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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
성경 : 레위기 13:18-23
18.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가 나았고
19. 그 종처에 흰 점이 돋거나 희고 불그스름한 색점이 생겼으면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20. 그는 진찰하여 피부보다 얕고 그 털이 희면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 이는 종기로 된 나병의 환부임이니라
21. 그러나 제사장이 진찰하여 거기 흰 털이 없고 피부보다 얕지 아니하고 빛이 엷으면 제사장은 그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22. 그 병이 크게 피부에 퍼졌으면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 이는 환부임이니라
23. 그러나 그 색점이 여전하고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이는 종기 흔적이니 제사장은 그를 정하다 할지니라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거리도 그렇고 빠른 기동성도 한몫을 해서 수많은 접촉들이 있다. 믿었던 친구의 배반, 원했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 열심히 살았지만 아무 것도 되지 않은 현실, 고통과 좌절이 있다. 영적인 접촉도 예외일 수는 없다. 거기서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충격을 받아 트라우마에 빠지고 공황장애가 생기고 삐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처도 있다. 그 상처를 구별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인생의 실패의 좌절과 배반의 덫과 저주와 고통 속에 빠질 수가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영적 상태를 체크해야 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많이 접촉하는 게 피부다. 외부로 노출된 피부를 통하여 상처와 균과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오늘 본문은 그 피부를 통하여 사람의 건강을 구별해서 지키도록 말하고 있다. 성경은 더 나아가단지 피부를 말하는 것에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영적 상태의 상처가 어떤지를 이면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그것이 더 많이 퍼지지 않도록 빨리 치료하여 전염을 막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발견한다할지라도 당시에는 치유할 수 없는 능력이 없었다. 단지 치유할 수 없는 질병,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그 부분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피부의 상처를 진단하는 거지만 사실 그 깊은 속내는 영적인 피부병, 영적인 그 질병과 상처로부터 치유 받고 고쳐주기 위하여 제사장에게 보이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기도 하고 치유의 약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말씀은 권세였고 에너지였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말을 의심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의심할 때, 그 안에는 엄청난 불길이 일어났다. 욕심, 정욕이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탐욕으로 그걸 먹었을 때 영적인 치명적인 죄가 들어왔다. 암보다도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파괴적이다.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던 하와, 하나님이 만들어서 내게 주신 저 여자가 줘서, 하나님이 만드신 뱀 때문에 먹었다고 핑계를 댄다. 다 찌르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내치고 원망하는 말이었다.(창 3장) 그러니까 영적으로의 치고받는 상처로 에너지는 고갈되고 아수라장의 싸움처럼 영원한 다툼과 저주와 눈물의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게 인간의 숙명이다.
이제 타락한 인간에게는 삶 자체가 고통이고, 수고와 짐이고 삶에서 접하는 모든 게 상처다. 그 상처는 약이나 치료가 가능하지만 영적 상처는 씻을 길이 없다. 오늘 그 영적 상처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피부 관리, 생명의 관리, 질병의 관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영적인 치명적 상처를 치유하는 모델로 제사장을 세웠다. 구약에 세웠던 제사장은 피부를 진단하고 나병인 것을 구별해서 더 퍼지지 않고 대처했지만 신약의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육신의 나병도 고치셨지만 영적 나병까지도 치유하는 치유자,참 생명을 주시는 공급자, 모든 걸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나라는 불치병이라던 암의 치유율이 세계적 수준이다. 대장암이나 위암은 세계최고인데, 그중 삼성병원의 치유율은 세계 탑이다. 그래서 암에 걸린 사람이 어느 병원에 가느냐,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 어느 약을 처방하느냐 따라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세상의 암도 그렇지만 우리 영적 죄에 대한 상처에 대한 고통과 찔림의 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약, 의사의 처방, 사람으로는 안 된다. 예수 외에는.. 그 예수님의 치료는 완전해서 치유율 100% 효과가 있어서 주님의 말씀과 치유와 생명의 영으로 주시는 역사는 영원하고 다시는 재발이 없다.
암세포를 발견한 후 의학은 발달을 거듭하고 있다. 처음에는 암세포를 죽이느라 살아있는 세포도 같이 죽였다. 두 번째로는 암세포만 공격하는, 그래서 확률이 높아졌고 지금은 암세포를 저항하는 면역세포를 줘서 이기도록 하는, 3단계까지 발전했다. 영적인 죄의 해결은 첫 번째 암세포를 죽이는 것처럼 예수님은 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도 죄와 함께 죽는 길을 가야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육에 대해서는 같이 죽고, 그 능력으로 생명으로 부활케 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의 치료를 받고 생명을 공급받고 완전하게 새롭게 완성되고 회복되도록 만드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시고 생명을 주길 원하신다. 그 십자가에 내 육이 죽는 자가 예수의 영으로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전파, 말씀을 가르치시고 치유사역을 하셨다. 성경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는데 중풍병자, 앞을 못 보는 사람, 절름발이, 때로는 문둥병을 치유하셨다. 그건 보이는 질병이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는 건 쉬웠지만 죄를 사하는 게 어려워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를 사하셨다. 세상에서 고칠 수 없는 자들을 찾아가셔서 영원히 침륜에 빠지고 죽음과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의 죄까지도 치유하셨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 인생의 상처와 우리 육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찾아오신다. 그래서 인생의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올 때 주께 나아가는 자는 치유를 받고 그의 생명을 얻고 세상을 이길 에너지를 받는다.
인생은 죄라는 죽음의 병과 상처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 짐을 진 자들이다. 인생의 상처는 많다. 상처는 약을 바르든 수술을 하든 낫게 할 수 있지만 우리 영과 마음의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그걸 진찰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킬 분은 예수밖에 없다. 마음에 상처를 그냥두면 화가 돼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그 상처를 빌미로 비극적인 일과 참사를 만나게 되지만, 예수 앞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상처와 고통과 올무에서도 예수의 사랑과 능력과 치유로 회복된다. 예수의 회복을 맛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끄는 소명과 능력도 주신다. 여러분은 상처와 고통과 아픔에 쫓기고 숨기고 눈물 흘리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만나서 치유 받고 회복되고 생명을 얻는 자유자가 되어 아픈 자를 달래주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는, 고 그리고 치유인 예수께로 이끄는 전도자가 되라.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의 귀에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소리가 들린다. 영적으로는 칼에 베여서 내는 소리, 창에 찔려서 내는 소리, 넘어져 살갗이 찢어져서 내는 소리, 견딜 수 없어서 죽음에 허덕이는 소리까지 들린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그 죄를 치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들의 모든 눈물, 상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함께 죽으심으로 그들의 모든 것은 다 자유를 누리고 눈물도 고통도 없는 생명의 나라로, 영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피부를 보호하는 화장품이나 장갑이나 기술적 장치들이 많다. 그런데 광야에 사는 사람, 고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상처다. 맨손으로 해야 되니까, 모래나 가축은 그게 다 가시고 거친 돌이라 많은 상처들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끌었던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매일 점검하고 조심함으로 육적인 질병의 예방과 많은 대처를 했다. 그리고 큰 병에 걸리기 전에 분별함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막았다. 그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죽을 병, 그걸 통해서 죄의 병에서 치유를 받고 회복하고 영원한 병과 눈물과 고통이 없는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얻었다.
삶에서 고통을 받고 아플 때마다 사람들은 친구를 찾고 배우자를 찾고 연인을 찾고 형제를 찾는다. 그러다가 안 되면 전문의를 찾는다. 그건 많은 위로와 효력이 있지만 우리 내면에 있는 깊은 인간존재와 숙명에 대한 그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그 상처를 치유 받고 회복하려면 상담사의 말이나 이웃이나 친구의 말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존재의 치유와 숙명의 치유는 예수님의 치유와 예수님의 에너지와 예수님의 말씀으로 된다. 그 예수님 앞에 치유받기위해 나오는 자를 결코 무시한 적이 없다. 자신의 잘못으로 상처를 입고 낙인이 찍힌 자도 십자가 앞에서 용서의 법과 생명의 법으로 자유를 얻고 승리하는 자가 되었다. 인생의 상처와 고통을 가진 자는 예수에게로 가라. 그러면 만병을 고치시는 의사인 그분이 또한 모든 에너지를 주신다. 그분에게 오는 자는 치유함을 받고 복을 누리는 승리자가 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마음의 고통과 외로움과 상처와 방황을 아는 자들이다. 쓴물을 마신 자들이고, 통곡하고 고통 하는 영원의 소유자가 성도다. 마치 하갈처럼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창 21:16) 먹을 게 없어서 자식이 죽어도 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난 자들이 성도다. 그가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했고, 우리의 상처를 해결했고, 무거운 짐을 져주셨고, 우리에게 살 힘을 주시고 살아야할 이유와 목적과 지혜를 주셨다. 그래서 무능하고 넘어지고 실패한 자신을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내려놓고 예수의 생명으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다. 그래서 성도는 옛 사람의 상처는 치유를 받고 새 생명의 기운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가장 열악한 시절이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아픔이 있고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손실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 치유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더 큰 교회로 치유 받고, 더 많이 가서 치유 받고, 더 잘되어 치유 받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더 커서, 더 잘되어, 받는 치유는 육적 치유다. 영적 치유는 예수님으로만 된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치료는 전적으로 예수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치유를 받지 못하면 반드시 후유증이 있다. 대인관계이든지 교회이든지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하는 자들이 밟힌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조롱을 받는다.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들이 이와 같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자녀인 성도와 한국교회가 고침받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치유하는가? 우리의 치유자는 예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할 질고와 고통과 채찍을 맞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신다. 우리를 일으켜주신다.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신다. 예수께 나아오는 자는 모든 자가 치유를 받는다. 결코 헛됨이 없다. 그를 만나고 치유를 받는다.
첫 번째, 우리는 예수께 나아가야한다. 세상의 방법이나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 나아가야 된다.
두 번째, 삶의 활력이 있어야한다.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는 것은 상처를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면역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예수의 생명력으로 나를 채워야 된다. 성경에 보면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독을 마셔도 너희를 죽게 하지 못한다. 영적 능력을 키워야 된다.
세 번째, 주기적인 자기 점검, 영적 점검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살펴봐야한다. 그래서 말씀 앞에, 예수 앞에 나를 세워서 주님의 진단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더 큰 상처가 생기기 전에 치료를 받고 회복이 되어야 고통도 적고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그리고 더 많은 일과 열매와 결실과 누림을 얻는다. 예수의 피로, 예수의 말씀으로, 예수의 생명으로 상처를 치료받아야 된다. 그렇게 받는 자는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다. 반드시 크게 결실하고 누리는 자들이 되라. 이것이 오늘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임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부족한 우리는 연역하고 미약합니다.
작은 머리로, 작은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과 경륜과 은혜를 헤집어봅니다.
주께서 인쳐주심으로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부분들을 주의 영으로 채워주시고,
생명의 말씀과 주의 영으로 그 치유의 은혜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온전한 것들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함께 하심을 믿사옵고 치유자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간절히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쿼바디스(one & all) 글쓴이: 멋진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