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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복 목사
오늘 이사야 45장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주권 행사입니다. 주권행사라고 하는 내용 자체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권리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왜 “나 밖에 하나님이 없다. 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으며 빌 곳이 없다”라고까지 해야만 했을까요? 이는 못난 우리들이 혹시 잘못 따라 갈까 봐, 잘못 믿을까 봐, 잘못 생각할까 봐 자꾸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다가 돌아오는 역사의 배경을 가지고 세상 끝날에 우리가 주님나라에 가는 역사를 말씀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역사를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선하게 역사하게도 하시고 악한 자를 악하게 역사하게 하시도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불러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역사를 할 때에 강권으로 역사합니다. 여기에 이 역사의 대상자를 누구를 불러서 이렇게 역사하셨느냐면 바로 고레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데에 도움은 주었고, 세계민족을 해방시키는 데는 그것이 거울이 되었지만 그것이 마지막 역사는 아닌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나는 여호와다. 나는 스스로 계시는 신이다. 다른 신이 절대 없는 줄 믿어라. 허무한 곳에 비는 것은, 우상 앞에 비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우상 앞에 찾아가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고 당신만을 사랑하게 하고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는 깊으신 뜻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번주는 아마 우리 민족의 대명절이기 때문에 아마 참으로 어마어마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고향 가서 부모를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마는 우상 앞에 절하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이 태반이 넘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기 전에는 저들이 허무한 데서 잘 빌었고 허무한 데에 속았고 허무한 데에 바쳤고 허무한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던 저희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입고 자녀가 되고 약속의 말씀을 받고 보니까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고 하나님 외에는 빌 곳이 없으며 하나님 외에는 복을 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요, 삼라만상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나는 신이다”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 본문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도 여러분을 불러서 “나는 신이다. 나는 너를 도와줄 뿐이다. 나는 너에게 영생 줄 뿐이다. 이 땅 위에 어디를 봐도 나 같은 신이 있는 줄 아느냐?” 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은 정다이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 보니까, 뭐라고 말했습니까?
7절에 보면 "나 하나님 밖에 없다. 나 밖에 여호와가 아니다, 나밖에 신이 없다"라고 이렇게 확인을 시켜주면서 “해 뜨는 곳에든지 지는 곳에든지 나밖에 없는 줄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해 뜨는 곳이 어딥니까?
동쪽이지요? 빛이 있는 곳입니다. 지는 곳이 어느 곳입니까? 서쪽입니다. 빛이 없는 곳입니다. 동에서 서까지, 빛이 있는 낮부터 빛이 없는 밤까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나니”라고 그랬는데 이 ‘빛’ 자체가 ‘오르’라는 단어인데 ‘오르’라는 것은 빛, 광명이지요? 이 광명 속에는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이 광명 속에는 구원이 들어 있습니다. 이 광명 속에는 영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내가 지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이란 단어가 ‘호세크’인데 이 단어 그 어두움이 무엇이냐면 '불안'입니다. 그래서 빛이 없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혼돈하는 곳입니다.
빛이 없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두려운 곳입니다. 그곳이 곧 죽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영생도 내가 지었고 멸망도 내가 지었다"고 했는데 이는 영생도 내가 주관할 수 있고 멸망도 내가 주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라고 했는데 왜 이 절대적인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왜 못 믿느냐?는 말입니다. 얼마나 미련해야 아버지를 못 믿느냐 이 말이며 얼마나 못나야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못 만드느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못 믿는 자가 똑똑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못 믿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의 대부분이 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발명가들 중에도 거의 다가 기독교인입니다. 노벨문학상 탄 사람들이 거의 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 중에 제일 못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 믿는 척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따라가는 척하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입니다.
오늘 여러분, 안타깝게 주님이 뭐가 답답해서 “나는 여호와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밖에 다른 신이 없다”고 했을까요?
여기에 “다른 신이 없다”라는 이 신이라는 단어가 ‘엘로힘’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좀 믿어 달라 이 말이에요. 너희가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며” 라고 했는데 여기에 ‘창조’라는 단어가 전부 다 ‘빠라’입니다. 평안이 뭡니까? 평안은 사랑과 축복이며 행복입니다. 그러면 내가 평안도 행복도 사랑도 축복도 내가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환난도 창조”고 했습니다. 어두움도 창조한다고 그랬습니다. 환난이 뭡니까? 공포입니다. 환난이 뭡니까? 죽음입니다. 환난이 뭡니까? 불행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는 평안을 갖다 주고 어떤 자에게는 환난을 갖다 주고 어떤 자에게는 빛을 갖다 주고 어떤 자에게 어두움도 갖다 주는 이 모든 것을 내가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빛을 가진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안을 가진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에 앉았다가 그냥 일어나지 마시고 "아! 나는 주님 만나는 이곳에 와서 행복하다"는 걸 느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여러분 봐 보십시오. 내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전파가 막 우리 주변에서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내가 보는 전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각색전파가 있습니다. TV 전파가 있는가 하면 라디오 전파가 있습니다. 라디오 전파가 있는가 하면은 군 작전 전파가 있습니다. 군 작전 전파가 있는가 하면은 이런 학술자의 보내는 학술 전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각 모든 전파들이 있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파가 지나가지 않는다고 할 수 없죠. 그런데 내가 보지 못하는 전파는 기계가 잡아냅니다. 그 기계가 주파수를 만들어서 잡아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식을 내가 못 잡아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영안이 열려지면 그 전파를 받아냅니다.
기계가 받아내야 그 전파를 통하여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TV전파를 받으면 TV 소리가 나오고 라디오 전파를 받으면 라디오를 통해 소리가 나옵니다. 기계가 그 전파를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소리는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소리는 받을 수 있는 전파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귀가 열려야 된다는 것이고 눈이 열려야 된다는 이 말입니다. 세상의 사물은 잘 보지 못 한다고 해도 말씀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빛도 짓고, 평안도 짓고, 그 다음에 어두움도 창조하고, 환란도 창조한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주관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데 영양가가 있기에는 살기 위해서 먹는 것 하고 억지로 먹는 것과 살로 가는 것이 다릅니다.
오늘 여러분, 자동차의 엔진이 좋으면 속력을 더 내고 움직일 수 있지만은 다른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도 엔진이 고장 나 버리면 큰일납니다. 타이어는 스페어가 달려있지만은 엔진은 스페어가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늘을 바라보는 영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빛도 지었다고 했는데 이 빛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빛인데 구원의 빛이요 생명의 빛입니다. 그리고 평안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기쁨이 있고 살아가는데 행복이 있고 살아 가는데 축복이 있다면 나에게 평안의 전파가 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봐 보십시오. 가다가 문제가 생깁니다.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환란이 옵니다. 가슴아픈 일이 생깁니다. 복잡한 일이 생깁니다. 이런 것은 다 어두움입니다.
여러분 세월이 이렇게 빠릅니다.
제가 늘 얘기 하죠, 1월은 좀 길게 가는듯 하지만 2월이 가고 3월이 가다가는 점점 빠르게 4월과 5월, 6월 7,8,9,10,11,12월이 훌쩍 지나갑니다. 시작은 천천히 가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가속이 붙어버립니다. 여러분, 일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주일이 지납니다만 내일 월요일이 오고 화요일이 지나면서 점점 빨리 수, 목, 금, 토요일이 오고 바로 다음 주일이 와버립니다. 세상이 어떻게나 빠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밤낮 설교만 하다가 한 주간이 지나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속에서 오늘 동인교회 성도들만은 빛을 짓는 그 하나님 앞에 빛 속에 잠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밝은 빛깔에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지은 평안함 속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아무나 쉽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마귀는 어두움을 갖다 주고 환란을 갖다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우리가 힘쓰고 노력하고 애써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이 어두움이 시작되는 것은 창조 때부터입니다.
창세기 1장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저녁이 된다는 단어가 '호세크'로 밤입니다. 빛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이 오고, 그 다음에 아침은 오르라는 빛이죠, 빛의 시작은 아침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의 역사가 빛을 공격하기 때문에 빛이 강해야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의 시작은 천지창조 때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 어둠이 얼마나 강합니까? 아담의 범죄 후에 이 땅은 어두워졌고, 어두워질 때부터 죄악이 활개를 치고, 죄악이 활개를 치니 죽음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것이 6천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많은 세월이 흘러오면서 세상이 어두워지니까, 어두워질 때에 죄가 활개를 칩니다. 죄가 활개를 치니까 그만 그 죄의 삯은 사망이 되었습니다.
자 이것이 뭐냐면 저녁의 역사입니다.
주관자는 누구냐면 사탄입니다.
그러나 이 사탄을 만든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왜 사탄을 왜 만들었느냐면 사탄이 없으면 어려움이 없고, 시험이 없으며, 사탄이 없으면 상급이 없고 면류관이 없습니다. 사탄 때문에 이기는 것이 나옵니다.
사탄 때문에 싸우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탄의 하수인이 되면 지옥 갈 사람에게는 사탄이 원수요, 멸망 받는 자식들에게는 철천지 한이 되겠지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적당하게 붙여주니까, 그 사탄을 이길 때에 상급이 옵니다. 우리가 그 사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기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사탄이 가로막는 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통과하도록 해 주시기 때문에 통과할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어두움이 아무리 강해도 빛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저녁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둠의 자식들이 빛의 자녀들에게 공격을 합니다. 어둠의 자녀들 때문에 빛의 자녀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그 빛의 자녀들을 위해서 도와주시기 위한 마지막 역사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한 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피조물이 뭡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피조물이라고 하면 사람 뿐 아니라 동물 세계와 식물계등 전부가 다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말 못하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라도 괴로움을 함께 겪고 있고 괴로움을 함께 겪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말 못하는 동물들과 식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주의 재림이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학수고대하고 있으며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죄악 된 세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죽음에서 벗어납니다. 아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그렇게 사모합니다. 만물이 왜 우리가 나타나기를 고대합니까? 우리는 주의 신부로써, 다스리는 제사장으로써, 왕으로써 나타나면 만물들이 새롭게 되니까 그 산천초목들이 올해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기다리다가 그 아들들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단풍이 들어 또 내년을 기다릴 겁니다. 많은 푸줏간에 끌려가는 동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역시 또 죽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어떤 아들들이냐면 늦은 비 역사를 받아 권세 역사가 일어나는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이 나타나면 멸망이 없는 세계가 오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8장을 봐보세요.
반드시 "만물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그랬습니다. 그 아들들이 어떤 아들들이냐면 권세 아들들이라는 말입니다. 만물을 복종케 할 수 있는 그 능력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만물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또한 주님이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낮이나 밤이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것은 주님의 신부된 자요, 자녀 된 자라 공통점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역사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회복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죠. 그래서 어둠에 속한 자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미움을 당할 때에 더욱 학수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 나라에 가는데는 그렇게 쉽게 쉽게 간다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주님 나라에 가는데 죽어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어렵고 힘든데 남이 죽을 때 나는 안 죽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내 목전에 한 번 당해 보십시오. 영생을 얼마나 기다리게 되는가요. 목 놓아 우는 걸 한 번 당해 보십시오.
제가 지난번 노회장 때 어느 목사의 장례를 치르고 와서는 절대 설교자가 설교하다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더라고요. 그 목사가 딱 죽으니까 교회가 술렁거려 버려요. 얼마나 그 목사가 젊은 목사인지 모릅니다. 저는 그게 잊혀 지지가 않아요. 그 목사를 장례 치르는데 제가 설교를 하면서 어떻게 추운지 양복을 입고 그 위에다 코트를 입고 가운까지 입었어요. 그래도 춥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예배를 끝날 무렵에 저 앞에서 20대 후반 정도 되는 여인이 그 추운데도 얼마나 같이 묻어달라면서 우는데 6-7명의 장정이 붙들어도 그 무덤 관으로 뛰어들어요. 같이 묻어달라는 거예요. 장정이 붙들어도 안돼요. 아기는 아기대로 엄마야 하고 막 소리 질러 울고 그 젊은 여인이 얼마나 우는지 하여간 3번이나 끄집어내는 것을 봤어요. 제가 보통 보면 장지에 와서 우는 자들은 거의 동일합니다. 거의 흐느끼며 울거나 억지로 억지로 참으면서 울부짖는 것을 보는데 이 여인은 그렇게 하여간 장정 여러명이 붙드는데도 같이 묻어달라면서 우는데 당해내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여러분, 만약에 그것이 내 딸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그것이 내 아들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럴 일이 우리 앞에 없으리라고 누가 단언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인정 받으십시요. 하나님 앞에 확실하게 말씀을 붙드십시오. 사망이 우리 곁에서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사망이 우리 곁에서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환난도 짓고, 어두움도 짓는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망이 나에게 빗겨지나가도록, 죽음이 내 자식들 주위에 얼씬도 하지 못하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면 여러분 내가 하나님 앞에 깊숙이 심어놓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미리 미리 부탁을 해놓아야지 어려울 때 부탁은 안 됩니다. 어려울 때 부탁은 힘이 듭니다. 미리 미리 부탁해 놓고 미리 미리 여러분이 주 앞에 해놓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외국 가려고 하면 여권 없으면 절대 못 갑니다. 다 가보지 않았습니까?
여권 있어도 무비자는 상관없습니다만 비자가 있는 나라는 비자 받지 못하면 그 나라에 갔다가도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 법도 한 나라에 들어가는데 입국 절차가 있는데 여러분 천국 하늘나라 들어가는데 흐리멍텅하게 예수 믿고, 어머니 신앙으로 아버지 신앙으로 내가 가지 못합니다.
아들 신앙으로 딸 신앙으로 부모가 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준비한 자를 불러가게 될 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린다고 그랬습니다.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린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두 사람이 누워있다고 그러면 강도와 누워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워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볼 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정말로 잘 믿읍시다. 정말로 하나님이 눈동자와 같이 아끼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긴 이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풍랑이 일어나는 세상에, 이 풍랑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의지할 곳이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의지할 곳이 있다고 하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마태복음 14장 22절 이하에 33절까지 보면 갈릴리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날 때 제자들이 그 풍랑에 밤은 만났지요. 요사이 같이 동력선은 아닙니다. 풍랑을 만나가지고 제자들이 죽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 배의 최고의 축복의 약이 주님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예를 하나 들게요.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가다가 갑자기 돌풍을 만나가지고 배가 요동을 하고 풍랑이 뱃전을 두드리고 있을 때 선장이 배 위에 올라가서 그 예리한 눈으로 풍랑을 바라보면서, 배가 움직이는 것을 측정하면서 약간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 미소 짓는 선장을 본 사람은 마음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여유 있는 선장은 아무리 풍랑이 일고, 아무리 두렵고 떨리고 겁이 나도 선장이 풍랑을 보고 파도치는 것을 보면서도 약간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 풍랑쯤은 이 배가 무사히 통과하리라고 믿는 그 선장을 바라본다면 마음의 안정을 가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을 운항하는 선장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아무리 풍랑이 일더라도 그 주님의 모습 바라보면 소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환자가 사경을 헤맬 때, 환자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할 때, 주치의사가 와서 웃으면서 이것은 조금만 있으면 치료됩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무런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한마디가 환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이 말씀이 선장되시는 주님의 말씀이요, 오늘 이 말씀이 만병의 대의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라면,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자라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평안이 오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 주님은 배의 선장도 되시고, 의사도 되시고,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빛 쪽에서, 평안 쪽에서, ‘아싸 살롬’ 이라고 했습니다. ‘아싸’ 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들다라는 것입니다. ‘살롬’은 평화 아닙니까? 행복 아닙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 정말로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까도 얘기했죠. 하나님을 모르는 고레스를 통하여 역사하시듯이, 우상 숭배하는 악한 자를 불러서 선하게 쓰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요, 악한 자를 불러서 악하게도 쓰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쓰시는 대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김일성, 김정일 저것도 악하게 쓰는 것도 배후에는 하나님이 조정하고 계십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도, 얼마든지 복된 사람, 지식 있는 사람, 아름답게 쓰는 사람, 은혜롭게 쓰는 사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과 같이 자기 민족이 굶어죽어도, 군량미 백만 톤 비축되어있다고 발표했죠. 세상에 군량미를 백만 톤이나 저장해 놓고, 북한 국민을 굶어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대한민국의 46명이나 되는 젊은 우리 아들들을 죽여 놓고,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하고 '쌀 달라, 뭐 달라'고 하는데 이번에 쌀을 보내더라구요. 정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이 넓어요. 넓어서 그런지, 쓸개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미안한 낯짝이라도 있어야 되잖아요. 뻔뻔스럽게 요구하는 것은 저 북쪽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개도 잘못하면 꼬리를 내리고 주인한테 미안해 하더라구요. 여러분, 개를 한 번 보십시오.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것들에게 회담하자고 하면서 또 회담을 하더라고요. 저 망할 것들을 어떻게 달랠 것이냐 하지 말고 저것을 어떻게 혼낼 것이냐?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혼낼 분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그 배후에 누가 조종하느냐면 역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하고나면, 8절에는 몽땅 축복이 열립니다. 몽땅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의로움이 비같이 듣게 할지니'라고 했는데 비같이 듣게 한다는 것은 '비와 같이 쏟아지다,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축복이 그렇게 쏟아지기를 바랍니다.
'궁창이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라고 했는데 궁창이 뭡니까? 공중이죠.
의는 무엇입니까?
진리입니다. 의로움입니다.
이것이 '부어 내릴지어다, 죽죽 흘러내릴지어다'라고 했는데 그러면 누가 이 비를 받아야 됩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입니다.
누가 이 의로움을 입어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라고 했는데 땅이 열리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땅이 펼쳐져서 구원을 낸다고 하고 있는데 구원을 내다라는 말은 구원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날까지 죽어서 천당 가는 역사가 있었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구원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살아서 주님 맞이하는 역사가 되어야겠죠.
구원을 낸다는 말은 구원이 결실이 되고 열매를 열고 창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의로움도 움돋게 할지어다"라고 했는데 '발생하다'는 말로 의가 솟아나지요. 축복이 쏟아내리죠. 이것이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체험하는 삼박자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눈으로 보니까 확실하고, 귀로 들으니까 정확하고, 몸으로 체험해보니까 이같이 정확하고 확실한 주님의 약속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하나님께 예쁨을 받고 사랑스러움을 받으십시요. 아내가 예쁘거들랑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움을 받으십시오. 남편이 존경스럽거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움을 먼저 받으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축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주권 행사의 주인공들이 되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조그만한 것도 권리 행사를 하는데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주권행사가 우리에게 안 나타나시겠습니까? 반드시 의로움이 하늘에서 비같이 내릴 때, 구원의 열매가 열릴 때에 우리 동인교회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에게 극상품 구원의 열매가 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