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00]가을에 가을하니 가을가을하다
가을(전라도 표준말은 가을은 가실이고, 겨울은 시한이다)은 한 글자로 하면 수收자 일 터. 거둔다는 뜻이니 수확의 계절을 이른다. ‘가을하다’는 국어사전에도 실린 표제어이며 ‘가을걷이를 하다’는 뜻이다. ‘가을가을하다’는 가을걷이를 다 해놓고나니 마음이 부자나 된 듯 풍요롭고 넉넉하다는 의미로 필자가 만든 말이다. 대하예술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님이 만든 ‘소살소살’(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이라는 단어처럼 국어사전에 ‘가을가을하다’가 실릴 날이 올까?
방금 쌀을 찧어와 툇마루에 쌓아놓고 보니, 마음이 가을가을하다. 1마지기(200평)에 80kg 3가마꼴이다. 한 다랭이(3마지기)에 20kg 37가마, 지난해보다 서너 가마 더 나왔으니 다행한 일이다. 방아 찧어준 삯으로 3가마를 제하니 34가마. 대가족 1가마씩 주고도 10여 가마는 남으니 필요로 하는 친구들에게 드릴 수도 있다. 엊그제 마늘과 쪽파도 심었으니, 이제 베어놓은 들깨만 털면 ‘가실일’은 끝나는 셈이다. 10여일 후 양파 심는 것은 일 축에도 못든다. 보름쯤 있다 간신히 몇 개 달린(농약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 떨어져 버린다) 대봉시만 따면, 눈 오기 기다리는 게 농촌의 일이다. 폭망(폭삭 망함)한 콩농사로 속이 많이 상했지만 힘든 콩타작할 일 없으니 올해는 손을 일찍 털었다. 이모작이 실패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길고 지독한 장마비도 원인이었으나 너무 깊게 심은 때문에 싹이 올라오지 못한 것이다. 6000개 넘는 구멍(60여개쯤 나왔다)에 사나흘 동안 혼자서 심은 공력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수확도 못한 채, 80m가 넘는 두럭 30여개에 덮인 검정비닐 벗기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풀약(제초제)을 몽땅 쳐바르니 두럭의 풀들이 죽긴 했으나, 잔해들이 엉켜붙어 비닐이 잘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침저녁 2시간씩 6번을 들판에 매달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울고 싶어도 쪽팔려 울 수도 없다. 지난해 11월초던가, 콩타작 후 마무리를 하다 친구의 돌연한 죽음 소식에 대성통곡했던 논. 들판 한 가운데는 한바탕 울기에 맞춤이었던 논. 이제 다시는 이모작같은 것, 이제 다시는 비닐로 씌워 하는 작물농사는 짓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이 비닐뭉치를 어떻게 재생할까? 이 폐비닐로 큰 바케스 같은 걸을 만든다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폐비닐을 모으면 어마어마할텐데, 어떻게 처리할까? 농사 지으며 우리는 온통 공해만 남발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추석명절도 지나고 성탄절이 돌아오면, 이 한 해도 가고 말 것이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두꺼운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한다. 한 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 내일모레라니, 참 ‘달구름’(세월을 뜻하는 백기완식 우리말) 한번 빠르다. 올해 67km의 속도가 내년엔 68km로 더 빨라질 것은 불문가지. 마음은 가을가을하면서도 어쩐지 사는 게 허허롭다. 어쩐지 외롭다. 이 고독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며칠만 지나면 황금벌판이 텅빈 들판으로 스산할 것이다. 올 겨울엔 축복처럼 눈이라도 펑펑, 많이 왔으면 좋겠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쌓인, 마을 뒤 신작로길 3km를, 신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그 눈길을 맨처음 걸으며 ‘테스형’이라도 목청껏 불러 제키리라.