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요한복음1장 1-11절. 조창훈목사강해(칼빈주석에 근거)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the eternal Divinity of Christ)을 선언한다. 인류의 회복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성취된다. 라틴어로 말씀은 Sermo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의 으뜸이며 지혜이신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심을 의미한다. 로고스는 이성, 계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칼빈은 로고스라고 쓴 이유를 자기 믿음의 한계로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지혜보다 순서상 앞서시나, 시간상은 그렇지 않다. 로고스를 라틴어 성경은 Verbum(word)로 번역하나, 이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Sermo(Speech)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표현은 그에게 아버지와 구별되는 위격(hypostasis)을 부여한다. 만약 그가 하나님 안에서 그에게 특별한 어떤 실재를 갖지 않았다면, 복음서 저자가 말씀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했을 것이다(But at the same time this mode of expression attributes to him a distinct personality from the Father; for it would have been absurd in the Evangelist to say that the Speech was always with God, if he had not some kind of subsistence peculiar to himself in God)......
초대교회 저자들은......그들은 “하나이면서 단순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위격들 또는 세 실재들, 또는 세 인격들이 계시다(there are three Hypostases, or Subsistences, or Persons, in the one and simple essence of God)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질(Christ’s divine essence)에 의심을 남기지 않도록,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같은 본질에 속한 분이라(Christ is of the same essence with the Father)고 선언한다......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영원한 본질(his eternal essence)에 의심을 가질 수 없다.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2절을 보아도 1절의 태초가 모든 시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즉 1, 2절 모두 태초는 모든 시간이전이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works)을 통해서 그의 신성을 증명한다. 우리는 이러한 실제적인 지식 안에서 특별히 훈련받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차가운 지식만이 아닌, 그리스도가 과연 하나님이심을 느껴야 한다.
* 어거스틴은 극단적인 플라톤 학파였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은 모든 생물체든 무생물체이든 생명의 원천이다. 사람들의 빛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능가하는 부분을 의미한다. 이 생명은 일반적인 생명이 아니라, 이성의 빛과 연합된 생명이다. 동물보다 더 높은 존재로, 이성을 부여받은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지음 받음을 제시한다.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부패한 성품 속에 남아있는 두 가지 주요부분은 종교의 씨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이다. 우리 안에 이 희미한 빛이 남아있다. 이성의 빛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어두움이 가득한 인간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저 밝음의 불꽃이 비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빛을 통하여 우리 인간을 부르셨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이성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중재자의 새로운 직분을 담당하셔서 중생의 영을 통해 잃어버린 인간을 개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주님은 사람의 증거가 필요 없으나 이 증인은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증거가 필요하다.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의 소명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교회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리스도는 본성 자체가 빛이신 ‘참 빛’이시다. 여기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은 믿음보다 훨씬 못한 일반적인 이성의 빛을 의미한다. 이 빛이 전 인류위에 비친다. 모든 인간에게 극히 작은 양의 섬광과 같은 이성의 빛이 죄로 어두워진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고 있다.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인간은 빛을 향유하나 눈이 멀어서 배은망덕하다. 그러나 핑계할 수 없다.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자기 땅은 유대인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전 세계를 통치하시지만, 특별히 이스라엘에 속하는 주님이 되신다. 요한은 유대민족과 이방민족을 비교하면서 유대인의 배은망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