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2-34 2 석로釋老
34 증정상인贈正上人 6首 정正 대사에게 주다(보충수정용)
其一
도인근골번道人筋骨飜 도인道人의 힘줄과 뼈 뒤치락거려서
필력생운연筆力生雲煙 붓 힘으로 구름과 연기 나오게 하네.
이축원공지已逐遠公志 이미 원공遠公의 뜻을 좇아서
암학시표연巖壑時飄然 바위와 골짜기서 표연히 떠나기도 했네.
출산미경순出山未徑旬 산에서 나간 지 열흘도 아니 지나
원학수전면猿鶴愁纏綿 잔나비와 학 근심에 싸여 지내나니
군호조귀거君乎早歸去 그대여! 일찍이 돌아가서
막사영령건莫使英靈愆 영결한 인물로 허물 있게 말라.
►원공遠公(334-416) 동진東晉의 정토종淨土宗 고승高僧.
안문雁門 누번樓煩 사람으로 속세의 성은 가賈, 법명은 혜원慧遠이다.
그는 저명한 高僧 道安의 후계자로
淨土法門을 크게 진작시켜서 ‘淨土宗初祖’로 일컬어졌다.
관료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13세에 외숙 영호씨令狐氏를 따라 허창許昌과 낙양洛陽 일대에서
대량의 유가儒家, 도가道家 서적을 섭렵했다.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거주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를 ‘원공遠公’으로 일컬었다.
저서로 <무량수경의소無量壽經義疏><관무량수경의소觀無量壽經義疏>
<대반열반경의기大般涅槃經義記><유마의기維摩義記><온실경의기溫室經義記>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대승의장大乘義章><승만경의기勝鬘經義記>
<지지론의기地持論義記><십지경론의기十地經論義記> 등이 있다.
원공불용과계수遠公不用過溪水 원공은 시냇물을 건널 것 없으니
자유산인영송인自有山人迎送人 절로 맞이하고 보내는 산 사람(山水自然)이 있지 않은가.
/<박춘령朴椿齡 대원사전주大原寺全州>
►전면纏綿 칭칭 얽힘.
서로 情이 얽혀 헤어지기 어려움 男女 사이의 愛情이 얽혀 감김.
►‘허물 건愆’ 허물. 악질惡疾(고치기 힘든 병) 나쁜 병
其二
도인야도등道人夜桃燈 도인道人이 밤에 등잔 돋우고 나서
만제시일편謾題詩一篇 부질없이 詩 한 편 쓰고 있는데
고전성비즐膏煎聲沸喞 기름 닳아 소리 찍찍 끓어오르고
시사류여천詩思流如泉 시상詩想은 샘물같이 흘러나오네.
향잔지야영香殘知夜永 향 사라지려니 밤 긴 줄 알겠고
로랭인류년露冷認流年 이슬이 냉랭하니 세월 흐름 알겠네.
심지이징홍心地已澄泓 마음자리 벌써 깊고 맑았는데
세사나능견世事那能牽 세상일에 어이 곧잘 끌리겠는가!
►징홍澄泓 물이 맑고 깊음. ‘맑을 징澄’ ‘물 깊을 홍泓’
其三
금석부하석今夕復何夕 오늘 저녁이 다시 그 무슨 저녁이기에
공차등촉광共此燈燭光 이 등촉의 빛을 함께 할 수 있는가?
만만야고장漫漫夜苦長 일 없어 밤은 괴롭도록 긴데
일입렴유량日入簾帷凉 해가 지니 발과 휘장 서늘하구나.
습요점아의熠燿點我衣 반딧불은 내 옷에 환히 앉아 있고
실솔래아상蟋蟀來我床 귀뚜라민 내 평상에 와서 우누나.
但得了 다만 생[力] 없는 것 깨달아 안다면
遮莫憂 되는대로 無常을 근심할 건가?
其四
龕燈欲 금등잔 밝으락 꺼질락 밝으락 하면서
直到三更 그대로 삼경三更 한밤 달 뜰 때까지 갔는데
玉階流 옥玉 뜰에는 반딧불이 흐르듯 지나가고
銀渚飛 은하수[銀渚]엔 나는 기러기 가로지르네.
鴈飛又 기러기 날고 또 반딧불 지나가는 모양
往復如 갔다 왔다 그것들 큰 길을 오가듯 하네.
之子獨 그대 홀로 쉬는데 적적하리만
煙景誰相 연경煙景 아름다운 경치 두고 그 누가 다투리.
►은저銀渚 은하수의 이칭. 은한銀漢•천한天漢•천하天河•운한雲漢•천항天杭
其五
초충명추추草蟲鳴啾啾 풀벌레는 돌돌돌 울고
창서명즐즐蒼鼠鳴喞喞 광 속 쥐[鼠]는 찍찍 하고 저도 한몫 우네.
뢰뢰곤궤한磊磊閫闠閒 우뚝 높이 문지방과 사이 했는데
족족연림벽簇簇煙林碧 빽빽하게 안개 낀 숲 온통 푸르네.
정정호광음鼎鼎好光陰 으젓한 그 좋은 광음光陰이라도
린린재거할轔轔載車轄 삐드득 짐 수레바퀴 돌 듯 빠르네.
권군차단경勸君且短檠 그대에게 권커니 등잔대를 짧게 하고
갱년빈일악更撚鬢一握 다시 귀밑머리 한번 잡아 비비라.
풀벌레는 찌륵찌륵 울고
검붉은 쥐는 찍찍 운다
고결한 문지방은 한가하고
뾰죽뾰죽 안개 댓숲은 푸르다
더디고 더뎌야 좋은 세월이고
덜컹덜컹 거리는 수레가 넓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작은 등불에
다시 수염 한줌 꼬며 시를 읊게
►추추啾啾 두런거리는 소리가 가늚.
새나 벌레들이 찍찍거리고 우는 소리. 슬피 우는 鬼神의 哭聲.
‘읊조릴 추啾’ 읊조리다. 떠들썩하다. (어린애의)작은 소리
►즉즉喞喞 (文體에 쓰이어)풀벌레가 우는 소리.
‘두런거릴 즉, 두런거릴 즐喞’
►뇌뢰磊磊 뇌락磊落. 돌이 겹겹이 싸인 무더기.
‘돌무더기 뢰(뇌)磊’ 돌무더기. 돌이 많이 쌓인 모양. 큰 모양
►족족簇簇 ‘가는 대 족, 모일 주, 화살촉 착簇’ 가는 대, 조릿대. 떼
여러 개가 들어선 模樣이 빽빽함.
여러 개가 아래로 늘어진 것이 수없이 많음. 주렁주렁함.
►정정鼎鼎 성대하다.
① 행동이 느린 모양. 몸가짐이 단정하지 못한 모양.
소소이즉야騷騷爾則野 상사喪事에 너무 빠르게 서둘러 소란스러우면 상스럽고
정정이즉소인鼎鼎爾則小人 길사吉事에 너무 느리게 하면 소인이니라.
/<예기禮記 단궁상檀弓上>
② 세월이 빠른 모양.
정정백년여전속鼎鼎百年如電速 빨리 가는 백년이 번개 같이 빠르구나.
/<육유陸游 우야유회雨夜有懷>
연자광음래정정燕子光陰來鼎鼎 제비 돌아오는 세월은 빠르게 다가왔고
행화소식로수수杏花消息老垂垂 살구꽃 핀다는 소식 무르익었네.
/<박충원朴忠元 상춘傷春>
●문우聞雨 빗소리 들으며/육유陸游(1125-1209)
강개심유장慷慨心猶壯 마음속 기개는 지금도 굳센데
차타빈이추蹉跎鬢已秋 허송세월하고 귀밑머리엔 가을 서리 내렸네.
백년수정정百年殊鼎鼎 인생 백년은 너무 길어서
만사지유유萬事秪悠悠 온갖 일들이 질깃질깃 거듭된다네.
불오어천리不悟魚千里 주제도 모르고 천 리 길을 떠난 물고기는
종귀맥일구終歸貉一丘 끝내 언덕의 오소리 밥이 되고 만다네.
야란문급우夜闌聞急雨 밤이 깊자 세찬 소나기 소리 들리고
기좌체교류起坐涕交流 일어나 앉으니 두 줄기 눈물만 흐른다오.
►린린轔轔 덜커덩덜커덩. 덜거덕덜거덕. 삐거덕삐거덕(수레나 마차가 달리는 소리)
거린린車轔轔 마소소馬蕭蕭 수레는 삐걱삐걱, 말들은 히힝 대고
항인궁전각재요行人弓箭各在腰 출정하는 병사는 활과 화살 허리에 찼다.
/<두보杜甫 병거행兵車行>
이 시에서는 시어의 내용과 의미보다는 외형적 의성이나 의태어의 활용성을
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한자는 표의문자이기에 수리를 빗대야 하는 의성에는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동일한 문자의 중첩이나
동일한 성운聲韻을 중첩하는 쌍성어雙聲語, 첩운어疊韻語로
다양한 소리나 모습을 빗대어 실감을 더하게 한다.
성운의 성聲은 한글로는 초성을 말하고 운韻은 한글의 중성 종성을 말하니
쌍성은 같은 초성의 결합이고 첩운은 같은 중성 종성의 결합을 말한다.
곧 뜻글자를 가지고 소리 모양을 나타내려하니 부자연스러움이 분명하나
오히려 한자가 갖는 의미의 상형성에서 또 다른 상징성을 가질 수도 있다.
본 시에서 벌레 소리를 “추추”라 했을 때
이 벌레가 풀벌레이니 풀벌레는 가을(秋)의 신호로 울음을 운다.
“찌륵찌륵”이라는 의성 이외에 시각적으로 가을의 쓸쓸함도 느끼게 한다.
“정정鼎鼎”도 여기서는 더디다는 의미이지만 때로는 성대하다는 의미로도 쓰이니
솥 안에서 끓는 물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문고전을 번역으로 보존하여야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러한 첩어의 한글화는 더욱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다.
/불교신문 2835호/ 7월25일자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
其六
汝擊綠藤 그대 푸른 등 평상을 두드려라
我作歌一 나는 노래 한 곡조 지으리라.
爾余各保 너 나 각기 보전하여 있게 하자니
身世如星 몸이나 세상이 별빛 같으이.
墨子悲絲染 묵자墨子는 실에 물들이는 것 슬퍼하였고
시인찬고양詩人讚羔羊 시인은 고양羔羊을 칭찬하였네.
의이욱이의宜爾勗爾儀 그대는 마땅히 그대 행동에 힘쓰라.
복록의이강福祿宜爾康 복록 있어 마땅히 그대 강녕하리.
►사염絲染 실에 물들이는 것.
왕약허王若虛의 〈증왕사형贈王士衡>詩에 “사염중묵비絲染重墨悲 린망상공정麟亡傷孔情”이라 하였다.
►양羔羊 염소와 양.
<시경 소남召南 고양羔羊>에 “黑羊之皮 素絲五陀”라 했는데 전傳에는 “小曰 大曰羊”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