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장(更張)은 ‘폐단이 누적되었을 때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일신하는 개혁’이라는 뜻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현대 대한민국에 가장 유명한 경장은 갑오경장이다.
1894년 갑오년 때 일본 지원을 받은 개혁그룹이 실시한 개혁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경장(更張)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나온다.
한문으로 更張이 모두 620회 나온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 ‘새롭게 바꿔야 할’ 정도로 당시 지식인들이 생각했던 위기상황이
가장 많았던 때는 언제일까. 고종 때다.
재위기간 43년 동안 모두 154회 나온다.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판단한 상황이 1년에 네번씩 나온다.
정조 때 81회고 선조 때 52회다.
병자호란 전후 기간인 인조와 효종 때를 합치면 44회다.
대략 흔히 말하는 조선왕조 위기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근대화시대와 겹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폐단이 누적됐다면서 나라를 일신하자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경장이 필요한 비상상황은 뒤로 갈수록 더 많아졌다.
이게 무슨 뜻인가.
경장이 필요할 시기에 경장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하는 폐단이 오랫동안 쌓인 뒤 왕이 됐으니 경장(更張)할 계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제도를 고치는 일에 대해 어렵게 여겨 경장하라는 말을 조금도 납득하지 않고 있다.
경장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망할 터인데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하는 것이 낫다.”(이이, ‘율곡전집’, 시폐(時弊)에 대해 진달한 상소(1582))
임진왜란 10년 전인 1582년 이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이때 이미 이율곡은 국가 상황을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國非其國)’라고 표현했다.
경장을 하자는 충고에 선조와 권력층은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학전쟁이 터진 1894년 좌의정 조병세가 고종에게 말한다.
“오늘날 백성들은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으니 극히 불쌍합니다.
대경장(大更張)과 대시조(大施措)가 없으면 실효가 없으리이다.”(1894년 4월 4일 ‘고종실록’)
대경장은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뜻하고 대시조는 대대적인 정책 실천을 뜻한다.
경장 앞에 클 대자가 붙은 ‘대경장’은 이 고종 때 등장한다.
실질을 개혁하려는 의지 없이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정신 수양과 덕치만 주장하다가 만든
참담한 나라를 보고 조병세가 한 말이다.
경장을 하지 못하면 대경장의 시대가 온다. 그래서 왔다.
경장 없이 인순고식하며 넘어가다가 대경장을 맞았다.
작심한 대경장은 조용하지 않다.
대경장을 하려면 그 주체가 스스로를 싹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야 경장 대상에게 끔찍한, 공동체에 복음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세상에 호걸 같은 인물이 있었지만 잘못된 습속이 눈과 귀를 현혹하여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진실로
면목(面目)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 방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스기타 겐파쿠, ‘해체신서’ 서문)
* 사진은 1970년까지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입니다. 대한문은 1960년대 태평로가 확장된 이래 저렇게 도로 가운데 있었습니다.
-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