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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김진규의 칠언율시 10首의 구조와 문학적 고찰, 전편(前篇)>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앞서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거제도 유배문학 중에,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대해 장문의 글을 통해 상세히 소개한 바가 있다. 이번 지면에는 그 뒤를 이어 김진규(金鎭圭)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총 21편(22首) 중에, [전편(前篇)] 10편(10首)를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죽천(竹泉) 선생의 거제도 유배문학 中, 칠언율시(七言律詩) 전편(前篇) 10수(首)는 앞서 살펴보았던 단편적이고 압축적인 칠언절구(28자)와 달리, 한 편당 8구 56자라는 확장된 형식미와 엄격한 대구(對句)의 규칙을 활용하여 유배객이 겪는 복합적인 서사와 감정의 깊이를 웅장하게 그려낸 명작들이다.
○ 이에 먼저 (1) 칠언율시(七言律詩) 「전편(前篇)」 10수의 구조적 구성에 대해 알아보겠다. 전편 10수는 크게 '육지에 남은 가족에 대한 염려와 단절감'과 '섬(거제도)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맞이하는 사계절과 풍물'이라는 두 가지 큰 축이 얽히며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 [혈육에 대한 염려와 죄책감]이다. ① 야음(밤의 사유) → ② 차자후운~ 억백씨(당쟁 속 형님 걱정) → ③ 미득백시(소식 단절의 불만)~ → ④ 조모수진(할머니 생신)이다.
*두 번째로 [거제섬의 시공간과 풍물 관조]다. ⑤ 춘일서회(봄날의 소착) → ⑥ 삼월삼일(삼짇날의 슬픔) → ⑦ 도중람물(거제의 생태 관찰) → ⑧ 춘진(늦봄의 차운)~ → ⑨ 춘만(봄의 저묾) → ⑩ 도중시한(감(柿)을 통한 연상)이다.
그리고 죽천 김진규의 칠언율시 10편 중에, ②, ⑦, ⑩번 작품은 거제도 유배지의 척박한 자연환경과 형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정교한 대구 구조와 섬세한 풍물 묘사로 담아내었고 유배객의 고독과 슬픔이 자연물과의 대비를 통해 깊이 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 여기에 더하여 (가) ‘혈육을 향한 피맺힌 그리움과 단절감(①~④)’을 담았다.
① 「야음(夜吟)」에선, 밤의 정적 속에서 홀로 시를 읊조리며 유배객으로서의 실존적 사유를 시작하는 도입부다. ② 「차자후유주성루기장정봉연자사운 억백씨」와 ③ 「미득백시도해소식 불승우념유작」에선, 당나라 유종원(자후)의 유주성루 시를 차운하여, 당쟁의 여파로 함께 고초를 겪고 있는 맏형(백씨 김진구)을 간절히 그리워했다. 특히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는 형님의 소식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염려(憂念)가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④ 「9월 25일 조모수진(祖母壽辰)」에선, 유배지에서 맞이한 할머니의 생신날, 멀리서 장수를 축원하면서도 곁을 지키지 못하는 명문가 자손으로서의 불효와 서글픔을 집약했다.
그리고 (나) ‘거제도의 자연과 소박한 풍물의 관조(⑤~⑩)’를 담았다. ⑤ 「춘일서회(春일書懷)」와 ⑥ 「삼월삼일(三月三일)」에선, 섬에 찾아온 봄날의 소회를 적거나, 명절인 삼짇날(3월 3일)을 맞아 고향의 풍속과 대조되는 외딴섬의 쓸쓸함을 노래했다. ⑦ 「도중람물(島中覽物)」과 ⑧ 「춘진차당시운」, 그리고 ⑨ 「춘만(春晩)」에선, 거제도라는 섬 안의 여러 생태와 자연물(람물)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늦봄(춘진, 춘만)에 당나라 시를 차운하며 저물어가는 계절과 자신의 유배 처지를 자연스럽게 겹쳐놓았다. 이어 ⑩ 「도중시한 해가래매득수과 인억노산유감」에선, 거제도 섬 안에는 감(柿)이 드문데, 바다 상인이 가져온 감 몇 알을 사 먹으면서 과거 노산(蘆山)에서의 추억과 고향의 맛을 연상해내는 빼어난 서사성을 보여줬다.
(2) 다음으로 김진규 칠언율시의 문학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김진규의 칠언율시는 근체시(近體詩)의 가장 엄격한 규칙인 '대구(對句)의 미학'을 유배 문학의 도구로 완벽하게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먼저 (가) 엄격한 율격과 서사의 결합(거시적 묘사)이다. 절구가 한순간의 감정을 포착한다면, 율시는 수련(首聯)·함련(頷聯)·경련(頸聯)·미련(尾聯)의 8구 구성을 통해 '사건의 발단 - 구체적 묘사 - 감정의 확장 - 철학적 마무리'라는 완벽한 서사 구조를 갖춘다. 감 몇 알을 사는 일상적 행위(⑩)에서 시작해 고향에 대한 거대한 그리움으로 확장하는 지적인 서사 전개가 율시를 통해 구현되었다.
(나) 함련(3, 4구)과 경련(5, 6구)에서 빛나는 '대구(對句)의 묘미'를 갖추었다. 김진규의 율시는 중간의 네 구절에서 시각과 청각, 공간과 시간, 섬(유배지)과 육지(고향)를 정교하게 대치시켰다. 예를 들어 형님을 그리워하는 시(②, ③)에서 '바다의 거친 파도'와 '육지의 아득한 번민'을 댓구로 배치하여 대조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시적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했다.
(다) 당송 명시의 적극적인 차운(次韻)으로 상호텍스트성을 갖추었다. ②번의 유종원 시운이나 ⑧번의 당시(唐詩) 운을 빌려온 것에서 보듯, 그는 유배라는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고전 문학의 대가들과 정신적 대화를 시도했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과거 대가들의 시적 상황을 '조선 후기 거제도에 갇힌 서인 지식인 김진규'의 실존적 상황으로 재창조해 내는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라) 소외된 변방(섬)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⑦번 「도중람물」이나 ⑩번의 감 이야기처럼, 당시 중앙 문인들이 주목하지 않던 섬의 척박한 생태, 해상 상인(해가)들의 왕래, 향토적 풍물을 율시라는 가장 격조 높은 형식 안에 담아냈다. 이로 인해 그의 시는 문학을 넘어 17세기 후반 거제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기록의 가치도 획득했다. 결국, 죽천 김진규의 칠언율시 전편 10수는 절구보다 넓어진 시적 공간 속에서 가족에 대한 절절한 염려를 정교한 대구로 다듬고, 거제도의 낯선 풍물을 지적인 서사로 엮어낸 거제도 유배문학의 구조적 뼈대를 이루는 작품들이다.
● 이번 지면에는 김진규(金鎭圭)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총 21편(22首) 중에, [전편(前篇)] 10편(10首) ①「야음(夜吟)」, ②「차자후유주성루기장정봉연자사운 억백씨(次子厚柳州城樓寄漳汀封連刺史韻 憶伯氏)」, ③「미득백시도해소식 불승우념유작(未得伯氏渡海消息 不勝憂念有作)」, ④「9월 25일 조모수진(九月二十五日 祖母壽辰)」, ⑤「춘일서회(春日書懷)」, ⑥「삼월삼일(三月三日)」, ⑦「도중람물(島中覽物)」, ⑧「춘진차당시운(春盡次唐詩韻)」, ⑨「춘만(春晩)」, ⑩「도중시한 해가래매득수과 인억노산유감(島中柿罕 海賈來賣得數顆 因憶蘆山有感)」, 등 칠언율시(七言律詩) 전편(前篇) 10수를 소개한다.
1)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야음(夜吟)」** ‘밤에 읊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가 숙종 연간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남쪽 변방 거제도로 유배되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려던 원래의 계획이 좌절된 안타까움과 추석(명절)을 맞아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지 못하는 불효의 심정을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노래한 작품이다.
**「야음(夜吟)」** ‘밤에 읊다’ 내가 성포(聲浦)에 밭을 사서 농사지으며 은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미처 밭을 사기도 전에 남쪽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우리나라 풍속에 중추(추석)에 성묘를 하는데, 지금은 (8월) 상순이라 시의 제5구와 6구에서 그 일을 언급하였다.(余欲買田聲浦 謀歸農 未及買而南遷 國俗中秋祭墓 而時上旬 故五六及之)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瘴海秋光日夜新 풍토병 도는 남쪽 바다, 가을빛은 날마다 새롭고
凄風零露滿叢筠 쓸쓸한 바람과 떨어지는 이슬은 대나무 숲에 가득하네.
鴈來千里傳書懶 기러기는 천리 길을 날아오건만 소식 전하기에 게으르고
虫語三更攪夢頻 벌레 울음소리는 깊은 밤(삼경)에 자꾸만 꿈을 깨우네.
杜曲桑麻違宿計 두곡에서 농사지으려던 오랜 계획은 어긋났고
城南松栢迫佳辰 성남 조상 묘역의 송백을 생각하니 추석 명절이 다가오누나.
終宵客睡愁難着 밤이 새도록 나그네는 시름 겨워 잠 못 이루는데
簷月依依映半輪 처마 끝의 달빛은 아련하게 반달(半輪)을 비추고 있네.
[주1] 장해(瘴海) : 장기(瘴氣, 풍토병을 일으키는 독한 기운)가 가득한 남쪽 바다. 유배지 거제도의 척박하고 낯선 환경을 뜻한다.
[주2] 총균(叢筠) : 대나무 우거진 떨기. 시각적·청각적 쓸쓸함을 더한다.
[주3] 서라(書懶) : 고향이나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편지나 소식이 오지 않는(글이 게으르다) 외로운 처지를 원망 섞어 표현한 것이다.
[주4] 교몽(攪夢) : 잠을 방해하고 꿈을 어지럽히다. 벌레 소리 때문에 고향 생각에 잠기며 잠을 못 이룸을 뜻한다.
[주5] 두곡(杜曲) : 중국 당나라 두보가 살던 곳으로, 여기서는 작가가 은거하며 농사지으려 했던 '성포' 혹은 '고향 땅'을 비유한다.
[주6] 숙계(宿計) : 본래부터 품어왔던 오랜 계획.
[주7] 성남(城南) : 성의 남쪽, 여기서는 조상의 묘소가 있는 곳.
[주8] 가진(佳辰) : 좋은 날, 여기서는 서문에서 언급한 '중추(추석) 명절'.
[주9] 수난착(愁難着) : 근심과 시름 때문에 잠을 청하기 어려움.
[주10] 의의(依依) : 미련이 남은 듯 아련하고 아쉬운 모양.
○ 내용인즉, 먼저 ①유배객의 고독과 한(恨)을 묘사했다. 시인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당쟁 속에서 남쪽 바다 섬으로 쫓겨왔다. 1, 2구에서는 외롭고 척박한 유배지의 가을 풍경을, 3, 4구에서는 소식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밤벌레 소리에 잠 못 드는 외로움을 시각적·청각적으로 대비했다. 둘째② 좌절된 귀농의 꿈(5구)을 드러냈다. 서문과 5구에 나타난 '성포에서 밭을 사서 농사를 지으려던 계획(杜曲桑麻)'은 당쟁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시인의 소박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유배로 이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셋째③ 추석을 앞둔 불효의 심정(6구)을 표현했다. 8월 상순, 다가오는 추석을 보며 시인은 조상의 묘소(城南松栢)를 돌보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에게 명절에 선영을 찾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슬픔이자 불효였다. 넷째④ 반달(半輪)의 시적 기능을 기술했다. 마지막 구의 반달은 시인의 미완의 꿈, 조각난 마음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완전히 차오르지 않은 반달을 바라보며, 다가올 추석 보름달을 조상 묘역 앞에서 맞이하지 못하는 서글픔을 여운 있게 마무리하고 있다.
2) 다음 ‘陽’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차자후유주성루기장정봉연자사운 억백씨(次子厚柳州城樓寄漳汀封連刺史韻 憶伯氏)」 즉, “유종원(子厚)의 〈등유주성루기장정봉연사주자사〉 시의 운을 빌려 지으며, 형님을 그리워하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저자가 당나라 시인 유종원이 유배지에서 함께 고난을 겪는 동지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유명한 시의 운자(韻字)을 빌려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배가 있는 친형 김진서(金鎭瑞)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경을 담았다. 당나라 유종원의 시가 '유배지 동지들'을 향한 연대감과 절망을 그렸다면, 김진규는 이를 변주하여 '바다를 사이에 두고 찢어진 친형제 간의 피붙이로서의 아픔'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차자후유주성루기장정봉연자사운 억백씨(次子厚柳州城樓寄漳汀封連刺史韻 憶伯氏)」**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平生骨肉各炎荒 평생을 함께한 친형제가 각각 멀고 더운 황무지로 유배되니
漲海中間共杳茫 불어나 거친 바다 가로막혀 서로의 소식 아득하기만 하구나.
水氣濕衣疑霧雨 축축한 바닷바람 옷을 적시니 안개비인가 의심스럽고
竹林繞舍當樊牆 집을 둘러싼 대나무 숲은 나를 가둔 울타리가 되었네.
秋來冷露偏凋鬢 가을이 와 찬 이슬 내리니 살쩍(귀밑머리)만 유독 하얗게 시들고
愁裏尖山恐割腸 시름 속에 바라보는 뾰족한 산봉우리는 내 창자를 끊어낼까 두렵네.
三島迢迢誰更遠 3섬(거제도 제주도 남해도)이 멀다 한들 그 누가 나보다 더 멀겠는가
耽羅萬里是蠻鄕 만 리 떨어진 제주도(탐라), 그곳이 진정 거친 이역 땅이로구나.
[주1] 자후(子厚) : 당나라의 대표적인 문장가 유종원의 자(字). 유종원 역시 중앙 정치에서 밀려나 변방인 유주(柳州)로 유배되었을 때 동지들을 그리워하는 시를 남겼다. 김진규는 유종원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며 같은 운자를 썼다.
[주2] 백씨(伯氏) : 남의 형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작가의 친형(큰형)인 김진서를 뜻한다. 기사환국(1689년) 당시 형 김진서는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주3] 창해(漲海) : 물이 가득 부풀어 오른 거친 바다다. 육지와 섬(거제도), 그리고 섬과 섬(제주도) 사이를 가로막는 절망적인 장벽을 의미한다.
[주4] 번장(樊牆) : 새장이나 울타리 담장. 유배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한 가시울타리(위리안치) 같은 처지를 비유한다.
[주5] 할장(割腸) : 창자를 칼로 베어내는 듯한 극심한 슬픔(단장, 斷腸)을 뜻한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작가의 가문이 겪은 비극적인 역사와 형제간의 애틋한 정이 절절하게 녹아 있는 명작이다. 기사환국이 일어나면서 서인(노론) 세력이었던 김진규 형제는 남인들에 의해 모두 남쪽 바다 멀리 귀양을 가게 되었다. [1~2구]에선, 형제가 겪는 유배의 비극을 드러냈다. 한배에서 태어난 친형제(골육)가 한날한시에 서로 다른 절해고도로 찢겨 유배된 기막힌 현실을 토로했다. 거제도와 제주도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친 남해 바다 때문에 서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득함을 노래했다. [3~4구]에선, 유배지의 쓸쓸하고 답답한 환경을 묘사했다. 섬 지방 특유의 눅눅한 바다 수기와 안개비가 옷을 적셔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고, 유배지 처소 주변의 빽빽한 대나무 숲은 마치 자신을 가둔 감옥의 창살이나 울타리(번장)처럼 느껴져 답답함을 더한다. [5~6구]에선, 깊어지는 노화와 단장의 미어지는 슬픔을 표현했다. 유배지에서 가을을 맞아 찬 이슬을 맞으니 슬픔과 고생으로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뾰족뾰족한 섬의 산봉우리들은 마치 칼날 같아서, 형님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미어지는 창자(마음)를 찌르고 베어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7~8구]에선, 형님이 있는 제주도를 향한 안타까움을 기술했다. 자신이 있는 거제도도 한양에서 멀고 외롭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바다 건너 저 멀리 만 리 밖 제주도 유배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형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보다 더 거칠고 낯선 땅(만향)에서 홀로 고통받고 있을 형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시를 끝맺었다.
3) 다음 ‘庚’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미득백시도해소식 불승우념유작(未得伯氏渡海消息 不勝憂念有作)」 "맏형께서 바다를 건너셨다는 소식을 얻지 못해, 걱정스럽고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짓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바다를 건너 유배를 떠난 맏형(백시)의 소식을 듣지 못해 애타는 마음과 형제간의 깊은 우애를 담은 애절한 한시다. 여기서 맏형은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김진구(金鎭龜, 1651~1704)를 말하며, 그가 바다 건너 제주 섬으로 유배를 떠났을 때 김진규가 지은 것이다.
**「미득백시도해소식 불승우념유작(未得伯氏渡海消息 不勝憂念有作)」**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遙瞻南極憶吾兄 멀리 남쪽 하늘 끝을 바라보며 우리 형님을 생각하니
萬里層溟片舸輕 만 리 겹겹의 푸른 바다에 조각배 한 척 가볍게 떠 있겠구나.
所恃蛟龍應有識 믿는 바는 바닷속 교룡이 응당 알아서(보호해) 주리라는 것뿐인데
不堪鴻鴈政孤鳴 기러기마냥 홀로 외롭게 울고 있는 내 처지를 견딜 수가 없구나.
離懷渺渺風濤滿 이별한 회포는 아득하고 바람과 파도만 가득 밀려오는데
遠信茫茫節序更 멀리서 올 소식은 아득한 채 계절만 벌써 바뀌는구나.
兩地夢魂歸一處 서로 다른 두 곳에 있지만 꿈속의 넋은 한곳으로 돌아가리니
北堂中夜倘逢迎 깊은 밤 어머니 계신 북당에서 혹시나 서로 만나 뵐 수 있으려나.
[주1] 남극(南極)과 층명(層溟) : 형님이 유배 간 아득하고 험한 남쪽 바다 공간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주2] 편가(片舸) : '조각배', 거친 바다 위에 홀로 배를 타고 유배지로 향하는 형님의 위태로운 처지를 비유했다.
[주3] 교룡(蛟龍) : 전설 속의 용. 자연의 위협 속에서도 신령한 존재가 형님을 무사히 지켜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도교적·염원적 표현이다.
[주4] 홍안(鴻鴈) : '기러기'를 뜻하며, 흔히 문학에서 '형제'를 비유. 홀로 우는 기러기는 형님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작가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투영한 소재다.
[주5] 북당(北堂) : 원래 집의 북쪽에 있는 방으로, '어머니'를 뜻하는 대유적 표현. 형제가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품 안에서 꿈을 통해 만나기를 소망하는 대목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관념적인 시가 아니라, 생사를 알 수 없는 거친 바다로 떠난 형님에 대한 혈육의 절절한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전반부(1~4구)에선, 조각배를 타고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형님의 위태로운 모습을 상상하며 무사 안녕을 빌었고, 후반부(5~8구)에선, 소식이 끊긴 채 시간만 흘러가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꿈속에서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다 함께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시상을 마무리했다. 바람과 파도(風濤)라는 거친 외부 환경과, 꿈속에서 만나고자 하는 내면의 애틋함이 대비되어 서정성이 매우 짙게 느껴지는 명작이다.
4) 다음 ‘先’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9월 25일 조모수진(九月二十五日 祖母壽辰)」 ‘9월 25일은 할머니 생신이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가문의 비극적인 몰락 속에서 맞이한 할머니의 생신날,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 찬 심경을 읊은 서정성 높은 한시다. 이 시는 단순한 한시를 넘어, 배경을 설명한 제목(시서, 詩序)이 작품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9월 25일 조모수진(九月二十五日 祖母壽辰)」** 9월 25일은 할머니 생신이다. 옛날에는 돌아가신 아버님(선인)과 숙부님께서 매번 할머니 좌우에서 (재롱을 피우며) 즐겁게 모셨다.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숙부님마저 멀리 유배를 가신 뒤로, 할머니께서는 이날만 되면 밤새도록 슬퍼하고 우셨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 어린 손자 형제들이 내 남은 여생을 받들어 주겠지' 하고 바라셨는데, 이제 (그 손자들인 나마저) 형제가 함께 바다 건너 섬(해외)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제 또다시 이 생신날을 맞이하니, 밀려오는 감회와 슬픈 그리움에 이 마음을 시로 나타낸다.(昔先人叔父 每娛侍左右 自先人卽世 叔父遠謫 祖母於是日 悲戚終夕 而猶冀小子兄弟將奉餘年 又並遷海外 今値玆辰 感念悲慕 情見于詩)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玆辰歲歲北堂前 해마다 이날이 오면 (어머니·할머니가 계신) 북당 앞으로 나아가
對舞萊衣樂事偏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 입고 재롱 춤추며 즐거움이 가득했었지.
夜哭三年淚猶濕 아버님 여의고 3년동안 밤마다 울어 눈물자국은 아직도 젖어 있는데
暮閭千里眼空穿 저녁 무렵 마을 문 바라보며 천리 밖 자손들 기다리실 할머니 눈은 부질없이 뚫어지겠구나.
母孫徒欲相爲命 조모와 손자가 그저 서로 의지하며 목숨을 이어가려 했는데
兄弟那知更並遷 우리 형제마저 다시 함께 유배 갈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折得黃花何處壽 (할머니께 올릴) 노란 국화 꺾어 들었으나, 어느 곳에서 축수(祝壽)의 잔을 올린단 말인가.
朔雲殘日轉凄然 북방의 구름과 지는 해를 바라보니 마음이 더욱 쓸쓸하고 처연해지는구나.
[주1] 래의(萊衣) : 춘추시대의 효자 노래자(老萊子)가 70세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색동옷(萊衣)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다. 과거 집안이 화목했을 때 자식들이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피우며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시어다.
[주2] 안공천(眼空穿) : '눈이 뚫어질 정도로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뜻. 날이 저물 무렵(暮), 천리 먼 곳으로 떠나간 자손들이 혹시나 돌아올까 동네 어귀(閭)를 바라보며 하릴없이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의 애타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선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주3] 상위명(相爲命) : 이 표현은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祖孫二人 更相爲命(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해 목숨을 이어가다)'에서 따온 것이다. 부모를 잃은 작가가 오직 할머니만 의지하고 살았던 애틋한 관계를 뜻한다.
[주4] 황화(黃花) : 음력 9월을 상징하는 '노란 국화'. 옛사람들은 중양절(9월 9일)이나 가을철 어른의 생신 때 국화주를 올리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유배지 땅에서 국화를 꺾었지만, 정작 잔을 올릴 할머니가 곁에 없어 쓸쓸히 쥐고만 있는 작가의 손과 슬픈 눈빛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 내용인즉, 이 작품은 앞서 보신 맏형을 걱정하는 시(「未得伯氏渡海消息…」)와 궤를 같이하는 가족애의 절정을 보여준다. 과거 3대가 모여 노래자의 재롱을 떨며 행복했던 생신날(1~2구)과, 부친의 상을 당하고 숙부마저 떠나 눈물로 얼룩진 현재(3~4구)가 강하게 대비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 보루였던 손자마저 유배를 떠나 가문이 완전히 파탄 난 비극적 상황(5~6구) 속에서, 생신 축하 국화 한 송이 바칠 수 없는 불효자의 피맺힌 한이 마지막 7~8구의 차가운 북쪽 구름(朔雲)과 지는 해(殘日)라는 쓸쓸한 자연 풍경으로 수렴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대부 가문의 몰락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효(孝)의 단절과 슬픔을 가장 진솔하고 눈물겹게 표현한 명작이다.
5) 다음 ‘微’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춘일서회(春日書懷)」 ‘봄날에 품은 회포를 적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유배지에서 병을 앓으며 고향에 계신 조상과 부모, 그리고 최근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절절한 불효의 죄책감과 그리움을 담은 한시다. 이 시는 앞서 소개한 시를 이어 생신날 유배지에서 눈물짓게 했던 그 할머니께서 결국 돌아가셨고, 손자는 유배지에 묶여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비통한 상황에서 지어진 작품이다.
**「춘일서회(春日書懷)」** 할머니께서 이때 막 정천에 새로 장사 지내졌고, 조상의 묘소는 노곡에 있다(祖母時新葬貞阡 先墓在蘆谷)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天涯卧病掩柴扉 하늘 끝 (유배지)에서 병들어 누워 사립문을 닫아걸고
默筭平生萬事非 지나온 평생을 가만히 셈해보니 모든 일이 다 어긋났구나.
寒食淸明愁裡過 한식과 청명 명절을 시름 속에서 그냥 보내며
新阡舊壠夢中歸 할머니의 새 무덤(신천)과 조상의 옛 무덤(구롱)을 꿈속에서나마 돌아가 보네.
春來客淚花催落 봄이 오니 나그네의 눈물은 꽃을 재촉해 떨어뜨리는 듯하고
日暮鄕心鳥共飛 날이 저무니 고향 향한 마음은 저 새와 함께 날아가는구나.
起倚小窓臨極浦 일어나 작은 창가에 기대어 아득한 포구를 바라보는데
島烟洲霧剩侵衣 섬집의 연기와 물가의 안개만이 내 옷자락을 흠뻑 적시는구나.
5구의 春來는 三春으로, 6구의 日暮는 千里로 전하는 판본도 있습니다.(春來 一作三春 日暮 一作千里)
[주1] 한식청명(寒食淸明) :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봉분의 풀을 새로 심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전통 명절이다. 유배지에 갇혀 성묘를 갈 수 없는 처지를 극대화했다.
[주2] 신천구롱(新阡舊壠) : 주석에 나온 할머니의 새로운 무덤(정천)과 조상들의 옛 무덤(노곡)을 뜻한다. 몸이 갈 수 없으니 밤마다 '꿈속에서나마(夢中歸)' 고향의 선영을 맴도는 작가의 서글픈 정신적 방황을 보여준다.
[주3] 화최락(花催落)과 조공비(鳥共飛) : 봄날의 아름다운 자연(꽃과 새)을 보며 오히려 자신의 슬픔과 고향 생각을 투영했다. 떨어지는 꽃잎은 내 눈물 같고, 날아가는 새는 고향으로 향하는 내 마음 같다는 애절한 대칭 구조(대구)다.
[주4] 도연주무(島烟洲霧) : 섬의 연기와 안개. 아득한 바다 너머 고향을 바라보려 하지만, 눈앞을 가로막는 차가운 안개와 연기는 작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유배 현실이고, 옷을 적시는 차가운 눈물을 시각·촉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앞서 보았던 할머니의 생신을 가슴 아파하던 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비극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유배지에서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고, 장례(新葬)조차 참석하지 못한 손자의 피눈물 나는 심정이 가을(9월 생신)에서 이듬해 봄(한식·청명)으로 이어지며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화자는 유배지의 작은 방에 갇혀 사립문을 닫고 누워(1구),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2구). 조상에게 효를 다해야 하는 한식날에 성묘도 가지 못해 꿈속에서나 무덤가를 배회하고(3~4구), 저물녘 날아가는 새를 보며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5~6구). 마지막에는 창가에 기대어 머나먼 포구를 바라보지만, 자욱한 안개만이 옷을 적실 뿐 고향은 보이지 않는다(7~8구). 조선 시대 유배인들이 느꼈던 '효(孝)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과 '고립감'이 봄날의 화사한 풍경과 대비되어 더욱 처량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명작이다.
6) 다음 ‘覃’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삼월삼일(三月三日)」 ‘삼짇날’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유배지에서 맞이한 봄날의 대표적인 명절, 삼월 삼짇날의 화사함 속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극심한 그리움과 유배객의 쓸쓸함을 담아낸 한시다. 제목인 '삼월 삼일'은 음력 3월 3일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교외로 화전놀이를 가며 봄을 즐기던 전통 명절인 삼짇날을 뜻한다.
**「3월3일(三月三日)」**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魂飛漢北身天南 넋은 한양으로 날아가는데, 몸은 하늘 끝 남쪽 유배지에 있구나.
何况逢春更不堪 하물며 꽃 피는 봄을 맞이했으니, 이 슬픈 심사를 더더욱 견딜 수가 없구나.
千里離憂逾萬萬 천리 밖 고향과 이별한 시름은 만 겹, 만 갈래보다 더 깊은데
一年佳節屬三三 일 년 중 가장 좋은 명절이라는 삼월 삼짇날(三三)을 맞이했네.
歸心爭共繁花發 돌아가고픈 마음은 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과 다투고
客意難將薄酒酣 나그네의 쓸쓸한 마음은 이 묽은 술로도 달래어 취하기 어렵구나.
惟羨簷前雙燕子 오직 부러운 것은 처마 앞에 날아든 한 쌍의 제비뿐이니
舊巢重返語呢喃 옛 둥지로 다시 돌아와 지저귀며 다정하게 속삭이는구나.
○ 내용인즉, 이 시는 김진규 선생이 앞서 지은 시들(할머니의 생신과 장례를 슬퍼하던 시)과 같은 시기, 혹은 그 직후 봄날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화자는 봄날의 화사함이 극에 달하는 삼월 삼짇날을 맞이했지만, 마음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 오히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고향 생각이 더 간절해지고(5구), 술을 마셔봐도 시름은 깊어만 간다(6구). 마지막 순간, 처마 밑에서 다정하게 지저귀는 제비 한 쌍(雙燕子)을 바라보며 작가의 슬픔은 극에 달한다. 자신은 꿈에서나 겨우 가보는 고향을 저 제비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돌아와 옛 둥지(舊巢)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봄날의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자연 풍경(꽃, 제비)과 유배객의 절망적이고 고독한 처지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고향을 향한 향수와 귀환의 염원을 애절하게 형상화한 유배 문학의 수작이다.
7) 다음 ‘東’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도중람물(島中覽物)」 ‘섬 안에서 사물을 둘러보며 느끼는 감회’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앞서 보신 시들처럼 내면의 감정(그리움, 슬픔)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 자신이 유배되어 있는 거제도 혹은 거친 섬 환경의 이질적이고 척박한 풍경(풍토병, 거센 바람, 낯선 식물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유배객의 절망감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도중람물(島中覽物)」**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一片荒山漲海中 넘실거리는 바다 한가운데 외로운 거친 산 한 조각 떠 있고
茫茫落日泣途窮 아득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갈 길 막힌 처지에 눈물짓노라.
孤村四面連天水 외로운 마을 사면은 하늘과 맞닿은 바닷물뿐이요
極浦三春動地風 아득한 포구에는 한봄인데도 땅을 뒤흔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네.
椒瘴起時雲暗谷 초장(풍토병을 일으키는 독한 기운)이 일어날 때면 구름이 골짜기를 어둡게 덮고
柚花開處雪盈叢 유자 꽃이 피어난 곳에는 흰 눈이 떨기마다 가득 쌓인 듯하구나.
殊方異景堪愁絶 이처럼 낯선 지방의 기이한 풍경은 시름을 극치에 달하게 하니
客鬢何由不似蓬 나그네의 귀밑머리 어찌 헝클어진 쑥대머리처럼 변하지 않겠는가.
[주1] 읍도궁(泣途窮) : '길이 다한 곳에서 운다'는 뜻. 더 이상 도망치거나 나아갈 곳이 없는 유배객의 절망적인 한계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주2] 초장(椒瘴) : 옛사람들이 남쪽 지방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발생하는 독한 기운(안개 등)과 이로 인한 풍토병을 '장기(瘴氣)'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산초나무나 예덕나무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독한 섬의 풍토병 기운이 골짜기를 어둡게 덮어, 언제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르는 유배객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공포를 자아낸다.
[주3] 유화개처설영총(柚花開處雪盈叢) : 유자나무 꽃은 하얗게 피었다. 유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낯선 남쪽 섬의 풍경을 '푸른 수풀에 흰 눈이 가득 쌓인 것 같다'고 감각적으로 묘사(은유법)했다.
[주4] 불사봉(不似蓬) : 머리털이 쑥대머리(蓬)처럼 헝클어졌다는 뜻. 거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상해 급격히 늙고 초라해진 유배객의 외양을 묘사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김진규 선생의 탁월한 회화적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외딴섬(1~3구)과 거친 바닷바람이 부는 대자연 속에서 작가는 철저한 고립감을 느낀다. 특히 5구와 6구의 대구(對句)는 이 시의 백미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독기(초장)가 계곡을 덮는 풍경과, 하얗고 눈부시게 피어난 유자 꽃(유화)의 시각적 대비를 통해 남쪽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생경함을 날카롭게 포착해 냈다. 결국 화자는 이 아름답고도 두려운 '낯선 풍경'에 압도당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신세 한탄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가 하얗게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질 정도로 깊은 수심에 잠기게 됩니다. 시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유배지의 혹독한 환경과 외로움을 밀도 높게 표현한 뛰어난 서경·서정시다.
8) 다음 ‘元’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춘진차당시운(春盡次唐詩韻)」 ‘봄이 다해 가매 당나라 시운을 차운하여 짓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 김진규가 유배지에서 맞이한 봄의 끝자락(暮春)을 배경으로,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망향시(望鄕詩)다.
**「춘진차당시운(春盡次唐詩韻)」**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寂寞閑庭掩夕昬 적막하고 한가한 뜰에 저녁 어둠이 내리는데
枝枝綠遍舊紅痕 가지마다 푸른 잎 가득하여 옛 붉은 꽃이 진 자리를 덮었구나.
流光九十逝川水 봄날 구십 일 덧없는 세월은 흘러가는 강물 같고
遠道三千絶海村 먼 길 삼천리 외딴 바다 섬마을에 갇혀 있네.
愁鬢伴衰芳草色 시름겨운 귀밑머리는 시들어가는 꽃과 풀빛을 닮아가고
哀詞獨吊落花魂 슬픈 시를 지어 홀로 떨어진 꽃의 넋을 위로하노라.
春歸猶得年年至 봄은 떠났다가도 해마다 다시 돌아오건만
孤客何時返故園 외로운 나그네는 어느 때나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1] 차당시운(次唐詩韻) : 당나라 시인의 시에서 사용된 운자(韻字)를 그대로 가져와 시를 지었다는 뜻. 이 시의 운자는 昬(혼), 痕(흔), 村(촌), 魂(혼), 園(원)이다.
[주2] 유광구십(流光九十) : '구십 일 동안 흘러가는 빛'이라는 뜻으로, 봄의 석 달(90일)을 의미한다. 즉, 봄날의 짧고 덧없는 세월을 비유함.
[주3] 고원(故園) : 고향 혹은 예전에 살던 집(또는 조정)을 의미한다.
○ 내용인즉, [1~2구]에선, 저물어가는 봄날 저녁의 적막한 풍경을 묘사했다. 꽃이 지고 푸른 잎(綠陰)이 우거지는 자연의 변화를 보며 봄이 완전히 가버렸음을 실감하고 있다. [3~4구]에선, 세월의 무상함과 유배지의 절박한 공간감을 대조했다. 봄날의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거침없이 가버리는데, 자신은 '삼천리 밖 외딴 섬마을'이라는 절해고도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를 탄식한다. [5~6구]에선, 깊어지는 슬픔을 시각적으로 투영했다. 거울 속 흰머리(愁鬢)는 시들어가는 방초와 같고, 떨어지는 꽃잎(落花)을 보며 마치 자신의 부서진 삶 같아 슬픈 시(哀詞)로 그 넋을 위로한다. [7~8구]에선, 자연의 순환성과 인간사의 유한성을 대비하며 감정을 극대화했다. 봄은 가도 내년에 다시 찾아오지만, 귀양살이하는 자신은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는 끝없는 절망감과 고독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9) 다음 ‘侵’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춘만(春晩)」 ‘늦은 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5(卷之五)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가 오랜 유배 생활과 지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품은 임금과 나라에 대한 일편단심을 애절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춘만(春晩)」**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花自飛飛柳自陰 꽃은 저 혼자 흩날리고 버들은 절로 그늘지는데
芳辰伏枕只幽吟 이 좋은 봄날에 베개를 짜개고 누워 그저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네.
陽春無賴蘇沉瘵 따뜻한 봄날은 야속하게도 오래된 내 지병을 다시 도지게 하고
雲日何由照苦心 구름에 가려진 해(왕)는 어찌 내 애타는 충정을 비추어주지 못하누.
險路殘骸拚不惜 험난한 인생길에 이 쇠잔한 몸뚱이는 버려져도 아깝지 않으나
危時華髮剩難禁 위태로운 때 허옇게 세어버린 머리칼은 걷잡을 수 없어 슬프구나.
三年周寢遅安報 3년 동안이나 내내 병석에 누워 평안하다는 소식 전하기조차 더디니
誰識區區一念深 보잘것없는 이 몸의 깊고 간절한 일편단심을 그 누가 알아주랴.
[주1] 방진(芳辰) : 꽃이 피는 좋은 시절, 즉 '봄날'.
[주2] 모뢰(無賴) : 여기서는 '야속하다', '기댈 곳이 없다', '멋대로 행동하다'의 뜻, 환자를 괴롭히는 봄 날씨를 원망 섞어 표현한 것이다
[주3] 침채(沉瘵) : 오랫동안 묵은 깊은 병(고질병)
[주4] 잔해(殘骸) :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작가 자신의 육신을 비유함.
[주5] 구구일념(區區一念) : 작고 보잘것없는 나만의 한 가지 생각이라는 뜻, 여기서는 임금과 나라를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연군지정)을 낮추어 부른 말.
○ 내용인즉, 이 시는 봄이 무르익어 꽃이 지고 푸른 그늘이 짙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1구)과, 병마에 시달리며 유배지에 격리되어 있는 작가의 처참한 현실(2~3구)을 강하게 대조하며 시작된다. [1~2구]와 [3~4구]에선, 밖에는 꽃이 날리고 버들그늘이 우거지는데 작가는 방안에서 앓아누워 있다. 야속한 봄기운은 오히려 오랜 지병을 도지게 만든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하늘의 해(운일)는 구름에 가려져 있어, 자신의 억울함과 충심이 임금에게 닿지 못하는 정치적 단절감을 시각화했다. [5~6구]에선, 유배라는 험난한 고초(險路) 속에 이미 망가진 몸(殘骸)은 아까울 것이 없으나, 정국이 위태로운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 백발(華髮)이 되어가는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7~8구]에선, 무려 3년 동안이나 유배지에서 병석에 누워 지내다 보니 고향이나 조정에 안부를 전하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하지만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썩어가고 있을지언정, 가슴속 깊이 품은 임금을 향한 간절한 충정(一念)만큼은 결코 변함없음을 토로하며 씁쓸하고도 굳은 다짐으로 시를 끝맺었다.
10) 다음 ‘尤’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도중시한 해가래매득수과 인억노산유감(島中柿罕 海賈來賣得數顆 因憶蘆山有感)」 ‘섬 안에는 감이 드문데, 해상의 장사치가 와서 팔기에 몇 알을 얻었다. 이로 인해 노산(蘆山)을 추억하며 감회가 있어 짓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유배지(섬)에서 귀한 감을 구한 것을 계기 삼아 고향인 '노산(蘆山)'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망향의 한을 담고 있다. 이 시는 김진규 선생이 거제도 등지로 유배되었을 당시에 지은 것이다. 척박한 섬 환경 속에서 우연히 맛본 '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눈앞의 달콤함을 즐기기보다 오히려 고향 노산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과 대비시켜 자신의 유배객 처지를 극대화하여 표현한 유배 문학의 수작이다.
**「도중시한 해가래매득수과 인억노산유감(島中柿罕 海賈來賣得數顆 因憶蘆山有感)」**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珍果窮荒未易求 보배로운 과일은 이 거친 유배지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데
團團數顆自商舟 둥글고 둥근 몇 알이 장사배를 통해 왔구나.
赬虬戱海遺神卵 붉은 이무기가 바다에서 놀다가 신령스러운 알을 남긴 듯하고
甘露凝盤潤渴喉 단 이슬이 쟁반에 맺힌 듯 타는 목구멍을 적셔주네.
却憶蘆山紅滿樹 문득 노산(蘆山)의 나무마다 붉게 익은 감들이 생각나니
正同楓葉爛深秋 그 모습은 참으로 단풍잎이 깊은 가을에 찬란히 물든 것 같았지.
蓴鱸謾惹思鄕興 순채국과 농어 요리(고향의 별미)는 부질없이 고향 생각만 돋우는데
萍梗其如逐水流 부초와 부들가지 같은 이내 신세는 물 흐르는 대로 쫓겨 가니 어찌할 거나.
[주] 순로(蓴鱸) : 중국 진나라의 장한(張翰)이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 회가 생각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순채노어(蓴羹鱸膾)'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뜻한다.
○ 내용인즉, [1~2구]에선, 작가가 처한 고단한 유배지(窮荒)의 상황을 보여준다. 섬이라 귀한 과일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육지에서 온 장사배(商舟)를 통해 귀하디귀한 둥근 감 몇 알을 손에 쥐게 된 기쁨과 신기함을 표현했다. [3~4구]에선, 얻은 감을 시각적, 미각적 비유로 극찬하는 부분이다. 붉은 빛깔의 감을 '붉은 이무기(赬虬)가 바다에서 놀다 떨어뜨린 신령스러운 알' 같다고 멋지게 비유했고, 그 맛은 마치 한나라 무제가 받았다는 천상의 '감로(甘露)'처럼 달콤하여 유배 생활에 지친 목을 축여준다고 노래했다. [5~6구]에선, 달콤한 감을 먹는 순간, 작가의 마음은 고향 집이 있는 '노산(蘆山)'으로 향한다. 가을이면 고향 집 나무마다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마치 온 산이 붉은 단풍으로 찬란하게(爛) 물든 것 같았던 풍요롭고 평화롭던 고향의 가을 풍경을 회상한다. [7~8구]에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대비하며 마무리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자신은 뿌리 잃은 부초나 물 위에 떠도는 나뭇가지(萍梗)처럼 정처 없이 유배지를 떠도는 신세(逐水流)임을 한탄하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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