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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성경 66권 강해서 원문보기 글쓴이: 오요한
출애굽기 22장 강해 가장 좋은 것으로
출애굽기 22장 1-출애굽기 22장 31
요절 출애굽기 22장 5절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우리는 자신의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것은 하찮게 여깁니다. 이번 폭설 기간에 30만 킬로미터 이상을 탄 은우 목자 차를 다른 차가 받아서 230만원 가까이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250만원에 산 차를 이 년 타고 230만원을 받았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작년부터 차를 바꾸려고 생각 중인데 적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합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하면 배상 받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배상하는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피해를 본 사람의 입장에서 피해를 준 사람이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작물이 없을 때는 소는 다섯배 양은 네배)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하나님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도둑질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도둑질하면 아무도 일하지 않습니다. 도둑질은 노동의 신성성을 파괴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자기도 먹고 살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합니다. 만약에 도둑질했을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소를 도둑질하여 도둑질한 것을 잡아먹거나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면 소는 다섯 배로 갚아야합니다. 양은 네 배로 갚아야합니다. 비싼 것일수록 더 많이 배상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귀한 것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갚을 때는 그 사람의 정신적인 피해까지 생각하여 네 배에서 다섯 배까지 갚아야합니다. 가난하여 갚을 것이 없을 때는 종이 되어 몸으로 봉사해야합니다.(3) 이렇게 하기 싫으면 도둑질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도둑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도둑질했을 때는 책임을 지기 원하십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내가 도적질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한 것이 이 말씀에 기초하여 한 것입니다.
(정당방위의 한계)
2,3절을 보십시오.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도둑이 들어올 때 밤에 도둑을 쳐 죽이면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밤에 도둑을 막다가 죽인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하십니다. 밤에 도둑질은 낮에 도둑질보다 더 큰 죄가 있습니다. 밤에 도둑질하다가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밤도둑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낮에 도둑을 쳐 죽이면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도둑의 인권을 인정하십니다. 아무리 도둑질 했을지라도 도둑질한 것이 죽일 만큼의 큰 죄는 아닙니다. 도둑질한 것만큼의 벌을 받으면 됩니다. 그 이상으로 쳐서 죽여서는 안 됩니다. 도둑질한 자는 반드시 배상해야하고 배상할 것이 없으면 종이 되어 노동으로 봉사해야합니다.
(작물이 살아 있으면 갑절보상)
4절을 보십시오.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도둑질한 것을 써서 없앴을 때는 네 배나 다섯 배를 갚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는 두 배만 갚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소유를 그대로 돌려 줄 수 있을 때는 한 배만 더 주어서 정신적인 피해도 보상하도록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
5절을 보십시오.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소나 돼지를 놓아서 먹였습니다. 그런데 소나 돼지가 남의 밭에 들어가서 곡물을 헤쳤습니다. 이런 때는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 합니다. 포도원을 먹게 했을 때는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야합니다. 고의로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부주의로 피해를 준 것입니다. 이 경우도 상대방은 정신적인 피해를 보았습니다. 정신적인 피해를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야합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갚으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가장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화재의 피해는 반드시 배상하라)
6절을 보십시오. “불이 나서 가시나무에 댕겨 낟가리나 거두지 못한 곡식이나 밭을 태우면 불 놓은 자가 반드시 배상할지니라.”
다른 사람의 밭과의 경계에 가시나무를 심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집이나 밭에서 불이 났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그 불이 가시나무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의 곡식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피해에 대해서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미안하다고 말만해서는 안 됩니다. 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배상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배상하라고 하였습니다.
두 배, 네 배, 다섯 배 배상하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고의로 혹은 부주의로 피해를 준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에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특히 요즘은 자동차 사고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라도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전에 한 형제가 주차한 자동차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갚지 않고 그 돈으로 중국 선교 여행을 간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배상하도록 도와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선교여행을 가서도 은혜를 끼치지 못하고 선교여행을 다녀와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한 형제는 술을 먹고 오다가 옆집에 배기가스 배출구를 차서 깨뜨렸습니다. 그는 말씀 공부하다가 이것이 생각나서 칠년 후에 그것을 갚아주었습니다. 주인을 어리둥절하였지만 그것을 배상해서 마음이 편할 것 같으면 배상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작년에 한번 차를 후진을 하다가 주차한 오토바이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냥 갈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인을 찾아서 배상하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120만원의 거금이 들었지만 마음은 편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 차나 건물에 피해를 주었을 때도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떤 피해를 주었든지 가장 좋은 것으로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보관물의 도둑이 잡힌 경우)
7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 집에서 도둑을 맞았는데 그 도둑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보관해달라고 맡겼습니다. 도둑 맞았는데 도둑이 잡히면 도둑이 갑절을 배상해야 합니다. 보관물을 맡은 사람이 책임이 없습니다.
(속이거나 의심해도 배상한다)
8,9절을 보십시오. “도둑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어떤 잃은 물건 즉 소나 나귀나 양이나 의복이나 또는 다른 잃은 물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양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도둑이 잡히지 않으면 맡은 사람이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재판장에게 진실하게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맡긴 사람이 맡은 사람의 소나 나귀난 양이나 의복이나 물건을 의심하여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재판장에게 가서 객관성 있게 조사받아야합니다. 재판장이 맡은 자가 손을 댔다고 하면 맡은 자는 갑절을 보상해야합니다.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면 의심한 주인이 갑절을 보상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신용을 중시합니다. 물건을 맡은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합니다. 진실해야 서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은 하나님 안에서 신뢰해야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경우도 보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을 말하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이라고 하고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이라고 합니다. 목자를 의심하면 의목증이라고 하고, 양을 의심하면 의양증이라고 합니다. 의심은 서로의 관계를 갉아먹는 쥐와 같습니다. 의심은 죄임으로 두 배로 보상해야합니다. 거짓말을 한 것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것이므로 두 배로 보상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양들을 신뢰하였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본 것처럼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한 줄을 주안에서 확신하노라.”(갈5:10)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거나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상대방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때도 서로 신뢰하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대로 믿을 것이며)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맡겼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짐승이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간 경우에 맡은 사람은 손을 내지 않았음을 여호와께 맹세해야 합니다. 주인은 맡은 사람의 맹세한 말을 그대로 믿어 주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상대방을 신뢰해야합니다. 신뢰하여 맡겼으니 맡긴 사람의 말을 믿어야합니다.
11절에 “그대로 믿을 것이며”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신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 속다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비틀어 듣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말하면 내가 너희 말을 믿을 줄 아니 내가 네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불신하며 자녀는 바르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뉴스를 들어도 한번 거꾸로 뒤집어 생각합니다. 기름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조만간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재기를 합니다.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믿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고 의심합니다. 버스를 탔으면 기사를 그대로 믿어주어야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청주에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 기사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가끔 기사가 조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사를 깨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다음에는 불안해서 버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하나님께 내 생명을 맡기고 기사를 그대로 믿어주었습니다. 그러니 버스 안에서 잠을 자며 평안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불신하면 서로 망합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원인 중에 하나는 서로를 믿어주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도 그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불신하는 것보다 발등 찍히는 것이 낫습니다. 발등 찍히면 발등 찍은 사람이 회개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어주고 아내는 남편을 그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고 자식도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그대로 믿어주고 양도 목자를 그대로 믿어주어야 합니다. 서로 간에 신뢰가 중요합니다.
(도둑질 하였으면 배상하라)
12,13절을 보십시오. “만일 자기에게서 도둑 맞았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언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
그러나 맡은 사람이 도둑질 한 것이라면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만일 맹수에게 찢겨 죽은 짐승이라면 왜 찢겼는지 증거물을 가져다가 증언하면 됩니다. 그 찢긴 것이 짐승에게 찢긴 것이 확실하면 배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빌려온 것에 대한 책임)
14,15절을 보십시오. “만일 이웃에게 빌려온 것이 그 임자가 함께 있지 아니할 때에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하려니와 그 임자가 그것과 함께 있었으면 배상하지 아니할지니라. 만일 세 낸 것이면 세로 족하니라.”
여기서는 빌려은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만약 빌려온 짐승이 임자가 함께 있지 않을 때 상하거나 죽으면 반드시 배상해야합니다. 임자가 보는 앞에서 상하거나 죽은 것은 배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맡긴 것은 맡긴 사람이 주체이므로 도둑질만 하지 않았으면 됩니다. 그러나 빌려온 것은 빌려온 사람이 주체이므로 없어진 것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합니다. 맡은 것보다 빌려온 것은 책임이 더 큽니다.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한 책임)
16,17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낼지니라.”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결혼하겠다고 꾀어 동침하였습니다. 혼인빙자 간음죄입니다. 그러면 그녀를 아내로 삼아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여자의 순결권을 존중해야합니다. 그러나 처녀의 아버지가 처녀 주기를 거절하면 돈으로 배상해야합니다.
(무당을 죽여라)
18절을 보십시오.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무당은 악령이 임하고 악령과 교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임하고 다른 신과 교제하는 자는 죽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자는 쫓아내야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오직 하나님과 교제해야합니다. 우리나라에 무당이 60만 명이라고 합니다. 많은 크리스찬도 새해가 되거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무당을 찾는다고 합니다. 사울이 힘들자 신들린 자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크게 책망하시고 불레셋에 의해서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무장 공비가 내려왔을 때 무당을 찾아서 공비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도 무당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19절을 보십시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실제 애완견을 키우다 애완견과 행음하는 자가 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가축과 행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 안한 젊은이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행음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짐승과 하나가 되는 자입니다. 개와 행음하면 개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런 자는 정욕에 의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쫓아내야합니다. 지금 에이즈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에이즈는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원숭이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동성애자들에 의해서 급속도로 번식하였습니다. 이런 자를 죽였으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신에게 제사드리는 자를 멸하라)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여호와 외에 마호맷트나 부처나 공자나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는 자는 죽여야합니다. 이런 자를 찾아서 죽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자를 제거하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제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이나 아스다롯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는 무섭고 끈질기게 우리를 종으로 만듭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의 음행문제)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문제와 성의 문제를 번갈아 가며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다른 신을 섬기고 반드시 음란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여사제들은 창녀였다고 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도덕적인 음란을 동반합니다. 대부분 이단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특히 성적인 데서 거룩하게 살아야합니다. 성은 불과 같습니다. 불을 잘 사용하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을 잘못 사용하면 큰 피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성을 꼭 필요할 때 하나님이 주신 범위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접대부를 둔 유흥업소가 2009년 기준으로 7434개나 된다고 합니다. 동이나 면에 두 개씩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타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그네를 압제하지말라)
2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타국인을 압제 하지 말아야합니다. 학대하지 말아야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과거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들이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생각하며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잘 대해 주어야합니다.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2-24절을 보십시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고아나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당시는 고아나 과부는 스스로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괴롭히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약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노가 맹렬하여 약자를 괴롭힌 자를 칼로 죽이십니다. 그들의 아내를 과부로 만드시고 그들의 자녀를 고아가 되게 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혀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혀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채무자에게 자비를 베풀라)
25-27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엠에프나 전쟁이나 기근으로 가난하게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주어야 합니다. 형제 자매에게 꾸어주었을 때는 이자를 받지 말아야합니다. 원금도 받지 않을 각오로 꾸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가 상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옷을 저당 잡았을 때는 해가 지기 전에 돌려 주어야합니다. 당시에 옷은 이불과 겸용으로 쓰였습니다. 옷을 돌려주지 않아서 그가 추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본문에는 부르짖으면 들으신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하나님은 외국인 과부 고아 가난한 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자녀입니다. 우리도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야합니다.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약자를 모질게 대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모질게 대하십니다.
예수님은 약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약자를 대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어떻게 대했느냐를 보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약자를 돌보아야합니다. 우리는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을 배려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보다도 임산부를 괴롭힌 죄를 크게 갚으십니다. 대부분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는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자를 존귀히 여기고 이들이 편히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장애인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장애인은 병신이 아닙니다. 다만 불편한 사람입니다. 안경을 끼거나 의치를 한 사람도 정도 차이는 있어도 장애인입니다. 우리도 늙으면 감각기관에 장애를 겪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고아가 될 수도 있고 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될 수도 있고 외국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 자녀가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고 이들을 잘 대해 주어야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대해준 것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건강한 사람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경주최씨 부자)
요즘 경주 최씨 부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고 있습니다. kbs 1tv에서 명가라는 제목으로 토일에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경주 최씨는 한 마디로 말하면 약자를 배려하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은 10년을 유지하기 어렵고, 부는 3대를 유지하기 어렵다지만 경주 최씨 부자 집은 무려 10대 300여 년을 부를 유지하며 명성을 이어온 가계로 유명합니다. 최씨의 조상 중 하나는 병자호란 때 60세가 넘은 노구의 몸을 이끌고 싸우다 죽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라제입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하므로 더 풍성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하였습니다. 이들은 흉년에는 절대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사실 흉년은 가난한 사람에겐 목숨을 건 시기지만 부자에겐 부를 늘릴 기회이지만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이들은 우리 엄마들이 좋아하든 ‘파장 때 싸게 더 덤을 얻어’ 사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미덕을 베풀었습니다. 이들은 재산이 한 없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의 한계를 정해두었답니다. 만 섬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소작료를 줄여서 일반 백성이나 소작농이 부를 나눠 갖도록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손님이 집을 편히 들어서 쉬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사랑채에 두 손이 겨우 들어가도록 입구를 좁게 만든 뒤주를 만들어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이를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빌려 달라고 자존심을 잃고 쌀을 빌려가지 않아도 되고, 갚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굴뚝을 낮춰 부자 집 굴뚝이 일반 소작농들이 바라보게 하여 빈부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고을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늘 주변을 돌보고 살아갔습니다. 이런 배려로 경주 최씨 부자 집은 그토록 오래,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 받았습니다. 온갖 난과 전쟁, 심지어는 일제의 침략에도 민중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남과 함께 사는 사회,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아이가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경주 최씨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런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
28절을 보십시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재판장과 백성의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이들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지도자도 너무 쉽게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판장의 판결에 승복해야합니다. 이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종으로 공경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도자를 다 욕해도 우리는 욕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회위원들을 너무 쉽게 욕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라)
29, 30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네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
우리는 추수한 것과 짜낸 즙을 즉시 바쳐야합니다. 첫열매와 십일조를 즉시 바쳐야합니다. 더디게 바쳐서는 안 됩니다. 첫 소산인 소와 양도 즉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을 더디게 바치다 보면 욕심이 생겨서 못 바칩니다.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소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이레 후에 바쳐야합니다. 어미 소나 양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짐승도 배려하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적질서를 지키기 원하십니다.
더디하지 말라는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대하여 첫 번째 생긴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첫열매나 십일조나 감사헌금이나 더디게 바치지 말고 곧바로 바쳐야합니다.
(찢긴 것을 먹지 말라)
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
이스라엘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들에서 찢긴 더러운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아야합니다. 배고프다고 아무 것이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듯이 신자는 더러운 것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먹어도 좋은 것이 있고 먹어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혐오스러운 것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개나 먹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더러운 것을 보아서는 안 되고 더러운 것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것을 소중히)
우리는 나의 것을 소중히 여기듯이 남의 것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특히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선을 보시고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아멘!
출애굽기 22장 강해 가장 좋은 것으로
출애굽기 22장 1-출애굽기 22장 31
요절 출애굽기 22장 5절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짐승을 먹이다가 자기의 짐승을 놓아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가장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출애굽기 2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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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성경 66권 강해서 원문보기 글쓴이: 오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