 던져 파멸시킬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마10:28,현대어) 사랑하는 친구들아, 너희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그들은 몸만 죽일 뿐, 너희 영혼을 죽일 능력은 없다.(눅12:4,현대어)]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그 두 번째는 ‘운동’입니다. 운동이 익숙한 이들의 경우, 당연히 운동을 추천합니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생각)을 쉬게 하고, 그래서 몸에 활력이 생기면 그것이 마음으로 옮겨지게 마련입니다. 산보도 훌륭한 운동입니다.
사실, 열등감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다 잘하거나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등감의 뿌리가 너무 크고 깊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둡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등감이 크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못나고 무가치하다고 믿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애당초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저는 못생겼고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습니다. 남에게 저의 부족한 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뭘 하든지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학회에서 발표해야 하거나 원고 쓸 일이 있으면, 제가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읽었습니다. 관련 자료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대한 저 나름의 결론을 얻습니다. 그래서 누가 질문하더라도,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읽고 공부한 덕에, 저는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누구나 부족한 구석이 있지만, 찾아보면 좋은 점도 많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것만 너무 커 보이고 자꾸만 주눅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존감이 낮다면, 우선 잘못된 시각부터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등감이 너무 깊어 모든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해야 합니다.”(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전문의)
자존감과 열등감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자칫 자존감이 기세를 부리면 교만에 빠지게 되고, 자칫 열등감에 빠져들면 낙심하고 좌절할 염려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흘러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열등감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경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앙을 갖게 될 경우,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언제나 항상 성령으로 오셔서 함께 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물맷돌)
[우리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서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할 것을 채워줄 수 있게 해 달라’고 밤낮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살전3:10,현대인) 여러분의 생각을 참된 것과 선한 것과 옳은 일에 단단히 매어두십시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좋은 점을 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 찬양과 기쁨을 드리는 일만을 생각하십시오.(빌4:8,현대어)]
자식 같다는 이유만으로 ‘실수를 용서하는 어른’을 만났습니다.
샬롬! 어저께는 은혜로이 잘 보내시고, 밤새 편히 쉬셨는지요? 어버이날인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오늘부터는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를 소개합니다(출처; 함영준의 마음피트니스). 그 첫 번째는 ‘심호흡’입니다.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스트레스는 심호흡만 몇 번 해도 가라앉는답니다. 신앙인이라면, 잠깐 기도하고 찬송1곡을 부르는 것도 좋겠지요?
남자친구와 첫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카페 입구로 들어서다가 주차 중인 앞차와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입구에 턱이 있어서 천천히 운전한 터라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우리 차와 앞차에 흠집이 생겼습니다. 앞차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내렸습니다. 아저씨는 거듭 사과하는 우리에게 ‘일단 커피 좀 마시자!’며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뻔히 예상되는 암울한 미래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만큼 긴장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빛만 주고받았습니다. 주문을 마친 아저씨가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주말이라 차 대여해서 놀러온 것 같은데, 사고 나서 많이 놀랐죠?” 사고를 당한 자신보다 사고를 낸 우리를 먼저 살피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감사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저씨가 남자친구를 보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청년 또래 아들이 하나 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왔을 텐데, 이 사고로 여행을 망치면 안 되겠죠. 이번에는 그냥 가도록 해요. 대여한 차라서 수리비도 만만치 않잖아요. 사람도 안 다쳤고, 내 차는 코팅만 살짝 벗겨졌어요. 보상은 ‘다음에 청년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웃으며 넘어가는 걸’로 대신합시다.” 우리는 거듭 사과하면서 조금이라도 보태겠다고 했지만,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차에 올라타려는 아저씨에게 ‘명함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건네주셨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얼떨떨한 채로 명함만 쥐고 서 있었습니다. 자식 같다는 이유만으로 실수를 용서하는 어른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자친구와 저는 그때 일을 종종 추억합니다. 언젠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처럼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인 사람에게 너그러움을 베풀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유영애 / 경기 수원)
이런 분들이 많아진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좀 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제대로 나잇값을 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나 하는 어른을 반기는 경우란 극히 드물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무쪼록, 나이 드신 분들은 ‘꼰대노릇을 피하고 마음이 넓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야 할 겁니다.(물맷돌)
[귀를 기울여,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아 슬기롭게 사는 이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라. 그들의 깨달음에 마음을 쏟아라.(잠22:17,현대어)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모두 다 어렸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적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모두 다 내버렸습니다.(고전13:11,현대어)]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5월 6일, 계절의 여왕 5월의 첫 주말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즐겁고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가수 현미 권사님이 생전에, 방송에서 여러 차례 ‘케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지인의 권고로 오랫동안 케겔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케겔운동이란, 항문을 조여 주는 운동입니다. 남녀 공히 이 운동을 계속하면, 방광조절개선, 요실금 위험감소, 성기능개선 등의 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케겔운동기구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제가 들은 가장 무서운 설화는 ‘망부석’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며 높은 바위에서 멀리 바다만 바라보면서 울고 또 울다가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아내의 이야기’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받았을지 모르지만, 그리워하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돌이 된다는 것 자체로, 저에게는 영원토록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한 조각가가 조각한 ‘입맞춤’이라는 조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꼭 끌어안고 있는 조각입니다. 서로가 합쳐져 하나의 돌이라도 되는 것이 목표인 양, 서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쪽씩만 보이는 둘의 눈은 하나가 되어 외눈박이가 되었고, 한쪽씩 보이는 팔은 한 사람이 스스로를 안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둘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결코 떨어지지 못하게끔 차가운 돌로 굳어버렸습니다.
사랑은,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다투면 둘의 세계는 끝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가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감정의 끝없는 수축과 팽창 속에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돌이 된 연인들에게도 많은 금(갈라진 틈새)이 있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하기까지, 비단 기쁨만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조그만 틈 사이로 물도 들어가고 바람도 들어갔을 것입니다. 어느 날은 상처를 주었다가 어느 날은 상처를 받으면서, 상처의 굴레에 딱딱한 딱지가 앉았을 겁니다.
연애는 어렵습니다. 몇 십 년을 따로 살았던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갖가지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합니다. 가족, 친구, 직업 등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삶 전체가 무너집니다. 머리로는 정리가 되어도, 마음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이미 그를 사랑해버려서입니다.
저는 이제 망부석 설화가 무섭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어버린 이를 이해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조건 없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랑 아닐까요? 상처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다만, ‘상처가 생겼을 때에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아직 서로 사랑한다면, 함께 치유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지금 사랑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출처; 샘터, 이소영 / 아트컬렉터)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아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꼭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닙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시기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한 마음이 되고 하나의 생각으로 뭉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어려운 숙제를 풀고 나면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거저 노력도 하지 않고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흔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짜로 베풀어주시는 사랑도 어느 정도 우리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단 한 번뿐인 우리 인생입니다. 연습 삼아서 살 수 있는 여벌 인생이 따로 없습니다. 아무쪼록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물맷돌)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결코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만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쁜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진실만을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13:4-6,현대어)]
세상은 그 불쌍한 인생을 향하여 다시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5월 4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코로나 백신과 함께 맞아야 할 예방접종’ 그 세 번째는 ‘대상포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수두에 걸려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대상포진은 수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가 나타나는 병이랍니다. 성인은 1회 접종으로 예방이 가능하며, 예방접종하면 ‘병에 걸려도 비교적 가볍게 앓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기흥에 있는 삼성연구단지에서 한 달간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담당직원이 전화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사형수를 교화했다고 선생님을 소개했더니, ‘왜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사형수 이야기를 안 해주느냐?’고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번 주가 마지막인데, 한 번만 말씀해주십시오’하고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금당골동품상 주인 부부를 살해한 살해범 ‘박철웅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철웅은 저를 통해서 참회록을 썼기 때문에,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건이라, 가끔 그 이야기를 합니다. 박철웅은 세 사람을 살해해서 자기 집 정원에 매장했다가 3개월 뒤에 붙잡혔습니다. 그때 박철웅은 ‘그 3개월이 자기 인생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양주 두세 병을 마셔도 잠들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렸답니다. 결국 잡혀 들어가 구치소 독방에서 첫날밤을 지내는데, 가장 편안한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2년 6개월간, 저는 박철웅을 상담했습니다. 그는 구치소 안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사도바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나처럼 살지 마라’고 하는 의미에서 참회록을 썼습니다. 그 책은 83년도 사형집행 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인세로 심장판막증을 앓는 세 아이가 수술 후 새 삶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형수 이야기는 절대 안 합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들은 너무나 불행하게 살다가 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데, 나는 불행했던 그들의 삶을 허락도 없이 강의내용으로 활용하기가 싫었습니다. 단지 그들을 통해서 제가 배운 교훈을 말해주는 정도만 하고 싶을 뿐입니다. 한 사람의 사형수를 만나고 집행을 당할 때까지 함께 하면서,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드라마 같은 세상을 보게 됩니다.
저렇게 불행할 수도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불행을 깔고 나온 인생인데, 세상은 그 불쌍한 인생을 향하여 다시 돌을 던집니다. 온갖 멸시를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악해질 대로 악해지고, 사나워지고 거칠어졌습니다. 마치 사형대를 골인지점으로 알고 달려온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불행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성숙하지 못한 부모, 책임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정에서 보호 받지 못한 생명들은,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출처; 어른 공부, 양순자 / 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봉사, 저서로는 ‘인생 9단’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음)
그 어느 누가 ‘난 장차 살인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면서 살겠습니까?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가 되고 말았으리라 여겨집니다. 글쓴이는 그 이유가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성숙치 못하고 책임감이 뭔지 모르는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좀 무거운 주제이지만,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좀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물맷돌)
[집사는 한 사람만을 아내로 맞아야 하며, 자녀들이 순종하는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물론, 그 스스로도 주께 대한 확신과 신뢰가 더욱 강해져서 이중(二重)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딤전3:12-13,현대어)]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5월 3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코로나 백신과 함께 맞아야 할 예방접종’ 그 두 번째는 ‘폐렴구균’입니다. 폐렴구균은 폐렴과 중이염, 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주요원인이랍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고로, 만 65세 이상과 만 13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꼭 맞는 것이 좋답니다. 폐렴구균예방접종은 보건소에서 무료로 접종하는 ‘23가 다당질 백신’이 있고, 일반 병원에서 유료로 접종하는 ‘13가 단백접합 백신’이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제가 기쁜 척하든 슬픈 척하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속마음을 콕 찍어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저를 보는 눈빛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을 쿡 찔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눈빛은 정확하게 ‘저놈이 실은 속상해서 저러는구먼!’이라고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친구들을 능숙하게 모두 속여 넘겼으나, 할머니만은 저의 속마음을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면서 뒤돌아서는 등짝만을 보고서도 ‘네가 속상해서 나도 속상하다’고 말씀하는 재주가 할머니에게는 있었습니다.
그처럼 귀신같은 데가 있으면서도,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둔하다느니, 아무 것도 모른다느니, 하는 못된 소리도 못 들은 척 넘기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어찌 그처럼 빤히 보이는 저의 속을 한결같이 모른 체 넘겨줄 수 있었을까?’싶습니다. 저 같으면, 제가 아는 것들을 미주알고주알 말하고 싶어 허파가 터졌을 겁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둔하고 어리석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어도,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남들의 그런 평가 따위는 애초 그분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알아채지만 헤집지 않는 것, 알면서도 모른 체 해주는 것, 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 민감함과 대범함 사이에 묘하게 자리잡은 할머니의 무심한 반응은, 청천벽력 같은 큰일도 견딜만한 작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할머니한테서 그런 무심한 이해를 받고나면, 사납게 파도치던 제 마음의 거칠던 너울이 가라앉고, 어느덧 평화로운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아직 어리고 미숙한 꿀짱아가 얼굴도 본 적 없는 할머니의 어떤 중요한 일면을 그대로 빼닮아서, 그분의 표정을 짓고 그분의 몸짓을 할 때,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행복감에 젖곤 합니다.(출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 소설가)
글쓴이의 할머니에게는 ‘말없으심의 능력’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속에서 “입으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면서 뒤돌아서는 등짝만을 보고서도 ‘네가 속상해서 나도 속상하다’고 말씀하는 재주가 할머니에게는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상처를 알아채지만 헤집지 않는 것, 알면서도 모른 체 해주는 것, 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 민감함과 대범함 사이에 묘하게 자리잡은 할머니의 무심한 반응은, 청천벽력 같은 큰일도 견딜만한 작은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부럽고, 또한 닮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글쓴이는 “자신의 딸에게서 할머니의 표정과 몸짓을 발견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곤 한다.”고 했습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물맷돌)
[제 속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 제가 언제나 온전한 마음으로 당신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주께서 잘 아십니다.(렘12:3中,현대어) 내가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소식을 전하며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또 여러분을 기억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롬1:9,현대인)]
호응해주고 감탄해주면, 그 순간의 즐거움은 몇 배가 됩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계절의 여왕 5월 2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부터는 ‘코로나 백신과 함께 맞아야 할 예방접종’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인플루엔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동반한답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분비되는 비말로 인해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매년 1회 정도, 10~11월 전에 접종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만 65세 이상자와, 생후 6개월에서 만 13세까지의 어린이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을 수 있다고 하네요.
요양 차 제주도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지인과 ‘이중섭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음악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브라보!”를 외치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 둘의 응원이 통했는지,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연주자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연주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아들이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면서, ‘그때 많이 연주했던 음악을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또 외쳤습니다. “잘 헤어졌어요! 더 좋은 여자 만날 거예요!” 이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아들은 활짝 웃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그날의 연주는 해가 저물도록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누가 길거리 공연을 하나 보다’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몇 곡 듣고 ‘잘하네!’하고, 혼자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응해주고 감탄해주면, 그 순간의 즐거움은 몇 배가 됩니다. 간단한 몇 마디로 몇 배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니, 세상에 이만큼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이는 모두 그날그날의 재미를 잃지 않으려는 제 노력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쳇바퀴처럼 굴러갑니다. 특별한 일도, 재미있는 사건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저의 경우는 ‘좋았다 나빴다 반복하는 병’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로, 매일 세 번 약을 챙겨먹고, 운동하고, 고기를 아예 먹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지칠 때가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고통이 가시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날엔,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고통스럽다 생각하면서 누워만 있는 것보다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고, 또 ‘그걸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떠올리는 것만 해도 좋았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누워있는 날에도, ‘키우고 있는 꽃과 나무에 새로 핀 잎사귀는 없는지?’ 유심히 살펴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전문의)
아주 오래 전, 어느 교회에 초청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에 앉아있는 한 여자 성도가 웃음 띤 얼굴로 자주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저는 괜히 신이 나서 더 열심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약간 맛이 간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그분 덕에 실력이상으로 파이팅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다니고 계신다면, 목사님이 말씀 전할 때에 밝은 얼굴로 ‘아멘’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인도 은혜 받고, 말씀 전하는 목사님도 힘을 얻어서 더 열심히 말씀을 전하게 될 겁니다. 아무튼, 파이팅 하십시오.(물맷돌)
[그들이 서로 돕고 격려하며 살길을 찾아보았다.(사41:6,현대어) 여러분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와 격려도 더 풍성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고후1:5,현대어)]
엄마가 정말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계절의 여왕인 5월의 초하루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법’ 다섯 번째는 ‘집 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기’입니다. 버릴 건 버리고 청소를 깨끗이 한 후에는, 음악으로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게 좋습니다. 이럴 때, 음악은 마치 공기청정기와도 같습니다.
엄마의 상금정책은 제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번 주말에 선보면 10만 원 줄게.” “결혼하면 1억 줄게.” 결혼은 난이도에 비해서 상금이 약했는지, 성공하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엄마의 상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며칠 전 엄마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숲이 있다〉를 읽고 독후감 써 오면 백만 원.” 그러나 문제는, ‘엄마와 저의 독서취향이 전혀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쓰디쓴 고생사가 담긴 수필을 좋아하는 엄마는 소설을 좋아하는 저에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그런 지어낸 이야기 말고 경험담을 통해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상금이 걸려 있으니,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상금이 걸리면 뭐든지 해내는 ‘현상금 사냥꾼’이었습니다. 서점에 가서 선 채로 책을 다 읽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아빠로부터 버림받은 딸이 며칠 밤낮을 울다가 나무를 심기로 결심한 끝에 사막을 숲으로 바꿔놓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대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엄마가 겪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1972년 성탄절 전날 밤, 엄마는 돌 지난 큰언니를 업고서,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털어 귤 한 상자를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청량리역 앞에서 새벽 3시까지 팔았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겨우 스물 셋이었던 엄마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고, 난생 처음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일 번 돈은 고작 4백 원이었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업고 길에서 동동거렸을, 그때의 그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지금도 저는 눈물이 납니다.
고생한 부모님 덕분에, 저는 잘 먹고 잘 자고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복으로 우리 엄마와 아빠를 만났을까? 사실, 저와 엄마는 성격이 영 안 맞습니다. 하지만, 정반대인 사람을 이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정말 좋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출처; 좋은생각, 박경실/경기 부천)
우리가 누리는 복(福)의 종류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자녀가 그 부모를 존경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복(福)이 흔치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글쓴이는 ‘엄마와 성격이 영 안 맞는다.’고 했습니다. 하건만, 그녀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엄마가 정말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엄마가 딸에게 일을 시킨 댓가로써 돈을 상금으로 지불하는 게 과연 옳은가?’하는 것입니다. 다만, 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야단치거나 질책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글쓴이의 모녀관계는 ‘좋은 엄마와 좋은 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라. 네가 그대로 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가 오래 살고 좋은 일을 많이 볼 것이다.(신5:16,현대어)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녀를 감독할 권리를 부모에게 주셨으므로,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엡6:1,현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