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협회⌟ 회지인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아시나요?
나는 조선 망국 시대에 관심이 많다. 1863년 고종의 등극으로부터 시작하여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농민전쟁을 통과하며 1910년 조선 멸망 사이의 지식인들, 양반 관료들의 행보와 의식에 관한 기록을 즐겨 찾는다. 그 시대를 산 저자들이 기록한 책이나 그 시대에 발간된 책이나, 신문, 잡지들을 뒤적이며 과거를 통하여 한국의 오늘과 미래를 본다.
내가 아는 인간의 역사는 오래된 미래이고 다가오는 과거이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에서 결코 지혜와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다. 비록 뛰어난 현자 정치인이 있어 해답, 왕도를 찾아낸다 할지라도 이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역사라고 배우는 역사는 개인의 욕망을 법과 권력으로 통제하는 국가라는 욕망의 이합집산이기 때문이다.
독립협회하면 ⌜독립문⌟,⌜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이 세 가지는 1896년 7월에 서재필과 이상재, 윤치호와 남궁억 등이 세운 독립협회가 조선의 부패한 개혁정치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다는 산 증표로 따라다니는 미사여구이다.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에게 독립협회가 자체 회지를 발간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순간 무심하게 당시에는 ⌜독립신문⌟을 그렇게도 불렀나 보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다. 회지와 신문이 분명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회지를 발간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생소하여서.
그런데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립협회가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자기들의 회지로 발간하였다.
권정원 외 4인이 번역하고 보고사에서 발간한 ⌜완역 대조선독립협회회보⌟가 그것이 사실임을 말해주었다.
현재까지 확인 된 바에 의하면 독립협회는 1896년 11월부터 1898년 8월에 걸쳐 18호까지 회보를 발간하였다.
⌜독립신문⌟이 한글로 발간된 신문인 것과 다르게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한문과 국한문 혼용체와 한글이 병용되었다.
⌜독립신문⌟은 독자를 일반 백성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독자를 한문 지식을 갖춘 지식인, 양반 관료를 대상으로 하였다고 한다.
⌜독립신문⌟은 국내 문제나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논설로 일반 백성을 향한 계몽을 지향하였고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세계 정보의 전달을 우선시 하였으며 식민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의 시사와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실용적 학술과 이에 근거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전파하려 하였다.1)
언 듯 살펴본 ⌜대조선독립협회회보⌟는 재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독하며 심독을 하면 그 시대 지식인들의 속내, 독립협회 지도자들의 의식과 관심사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아침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쉽게 독서 평을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순서대로 읽으며 밥을 먹듯이 먹어야 할 것 같다.
1호에서 18호까지 차례대로 읽으며 신문과 다른 성격의 회지를 발간한 독립협회의 심중과 의도를 이해하고 오늘날 언론과 유튜브의 이중성과 파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대조선독립협회회보⌟ 제1호는 1896년 11월 30일에 발간되었으며 목차는
1.독립협회서 – 안경수의 글로 순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지금 우리 대조선 국인의 독립협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독립이라 말한 것은 크게 분발해 행함이고 협회를 만든 것 역시 크게 분발해 나온 것이다. 옛날 우리 단군께서 개국하시고 기자 성인께서 가르침으ㅡㄹ 세우셨으며 삼한이 세발 솥처럼 맞서다가 고려가 통일하고 우리 태조께서 하늘의 뜻을 이어 법을 세우셨다. 그것이 우리 대군주 폐하께 전해지니 수천 년 이래 나라는 우리나라이고 백성은 우리 백성이며 그 통치와 교화도 전부 우리 것인데, 아직 우뜩한 독립의 형세가 없으니 어째서인가?
나라가 작은 것도 백성이 약한 것도 아니며, 통치와 교화가 개명하지 않음도 아니다. 다만 외보에 안주하고 유근이 습관이되어 밖으로 나란히 경쟁할 대책이 없고 안으로는 스스로 지킬 수단이 엉성하다. 동녘에서 배가 상륙하겸 밤에 자다 불에 타고 북녘의 기병이 침입하면 산에 앉아 비에 젖는다. 비분과 치역이 가득 차올랐으니 부인과 어린아이라도 눈 부릅뜨고 팔을 걷고서 검을 뽑아 땅을 짜개싶음이 마땅하겠으나 어찌 된 것인가! 벼슬아치가 되면 오로지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이니 당파만 따지고, 선비가 되어서는 오로지 심이나 성 또는 이냐 기냐는 말싸음만 벌인다. 과거에 급제하겠다는 자들은 오로지 시, 부며 표문이며 책문이니 하는 틀에 박힌 잔재주나 익히고, 인사를 맡게 되면 문벌의 높낮이나 자디잘게 따질뿐이다. 몸통이 쇠라 녹여 낼 대장장이가 없고 뼈대는 기름이어서 약으로도 뽑아낼 수 없다. 허식이 과다하고 적폐가 자심한데 예으를 빙자해 태연하고 남루를 감수하며 고상하다 여기지만, 이용후생과 부국강병과 실사구시에 이르면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밀어 낸다. 넘어지다 거쑤러지다 드디어 오늘의 큰 난국과 곤경에 ㅇ르럿다. 우리 동포 가운데 혈기를 가진 자라면 어찌 한심하여 통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략 ~
내가 없는 재주로 임근께 도움이 되지 못해 고민했고 . 헛도이 봉록만 축내니 첝를 굽어보아 부끄러운데 어째 감히 천하와 당대의 사무를 같이 논하겠는가? 다행히 고명한 이들이 믿어주고 불초한 나를 버리지 않아서 협회에 참여하게 해주고 말석에 앉혀주었다. 더구나 큰 종이 앞에 와서 손에 큰 북채가 당도했으니 서둘러 솜씨를 써아하고 겸손할 겨릉이 없어 힘을 다해 한 번 치니 그 소리가 울려퍼진다.
내 자신이 우스우나 독립협회에서 크게 광분하는 한 선비로 오직 바라는 바는 단상의 군자들이 모두 총총하고 재이쟁하면서 세계에 금슬을 들리게 하고 만대에 생황과 퉁소를 울리게 함이다.
2. 송독립협회 – 회원의 글로 순 한문으로 기록되었다.
아아! 우리 천하가 처음 나라를 연 지 4천년 만에 이제야 비로소 새로이 특별한 건물 하나를 세우고자 하니, 이것은 독립협회의 창의이다.
학 떽 일제히 울어 그 소리가 옥황상제의 영소보전까지 도달하도다. 우리 왕태자 전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기뻐하고는 용사에세 특명하혀 금비를 내려주어 땅에 가득 깔리게 하고 서광이 있게 하니, 이야말로 하늘리 우리 독립협회 건물에 내려준 기토일 것이다. ~생략 ~
독립협회의 건물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을 마룻대와 들보로 삼고 스스로 강해져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을 주춧돌로 삼고, 만민을 널리 보호하는 것을 처마와 서까래로 삼고, 온 세상을 널리 받아 들이는 것을 계단과 뜰로 삼고, 문장과 군사적 책략을 창으로 삼고, 성현에 의지하는 것을 담과 벽으로 삼고, 훌륭한 인재를 포진하는 것을 난간으로 삼고, 것과 덕과 실천을 근본으로 하는 것을 부엌으로 삼고, 재능과 기예를 축적하는 것을 창고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만 원컨대 이 건물리 세워진 후에,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백공에 나아가 더욱 새로워지고, 수많은 고낭을 겪어도 만에토록 전해져 무노ㅓㅈ지 않기를 바라노라.
3. 독립협회 규칙 – 명칭과 목적, 회장과 직원 그리고 회원들에 대한 21조 규칙이 실려 있다.
제1조 본회는 독립협회로 칭할 것.
제2조 독립협회에서는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건설하는 사무를 관장할 것.
제3조 독립협회의 직원은 다음에 기록한 대로 정할 것.
1. 회장 1인
1. 위원장 1인
1. 위원 20인 내외
1. 간사 20인 내외
이 안에서 약간은 서기와 장부와 간역 등 차비를 관장할 것.
1. 회계장 1인
1. 회원은 정해진 수가 없음.
생략…
제20조 회원은 보조금을 송부한 인원으로 정할 것.
제21조 회원은 독립협회대회에 회원으로 참여할 것.
4.독립협회 윤고
삼가 아룁니다. 우리나라는 후미진 한 귀퉁이에 위치하고 국토가 작아서, 용이 되지 못한 채 움츠린 이무기의 한탄이 없지 않고 남의 지배 아래에 있은 지 오래입니다. 중국의 사신을 부담스럽게 여겼는데도, 문을 영은문(迎恩門)이라 이름하고 관을 모화관(慕華館)이라 명명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생략 …
우리 동포형제 2천만 인구의 현재의 행복이니, 아름답고 성대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념할 만한 실적이 없는 것이 진실로 하나의 흠입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의론하여 독립협회를 발기하고 이전 영은문 터에 독립문을 새로 건설하고, 이전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이라 하여, 옛날의 치욕을 씻고 후세 사람들의 표준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 부근의 땅도 포기하지 않고 독립공원도 함께 창설해서 그 문과 관을 안전히 보관하고자 하니, 성대한 사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그 공사는 성대하여 거금의 자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대중들의 힘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성취를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신민 된 자가 기꺼이 듣고 동참하지 않을 기 없을 것이니, 이에 글로써 힘써 알립니다.
혜량하시고 보조금을 많건 적건 뜻에 따라 보내주십시오. 본회 회원에 가입하실 의사가 있으시면 널리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건양 원년(1896년) 7월 독립협회
회장 안경수
사무위원장 이완용
등 아룀.
5. 독립협회 윤고3)
본회에서는 매월 2번씩 잡지를 편찬하되, 우리나라의 역대 연혁의 유래와 전 세계 만국의 치난흥폐, 고금의 정치가 민국일치하던 실적을 증명하고, 일에 맞게 논설할 것입니다. 그리고 회원과 각부 부군과 쟤야 유지 등 여러 분들게 열람하게 하여 본회의 애국애민의 뜻과 유질유문하는 듯을 표명할 것입니다. 또 그 본 잡지에 해당하는 가격을 매겨서 편찬 인쇄하는 비용을 구제하고 본회의 공동 경비를 보충하고자 하여 이에 통보하오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건양 원년(1896년) 10월 19일
회장 : 안경수, 민상호, 이상재, 박기양, 남궁억
위원장 : 이완용, 이채연, 이근호, 김승규, 심의석
위원 : 김가진, 권재형, 이재정,
간사원 : 송헌빈 외 21인이다.
6. 국문론(國文論) – 지석영의 글로 순 한글로 기록되었다.
7. 공기( 空氣) – 필립 제이슨(서재필)의 글로 순 한글로 기록되었다.
8. 독립협회 보조금 수입 명단 (99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왕태자 전하 1,000원, 이재순 100원, 이윤용 100원, 이완용 100원, 윤용선 100원, 박정양 50원, 심상훈 50원, 한규설 50원, 조병직 50원, 안경수 40원, 이근배 40원, 서재필 30원, 정낙용 30원, 이종건 30원, 민경식 30원, 민영환 30원, 민상호 20원, 유기환 20원, 고영희 20원, 이채연 20원, 이재정 20원, 한치조 20원, 이응익, 20원, 윤웅렬 20원, 신기선 20원, 신석희 20원, 김재풍 20원, 민영기 20원, 민병석 20원, 미국 부인 킨들러 16원 ……김종한 30원, 권재형 30원, …김가진 10원, 남궁억 10원, 미국교사 트엇 10원, 미국거류 조선인 박여선 5월 5전, 김홍륙 10원, 달성회당 예배인4) 10원, ……
이상이 대조선독립협회회보 제1호의 내용이며 순서이다.
우리는 1호 회보를 통하여 몇 가지 단순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이상의 글에서 독립협회의 설립 목적이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건설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시된 목적이 우리가 배우고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독립협회가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근대 민주의 의식 과 정치의식을 심어준 것은 사실이다.
둘째, 보조금을 낸 사람들이 구한말 조선왕조 관료가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 당시 독립협회에는 보수 유림과 보부상계와 친러파를 제외한 친일파, 친미파가 총 망라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보조금 후원자 명단에 친러파 김홍륙의 이름이 들어 있다.
넷째, 당시 독립협회 지도자들은 한 조직에 몸담고 자주 만나며 정국을 논하며 애국애족의 열 정을 토로하였지만
조선 망국 후에는 독립운동가와 친일 반민족주의자로 서로 갈리어 다른 길을 걷는다.
독립협회 제1호 회지에 밝혀진 회칙과 회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통해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끝까지 음미하면 알려지지 않은 독립협회의 면모를 알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역사 속의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살아서 활보하며 고뇌하며 절망하는 조선 근대인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천천히 깊이 호흡하며 묵상할 일이다.
회지를 현대 한글로 번역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해시
우담초라하니
미 주
1) 권정원 외 4인 번역, ⌜완역 대조선독립협회회보⌟ 31쪽, 보고사. 23년.
2) 회 목차에 1,2,3 등의 순서 표기는 없다. 그러나 글을 읽는 분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임 의로 번호를 매겼다.
3) 윤고는 현대식으로 말하면 알림, 광고라는 뜻이다.
4) 남대문 시장 건너편에 있던 달성궁에 스크랜튼 의사가 개척한 교회를 말한다.
당시 전덕기가 그의 조사로 활동하며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 일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참고서적
권정원 외 4인 번역, ⌜완역 대조선독립협회회보⌟, 보고사.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