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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1949)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우리시대의 세계문학
Arch of Triumph - Erich Maria Remarque
"우리가 꿈을 가지는 것은, 꿈이 없으면 진실을 견디어 낼 수 없기 때문이지."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잡념을 털어 버렸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해서, 미쳐서는 안된다. 그
는 이런 교훈을 배웠던 시기를 추억 속에서 되살렸다.
일생을 사는 동안에 배운 위대한 교훈의 하나였다.
육체라는 것은 집게와 클립에 의해 여러 겹으로 덮였던 장막처럼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던 기관이 노출되는 것이다. 밀림 속의 사냥꾼처럼 발자국을 더듬어 가노라면 파괴된 조직이나 응어리진 종기나 종양의 틈바구니에서 별안간 거대한 맹수인 ‘죽음’이란 것과 부딪치게 된다. 거기서부터 싸움은 시작된다. 침묵의 미친 듯한 투쟁인 그 싸움에는 오직 가냘픈 메스와 한 개의 바늘과 그리고 무한히 정확한 솜씨만이 무기일 뿐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극도로 긴장한, 눈부시게 흰 육체를 통해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핏속에 어릴 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메스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바늘을 무르게 하고 손을 지치게 하는 당당한 비웃음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불가사의하고 맥박치는 것, 생명이 인간의 무력한 손에서 홀연히 물러나 부서져서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암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릴 때를. 바로 조금 전만 해도 숨을 쉬고 자기라는 존재를 지니고,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얼굴이 딱딱하고 이름 없는 얼굴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을. 그런 의미도 없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함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게 어떻게 설명될 수가 있을까
그는 축축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들이마셨다. 자동차들과 인간들, 그리고 벌써 길 모퉁이에 서성거리는 외국인 매춘부가 두서넛, 그리고 비어 홀, 카페, 담배 냄새, 아페리티프, 가솔린…… 뒤흔들리고 성급한 생활이 있었다. 그는 호텔의 정면을 쳐다보았다. 불이 밝혀진 창이 두서넛 있었다. 그 중의 한방 속에 지금 여자는 앉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는 여자의 이름을 적은 종이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찢어 버렸다. 망각! 얼마나 멋진 말인가. 공포와 위안과 망령으로 가득 찬 말! 망각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습관에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모습으로 옷을 입고 있다는 게 무언가 라비크의 가슴을 치는 데가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낯선 이국(異國)에 떠돌아다니는 피난민들을. 수백 명이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불안스러운 생존의 조그마한 고도(孤島)―그들은 그렇게 거기에 앉아 어디로 갈지도 모르며 오직 습관만이 그들의 삶을 붙들어 두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목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이 있었어. 여름이었는데 하늘이 맑았었지. 잠들기 전에 봤을 때는 오리온 자리는 지평선 위로 보이는 숲 위에 걸려 있었는데, 밤중에 잠을 깨어 보니 뜻밖에도 그것은 바로 내 위에 와 있었어. 나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어. 지구는 행성이라 돌고 있다는 것은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그저 책에 적혀 있어서 기를 쓰고 배웠을 뿐이고 한번도 그것을 의심해 본적은 없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그렇구나 생각을 했었지. 지구는 소리도 없이 무한한 공간을 날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거요. 무엇이든 붙잡고 있지 않으면 내동댕이쳐질 것만같이 강렬하게 그것을 느꼈지. 아마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한순간 기억과 습관을 잃은 채, 이동해서 자리가 바뀐 하늘을 바라보게 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지구가 내게는 갑자기 확고한 것이 못 된다고 느껴졌지. 그리고 그 후로는 지구는 내게 두 번 다시 완전한 것이 되어 본 적이 없게 되고 말았어.”
조앙 마두는 대답이 없었다. 라비크는 여자가 코냑을 마시고 다시 베개를 베고 눕는 것을 보았다. 아직 무엇인가가 남았다. 그러나 그는 피곤해서 이미 그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잠들고 싶었다. 내일은 수술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이제는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그는 빈 잔과 병을 가지런히 바닥에다 놓았다.
‘인간이란 때로 이상야릇한 곳에 내려앉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한두 개의 트렁크, 한두 개의 물건, 하도 읽어 찢어지다시피 된 몇 권의 책―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란 별것이 아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물건에 습관이 안 되는 것이 좋다. 그런 것들은 언제나 버려야만 하며 빼앗기기가 일쑤다. 여차하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그가 혼자 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떠돌아다니고 있을 동안에 몸을 속박하는 물건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도. 정사(情事),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
조앙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말했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이상으로 그의 심장을 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밤마다 그녀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거나 속삭여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창 밖이 회색으로 동이 트기 시작하면 곧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여자가 자기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의 황홀감은 그녀 자신에 대한 황홀감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그는 그 순간의 도취며 빛나는 고백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상으로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처음으로 그 이상의 것을 보았던 것이다. 광선이 숨바꼭질을 하는, 눈부시게 번쩍거리는 구름 사이에서 느닷없이 초록과 갈색으로 빛나는 대지를 내려다본 비행사처럼. 그는 황홀감 속에서 헌신을, 도취 속에서 감정을, 시끄러운 말 속에서 단순한 신뢰감을 보았다. 그는 불신과 질문과 몰이해를 각오했던 것인데, 이런 것은 뜻밖이었다. 언제나 결말을 내주는 것은 보잘것 없는 작은 사물들이며 결코 커다란 것들은 아니다. 커다란 것들은 너무나 연극적인 몸짓에 가깝다. 그리고 거짓말에 대한 유혹과 너무나도 가깝다.
“난 결코 당신에게 설교를 하려는 게 아니야. 파도와 바위의 얘기를 할 테니 들어 봐요. 옛날 이야기야. 우리들보다 훨씬 옛날 이야기지. 옛날에 바닷속의―카프리 만이라고 해 두지―바위를 사모하는 파도가 있었는데, 파도는 바위를 얼싸안고 거품을 내고 소용돌이치며, 밤낮으로 바위에다 입을 맞추었고 그 흰 팔로 바위를 얼싸안았지. 그리고는 한숨과 흐느낌으로 자기한테 오라고 애걸을 했지. 파도는 바위를 사모하고 그 바위에 미쳐서 차차 그 바위의 밑을 파헤쳤던 거야. 어느 날 기어이 바위는 지쳐 버리고 완전히 파헤쳐져서 파도의 팔 속에 묻혀 버렸단 말이야.”
“그것은―좀 이리 가까이 오구려. 장의 심연에서 다시 돌려 보내지고 우연이라는 달[月]의 목장에서 되돌아온 나의 애인―다시 말하자면 밤과 잠은 배반자이기 때문이야. 당신은 우리가 오늘 밤 서로 바싹 붙어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들은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더 할 수 없을 만큼 꼭 붙었었지. 이마와 이마, 피부와 피부, 생각과 생각, 숨결과 숨결, 모두가 서로 닿고 섞였더란 말이야…… 그러자 점점 회색의, 빛깔도 없는 잠이 우리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그것이 한두 개의 얼룩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윽고 수가 많아져서 우리들의 상념(想念)에 딱지처럼 떨어져서 핏속으로 들어와 맹목적인 것을 우리속에 쏟아 넣는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갑자기 우리들은 제각기 고독해져서 외로운 어느 곳엔가 어두운 수로(水路)를 흘러 알지 못할 힘과 온갖 무형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거든. 잠이 깼을 때 나는 당신을 보았어. 당신은 자고 있었지. 당신은 아직도 먼 곳에 있었더란 말이야. 내게서 아주 쑥 빠져 나가 있었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알지 못했으며 내가 따라가지 못할 곳에 당신은 가 있었더란 말이야.” 그는 여자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밤마다 잘 때면 당신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그런 사랑을 어떻게 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소?”
하지만 이런 일은 모두가 조금도 놀랄 것이 못 됐다. 많은 것을 받아들였듯이 숙명적인 침착한 기분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이 침착한 태도만이 역경에 처해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다. 하늘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살인, 증오, 희생, 사랑을 초월하기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다―나무들은 아무런 회의도 품지 않고 해마다 새로운 꽃을 피운다―살구처럼 푸른 황혼은 여권이나 배반, 또는 절망과 희망에 시달리지 않고, 변화하고, 왔다가는 가 버린다. 다시 파리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역시 잘 된 일이다. 은회색 빛깔로 싸인 이 거리를 아무런 잡념도 없이 천천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아직도 유예된 기간은 충분히 있고, 모든 것이 그지없이 부드럽게 융해되어 먼 옛날의 슬픔과 아직도 살아 있다는 늘 맛보는 행복감이 지평선처럼 서로 융합된 경계선에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지금 막 도착했고, 다시 칼이나 화살에 맞게 될 때까지의 이런 한때―이런 야릇한 동물적인 감정―멀리까지 갔다가 멀리서부터 들려 오는 이 숨소리―마음에 간직한 거리를 따라서 사실의 음울한 불꽃과 십자가에 못박힌 과거를,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가시 철망을 아직 아무런 감동도 없이 불고 지나가는 이 미풍, 이 정지 상태, 동요 속의 침묵, 정지의 한순간, 활짝 열린 동시에 깊이 간직된 존재 형식, 순간적인 허망한 세계 속에서 부드럽게 똑딱거리며 진행하는 영원……
창들, 즐비한 지붕들의 푸른 실루엣, 퇴색한 붉은 소파, 침대. 이런 것들을 참고 지내지 않을 수 없음을 라비크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나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좌우간 아무것도 더 생각을 해 보고 싶지가 않았다. 조앙이 지금 내 곁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전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뭣 때문에 왔으며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여자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마음 속 깊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이건 어찌 된 일인가?
라비크는 책이라도 읽으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세계사를 몇 권 사 두었기에 그것을 끄집어냈다. 특별히 흥미로 읽을거리는 못 되었지만, 단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이상하게 퇴폐된 만족감을 갖게 되는 점이었다. 모든 일이 여태까지 수십 번을 거듭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 약속의 파기, 살인, 성 바르톨로뮤의 대학살, 권력에 대한―아편에서 생기는 부패, 그칠 줄 모르는 전쟁의 연속―인류의 역사는 피와 눈물로 결속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수천을 헤아리는 피투성이의 과거사 중에서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는 것은, 정말 얼마 되지를 않는다. 데마고크, 사기사, 아버지와 친구를 살해한 자, 권력에 넋빠진 이기주의자, 칼을 들고 사랑을 운운하는 광신적인 예언자, 언제나 한결같이 참을성 있는 국민들의 황제, 국왕, 종교, 광인들을 위하여 의미도 없는 살륙을 위하여 서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끝이 없다.
말의 장난이다, 하고 라비크는 생각했다. 달콤한 말, 부드럽고 믿음성 없는 향유(香油), 구원, 사랑, 서로의 것, 되돌아왔다는 것…… 모두가 말의 장난이다. 단순히 말뿐인 것이다. 단순하고 격렬하며 잔학한 두 개의 육체의 인력(引力)을 위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존재하는 것이냐? 이게 무슨 환상과 거짓말과 감정의 자기 기만의 무지개인가? 이제 이별을 고하는 이 밤에 나는 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버티고 서서는 이런 달콤한 말들이 비 오듯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을 그냥 맞고만 섰구나. 단지 이별, 이별밖에는 다른 뜻이라곤 없는 말의 빗방울들. 말을 하면 이미 흩어지고 만다. 사랑의 신의 이마는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홀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과 베데커의 여행 안내서를 손에 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집으로…… 그러나 어디고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겐 잠깐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폭풍우와 같이 일어나는 집 이외에 대체 어떤 집이 있단 말인가? 사랑이 집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휩쌀 때, 그들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완전히 사로잡고 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까. 때문에 나는 사랑을 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사랑은 나를 뒤쫓아 오고 따라와서는 나를 때려눕히지 않았던가? 낯익고 정든 고장보다는 이방(異邦)의 미끄러지기 쉬운 빙판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기란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당신은……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시치미를 떼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항상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고. 당신의 그 얼굴이 제일 싫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싫었는지 알기나 해요! 저는 감동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제게 미쳐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당신은 제가 없어도 살 수가 있겠지요! 언제나 당신은 그랬어요! 당신은 내가 없어도 됐던 거예요! 당신은 냉정하고 텅 비었어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저하고 정말 일심동체가 되어 본 적이 있었어요? 전에 당신이 삼 개월이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제가 전에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설사 당신이 여기 있었어도 그렇게 됐을 거예요! 웃지 말아요! 두 사람이 다르다는 것도, 그 사람이 미련하다는 것도, 당신과는 같지 않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저에게 미쳤거든요. 그에게는 저만이 중요하거든요. 저 이외의 것은 조금도 생각도, 욕심도 내지 않아요. 저 이외엔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그게 필요해요.”
내가?” 하고 라비크는 되풀이했다. “대체 당신은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지? 무엇이든 의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한 생명에 만일에 애정이 싹트면 어떻게 되는지 당신은 알고 있나? 여기에 비하면 당신의 값싼 도취 같은 것이 무엇이란 밀이냐? 떨어지다가 갑자기 멈추어서 끝도 없이 계속하던 ‘어째서?’란 말이 ‘당신’이 되어 버릴 때, 그리고 침묵의 사막 뒤에 갑자기 신기루와 같은 감정이 솟아올라 형체가 생겨날 때, 피에 대한 망상이 사정없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그 풍경에 비하면 온갖 꿈도 퇴색하고 평범하게 생각되는 때, 그런 때는 어떻게 되란 말이오? 은빛의 풍경, 타오르는 피의 눈부신 반사광과 같이 빛나는 도시, 철사와 장밋빛 석영(石英)의 도시, 그것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안다는 말이지? 아무렇게나 처리해 버리는 혓바닥이 재빨리 압착해서 말과 감정의 스테레오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나? 묘지들이 열리고 사람들은 어제라는 아무런 색조도 없는 공허한 밤 앞에 떨고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알겠어? 묘지가 열리는 거야. 그리고 그 묘지 속에는 해골은 하나도 없고 흙만이 남아 있단 말이야. 흙과 열매는 맺을 씨앗, 그리고 벌써 움트기 시작하는 푸른 싹이 있단 말이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지? 당신은 도취를 사랑하고 있어. 정복하고 싶어 하면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 ‘낯선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당신은 몰아치는 피의 속임수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언제나 허전한 거야. 사람이란 자기 속에서 자라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든 오래 지닐 수가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폭풍우 속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성장이란 허전하고 고독한 밤에만 있을 수 있는 거야. 그것도 절망을 하지 않을 때에. 당신이 그런 것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조앙. 우리에게는 왜 꽉 붙잡고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 모르겠어. 전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안전과 배경과 신념과 목적이…… 비록 사랑이 뒤흔들려도 그런 것들이 모두가 정다운 손잡이가 되어 주어서, 우리들은 그걸 붙잡고 있을 수가 있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겨우 보잘것없는 절망과 용기뿐이고, 나머지는 안팎이 낯선 것뿐이야. 사랑이 그 속으로 날아드는 것은, 마치 바싹 마른 짚더미 속에 관솔불을 던지는 격이란 말이야. 사랑뿐이면 사랑은 다른 것이 되거든. 더욱 사납고 더욱 파괴적인 것으로 되어 버리거든.
"그렇군요.” 하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란 여러 가지를 참아 낼 수 있으니.”
트럭은 바그람 가를 따라가다가 에투알 광장으로 구부러졌다. 어디에도 불이 켜진 곳은 없었다. 광장은 어둠뿐이었다. 너무나도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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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일부 작품들이 실리면서 알려졌으며 80년대 범조사에서 레마르크의 대표작들을 모아 자칭 전집을 낸적이 있다. 90년대 초반에 성창출판사에서 재간. 박환덕, 송영택, 강두식, 홍경호 등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독어 번역계 원로들이 참여했다. 2020년 시점에 새번역이 없는 귀로, 생명의 불꽃, 검은 오벨리스크는 이 전집본에 포함된 이후 재간되지 않았다.
'하늘은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는 1999년 '하늘은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김훈이 소설가로 명성을 높이기전 호구지책으로 한 번역이다. 김훈은 영문과 출신이라 중역이 확실하며 김훈 스스로 '성취감은 전혀 없고 지긋지긋했다. 내가 했지만 번역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힌바 있다. 소설가 공력이 있어 문장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으나 의역이 많고 엄밀하지 못한 번역이다.
약속의 땅은 98년도에 2권으로 나뉘어 번역되어 나왔는데 번역자는 활동히 많진 않으나 독어 전공자이기는 했다.
Die Traumbude. Ein Künstlerroman 꿈의 다락방 (1920) - 16세부터 쓰기 시작한 데뷔작
Gam (1924)
Station am Horizont (1928) - 스포츠 잡지 연재작
Im Westen nichts Neues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29)★
Der Weg zurück 귀로 (1931)★*
Drei Kameraden 세 사람의 전우 (1936)
Liebe deinen Nächsten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1941)★
Arc de Triomphe 개선문 (1946)★
Der Funke Leben 생명의 불꽃 (1952)★*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954)★
Der schwarze Obelisk 검은 오벨리스크 (1957)★*
Der Himmel kennt keine Günstlinge 하늘은 은총을 베풀지 않는다 (1961)★*
Die Nacht von Lissabon 리스본의 밤 (1964)★
Das gelobte Land 약속의 땅 (1970)★*
Schatten im Paradies 그늘진 낙원 (1971)★ (유작)
1898년 6월 22일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프리드리히 니체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서를 탐독했다.
1916년 뮌스턴 사범학교 재학 중 징집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수용되었다가 회복 후 보병연대로 배치됐으나 일주일 후 종전을 맞이했다.
종전 후 귀향해 임시직 교사로 근무했지만 얼마 안 가 그만두고 자신의 유년기를 추념하는 데뷔작 '꿈의 다락방'을 출간했다. 그 후 편집인, 기자 등을 전전하다 1928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신문에 연재하고 이듬해 출간했다. 1930년에는 속편 귀로를 발표, 역시 이듬해 출간했다.
반전주의 작가로서 나치와 잦은 충돌 끝에 1931년 스위스로 망명하였고, 나치는 1933년 집권 후 그의 작품을 분서 목록에 올려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여동생 엘프리데 라마르크(Elfriede Remark)는 나치 집권 후에도 평범한 재단사로 일하며 독일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1943년 반전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죄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고, 에리히 레마르크의 여동생이라는 연좌제까지 더해져서 악명높은 나치 판사인 롤란트 프라이슬러[3]에게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에리히 레마르크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여동생 엘프리데의 비극적인 죽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52년작 소설 생명의 불꽃(Der Funke Leben)이 그녀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망명 작가로서 스위스에서 거주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듬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58년 미국 여배우 폴렛 고다드와 재혼하였다.[4] 1925년에 결혼한 첫 아내는 일제 유타 잠보나라는 배우인데 불화 때문에 1930년에 이혼했지만 1933년에 같이 스위스에 도피하거나 그녀가 독일에 송환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 1938년에 재혼해주는 등으로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다. 그녀와는 합의하에 1957년에 이혼했다. 이 외에도 1930년대에 마를레네 디트리히, 헤디 라마르, 돌로레스 델 리오 등의 배우들과 교제하기도 했다.
1970년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72세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전쟁에 대한 묘사나 전쟁 중의 군인들이 겪는 내면, 외면의 심리묘사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주는 힘이 대단하다. 또한 대부분 우울하거나 건조한 문체가 특징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말한 것으로 잘 알려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는 사실 그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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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40년만에 다시 읽은 소설
역시나 레마르크의 주인공은 매력적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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